순 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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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나가 있거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너의 소원을 내가 들어주는 거.\"
\"삐리릭 삐리릭.\"
내 방 탁자 위에 핸드폰이 울린다.
나는 막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와 탁자로 향했다. 몇 일째 통 시계인지 핸드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뜸했었기에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내가 검정고시를 치루고, 며칠동안 연락이 없었던 승우에게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정현아. 나 감기 걸렸어.
그 날 너무 추웠나 보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며칠동안 밖에 나가지 말래.
어쩌냐? 며칠동안 니 얼굴 못 봐서.-
녀석. 그 날 연신 콧물 때문에 훌쩍거리더니 기어코 감기가 걸렸군.
그 날 녀석과 함께 있었던 옥수역의 플랫홈을 생각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늦은 겨울 밤 한강 위 동호대교의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우리. 난 그 불빛을 바라보며 내 나이도 저 불빛이 흘러가는 것처럼 금새 흘러, 지금처럼 아이의철없는 생각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었다. 끊이지 않았던 불빛처럼 내 10대의 시간도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승우의 그 순수한 모습도 ......
벌써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르킨다. 난 생각을 접어두고 출근 준비를 하였다.
옷걸이에 걸린 승우가 사준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난 그 목걸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 목에 걸쳤다. 옥수역에서 승우가 내게 매준 것처럼 모양이 예쁘게 나오질 않았다. 난 목걸이를 가지고 한참을 씨름했다.
바깥의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목도리가 더욱 따듯하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길거리에는 여자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모두들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난 오늘은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업소로 향했다. 그러던 중 한 대형 팬시점에 붙은 광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렛으로 마음을 전하세요-
그러고 보니까 내일이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 였구나. 난 그제서야 오늘따라 여자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갑자기 승우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초콜릿은...... 난 그냥 팬시점을 지나쳐갔다.
그러다 갑자기 목도리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검정고시가 치루어지는 동안 날 기다리느냐 얼굴이 빨개진 녀석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난 할 수 없이 팬시점 대신 동네 조그만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참 예쁘게 만든 초콜릿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이런 쪽으로는 감각이 발달되지 못했기에 어느 걸 골라야 될지 몰랐다. 결국 그 중에서 제일 평범한 만원짜리 초콜렛 상자를 들고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각 안 했습니다.\"
\"그러게, 오늘은 일찍 왔네.\"
요즘 며칠 간 승우가 몸이 아파서 이 곳에 나오지 못했기에 사장에게 나를 카운터에 세워 달라고 강력하게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치껏 서빙일을 봐야했다.
다행히 오늘은 술에 취해 나에게 주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몇 시간 후에 있을 발렌타인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스트립쇼도, 라이브 쇼도 없이 조용히 음악만 흘러 나왔다. 이 곳 일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5. 4. 3. 2. 1. 발렌타인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초콜릿을 서로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키스를 나누는 커플들도 있었다. 나도 몇몇 손님들한테 작은 상자 몇 개를 받았다.
그 동안 무대 뒤에서 조용히 있던 댄서들도 무대위로 나와서 초콜릿을 던져주었다.
이들에게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이 있었나 보다. 초콜릿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현아, 생일 축하한다.\"
\"네?\"
\"생일 축하한다고.\"
사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당황하여 사장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임마, 너 발렌타인데이가 생일이잖아. 2월 14일.\"
난 그제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난 뭐가 바쁘다고 1연에 한 번뿐인 생일도 잊어버리고...... 갑자기 사장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사장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손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인 동시에 우리 업소 직원인 김정현군의 20번째 생일입니다. 모두들 축하해 주세요. 정현아 축하한다.\"
그 때 생일축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모두들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만 했다.
정말 게이란 존재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난 업소에서 받은 초콜릿 상자와, 또 사장이 준 케익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만큼 가슴 뿌듯한 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잠자리에 들고 내일 오후에 일어나면 내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고독함에 기분이 착잡해 진다. 그냥, 나 혼자 케익이나 잘라먹어야지.
난 그렇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잠이 들었다.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핸드폰 벨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11시. 남들은 벌써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지 오래인 시간이지만 나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체,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정현아, 나다 승우.\"
\"이렇게 일찍 웬일이냐?\"
\"나와서 창문을 좀 봐봐.\"
\"왜?\"
\"하여튼.\"
난 창문 커튼을 제쳤다. 아직 추운 겨울의 아침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다.
난 다시 눈을 제대로 뜨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 곳엔 승우녀석이 웬 자동차에 기대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웬 차냐?\"
\"이따가 얘기 할 테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라. 아, 그리고 다른 옷도 몇 벌 준비하고.\"
\"왜 임마?\"
\"시키는데로 해.\"
난 잠결에 승우가 시키는데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또 가방에 다른 옷도 챙겼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자만 그 와중에도 승우에게 줄 초콜릿은 챙겼다.
