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커밍아웃 히스토리 (1, 1.5, 2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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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커밍아웃 히스토리

  2019년 8월 22일 목요일 오후 3:07

어렸을 때 나는 정체성 혼란을 겪은 적이 없다. 어느 연구 자료에서 사람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순간이 다섯살 이후라고 그랬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못해도 유치원인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즈음의 그 시절 부터 내 시선은 남자인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여느 게이들 처럼, 운동은 잼병이었던 나는 체육시간이면 늘 스탠드에 앉아있었다. 아직은 소년 티를 못 벗은 친구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축구공을 차고 노는 걸 멀찍이서 지켜보던 그 감정은 약간의 동경이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익숙한 헤테로니, LGBT니, 성정체성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알기엔 그때 그 소년은 너무 어렸다. 철부지들이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괜히 장난 거는 것 처럼, 나도 괜히 좋아하는 짝꿍한테 시시한 장난을 쳤고, 좋아하는 친구한테 말이라도 붙이고 나면 기분 좋아서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 아직은 미성숙한 꼬마였다.

 

언제랄 것도 없이, 어느 순간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리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을 따라간 교회에서 그것이 남들에게는 숨겨야하는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학급에서 반장, 부반장도 더러 했었고, 친구들 하고도 잘 어울렸던 걸 보면 그 비밀이 학교 생활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속시원히 얘기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불편했을 뿐이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커밍아웃은 중학교 수업 시간이었다. 더운 날이었고,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하는 동안 반 친구들 절반은 꿈나라로 떠났거나, 딴짓에 열중을 했다. 나는 나머지 절반에 속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집중이 되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때의 짝꿍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격 좋고 밝은 친구였다. 딱히 모난 편도 아니라 적당히 친한 사이었고, 곧잘 어울렸던 것 같다. 그 친구도 한참을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이내 심심했는지 내게 백지 한장을 내밀었다.

 

시시한 농담이 적혀있었던 것 같다. ‘아, 졸리다…’ 하는 식의. 나도 몇글자를 적어서 다시 돌려주었고, 필담으로 낙서를 주고 받았던게 어느새 에이포 한장을 다 채워갈 즈음이었다. 진실 게임 같은 거였나, 나한테 대뜸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몇번을 얼버무렸다. 그때가 짝사랑에 호되게 당한 뒤 였는데,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겁이 많은 지금엔 술기운을 빌려야 겨우 말할 용기를 낼 수있는데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음에도 끈질기게 물어보는 녀석의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났었던 것 같다.

 

못이기는 척 있다고, 우리 학교라고 대답을 적었고, 에이 뻥치지 말라고. 거짓말 아니라고 하는 대화가 오갔다. 지금은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이라 대화의 토씨들은 추상적으로 남았지만, 마지막에 ‘진짜???’ 하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친구의 눈빛과 반복해서 쓰인 그 물음표들은 기억이 난다.

 

이 대화의 맹점은 뭐냐면, 내 출신 중학교가 당시 우리 동네에서도 소문난 꼴통 ‘남자 중학교’라는 점이다. 아직 세상 무서운지 모르는 철부지였어도, 막상 그 얘기를 하고 나니 조금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친구는 그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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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커밍아웃 히스토리 1.5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됐냐고? 약간 겁을 먹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아무일도 없었다. 그 친구는 다시는 그 주제를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떠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전과 다를바 없이 나를 대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그게 뭐 대수냐 하는 느낌이었다.

 

이후로도 이런 저런 장난을 치다가 한번은 성적을 가지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던 친구였지만, 공부를 해보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내 성적과는 무관하게 본인 성적을 기준을 삼았는데, 진 사람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같은 시시껄렁한 내기였다.

 

왠지 모르게 반 친구들한테도 소문이 났고, 약속한 시험이 끝나자 다 친구와 내 책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정답을 맞춰보면서 동그라미와 빗금이 쳐지고, 성적을 계산하자고 나자 환호하는 친구들. 머리를 감싸쥐며 패배의 쓴 맛을 맛보는 녀석과 그걸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 있는 나. 결과는 내 승리였다.

 

어떻게 골려줄까 하다가, 나는 발칙한 요구를 했다. 내가 적어준 피켓을 들고 인근 여중 앞에 서있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며칠전 버스에서 만난 이쁜 여학생을 찾습니다. 그녀를 아시는 분은 연락주세요. 꼭! 찾고 싶습니다.’ 이런류의 사춘기 남학생의 짝사랑 냄새를 물씬 풍기는 글귀.

