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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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좋아하냐?\"
\"아니, 전혀.\"
\"난 너 좋아하는데.\"
\"근데?\"
\"나쁜 새-끼.\"
우리의 이런 일상적인 대화도 어느 새 여름이 지나 가을을 거쳐서 겨울까지 이어져왔다.
승우는 항상 나에게 장난스레 사랑을 확인하려 했지만, 난 그런 녀석에게 쌀쌀맞게 대해왔다. 하지만 전에는 몰랐었다. 승우의 애정표현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귀찮아 하던 나에게 점점 승우의 그런 애정표현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오늘은 너무나도 추운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승우는 내 방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체 누워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나보다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야! 수능 끝났다고 이게 매일 여기 와서 자네. 아예 여기서 눌러 살지 그래?.\"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냐?\"
\"그럼 내가 나갈께.\"
난 이렇게 말하면서 승우 옆으로 가서 누웠다. 항상 속옷 한 장 걸치고 자는 녀석의 부드러운 알몸이 느껴진다. 난 애써 녀석의 알몸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괜한 감정으로 친구라는 선을 넘기 싫었다.
\"정현아! 내일 시험 볼 때 내가 엿 사주랴?\"
\"엿은...... 검정고시도 시험이냐?\"
\"임마, 그래도 국가고시인데 단계는 다 밟아 봐야지.\"
\"엿은 너나 많이 먹어.\"
\"나쁜 새-끼. 너 내일 시험 보러 갈 때 나도 같이 간다.\"
\"내일 날씨 춥데. 오지마.\"
\"가든 말든, 춥든 말든 그건 내 마음이야.\"
\"그래. 니 마음이다.\"
녀석이 여느 날 잠자리에서처럼 나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녀석의 손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검정고시였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첫 관문이었기에 속으로 난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는 녀석의 마음에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 진다.
\"정현아. 내일 시험 잘 봐라.\"
어제보다 더 추운 날씨다.
녀석은 기필코 시험장으로 향하는 나를 따랐다. 너무나도 추운 날씨에 녀석은 볼이 빨개지고 콧물까지 나왔다. 누군가 필요할 때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승우가 고마웠다.
\"정현아. 시험 볼 때 긴장하지 마라. 긴장하면은 50%는 틀리고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수능은 그 따위로 쳤냐?\"
\"왜, 아픈 곳은 찌르고 그래? 그래도 수원에 있는 대학 갔으면 잘 간 거야\"
\"그래, 인정할게.\"
드디어 시험장에 도착했다. 녀석은 연신 흘러나오는 콧물을 들이키기에 바빴다.
\"너 시험 끝날 때까지 여기 서서 기다릴게.\"
\"이마, 추워. 괜히 궁상떨지 말고 집에 가있어. 시험 끝나면 문자 보낼게.\"
\"싫어. 여기 있을게.\"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여기 있다가 추워서 뒈져라.\"
\"나쁜 새-끼.\"
난 승우를 뒤로한 체 시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험이 끝나면 집에서 내 문자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을 녀석의 모습을 상상하며......
드디어 몇 시간의 시험이 끝났다.
정말 그 동안 힘들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너무나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서 혼자 방황했었던 시간들...... 업소에서 술에 취해 내 몸을 쓰담던 손님의 행동에 놀라 눈물을 흘렸던 일. 그리고 힘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동행하느냐 며칠동안 코피를 쏟았던 모습들......
그 모습들이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 내 머릿속에서 한 줄의 노오란 색광필름이 되어서 흘러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야. 김정현 시험 잘 봤냐?\"
승우였다. 녀석은 볼이 빨개진 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녀석의 입은 추위에 얼어서 제대로 발음도 하지 못하였다. 난 그런 녀석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너 여기서 뭐해?\"
\"너 기다렸지. 내가 기다린다고 그랬잖아. 입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하겠다.\"
녀석은 그러면서도 계속 몸을 떨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너 밥은 먹었냐?\"
\"아니, 안 먹고 너 시험 잘 보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날 보며 실실 웃은 녀석의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뭔데? 나까짓 놈이 뭔데 널 이렇게 추위 속에서 기다리게 하는거냐? 최승우 너는 왜 바보같이 나에게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데도, 이런 짓거리를 하는거야?