밖에 나오자 찬바람이 내 얼굴을 찌르기 시작했다. 난 그제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승우는 여전히 차에 기대서 차키를 흔들어 댔다.
\"웬 차?\"
\"나 이번에 수능 끝나고, 면허 땄자나. 그래서 사촌누나 차 좀 빌렸지.\"
\"왜?\"
\"오늘 너 생일이잖아. 그래서 우리 촌놈 어디 데리고 갈려고.\"
\"어디?\"
\"우선 타라. 가보면 아니까.\"
난 승우 옆자리에 탔다. 승우는 날 바라보더니 씨익하고 웃고는 시동을 걸었다. 영 폼이 어색한 게 불안했다.
\"너 잘할 수 있냐?\"
\"믿어라.\"
생각과는 달리 승우의 운전솜씨는 봐 줄만 했다. 난 덕분에 오랜만에 버스가 아닌 자가용을 타봤다.
승우가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김포공항이었다.
\"야! 여긴 왜?\"
\"너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다고 그랬지?\"
\"응. 너 설마...... 미친거 아냐?\"
\"내가 미쳤냐? 그렇게 먼 곳까지 가게.\"
\"그럼?\"
\"대신 제주도에 가자.\"
\"제주도?\"
\"응. 거기에 우리아빠 별장이 있거든. 근처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변도 있고.\"
\"비행기표는?\"
\"내가 다 예약했지.\"
\"돈이 어디서 나서 니가 그런 걸 다하냐?\"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우리 집 부자라고.\"
난 또 승우의 엉뚱한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승우의 손에 이끌려 공항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제주도 여행......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출근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면 승우와 나하고의 우정의 선도 넘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녀석은 날 정말로 좋아하는데...... 그럼 결혼이라는 내 꿈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나 갈래.\"
\"왜?\"
\"나 출근 해야해.\"
\"내가 오늘 전화했어. 너 데리고 며칠 여행 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래.\"
\"그래도 이런 건 싫어.\"
\"걱정 마. 아무 일 없을거다. 나 지금 니 마음 알아. 친구끼리 그 흔한 여행도 못 가냐?\"
난 다시 승우의 억센 손에 이끌려 비행기 좌석 안전벨트에 묶이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승우녀석은 나와는 달리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여행이 긴장되기만 하다. 난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바라보더니 내 귀에다 입을 대고선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 캘리포니아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지? 난 그냥 그 소원을 작게나마 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삐리릭 삐리릭.\"
내 방 탁자 위에 핸드폰이 울린다.
나는 막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와 탁자로 향했다. 몇 일째 통 시계인지 핸드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뜸했었기에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내가 검정고시를 치루고, 며칠동안 연락이 없었던 승우에게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정현아. 나 감기 걸렸어.
그 날 너무 추웠나 보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며칠동안 밖에 나가지 말래.
어쩌냐? 며칠동안 니 얼굴 못 봐서.-
녀석. 그 날 연신 콧물 때문에 훌쩍거리더니 기어코 감기가 걸렸군.
그 날 녀석과 함께 있었던 옥수역의 플랫홈을 생각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늦은 겨울 밤 한강 위 동호대교의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우리. 난 그 불빛을 바라보며 내 나이도 저 불빛이 흘러가는 것처럼 금새 흘러, 지금처럼 아이의철없는 생각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었다. 끊이지 않았던 불빛처럼 내 10대의 시간도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승우의 그 순수한 모습도 ......
벌써 시계는 오후 6시를 가르킨다. 난 생각을 접어두고 출근 준비를 하였다.
옷걸이에 걸린 승우가 사준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난 그 목걸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 목에 걸쳤다. 옥수역에서 승우가 내게 매준 것처럼 모양이 예쁘게 나오질 않았다. 난 목걸이를 가지고 한참을 씨름했다.
바깥의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목도리가 더욱 따듯하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길거리에는 여자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모두들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난 오늘은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며 업소로 향했다. 그러던 중 한 대형 팬시점에 붙은 광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렛으로 마음을 전하세요-
그러고 보니까 내일이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 였구나. 난 그제서야 오늘따라 여자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갑자기 승우 생각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초콜릿은...... 난 그냥 팬시점을 지나쳐갔다.
그러다 갑자기 목도리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검정고시가 치루어지는 동안 날 기다리느냐 얼굴이 빨개진 녀석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난 할 수 없이 팬시점 대신 동네 조그만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참 예쁘게 만든 초콜릿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이런 쪽으로는 감각이 발달되지 못했기에 어느 걸 골라야 될지 몰랐다. 결국 그 중에서 제일 평범한 만원짜리 초콜렛 상자를 들고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각 안 했습니다.\"
\"그러게, 오늘은 일찍 왔네.\"
요즘 며칠 간 승우가 몸이 아파서 이 곳에 나오지 못했기에 사장에게 나를 카운터에 세워 달라고 강력하게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눈치껏 서빙일을 봐야했다.
