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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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다닌데.\"

난 수원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서 그 근처 전철역으로 마구 뛰었다.
뛰면서 그 동안 승우와 나의 모습들이 노란색 색광렌즈를 낀 영화의 필름처럼 나를 스쳐지나갔다.
처음 시비 붙었었던 모습, 손을 잡으며 잠자리에 들었던 모습, 제주도 겨울밤에 왈츠를 추었던 모습,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춤을 추었던 모습.
그리고, 훈련소에 말없이 나의 따듯한 위로도 받지 못한 체 들어가는 녀석의 모습.
너무나 미안했다. 녀석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난 그 미안한 마음에 더 빨리 더 멀리 뛰었다.

난 전철을 타고서도 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았다.
나의 몸은 전철 안에서 손잡이에 기대어 서 있지만 나는 뛰고 있었다.
녀석을 위해서 난 뛰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수원. 수원역입니다.\"
한참을 뛰다보니 어느새 수원까지 왔다.
이젠 어떻게 승우를 만나야 하나.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수원도 작은 곳이 아닌데, 난 이 큰 도시에서 승우를 어떻게 찾겠다고 무작정 이렇게 수원에까지 왔을까? 전철에서 내리면 난 무엇부터 해야하나?
전철이 새마을호가 수원역에 지나가기 위해서 잠시 멈춰서 있는 동안 난 이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철이 수원역에 도착하고 출입문이 열리자 마자 난 또 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부딪히며,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난 역의 계단을 뛰어 올랐다. 그리고 개찰구 앞에서 줄을 서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발을 계속 동동 굴렀다.
난 드디어 수원역 청사에서 빠져 나왔다.
하지만 수원역 앞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난 다시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높은 건물들, 많은 차들로 가득 찬 도로 정신이 없었다.
\"수원대에 있다던데.\"
수원대...... 난 다시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모습처럼 난 무엇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뛰었다.

한참을 이곳저곳 뛰어다니다가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정류장을 향해서 방향을 바꾸려는 순간 너무나 낯익은 모습에 세상은 온통 색을 잃은 흑백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흑백의 화면속에 오직 여름태양의 빛을 받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난 그 사람을 보고서는 마구 뛰던 나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 사람도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옆으로 메고 있었던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흑백화면 속의 세상은 참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유독 빛을 받은 우리만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왔구나.'
'응. 늦어서 미안해.'
'보고싶었어.'
'나도 보고싶었어. 너만큼이나......'

난 그렇게 멈춰진 시간 속에서 거의 3年여만에 승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근데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리어 승우의 모습이 아릿하게 보였다.
난 얼른 땀으로 가득찬 손으로 눈을 부비며 눈물을 닦아 내었다.
그러자 내가 잠시 눈을 부비는 사이, 승우는 바닥에 떨어뜨린 가방을 다시 주워서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녀석은 내게 고개를 숙인 체 다가온다.

\"숨차 보인다. 뛰었냐?\"
\"승우야, 있잖냐. 나도 너처럼......\"
\"그래, 가자.\"

녀석이 먼저 앞장섰다.
난 하고 싶었던, 천일동안 혼자 그리워하며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시 내 마음속으로 삭힌 체, 그런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녀석에게서 약 천일 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왠지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곁에 있고만 싶었던 사람인데 막상 곁에 있어도 기쁘지 않았다.
서로 더운 살갗을 맞대고는 있지만 그 동안 느꼈던 그리움보다도 더 멀게만 느껴졌다.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수원역 플랫홈 위에서 나란히 서서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승우의 손을 잡아보고 싶지만은......
이젠 우리의 사랑은커녕, 우정이라는 이름마저도 다시 녀석의 손을 잡는다는 것을 허락하질 않았다.

\"청량리, 청량리 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지평선과 맞닿은 곳에서 붉은 색의 전철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서 바람을 일으킬 때에는 무더운 여름날씨인데도 난 추위를 느꼈다.

