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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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나가 딱 내 나이일 때의 일이다. 일찍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휴직중인 누나가 울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선머슴 내지는 장군감 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누나의 이런 모습이 꽤 낯설었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시덥잖은 일로 남자친구와 다투었다더라.

 

근데 뭘 울기까지 하고 있어.”

이 별거 아닌 얘기를 말할 데가 한 군데도 없어서.”

 

 누나는 꽤 오랜 시간 지방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을 해서, 수도권에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게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컴퓨터와 먹을 것만 제공된다면 1년이고 2년이고 집밖에 나갈 일이 없는 내 듣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되지.”

내가 살아보니까, 내 나이쯤 되잖아? 그럼 친구를 만드는 게 남자를 꼬시는 것보다 어렵다?”

 

 내가 아는 한 누나는 교복을 벗기도 전부터 서른이었던 당시까지 한 번도 남자가 끊긴 적 없었으나, 그렇다고 또 엄청난 미인이냐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아예 박색은 아닌. (아무래도 출신이 같으니까 나와 같은) 어중띤 외모의 소유자였는데, 무슨 나라라도 기울일 미녀가 할 법한 소리를 하니 공감이 갈 리가.

 

그런가?”

. 남자가 맘에 들 땐 좋아한다고 하면 되는데,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 친해지고 싶어요.’한다고 그렇게 되는게 아니더라.”

 

 예나 지금이나 누나와 그렇게 각별한 사이는 아닌 지라, 그 이후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짐작컨대, 그러냐. 기운내라. 뭐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2.

이 별것도 아닌 이야기가 왜 이제 와 떠오르는지, .

 

 

3.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처음으로 혼자 종로 술번개에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친구들이 현재 모두 연애중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연애중일 때 그들을 찾지 않았고, 나를 찾는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와 있어야 해서 못 나간다고 했으니 헤어졌다고 놀아달라고 하지 않을 염치정도는 있었다. 사실 술번개는 친구들이랑 몇번 가본 적은 있었는데, 혼자 가는 건 또 처음이라 좀 떨렸다. 술만 들어가면 E가 되는 성격 탓에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간만에 솔로가 된 기분을 좀 내는 것 같아서 신이 나기도 했다. 딱 하나, 첫차를 타고 돌아올 때는 좀 공허했다.

 

 

4.

 이제 누나의 말이 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애인이 원래 기간제 베프라고 하던가. 다시말해 연애는 내가 가장 쉽게 베스트 프렌드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세 명뿐이었지만 운 좋게도 20대 내내 연애를 해왔는데, 끝날 때마다 현타가 왔었다. 그럼에도 다시 연애를 하게 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차피 매번 2년만 지나면 섹스리스 수준으로 스킨쉽 빈도가 줄었고 나는 늘 불타기보다 안정적인 연애를 더 꿈꿔왔는데, 그런 것들이 다 늘 옆에 있어줄 친구가 필요해서지 않았나 싶다. 지들 연애한다고 찾아도 안나오는 그런 놈들 말고. (*저도 원 오브 뎀입니다.)

 

 

5.

 학부 시절부터 아싸를 자처했던 터라 영화며 밥이며 혼자 못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분명 남자친구가 없어서 힘든 점은 있다. 엽떡을 시켜 먹을 수가 없다는 것. 물리적으로 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 일만큼은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스킨쉽이다. 섹스가 아닌, 정말 스킨쉽. 게이로 살면서 키스 이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뽀뽀 이하를 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번개를 하자고 만나서 죄송한데 좀 안고만 있어도 될까요,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친구들에게 섹파말고 허그 파트너가 있었음 좋겠다고 했지만, 애처로운 눈빛과 함께 그냥 남자를 만나라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6.

 나는 외로움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이 상태를 외로움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으므로 그러하다. 전에 한번, 아무 약속도 없을 때에 집에 있다가 정말 잠겨 죽을 것만 같아서 혼자 번화가 카페에 나와 앉아있던 적이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최대한 천천히 걸어왔다. 누구라도 나를 알아보고 , 이런 데서 다 만나냐.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하고 말을 걸어줄까봐. 이런 스스로가 병ㅅ같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해서 좀 웃었다.

 

 

7.

 ‘외로움이 귀찮음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정말 연애는 그만 하고싶다. 연애를 할 때마다 자꾸만 드러나는 내 밑바닥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최근 연애가 정말 별로였어서 더 그렇다. 근데, 그러면 엽떡은 어떻게 먹고 뽀뽀는 누구랑 하냐고.

 

 

8.

 서른이 되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9.

 열아홉, 대학만 가면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사르르 녹아버릴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았고, 대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 4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수 있는 거라던가, PC방에서 10시 넘게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이게 20살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똑같은 걸 서른에도 이러고 있네. 어릴 땐 30이면 엄청나게 어른인 것 같았는데. 지금의 내가 20살의 나와 다른 거라곤 늘어진 피부와 정말 아주 약간만 나아진 경제 사정, 그리고 연애에 대한 환상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분명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것들이 제자리다. 마흔도 마찬가지인가?

 

 

10.

 30대는 20대와 다르기를 바란다. 이제 정말 남자로 사람의 빈자리를,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기를. 사랑을 인질삼아 서로의 추한 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기를. 엽떡은 혼자서 두고두고 이틀씩 먹을 수 있기를. 열아홉의 내게 스무살은 별거 없었지만 서른부턴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제목이 된 노래는 포맨도, 소녀시대도 아닌 WINNER의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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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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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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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흔인데  정말 공감이 많이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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