 

내 안의 숨겨둔 똘기가 발현된 게 이때부터 였나 보다. 내가 문장을 불렀고, 글씨를 잘 쓰는 친구가 실실 웃으면서 흰색 하드보드지에 검정 매직으로 꾹꾹 눌러 적었다. 반 친구들은 빙둘러 그걸 보면서 폭소를 터뜨렸고, 당장 오늘 수업 마치고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남자들 사이의 내기에서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친구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쪽팔림과 우쭐함, 무언가의 호승심이 묻어났다. 수업을 마치고는 그 친구와 나, 그리고 몇몇 반 친구들이 같이 걸어갔다. 10분 거리에 있던 그 여중도 우리 학교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하교를 했고, 하나둘 정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를 정문 옆에 세워두고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그 진풍경을 감상했다. 멀리서 봐도 촌스런 우리 학교의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서있는 모습을 보자, 여중생 무리들은 처음에는 경계를 했다. 그러다 호기심에 피켓의 내용을 보더니 꺄르륵 하면서 웃고 지나갔다.

 

하나 둘, 멈춰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서로의 친구들끼리 웃으면서 누군지 몰라도 부럽다느니, 남자애가 순진하니 귀엽다 하는 둥의 얘기를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그 즈음 친구는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피켓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있었고, 개중에는 그 피켓 아래의 얼굴이 궁금했는지 판떼기를 들춰보는 애들도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친구들도 한참을 보다 민망했는지 하나둘 집으로 도망을 쳤고, 주동자인 나는 마지막으로 기념 사진 하나를 남기고는 친구를 불러 집에 갔다. 나중에 같이 과외하는 친구 중에 그 여중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 순수한 남학생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걸 듣고 나는 그 해프닝이 내기의 결과라는 걸 알려 주었고,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그때의 장난이 생각이 난다. 분명히 사진을 찍어 뒀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같이 장난을 쳤던 친구들은, 불쌍한 희생양이 되었던 그 친구는, 당시의 목격자였던 그 여중생 친구들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커밍아웃의 전후 관계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종종 그 친구랑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농담도 주고받고, 공부와 관련해 모르는 것도 알려줬던 것 같다. 한번은 같이 놀다가 그 친구의 누나가 대학가에서 대왕팥빙수를 사줘서 좋다고 얻어 먹었다. 그때 입안 얼얼하도록 빙수를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아서 곤혹을 치룬 기억이 있다.

 

나를 친한 친구로 여겼는지, 가끔은 자기네 복잡한 가정사를 들려준 기억도 남아있다. 나도 그걸 듣곤 그러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고입 시험 시즌이 다가왔고, 가끔씩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고 그랬다. 결과적으로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연락이 끊겼고, 그 뒤로는 얼굴을 본적이 없다.

 

중학교 시절은 너무 아득해서 대부분의 얼굴과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과 이름은 또렸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마운 친구. 그때는 너무 어벙했고,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제는 그 일들을, 그때의 내 고백을 기억하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지낸 시간이 길다. 본가에 내려가는 것도 연례행사라 일년에 손을 꼽을 정도인데, 그 와중에도 어쩌다 한번씩 중고교 동창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서로 알아보는 경우도, 혹 나만 기억하는 경우도. 내가 살던 곳이 좁은 촌동네라 시내랄 곳이 한정되어 있는 탓이리라.

 

정말 기적적으로 우연찮게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그땐 먼저 다가가 말 걸리라. 그때의 네가 내 비밀을 지켜준 덕분에, 적어도 그 학창시절의 어린 마음에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덕분에 이후에도 타인을 믿어 볼 용기를 얻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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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커밍아웃 히스토리 2

  그 뒤의 커밍아웃은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 사이에 있었던 여행 중이었다. 열다섯 그 즈음, 나는 자그마치 9년 간의 정규 교육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인 그 중간자의 입장이 좋았다.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않는 짧은 해방감이.

 

운 좋게도 한달짜리 '어학연수'의 탈을 쓴 중국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다 처음보는 이들이었고, 낯선 이국에서의 한달이라는 시간은 몇안되는 이방인들끼리의 친목을 다지기에 좋은 시기였다. 아직 사람 무서운게 모를 때라 더 섣불리 마음을 열었던 것도 같다.

 

같이 여행을 간 동행중에 스무살이 된 누나가 한 분있었는데, 며칠간 보면서 얘기를 하다보니 꽤 친해졌었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둘이서 맥주 한캔씩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누나가 헤어진 남자친구 얘기를 했다. 다른 사람의 비밀 얘기를 들으니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만난지도 얼마 안 됬는데, 나를 신뢰하는 구나.

