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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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핸드폰을 꽉 쥔 채 답장을 읽고 또 읽었다.
‘한 시간이면 가니까 기다려.’
그리하면 글자 뒤에 숨겨진 그의 속마음을 알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 마지못해 온다는 걸까.
어질러진 방을 치우고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료칸 앞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야마모토상 뿐이었다.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더니
곧 낯익은 혼다 피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서 내리는 가벼운 츄리닝 차림의 야마모토상을 보는 순간 나는 벙찌고 말았다.
안 본 지 하루도 되지 않았건만,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이 텐션으로 반갑게 인사한다거나, 접객원 흉내로 웃겨주겠다는 계획은
눈앞에 있는 그를 보고 나니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여어, 뭘 보고만 있어? 잠에서 덜 깼냐?”
야마모토상은 양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가져가라는 듯 흔들어댔다.
“이게 다 뭐예요?”
“선물.”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 평범한 선물은 아니겠지, 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그에게서 여지껏 맡아본 적 없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포근하고 부드러우면서 정열적이고 남성적인 향이었다.
“저 만난다고 향수까지 뿌렸어요?”
“뭔 소리야. 그냥 샤프란 냄새야.”
땀 냄새도 아니고 홀아비 냄새도 아닌,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기분 좋은 향에 나는 계속해서 강아지 마냥 킁킁거렸다.
그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저만치 떨어져 걷는 그.
”이거나 먹어.“
-뿌웅.
아.
아마쿠사에서는 일상이었던지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한껏 예민해진 코가 문제였다.
“아악~~ 그냥 방구는 몰라도 똥방구는 아니죠~ 차에서 끼고 나오든가 했어야죠!”
“시끄러 임마. 얼른 가서 똥 싸야겠다.”
야마모토상은 뻔스럽게 웃더니, 걸음을 멈춘 채 정색하고 쳐다보는 나의 볼을 꼬집었다.
“빨리 와!!”
방에 들어와 봉지를 열어보니 제법 묵직했던 이유가 있었다.
술과 탄산수, 하이볼 잔이 들어있었다. 고풍스럽고 세련된 라벨이 고가의 위스키인 듯했다.
거기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오뎅탕까지.
“뭘 이런 걸 다 사왔어요. 그냥 맥주면 되는데.”
막 화장실에서 나온 야마모토상에게 물으니 집에서 아무도 안 먹는 걸 가져왔다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냉장고에 있는 얼음을 꺼내와 하이볼을 만드는 동안 그는 방을 둘러보고는
넓고 좋다며 감탄하다가 테라스에 있는 온천탕을 보더니 ”비싼 데도 잡았네.“ 라고 했다.
나는 새집 보러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는 야마모토상에게 일단 자리에 앉으라고,
술부터 마시자고 하면서 황금빛으로 물든 잔을 가리켰다.
가볍게 한 모금하자 달큰하면서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이
그냥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캬~ 이거 진짜 물건이네요. 18년산이면 대체 얼마예요?“
”알면 다쳐.“
쳇, 핸드폰으로 찾아보면 되지.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기에 나는 핸드폰으로 술 이름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
그리고 말없이 야마모토상이 오기 전에 사놓은 맥주를 가져와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 야마모토상.
”너 이거 다 마실 때까지 잘 생각 마라“
그러고는 제멋대로 위스키와 탄산수를 부어 강제로 마시게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만든 하이볼은 무진장 맛없다는 걸.
술이 들어갈수록 야마모토상은 아마쿠사에서 맥주를 마실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살짝 홍조를 띤 채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유카타 제법 어울리잖냐? 일로 와봐~.“
입고 있는 자줏빛 꽃무늬의 유카타를 빤히 바라보길래 괜히 쑥스러워서
새침하게 옆에 가서 앉으니 어깨에 손을 걸치고는 그윽하게 나를 쳐다봤다.
수염이 평소보다 거뭇해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 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나 싶던 순간.
”네가 여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찔러댔다. ”옵빠이-가슴 최고!“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태어나서 한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 여자라면 기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도 야마모토상이 여자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덮쳤을 거예요.”
물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야마모토상이 더 좋지만,
그라면 여자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내 발언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곧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누가 너한테 덮쳐진다냐? 바로 고간 걷어차 버리지!”
취기가 올라온 그는 귀여워졌고 엉큼해졌으며 더 재밌어졌다. 미친 듯이 사랑스러웠다.
오뎅탕에 하이볼과 맥주, 그리고 디저트로 기념품 가게에서 산 과자까지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누우면 배가 아프길래 잠깐 산책이나 갈까 하여 야마모토상에게 물어보자
귀찮다며 그는 이불 위에 누워버렸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더니 장난스럽게 몸을 쿡쿡 찔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대로 잠이 든 것 같았다. 안주도 잘 먹지 않고 술만 마시더니 거하게 취한듯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 곧장 곯아떨어지던 아버지의 양말을 벗겨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가 신고 있던 검은 양말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의 몸이 약간 움찔거렸다.
옷이라도 벗기는 줄 알았나.
나는 가볍게 그의 배를 톡 건드리며 옆에 누웠다.
색색거리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잠깐 사이에 천둥같은 코골이가 시작되었고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있는 야마모토상.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눈에 담았다.
여자에게만 허락된 그의 입술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
여자에게만 반응하는 그의 아랫도리에 입맞춤이라는 표식을 남기고픈 마음이 한껏 격렬해졌다.
사랑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과 사랑하니까 참아야지, 하는 생각이 서로 부딫쳤다.
입 안을 맴도는 위스키 잔향이 마실 때와는 다르게 씁슬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럼에도 몸은 솔직했다.
바보같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나에게 몸은 답을 알려주었다.
내 손은 무방비하게 널브러진 두툼한 손을 조심스레 감싸안았고
따뜻한 온기가 그 사람의 손을 타고 넘어왔다.
이 감촉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가도
그대로 있으면 정말로 몹쓸 짓을 할 것만 같아서 일어났다.
보조등만 켜두고 욕탕으로 향했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테라스 창 너머 그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발가벗은 몸 위로 올라탄 나를 보았다.
자연스레 커지는 물건을 붙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참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참을 수밖에 없는 욕정이 물에 흩뿌려졌다.
찰나의 쾌감과 깊은 후회감을 차례대로 느끼고 나니 뒤늦게 비릿한 냄새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물건.
여전히 욕망은 요동쳤고
테라스 창 너머로 보이는 야마모토상의 위에 여전히 내가 올라타 있었다.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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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올려드려서 죄송합니다.
한동안 일이 좀 바빠지는 바람에 글을 쓸 시간이 없었네요.
거의 잊다시피 지내다가, 아차 싶어서 급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볼품없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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