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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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캘리포니아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지? 난 그냥 그 소원을 작게나마 들어주고 싶을 뿐이야.\"
약 1시간도 못되어서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나오자 벌써부터 남국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날 매혹시켰다. 항상 무질서한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여져 있던 서울과는 달리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날씨도 그랬다. 사람들의 메마른 정서처럼 건조하며 차가웠던 회색서울과는 달리 이 곳은 아직 겨울인데도 봄날의 따듯함이 나의 몸을 감싸왔다.
\"흐~~~음. 아~~~~~~\"
공기를 맘껏 마셔보았다. 싱그러운 제주의 공기가 내 폐 속의 갖은 오폐물들을 씻어준 기분이었다.
\"정현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녀석은 날 주자창 한 가운데에 내버려두고 갑자기 어디로 뛰어갔다. 난 기다리라는 말도 못한 체 녀석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난 가만히 서서 10분쯤을 기다렸다. 이 10분도 참 지루한데 녀석은 내가 검정고시를 보는 몇 시간동안 어떻게 기다렸을까? 순간 녀석의 지극정성이 놀라웠다.
\"빵, 빵.\"
양손에 내 짐과 승우녀석의 짐도 같이 들고 있던 내 앞에 심플한 은색 스포츠카가 미끄러 지듯이 다가와 섰다. 녀석은 썬그라스르 낀 체, 운전석에 앉아 나에게 빨리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 차는 또 어디서 났냐? 제주도에도 니네 친척사냐?\"
\"친척은, 랜드카다. 내가 미리 빌려놨었어. 뭐해? 빨리 타.\"
녀석은 그러면서 옆문을 열어 주었다. 난 짐들은 뒷좌석에 놓고선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녀석이 주머니에서 다른 썬그라스를 꺼내서 내게 씌어 주면서 말했다.
\"멋있다. 안 어울릴까봐 걱정했는데 딱이다. 그럼 이제 출발이다.\"
녀석이 시동을 걸자 차는 공항을 미끄러져 나왔다.
우리는 제주의 외곽도로를 달렸다.
승우가 틀어놓은 70연대 '아바'란 그룹의 노래에 우리는 박자에 맞추어서 몸을 흔들기도 하였고, 또 가끔 쉬운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이 곳 제주의 풍경은 맑은 공기 때문인지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 자연의 색이 살아 있는 것 같이 모든 사물의 색이 선명하였다. 난 이 자연의 색을 놓치기 싫어 썬그라스를 벗어서 한참을 창문 넘어 풍경을 감상하였다.
차가 어느 덧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더니 어느 아담한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
주위에는 넓은 초원의 목장과 또 별장으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 양옆에는 포플러나무가 즐비하게 서있었다.
\"내리자, 다 왔어.\"
난 차에서 내려서 다시 한 번 기지개를 피면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승우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그냥 흐믓히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 짐을 들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거실 한켠에 자리잡은 벽난로가 귀족적 분위기를 내었다.
큰 침대가 있는 방 2칸에 거실과 오븐이 있는 주방. 그리고 고급 대리석으로 장식한 욕실까지, 이 정도면 승우네 집이 어느 정도 인가를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우기는 바람에 한 방을 쓰게된 우리는 짐을 풀고 욕실에서 간단히 따로 샤워를 마치고 나자 어느 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승우냐, 배고프다. 밥 해야돼냐?\"
\"걱정 마, 오늘 저녁은 내가 직접 만들어 줄게.\"
\"싫어, 임마, 맛없을 것 같아. 또 알아? 밥에다 수면제 타서 날 가지고 어떻게 할지?\"
\"안 잡아먹어 임마. 내가 저녁 할 동안 넌 내 가방에서 만화책 꺼내서 그거나 읽고 있어라.\"
난 녀석의 말대로 만화책을 꺼내서 배에 배게를 까고 읽기 시작하였다.
녀석은 대체 주방에서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요란한 소리가 가끔씩 들렸다.
\"정현아, 다 됐어. 이리 와봐.\"
한 2시간 정도가 지나서 녀석이 날 불렀다.
\"잠깐만, 나 뭐 좀 챙기고.\"
난 방으로 들어가서 집에서 챙겨온 녀석에게 줄 초콜렛을 꺼냈다. 이번에는 내가 녀석을 놀래킬 차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짧은 생각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전등은 꺼져있고 식탁이 있는 주방만이 밝게 켜져있었다.
난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주방에 들어서자 마자 주방 불마저 꺼졌다.