난 내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 병-신아! 이게 무슨 짓이야? 밥도 안 먹고. 누가 너한테 기다리라고 했어?\"
\"야! 왜그러는 거야? 갑자기.\"
\"정말 너란 놈은...... 따라와. 이 병-신아.\"
난 녀석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건지 모르겠다. 그냥 녀석의 손을 꼭 쥔 체,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난 어느 분식점 앞에서 내 감정을 추수릴 수 있었다.
\"들어가자.\"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선 아무 말 없이 나의 뒤를 따랐다.
\"아줌마, 여기 라면하구 김밥 하구요, 튀김범벅 하구요, 순대 2인분씩 주세요. 그리고 떡볶이도요.\"
\"네.\"
난 녀석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대체 내가 이해가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녀석도 조금은 화난 목소리로 내게 말하였다.
\"야! 내가 뭐 잘못했냐?\"
\"아니, 그런 거 없어.\"
\"근데, 너 왜 화내고 지-랄이냐?\"
\"내가 언제, 그냥...... 미안하다. 니 바보같은 모습에...... 아니, 그래,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냥 배고파서 그랬어. 오늘 니가 나 기다려줬으니까 내가 한 턱 쏠게.\"
\"겨우 분식집에서?\"
\"야! 사줄 때 그냥 먹어.\"
음식이 나왔다. 녀석은 정말로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정말 거지가 따로 없었다. 촌놈처럼 빨개진 두 볼에 흐르는 콧물에, 아직도 추운지 떨리는 손. 그런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친구란 이름으로 다가온 녀석. 날 향한 녀석의 마음이 친구로 지내기엔 갑자기 부담스러워 진다.
\"무슨 음식값이 이렇게 비싸냐? 13000원이나 깨졌어.\"
\"새-끼. 그거 사주고 투덜거리긴.\"
우리는 분식집에서 나와 무작정 서울 시내를 걷기로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게 나와 승우가 우리의 정체성을 떳떳히 밝힌 체 이 거리를 다닐 날은 언제쯤이면 올까? 아마 오지 않을까? 갑자기 우리를 스쳤던 사람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니까......
녀석과 나는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작은 콘서트를 하는 가수의 공연을 같이 지켜보기도 하고, 팬시점에서 이것저것 골라보기도 하고, 또 길거리에서 핸드폰 고리를 만져보기도 하였다.
\"아저씨. 이 목도리 얼마예요.\"
\"만 오천원 이예요.\"
\"어, 아저씨 너무 비싸요. 오늘 제 친구가 시험이 끝나거든요. 이거 오천원만 깍아 주세요.\"
\"그래요? 무슨 시험인데요?\"
\"그건 말하기 좀 그렇고요. 깍아 주실거죠?\"
\"그러죠, 뭐.\"
난 승우가 사준 목도리를 맨 체, 녀석과 함께 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철 3호선의 옥수역 이었다.
녀석과 나는 역 플랫홈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지하철이 동호대교를 건너 역에 들어와도 우리는 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로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몇 달동안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었다.
\"정현아 너 소원 3가지만 얘기해봐.\"
녀석이 갑작스레 또 황당한 말을 꺼냈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지 예전에는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이제는 은근히 궁금하기 시작했다.
\"소원이라...... 내 소원은 어마어마한데.\"
\"뭔데? 말해봐.\"
\"우선 첫 번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진짜 멋있는 놈이랑 서로 청바지만 입고서 뒹구는 거.\"
\"웃기지도 않는구만.\"
\"말하라며?\"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는 다시 양부모님 한테 용서를 구하는 거. 알지? 너도. 나 양부모님 계시다는 거.\"
\"응.\"
\"근데 다시 찾아 뵐 용기가 안나네......\"
\"기분 다운되게 그러지 말고, 3번째 소원은?\"
\"너도 알꺼야...... 예쁜 신부랑 결혼해서 날 닮은 아기 낳는 거. 초등학교 교과서의 그림처럼 말이야......\"
순간 녀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날 좋아하는 녀석에게 녀석이 내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이유를 난 또다시 말해버리고 만 것이다. 녀석이 이 말에 항상 고개가 떨구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친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미안하다. 나 웃기지? 게이 주제에 그런 꿈이나 꾸고.\"
\"아니야,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정현아. 나도 소원이 있다.\"
\"뭔데?\"
\"딱 하나가 있거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너의 소원을 내가 들어주는 거.\"
\"아니, 전혀.\"
\"난 너 좋아하는데.\"
\"근데?\"
\"나쁜 새-끼.\"
우리의 이런 일상적인 대화도 어느 새 여름이 지나 가을을 거쳐서 겨울까지 이어져왔다.
