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mdump (1) - 뉴욕 ㅅㅅ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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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초반 게이이다. 2년 전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여기서 한 다양한 경험을 백일장에 남기려고 한다. 쓰여진 모든 것들은 내가 하고 듣고 본 100프로 실제이다.
한국에 있을때에는 사실 섹.스하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다. 무엇보다 성병, 그것도 에이즈 떄문이었다. 그래서 찜방 같은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굴뚝같았지만 가보지도 못했고 Treasure island media 같이 노콘으로 하는 갱.뱅, 그룹 야동을 즐겨보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섹파도 있었고 번개도 꽤나 했었지만 뭔가 찜방만은 넘어서는 안될 선 같았다. 프렙이 나온 이후로는 신셰계가 열렸었다. 한국에서 프렙을 복용하면서 자유롭게 노콘으로 섹스도 하고 찜방도 여럿 다니고 했었지만 막 엄청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프렙을 직구로 구매하다보니 항상 통관에 걸릴까 말까 노심초사하는것도 일이었다.
미국에 건너온 이후로 프렙을 처방받는 것은 상당히 쉬워졌다. 온라인으로 의사와 상담후 처방이 가능했고 근처 피검사하는 곳에서 3개월마다 신장/간/여러 성병 검사만 받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일에 적응하느라 막상 섹.스는 많이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지난 1월 뉴욕 여행을 다녀온 뒤로 모든게 바뀌었다.
뉴욕은 내가 항상 제일 좋아했던 도시 중 하나이다. 미국 건너오기전에도 여러번 가곤 했었다. 볼것도 많고 먹을것도 많고 할것도 많았으니까. 종종 갈떄마다 fwb를 만들기도 했었기 떄문이다. 이번에도 2주간 가면서 설렘을 안고 갔었다. 호텔은 Chelsea 라는 맨하튼 동네에 자리잡았었다. 추운 겨울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성욕이 미친듯이 폭발했다. 뉴욕 911 박물관 구경을 하면서도 grindr, scruff, growler, tender같은 앱을 돌리면서 번개를 찾는데 몰두했다.
그떄, 앱에서 메세지를 받았는데 바로 섹.스 파티를 하니 오고 싶은 사람은 오라는 메세지였다. 이걸 받았을때는 굉정히 고민이 되었다. 갸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숙소에 돌아와서도 고민을 했다. 파티 시간이 다가오고 자위를 했음에도 나의 성욕은 여전히 들끓었기에 나는 관장을 하고 파티 장소로 향했다. 위치는 미드타운에 있는 멀쩡한 건물이었는데 외관만으로 봐서는 어느 뉴욕 건물처럼 오피스 건물 처럼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서 문 입구 앞에 섰을때는 긴장감이 압도했다. 들어가자 직원이 반갑게 맞이하였고 현금을 지불한뒤 옷과 소지품을 비롯한 물건들을 넘긴 후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미 7-8명의 사람들도 같이 탈의를 하고 있었고 나는 내부로 들어갔다.
한국 찜방과 다르게 내부에는 큰 방이 세게가 연달아 붙어있었다. 각 방은 4-5m 높이 정도는 되어보이는 대형 커튼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다. 각 방마다 높아 40cm되는 직사각형 소파가 있었고 마지막 방에는 sex sling도 있었다. 조명은 약간 어둡게 되어있어 실루엣이 간간히 보일정도의 밝기였다. 이미 중간 방에 큰 소파에서는 4명의 바텀들이 탑을 소파위에서 상대하고 있었고 4-50명되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랐지만 넘치는 성욕으로 나는 소파위에 올라가 face down ass up, 그러니까 얼굴은 소파에 쳐박고 엉덩이만 든 상태로 자.지를 기다렸다.