순간 여러개의 촛불이 내 눈앞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그 촛불사이로 보이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이게 뭐냐?\"
\"오늘 너 생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신경 좀 썼다.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선 녀석은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사랑하는 정현이 생일 축하합니다. 야! 빨리 촛불꺼라.\"
난 숨을 크게 몰아서 19개의 촛불을 껐다. 그러자 녀석은 어디서 준비했는지 폭죽을 터트렸다. 난 녀석의 멈추지 않는 이벤트에 기뻐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내 얼굴엔 기뻐하는 표정은커녕 어리벙벙한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런 나를 상관하지도 않은 체, 다시 주방 불을 켜고서는 자기 할 말만을 계속하였다.
\"오늘이 니 생일이자, 발렌타인데이잖아. 그래서 이 기쁜 두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케익을 만들어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녹여서 케익 위에다 뿌렸어. 감격스럽지 않냐?\"
난 순간 녀석에게 주려 했던 초콜렛 상자를 뒤로 감쳤다. 그러면서 내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 어디 아프냐? 표정이 왜그래?\"
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나름대로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녀석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녀석의 화려한 이벤트에 내 작은 초콜렛 상자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비참한 선물이 되어버렸다.
\"너, 나한테 이렇게 마음 쓴다고 내가 너 좋아하게 될 줄 알았냐?\"
\"무슨 소리야?\"
\"왜 그래? 대체 이렇게 내게 잘해주면서 날 비참하게 만들고, 부담 느끼게 하는거냐? 나한테 니네 집 잘산다고 아주 날 잡아서 자랑하는 거냐?\"
\"야!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런 거 아니라는 거 너도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난 뒤로 감쳤던 초콜렛 상자를 녀석에게 던지면서 소리쳤다.
\"야! 새-끼야. 이거 받아. 난 너에게 발렌타인데이라고 이 것밖에 줄 수 없다. 이 정도로 성이 안차겠지만......\"
그러자 녀석은 그 상자를 받더니 조심스레 열어서 초콜렛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맛있다. 정현아. 고마워.\"
그리고 녀석은 내게 다가와서 나를 안았다.
\"고마워, 난 그냥 니가 내 곁에서 가만히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하늘에게 감사하는데. 이런 것까지 줄지는 몰랐다. 고맙다 정현아.\"
난 아무 말 없이 날 껴안은 녀석의 쓰다듬었다.
우리는 승우가 만든 케익을 저녁으로 먹었다.
녀석의 정성처럼만 맛있었다면 그 케익 다 먹을 수 있었는데...... 정말 아무 맛없었다.
억지로 녀석의 얼굴을 봐가면서 먹은 케익을 소화시키고 있는데 녀석이 방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청바지 두 벌이었다.
\"야! 이걸로 갈아입어라. 너 이게 잠옷이잖아.\"
\"이거 비싸 보이는데, 최승우. 이거 어디서 났냐?\"
\"내가 너 줄려고 샀지. 봐라. 나도 니 거랑 똑같은 걸로 샀다. 빨리 갈아입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같이 청바지를 갈아입었다.
그 동안 서로의 알몸을 수 차례 봐왔지만 가끔 녀석의 장난이 내 볼을 빨갛게 물들인다.
\"야, 항상 말하지만 니 그건 정말 예술이다.\"
\"최승우, 장난 시작이냐? 고만 해라.\"
\"왜? 좋은 걸 좋다고 하는건데. 오늘따라 속옷도 섹시한 거 입고. 그래서 그런지 거기가 볼륨있어 보인다.\"
\"이 새-끼. 죽여버릴라.\"
\"야. 너 흥분하지마. 그거 밖으로 나온다.\"
\"새-끼 진짜. 다 입었다. 이젠 안 보이지? 그러니까 빨리 너도 그만 그거 내놓고 바지 입어라.\"
우리는 속옷 위에 청바지만 입고서 가만히 앉아서 멍청하게 텔레비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지루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려고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승우가 불렀다.
\"정현아. 춤 잘 추냐?\"
\"아니.\"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옛날에 학교에서 왈츠 배웠었거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어디서 이상한 테이프를 가져와서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왈츠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녀석은 날 끌고 거실 한 가운데로 갔다.
그리고선 나를 살포시 안았다. 그러자 녀석의 맨살이 내 맨살에 닿았다.