승우는 항상 나에게 장난스레 사랑을 확인하려 했지만, 난 그런 녀석에게 쌀쌀맞게 대해왔다. 하지만 전에는 몰랐었다. 승우의 애정표현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냥 귀찮아 하던 나에게 점점 승우의 그런 애정표현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오늘은 너무나도 추운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승우는 내 방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체 누워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나보다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야! 수능 끝났다고 이게 매일 여기 와서 자네. 아예 여기서 눌러 살지 그래?.\"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냐?\"
\"그럼 내가 나갈께.\"
난 이렇게 말하면서 승우 옆으로 가서 누웠다. 항상 속옷 한 장 걸치고 자는 녀석의 부드러운 알몸이 느껴진다. 난 애써 녀석의 알몸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괜한 감정으로 친구라는 선을 넘기 싫었다.
\"정현아! 내일 시험 볼 때 내가 엿 사주랴?\"
\"엿은...... 검정고시도 시험이냐?\"
\"임마, 그래도 국가고시인데 단계는 다 밟아 봐야지.\"
\"엿은 너나 많이 먹어.\"
\"나쁜 새-끼. 너 내일 시험 보러 갈 때 나도 같이 간다.\"
\"내일 날씨 춥데. 오지마.\"
\"가든 말든, 춥든 말든 그건 내 마음이야.\"
\"그래. 니 마음이다.\"
녀석이 여느 날 잠자리에서처럼 나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녀석의 손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검정고시였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첫 관문이었기에 속으로 난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는 녀석의 마음에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 진다.
\"정현아. 내일 시험 잘 봐라.\"
어제보다 더 추운 날씨다.
녀석은 기필코 시험장으로 향하는 나를 따랐다. 너무나도 추운 날씨에 녀석은 볼이 빨개지고 콧물까지 나왔다. 누군가 필요할 때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승우가 고마웠다.
\"정현아. 시험 볼 때 긴장하지 마라. 긴장하면은 50%는 틀리고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수능은 그 따위로 쳤냐?\"
\"왜, 아픈 곳은 찌르고 그래? 그래도 수원에 있는 대학 갔으면 잘 간 거야\"
\"그래, 인정할게.\"
드디어 시험장에 도착했다. 녀석은 연신 흘러나오는 콧물을 들이키기에 바빴다.
\"너 시험 끝날 때까지 여기 서서 기다릴게.\"
\"이마, 추워. 괜히 궁상떨지 말고 집에 가있어. 시험 끝나면 문자 보낼게.\"
\"싫어. 여기 있을게.\"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여기 있다가 추워서 뒈져라.\"
\"나쁜 새-끼.\"
난 승우를 뒤로한 체 시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험이 끝나면 집에서 내 문자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을 녀석의 모습을 상상하며......
드디어 몇 시간의 시험이 끝났다.
정말 그 동안 힘들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너무나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서 혼자 방황했었던 시간들...... 업소에서 술에 취해 내 몸을 쓰담던 손님의 행동에 놀라 눈물을 흘렸던 일. 그리고 힘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동행하느냐 며칠동안 코피를 쏟았던 모습들......
그 모습들이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 내 머릿속에서 한 줄의 노오란 색광필름이 되어서 흘러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야. 김정현 시험 잘 봤냐?\"
승우였다. 녀석은 볼이 빨개진 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녀석의 입은 추위에 얼어서 제대로 발음도 하지 못하였다. 난 그런 녀석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너 여기서 뭐해?\"
\"너 기다렸지. 내가 기다린다고 그랬잖아. 입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하겠다.\"
녀석은 그러면서도 계속 몸을 떨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너 밥은 먹었냐?\"
\"아니, 안 먹고 너 시험 잘 보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날 보며 실실 웃은 녀석의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뭔데? 나까짓 놈이 뭔데 널 이렇게 추위 속에서 기다리게 하는거냐? 최승우 너는 왜 바보같이 나에게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데도, 이런 짓거리를 하는거야?