\"타자.\"
\"어, 그래.\"

녀석과 나란히 앉았지만 녀석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그런 녀석을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듯,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또 녀석도 제대로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꿈에서라도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얼굴이라면서......
녀석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무표정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난 나대로 내 앞쪽에 앉은 사람의 구두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과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보다 더 길고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다음 역은 시흥, 시흥입니다.\"

안내원의 방송이 끝나자 녀석은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반팔 밖으로 들어난 내 팔에 녀석의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나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잠깐 내렸다가 갈래?\"

난 그 말에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녀석을 따라 자동문 옆의 손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었다.
드디어 전철은 한산한 시흥역에서 멈추었고, 문이 열리자 마자 이번엔 녀석보다도 내가 먼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 전철이 지나갈 때, 내리는 사람만 간혹 있을 뿐......
우리는 이런 조용한 시흥역 플랫홈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둘은 나란히 플라스틱 의자에 서로의 몸을 맡기었다.

먼저 내리자던 녀석은 두 팔꿈치를 무릎에 기댄 체,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나 또한 그런 녀석에게 거리감이 느껴져 쉽게 먼저 말할 수 가 없었다.
그저 둘이서 서로의 살갗만 맞댄 체,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지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의 태양이 노을 뒤로 사라져 어둠을 남길 때까지......
난 승우에게서 무어라 무슨 말이라도 먼저 듣고 싶었는데, 그저 녀석의 숨소리밖에 들을 수 강 없었다.

난 예전부터 이런 승우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싫었다.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먼저 불러놓고서는 내게 화난 척, 아무 말도 없는 그런 녀석의 침묵에 난 불안한 마음에 항상 짜증이 났다.
3여 전, 옥수역에 날 먼저 불러놓고 아무말도 없어 나를 짜증내게 했던 녀석은 군대를 간다고 한참 후에 말했었다.
이젠 더 이상 녀석의 침묵을 참을 수 가 없었다.
늦은 밤 9시 33분이 되었을 때 난 녀석을 먼저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왜 내리자고 그랬냐? 할 말 있는 거 아니였냐?\"
\"......\"
\"그래, 넌 항상 이런 식이었다. 뭔가 니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사람 불러내 놓고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불안해 하는거.\"
\"......\"
\"지금 뭐 하자는 거냐? 이러면서 혹시 내가 죄책감 같은 거 들기 바라는 거냐?
\"......\"
\"그런 생각이라면 바꿔. 나 너에게 죄책감 같은 거 든 적 없으니까.
\"......\"
\"제길. 너랑 싸울려고 그런 거 아닌데......\"

\"너, 나 기다렸냐?\"

마침 어둠 저 멀리에서 작은 불빛을 보이며 전철이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불빛이 점점 더 커지더니 어느 덧 바람을 불러 땀에 젖은 우리를 잠시나마 식혀주었다.
그리고 열린 자동문 사이도 몇 사람이 내리더니 전철은 다시 '털컥 털컥.' 소리를 내며 다시 사라졌다.
전철에서 내린 몇 사람은 몇 분이 지나자 금세 역에서 나가버리고 시흥역에는 다시 녀석과 나 단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난 승우에게 처음 수원역에서 만났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들을 꺼낼 수가 있었다.

\"나도 군대에 가 있었어.\"
\"......\"
\"그래서 나도 니가 보고 싶어도 너를 볼 수가 없었던 거야. 니가 내 생각 때문에 밤잠을 잘 못 잘 때 나도 니 모습이 잘 생각나지 않아 애태웠었고, 니가 힘든 훈련을 받을 때, 나도 훈련을 받고 있었고.\"
\"......\"
\"나도 기다렸어. 니가 날 기다리며 애태운 만큼이나......\"

시흥역에는 사람을 태운 무궁화호가 막 지나가며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머리를 휘날리면서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기차가 시흥역을 완전히 통과했을 때, 난 다시 녀석에게 계속 말했다.

\"몰랐어. 니가 군대가던 날 왜 내게 그런짓을 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이젠 다 말한거야?\"
\"아니......\"
\"괜찮아. 니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아도 니 말이 모두다 사실이라는 거 나도 알아. 그러니까 이젠 됐어. 괜찮아.\"
\"아니, 내가 더 말해야겠어.\"
\"......\"
\"니가 나에게 갖는 그런 감정을 나도 너한테 느끼는 것 같다.\"
\"뭐라고? 무슨 뜻이야?\"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열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다지 변변치 못한글 읽어주시는 것도 기쁜일인데 칭찬까지 해주시고......
앞으로도 맣은 분들이 많은 기대해주신다는 거 잊지말구 열심히 글쓸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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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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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너무 재미있구여 글이 너무 깔끔해여 화팅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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