녀석은 말없이 손을 내 허리에 가져 대더니 날 끌어안고서는 천천히 기본 스텝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난 계속 어색한 발 동작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차차 스텝이 발에 익기 시작하면서 왈츠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녀석의 가슴위로 흐르는 땀이 내 가슴살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맨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그럴수록 아무 말 없이 좀더 내 몸을 자신에게 더 당기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땀으로 몸을 부대끼게 되었다. 하지만 녀석의 땀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난 나도 모르게 녀석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본다. 그러자 녀석은 내 허리를 움켜줬던 손으로 내 머리를 감쌌다.
몇 시간이 지나 테이프가 몇 번씩이나 감아져도 우리는 계속 그 상태로 왈츠를 추었다.
청바지의 허리 부분이 땀에 젖어버렸다.
우리는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의 몸을 더욱 더 밀착시킨 체, 계속 음악에 맞춰 무의식적인 스텝에 우리를 맡겨버렸다.
그날 난 녀석의 부드러운 육감의 상체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 겨울저녁의 달이 참 밝기도 하였다.
약 1시간도 못되어서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나오자 벌써부터 남국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날 매혹시켰다. 항상 무질서한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여져 있던 서울과는 달리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날씨도 그랬다. 사람들의 메마른 정서처럼 건조하며 차가웠던 회색서울과는 달리 이 곳은 아직 겨울인데도 봄날의 따듯함이 나의 몸을 감싸왔다.
\"흐~~~음. 아~~~~~~\"
공기를 맘껏 마셔보았다. 싱그러운 제주의 공기가 내 폐 속의 갖은 오폐물들을 씻어준 기분이었다.
\"정현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녀석은 날 주자창 한 가운데에 내버려두고 갑자기 어디로 뛰어갔다. 난 기다리라는 말도 못한 체 녀석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난 가만히 서서 10분쯤을 기다렸다. 이 10분도 참 지루한데 녀석은 내가 검정고시를 보는 몇 시간동안 어떻게 기다렸을까? 순간 녀석의 지극정성이 놀라웠다.
\"빵, 빵.\"
양손에 내 짐과 승우녀석의 짐도 같이 들고 있던 내 앞에 심플한 은색 스포츠카가 미끄러 지듯이 다가와 섰다. 녀석은 썬그라스르 낀 체, 운전석에 앉아 나에게 빨리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 차는 또 어디서 났냐? 제주도에도 니네 친척사냐?\"
\"친척은, 랜드카다. 내가 미리 빌려놨었어. 뭐해? 빨리 타.\"
녀석은 그러면서 옆문을 열어 주었다. 난 짐들은 뒷좌석에 놓고선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녀석이 주머니에서 다른 썬그라스를 꺼내서 내게 씌어 주면서 말했다.
\"멋있다. 안 어울릴까봐 걱정했는데 딱이다. 그럼 이제 출발이다.\"
녀석이 시동을 걸자 차는 공항을 미끄러져 나왔다.
우리는 제주의 외곽도로를 달렸다.
승우가 틀어놓은 70연대 '아바'란 그룹의 노래에 우리는 박자에 맞추어서 몸을 흔들기도 하였고, 또 가끔 쉬운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이 곳 제주의 풍경은 맑은 공기 때문인지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 자연의 색이 살아 있는 것 같이 모든 사물의 색이 선명하였다. 난 이 자연의 색을 놓치기 싫어 썬그라스를 벗어서 한참을 창문 넘어 풍경을 감상하였다.
차가 어느 덧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더니 어느 아담한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
주위에는 넓은 초원의 목장과 또 별장으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 양옆에는 포플러나무가 즐비하게 서있었다.
\"내리자, 다 왔어.\"
난 차에서 내려서 다시 한 번 기지개를 피면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승우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그냥 흐믓히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각자 짐을 들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거실 한켠에 자리잡은 벽난로가 귀족적 분위기를 내었다.
큰 침대가 있는 방 2칸에 거실과 오븐이 있는 주방. 그리고 고급 대리석으로 장식한 욕실까지, 이 정도면 승우네 집이 어느 정도 인가를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우기는 바람에 한 방을 쓰게된 우리는 짐을 풀고 욕실에서 간단히 따로 샤워를 마치고 나자 어느 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승우냐, 배고프다. 밥 해야돼냐?\"
\"걱정 마, 오늘 저녁은 내가 직접 만들어 줄게.\"
\"싫어, 임마, 맛없을 것 같아. 또 알아? 밥에다 수면제 타서 날 가지고 어떻게 할지?\"
\"안 잡아먹어 임마. 내가 저녁 할 동안 넌 내 가방에서 만화책 꺼내서 그거나 읽고 있어라.\"
난 녀석의 말대로 만화책을 꺼내서 배에 배게를 까고 읽기 시작하였다.
