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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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중반, 나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 국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국문과는 전통적으로 여학생들이 2/3 이상을 차지하였는데
우리 학번이 입학했을 때, 역대 최대 남자 인원이 들어왔다고 선배들이 좋아했다.
그동안 인원이 모자라 양 팀으로 나눌 수 없어 축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 우리 과 사람들끼리 청백전을 할 수 있는 거냐며 좋아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꽤나 거리가 있어서 통학하기는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럭저럭 대학 생활 적응하며 1년이 빠르게 지나갔다.
입학 초기에는 그래도 다들 친하게 지내고 종종 모여서 떠들곤 했는데
한 학기 지나고 나니 그런 마음도 많이 식어서 그냥 적당히 지내고 있었다.
2학년이 되니 남자애들은 겨울 방학 동안 군대 간 동기들도 생기고
입대 전 미리 휴학한 애들도 생기고 하다보니 남녀를 다 합쳐도 동기들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기숙사는 신입생 위주로 뽑다보니 2학년부터는 들어가기 힘들었다.
나는 다행히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리 동기 중에 다른 한 놈도 있었다.
개강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 친구와 점심 먹으러 기숙사 쪽으로 가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던 사람에게 아는 체를 했다.
한 눈에 봐도 키가 크고 인상이 좋아 보였다.
- 야, 규섭아~
-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 야, 선배님이 뭐냐,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 그래도 돼요? 네 알겠어요, 형.
- 규섭아, 인사해, 얘도 내 동기.
-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이규섭이라고 합니다.
- 누군데? 어떻게 아는 사이야?
- 아, 우리 과 신입생 중에 유일하게 기숙사 들어온 남자 애.
- 아, 우리 과 후배구나. 반가워. 너는 어떻게 이렇게 금방 알았냐?
개강한 지도 며칠 안 됐는데 그새 신입생 파악했냐?
- 내가 사감샘이랑 좀 친하잖냐. 그래서 미리 다 알아봤지.
- 그랬구만... 너 혹시 사감샘 백으로 기숙사 들어온 거 아니냐?
-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말고 그런 거는 그냥 좀 넘어가 주라.
- 규섭이... 규섭이라. 이름이 멋있는 것 같으면서도 특이하네.
아무튼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 이름 덕분에 초등 때부터 별명이 섭섭이였어요. 헤헤...
악수를 하는 커다란 손이 남자다우면서도 부드러웠다.
- 어쩌다가 신입생 중에 너 혼자만 들어왔냐?
- 아 다른 애들은 통학하거나 자취한대요. 지원했는데 안 된 애도 있고요.
저는 1동 107호에서 지내는데 형은 방이 어디에요?
- 오 나랑 같은 건물이네. 나는 422호.
내 동기는 다른 건물에서 지내고 있었다.
- 107호라... 그러면 그 방은 안내실이 바로 앞이라 맨날 눈치 보이겠다.
- 아 그러니까요. 진짜 재수없어요. 거기다 샤워장 바로 옆이라 물소리도 장난 아니에요.
- 에구 그렇겠구나. 내 방은 구석에 있어서 멀기는 한데 조용한 편이라 좋아.
- 나중에 형 방에 한번 놀러갈게요.
- 어 그래. 점호 끝나고 밤에 모여서 놀자.
거의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차이 때문에 좀 올려다봐야 해서 불편했지만
안경 너머 보이는 맑은 갈색 눈동자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과 전체가 참여하는 연합 엠티를 가서야 다른 후배들 얼굴도 익히고 좀 친해졌다.
아무리 찾아도 규섭이만큼 잘생긴 신입생이 없었다.
첫날 저녁 장기자랑에서는 규섭이가 여장을 했는데
키가 크고 몸매도 잘 빠져 역시나 1등을 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술이 어느 정도 취한 규섭이가 웃통을 벗고 앞에 나와
막춤을 추면서 사람들을 웃겼지만 그 모습 또한 내 눈에는 멋있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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