얼마되지 않아 누군가가 내 엉덩이 골을 쓸어만졌고 그리고 손가락을 내 애널 안에 집어넣었다. 미리 젤을 발라두어 무난히 손가락이 들어갔고 약간의 탄식이 있은 후 그는 자지를 나의 애널 입구에 조준한 후 바로 밀어넣었다. 잘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팠지만 나의 성욕이 통증을 압도했다. 그는 Fuck! you are fucking tight!라고 외치면서 앞뒤로 신나게 박기 시작했다. 몇번 박히기 시작하자 나또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보든 말든 신음을 내면서 엉덩이를 자.지 박자 에 맞춰 흔들어댔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누군가가 자지를 내 얼굴이 내밀었기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지를 입에 물어 빨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박히는 나를 보며 본인들의 자.지를 흔들어대거나 내 몸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어렸을떄 봤던 야동 그대로 내가 박히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박고 있던 남자는 내 애널 깁숙히 자.지를 밀어넣고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고 그의 자.지는 내 애널 속에 가만히 머문채 꿈틀꿈틀 댔다. 본능적으로 그가 내 안에 자신의 정액을 싼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금뒤 그는 내 애널에서 자.지를 뺸 후 내 입에 갔다 댔고 나는 정성껏 그의 자.지를 청소했다. 앞서 내 앞에서 오랄을 받는 사람은 내 뒤로 가 그의 자.지를 애널에 단숨에 집어넣었다. 이미 첫 사람의 자.지로 벌려지고 그의 정액으로 윤활이 되어있던 내 애널은 아무 문제없이 그의 자.지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는 내 애널속에서 젤과, 첫 사람의 정액, 그리고 두번째 사람의 자.지가 한데 뒤섞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극한의 행복감을 느끼며 엉덩이를 더 바짝 세워 올렸다. 주변에서 흘러넘치는 기괴한 EDM과 조명 그리고 섹스가 뒤엉키면서 마치 이곳이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을 느끼며 나는 연신 엉덩이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신음을 지르며 정액을 내 애.널안에 내뿜었고 신나게 내 영덩이를 쳐댔다. 그리고 그가 빠져나갔고 내 애.널은 공허함을 느끼며 다가올 자.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생판 얼굴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얼굴도 보지 못한채로, 이름도 모른채로 그들에게 나의 애.널을 내어주었고 당당히 안싸를 받은것이다. 이걸 깨달은 순간 나는 극도의 흥분감을 느끼며 더 많은 자.지를 받고자 자세를 계속 유지하며 내 애.널에 손가락을 넣어 휘저으며 다음 자.지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번쨰 자.지가 내 깊숙히 들어왔다.
내가 소파위에서 여러명의 탑을 상대하기 시작하자 다른 바텀들도 내 근처에 와서 자세를 잡기 시작했고 자.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5-6명 되는 게이들이 커다란 직사각형 소파위에서 서로 몸을 뒤섞으며 섹.스를 하고 있었다. 바텀들끼리 박히면서 키스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몸을 만져주면서 쾌락을 공유했다. 근처에 사람들은 계속 구경을 하면서 다음 박을 상대를 찾아다녔다.
이 날, 나는 8-9명 정도 되는 탑을 상대하였고 모든 정액은 내 애.널속에 받았다. 집에 돌아가는길에 애.널에서 젤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정액이 흘려내렸지만 나는 개의치않고 오히려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내 자신을 cumdump, 그러니까 정액 변기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지를 받을 수 있다면 시간과 장소만 맞다면 언제든지 내 애.널을 기꺼이 벌렸고 노콘으로 정액을 내 애.널에 받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탑들을 보면서 더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누군가 성병에 대해 두렵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병에 걸리는건 나도 싫기에 프렙을 계속 복용하고, 가다실 주사도 맞았었고, 3개월 간격으로 꾸준히 성병 검사를 하고 있다. 만약 이럼에도 불구하고 성병에 걸린다면 나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섹.스 행위는 성병의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이기에 내린 결론이다. 막상 미국에 와보니 그렇게 걱정했던 에이즈 걸린 사람들도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섹.스를 하면서 본인이 보균자고 치료룰 받고 있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며 생활흘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생각이 바뀌어, 프렙을 꾸준히 먹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즈에 걸린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나는 뉴욕에 머물면서 ㅅㅅ파티를 귀신같이 찾아다녔고 주말동안 약 30명 넘는 남자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정.액을 내 애.널안에 받았었다. 나는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으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보고 역겨운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였고 거부하지 않는다. 내 주위 누구도 내가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직장에서는 성실하고 일잘하는 멀쩡한 사람이기 떄문이다. 그런 두 모습이 나는 모든 나 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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