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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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99년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던 가을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를 보려고 본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시야속에 그가 들어와 있었던 것 뿐...

1999년 여름, 난 8월 한 달을 태국에서 보냈다. 그것은 허울좋은 배낭여행이 아니라 도피였다.
쏼랑쏼랑 거리는 5성조의 태국어를 들으면 늘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필요한 것은 간단한 영어로 충분했다. 물가도 이 정도면 적당하다.

방콕은 서울보다도 큰 대도시였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북쪽으로 올라갔다. 북쪽의 큰도시 치앙마이...
태국의 제2중심지지만 한적한 시골스런 느낌이어서 좋았다.
방콕보다는 하늘이 가까왔다.

한국사람들은 이곳까지는 잘 안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배낭을 둘러멘 외국인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였다. 나도 그들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다녀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상당히 먼 거리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해저물녁 어둡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아직도 치앙마이까지는 멀기만 하다.
인적없는 한적한 길에 마음만 초조하다.
문득 저 앞에 오토바이가 한대 쓰러져 있고 외국인 한 명이 길 가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무심코 휭하니 지나가다가 문득 낯선 곳에서 만난 저 사람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다는 그야말로 낯선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그 사람 앞에 섰다. 한 20대 초반 되어 보이는 애띠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까
그의 말의 요지는 대충 이랬다.
자기도 치앙마이로 가는 길이다. 오토바이가 고장나는 바람에 발을 다쳤다.
애인이 가까운데 도움을 구하러 갔다 
(음... 내 기억으로 이 길 가에 제대로 된 마을은 안 보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청년에게 물었다. 당신 애인이 이 길로  갔냐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럼 내가 태워 줄 테니 이 길 따라 가다보면 만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지는데 거기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의 얼굴이 밝아지며 연방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한 5분을 몰았을까? 뒤에 있던 녀석이 앞을 손가락질 하며 뭐라고 불러댄다. 아마 애인을 발견했나 보다. 저 만치 길 가에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갈 수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앞에 보이는 그 사람 역시 체격이 건장하고 핸섬하게 생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앞서 가던 사람도 소리를 들었던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아니 뒷자리의 그녀석에게로 달려왔다.
나는 아랑곳 없이 지들끼리 뭐라고 막 말하더니...
헉... 달려온 놈이 딥키스를 퍼붓는게 아닌가?

결국 난 운전대를 그 넘에게 넘겨 주고 발다친 녀석에게 엉겨붙다시피 뒷자리에 걸터앉은 채 밤이 으슥한 시간에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이름만 배낭여행이지 숙소는 디럭스급 호텔이었다. 그들은 내가 묵는 호텔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었다.

고맙다는 소리를 귓전으로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다리 다친 놈이 내가 어디 묵냐고 물었다. 묻는 데 대답을 안해주기도 그래서 \"lotus 1215\" 한마디를 남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 자리에 들지 못했다.
내가 왜 그렇게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서 여기로 왔는지...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느끼고 도전히 내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존의 모든 관계가 다 미로속으로 빠져 버리는 것 같았다.
가족, 친구... 그 어느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태국으로 온 것인데...
오늘 내 눈 앞에 게이가 나타난 것이다. \"oh my God!\"


* 외국설정이라 좀 무리가 있을 듯...
  태국은 한 번 갔다 온데라 기억을 살려보는데
  하필이면 동남아시아에서 게이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인정되는 곳으로 도피여행
  을 떠난 꼴이 되어서 좀 어색하네요 ^^ ㅋㅋㅋ
  그냥 제 기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갑자기 창작욕구가 뻗쳐서 되도 않는 글을 막 올리는데
글을 써놓고 보니 리플 달아주시는 분들이 정말 소중하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욕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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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essay?sca=&amp;sfl=wr_name,1&amp;stx=괭이" data-toggle="dropdown" title="괭이 이름으로 검색" class="sv_guest"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괭이</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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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쿤데라의 원작을 패러디 하는건가요? 아니면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같다 붙인건가요? 추후를 지켜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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