난 내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 병-신아! 이게 무슨 짓이야? 밥도 안 먹고. 누가 너한테 기다리라고 했어?\"
\"야! 왜그러는 거야? 갑자기.\"
\"정말 너란 놈은...... 따라와. 이 병-신아.\"
난 녀석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건지 모르겠다. 그냥 녀석의 손을 꼭 쥔 체,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난 어느 분식점 앞에서 내 감정을 추수릴 수 있었다.
\"들어가자.\"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선 아무 말 없이 나의 뒤를 따랐다.
\"아줌마, 여기 라면하구 김밥 하구요, 튀김범벅 하구요, 순대 2인분씩 주세요. 그리고 떡볶이도요.\"
\"네.\"
난 녀석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대체 내가 이해가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녀석도 조금은 화난 목소리로 내게 말하였다.
\"야! 내가 뭐 잘못했냐?\"
\"아니, 그런 거 없어.\"
\"근데, 너 왜 화내고 지-랄이냐?\"
\"내가 언제, 그냥...... 미안하다. 니 바보같은 모습에...... 아니, 그래,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냥 배고파서 그랬어. 오늘 니가 나 기다려줬으니까 내가 한 턱 쏠게.\"
\"겨우 분식집에서?\"
\"야! 사줄 때 그냥 먹어.\"
음식이 나왔다. 녀석은 정말로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정말 거지가 따로 없었다. 촌놈처럼 빨개진 두 볼에 흐르는 콧물에, 아직도 추운지 떨리는 손. 그런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친구란 이름으로 다가온 녀석. 날 향한 녀석의 마음이 친구로 지내기엔 갑자기 부담스러워 진다.
\"무슨 음식값이 이렇게 비싸냐? 13000원이나 깨졌어.\"
\"새-끼. 그거 사주고 투덜거리긴.\"
우리는 분식집에서 나와 무작정 서울 시내를 걷기로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게 나와 승우가 우리의 정체성을 떳떳히 밝힌 체 이 거리를 다닐 날은 언제쯤이면 올까? 아마 오지 않을까? 갑자기 우리를 스쳤던 사람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니까......
녀석과 나는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작은 콘서트를 하는 가수의 공연을 같이 지켜보기도 하고, 팬시점에서 이것저것 골라보기도 하고, 또 길거리에서 핸드폰 고리를 만져보기도 하였다.
\"아저씨. 이 목도리 얼마예요.\"
\"만 오천원 이예요.\"
\"어, 아저씨 너무 비싸요. 오늘 제 친구가 시험이 끝나거든요. 이거 오천원만 깍아 주세요.\"
\"그래요? 무슨 시험인데요?\"
\"그건 말하기 좀 그렇고요. 깍아 주실거죠?\"
\"그러죠, 뭐.\"
난 승우가 사준 목도리를 맨 체, 녀석과 함께 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철 3호선의 옥수역 이었다.
녀석과 나는 역 플랫홈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지하철이 동호대교를 건너 역에 들어와도 우리는 타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로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몇 달동안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었다.
\"정현아 너 소원 3가지만 얘기해봐.\"
녀석이 갑작스레 또 황당한 말을 꺼냈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러는지 예전에는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이제는 은근히 궁금하기 시작했다.
\"소원이라...... 내 소원은 어마어마한데.\"
\"뭔데? 말해봐.\"
\"우선 첫 번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진짜 멋있는 놈이랑 서로 청바지만 입고서 뒹구는 거.\"
\"웃기지도 않는구만.\"
\"말하라며?\"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는 다시 양부모님 한테 용서를 구하는 거. 알지? 너도. 나 양부모님 계시다는 거.\"
\"응.\"
\"근데 다시 찾아 뵐 용기가 안나네......\"
\"기분 다운되게 그러지 말고, 3번째 소원은?\"
\"너도 알꺼야...... 예쁜 신부랑 결혼해서 날 닮은 아기 낳는 거. 초등학교 교과서의 그림처럼 말이야......\"
순간 녀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날 좋아하는 녀석에게 녀석이 내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이유를 난 또다시 말해버리고 만 것이다. 녀석이 이 말에 항상 고개가 떨구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친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미안하다. 나 웃기지? 게이 주제에 그런 꿈이나 꾸고.\"
\"아니야,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정현아. 나도 소원이 있다.\"
\"뭔데?\"
\"딱 하나가 있거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너의 소원을 내가 들어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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