 

나도 조심스레 커밍아웃을 했다. 너무 뜻밖의 얘기였을까. 조곤조곤 얘기를 하던 와중에 누나가 깜짝 놀라며 '뭐라고?' 라고 되물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누나가 들은게 맞다고 확인을 시켜줬다. 잠깐의 정적. 그렇구나, 하며 계속 이야기를 더 이어나갔다. 딱 그 장면만 기억이 날뿐, 이후에 또 어떤 수다를 떨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왜 였을까. 처음으로 떠난 외국 여행이라 조금 설랬던 것도 같다. '누나'는 '여자'라서 그런걸 수도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커밍아웃을 했을 때 비교적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인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 아직은 꼬꼬마였던 내게 스무살은 다 큰 어른처럼 여겨졌기도, 또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이라는 걸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예상처럼 남은 기간 중에도 별 일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게 학창시절 했던 두번째 커밍아웃이자, 마지막 커밍아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그보다는 좀 더 다른 문제가 더 크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서 마주한 건, 여느 인문계 학생들처럼 '수능'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전.

 

사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것도, 또 죽어라 공부만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냥 다들 그러는 것 처럼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남들처럼 그냥 달리는데 급급했다. 안 그럼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공부를 안 해도 '공부 해야한다' 하는 강박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가정문제로 약간은 불안해 하면서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탈출구는 '대학'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해방이다 하는 마음으로. 입시로 얼룩진 지긋지긋한 학창시절이라 성적이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데로, 절대 재수는 없다는 결의로 가득차 있었다. 반 친구들과도 두루 친했고, 몇몇 친하게 지냈었는데, 친구들과 있으면서도 내 얘기는 잘 안했었다. 못했었다고 해야하나.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내 인생 굴곡의 서사시를 풀어낼 엄두가 안 났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연락하고 지냈던 이쪽 친구들이 몇 있었고, 부족한 인간관계에 대한 간극은 그 친구들을 통해 해소했었던 것 같다. 가족문제, 입시문제, 학교친구들과의 관계, 나만 아는 비밀 친구들과의 관계. 십대 후반의 소년에겐 그것만으로도 고민거리가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격동의 시기였었다.


고1때 괜스레 옆반 남자애가 좋아졌고, 괜히 아무일 없어도 괜히 그 친구한테 가서 친한 척을 했다. 그 친구는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그 빈도가 늘자 그 반 친구들이 내가 반에 올 때마다 '쟨 뭐지'하는 표정으로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역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발걸음을 끊었고, 친해질 겨를도 없이 그 이상한 관계는 끝났다.

 

조금 능글맞아진 지금과는 달리 그땐 생각과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아이였다. 금사빠에 쉽게 정주는 나는 다른 그런 '친해질 이유가 없는' 친구들 한테도 잘 해줬었는데, 남자가 이유없이 남자한테 호의를 받는걸 이상히 여긴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금에야 '사람 좋아한다'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그땐 그런 이상한 눈초리에 주눅이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 간의 커밍아웃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지금처럼 커밍아웃을 할까 말까 스트레스를 안 받았던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도 다 '대학 입학 이후'에 생각하자고 뭉뚱거려 유예를 시켰고, 이따금식 찾아오는 회의와 고민들도 입시 스트레스에 섞어 조금씩 흘려보냈다.
 

고1때 괜스레 옆반 남자애가 좋아졌고, 괜히 아무일 없어도 괜히 그 친구한테 가서 친한 척을 했다. 그 친구는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그 빈도가 늘자 그 반 친구들이 내가 반에 올 때마다 '쟨 뭐지'하는 표정으로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역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발걸음을 끊었고, 친해질 겨를도 없이 그 이상한 관계는 끝났다.

 

조금 능글맞아진 지금과는 달리 그땐 생각과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아이였다. 금사빠에 쉽게 정주는 나는 다른 그런 '친해질 이유가 없는' 친구들 한테도 잘 해줬었는데, 남자가 이유없이 남자한테 호의를 받는걸 이상히 여긴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금에야 '사람 좋아한다'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그땐 그런 이상한 눈초리에 주눅이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 간의 커밍아웃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지금처럼 커밍아웃을 할까 말까 스트레스를 안 받았던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도 다 '대학 입학 이후'에 생각하자고 뭉뚱거려 유예를 시켰고, 이따금식 찾아오는 회의와 고민들도 입시 스트레스에 섞어 조금씩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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