다행히 오늘은 술에 취해 나에게 주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몇 시간 후에 있을 발렌타인 파티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스트립쇼도, 라이브 쇼도 없이 조용히 음악만 흘러 나왔다. 이 곳 일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5. 4. 3. 2. 1. 발렌타인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초콜릿을 서로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키스를 나누는 커플들도 있었다. 나도 몇몇 손님들한테 작은 상자 몇 개를 받았다.
그 동안 무대 뒤에서 조용히 있던 댄서들도 무대위로 나와서 초콜릿을 던져주었다.
이들에게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이 있었나 보다. 초콜릿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정현아, 생일 축하한다.\"
\"네?\"
\"생일 축하한다고.\"
사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당황하여 사장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임마, 너 발렌타인데이가 생일이잖아. 2월 14일.\"
난 그제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난 뭐가 바쁘다고 1연에 한 번뿐인 생일도 잊어버리고...... 갑자기 사장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사장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손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인 동시에 우리 업소 직원인 김정현군의 20번째 생일입니다. 모두들 축하해 주세요. 정현아 축하한다.\"
그 때 생일축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모두들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야만 했다.
정말 게이란 존재가 행복한 순간이었다.
난 업소에서 받은 초콜릿 상자와, 또 사장이 준 케익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만큼 가슴 뿌듯한 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잠자리에 들고 내일 오후에 일어나면 내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고독함에 기분이 착잡해 진다. 그냥, 나 혼자 케익이나 잘라먹어야지.
난 그렇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잠이 들었다.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
핸드폰 벨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11시. 남들은 벌써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지 오래인 시간이지만 나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체,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정현아, 나다 승우.\"
\"이렇게 일찍 웬일이냐?\"
\"나와서 창문을 좀 봐봐.\"
\"왜?\"
\"하여튼.\"
난 창문 커튼을 제쳤다. 아직 추운 겨울의 아침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다.
난 다시 눈을 제대로 뜨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 곳엔 승우녀석이 웬 자동차에 기대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웬 차냐?\"
\"이따가 얘기 할 테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라. 아, 그리고 다른 옷도 몇 벌 준비하고.\"
\"왜 임마?\"
\"시키는데로 해.\"
난 잠결에 승우가 시키는데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또 가방에 다른 옷도 챙겼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자만 그 와중에도 승우에게 줄 초콜릿은 챙겼다.
밖에 나오자 찬바람이 내 얼굴을 찌르기 시작했다. 난 그제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승우는 여전히 차에 기대서 차키를 흔들어 댔다.
\"웬 차?\"
\"나 이번에 수능 끝나고, 면허 땄자나. 그래서 사촌누나 차 좀 빌렸지.\"
\"왜?\"
\"오늘 너 생일이잖아. 그래서 우리 촌놈 어디 데리고 갈려고.\"
\"어디?\"
\"우선 타라. 가보면 아니까.\"
난 승우 옆자리에 탔다. 승우는 날 바라보더니 씨익하고 웃고는 시동을 걸었다. 영 폼이 어색한 게 불안했다.
\"너 잘할 수 있냐?\"
\"믿어라.\"
생각과는 달리 승우의 운전솜씨는 봐 줄만 했다. 난 덕분에 오랜만에 버스가 아닌 자가용을 타봤다.
승우가 도착한 곳은 엉뚱하게도 김포공항이었다.
\"야! 여긴 왜?\"
\"너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다고 그랬지?\"
\"응. 너 설마...... 미친거 아냐?\"
\"내가 미쳤냐? 그렇게 먼 곳까지 가게.\"
\"그럼?\"
\"대신 제주도에 가자.\"
\"제주도?\"
\"응. 거기에 우리아빠 별장이 있거든. 근처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변도 있고.\"
\"비행기표는?\"
\"내가 다 예약했지.\"
\"돈이 어디서 나서 니가 그런 걸 다하냐?\"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우리 집 부자라고.\"
난 또 승우의 엉뚱한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승우의 손에 이끌려 공항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제주도 여행......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출근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면 승우와 나하고의 우정의 선도 넘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녀석은 날 정말로 좋아하는데...... 그럼 결혼이라는 내 꿈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나 갈래.\"
\"왜?\"
\"나 출근 해야해.\"
\"내가 오늘 전화했어. 너 데리고 며칠 여행 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래.\"
\"그래도 이런 건 싫어.\"
\"걱정 마. 아무 일 없을거다. 나 지금 니 마음 알아. 친구끼리 그 흔한 여행도 못 가냐?\"
난 다시 승우의 억센 손에 이끌려 비행기 좌석 안전벨트에 묶이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승우녀석은 나와는 달리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여행이 긴장되기만 하다. 난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바라보더니 내 귀에다 입을 대고선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 캘리포니아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지? 난 그냥 그 소원을 작게나마 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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