녀석은 대체 주방에서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요란한 소리가 가끔씩 들렸다.
\"정현아, 다 됐어. 이리 와봐.\"
한 2시간 정도가 지나서 녀석이 날 불렀다.
\"잠깐만, 나 뭐 좀 챙기고.\"
난 방으로 들어가서 집에서 챙겨온 녀석에게 줄 초콜렛을 꺼냈다. 이번에는 내가 녀석을 놀래킬 차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짧은 생각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전등은 꺼져있고 식탁이 있는 주방만이 밝게 켜져있었다.
난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주방에 들어서자 마자 주방 불마저 꺼졌다.
순간 여러개의 촛불이 내 눈앞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그 촛불사이로 보이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이게 뭐냐?\"
\"오늘 너 생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신경 좀 썼다.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선 녀석은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사랑하는 정현이 생일 축하합니다. 야! 빨리 촛불꺼라.\"
난 숨을 크게 몰아서 19개의 촛불을 껐다. 그러자 녀석은 어디서 준비했는지 폭죽을 터트렸다. 난 녀석의 멈추지 않는 이벤트에 기뻐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내 얼굴엔 기뻐하는 표정은커녕 어리벙벙한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런 나를 상관하지도 않은 체, 다시 주방 불을 켜고서는 자기 할 말만을 계속하였다.
\"오늘이 니 생일이자, 발렌타인데이잖아. 그래서 이 기쁜 두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케익을 만들어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녹여서 케익 위에다 뿌렸어. 감격스럽지 않냐?\"
난 순간 녀석에게 주려 했던 초콜렛 상자를 뒤로 감쳤다. 그러면서 내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 어디 아프냐? 표정이 왜그래?\"
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나름대로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녀석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녀석의 화려한 이벤트에 내 작은 초콜렛 상자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비참한 선물이 되어버렸다.
\"너, 나한테 이렇게 마음 쓴다고 내가 너 좋아하게 될 줄 알았냐?\"
\"무슨 소리야?\"
\"왜 그래? 대체 이렇게 내게 잘해주면서 날 비참하게 만들고, 부담 느끼게 하는거냐? 나한테 니네 집 잘산다고 아주 날 잡아서 자랑하는 거냐?\"
\"야!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런 거 아니라는 거 너도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난 뒤로 감쳤던 초콜렛 상자를 녀석에게 던지면서 소리쳤다.
\"야! 새-끼야. 이거 받아. 난 너에게 발렌타인데이라고 이 것밖에 줄 수 없다. 이 정도로 성이 안차겠지만......\"
그러자 녀석은 그 상자를 받더니 조심스레 열어서 초콜렛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맛있다. 정현아. 고마워.\"
그리고 녀석은 내게 다가와서 나를 안았다.
\"고마워, 난 그냥 니가 내 곁에서 가만히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하늘에게 감사하는데. 이런 것까지 줄지는 몰랐다. 고맙다 정현아.\"
난 아무 말 없이 날 껴안은 녀석의 쓰다듬었다.
우리는 승우가 만든 케익을 저녁으로 먹었다.
녀석의 정성처럼만 맛있었다면 그 케익 다 먹을 수 있었는데...... 정말 아무 맛없었다.
억지로 녀석의 얼굴을 봐가면서 먹은 케익을 소화시키고 있는데 녀석이 방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청바지 두 벌이었다.
\"야! 이걸로 갈아입어라. 너 이게 잠옷이잖아.\"
\"이거 비싸 보이는데, 최승우. 이거 어디서 났냐?\"
\"내가 너 줄려고 샀지. 봐라. 나도 니 거랑 똑같은 걸로 샀다. 빨리 갈아입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같이 청바지를 갈아입었다.
그 동안 서로의 알몸을 수 차례 봐왔지만 가끔 녀석의 장난이 내 볼을 빨갛게 물들인다.
\"야, 항상 말하지만 니 그건 정말 예술이다.\"
\"최승우, 장난 시작이냐? 고만 해라.\"
\"왜? 좋은 걸 좋다고 하는건데. 오늘따라 속옷도 섹시한 거 입고. 그래서 그런지 거기가 볼륨있어 보인다.\"
\"이 새-끼. 죽여버릴라.\"
\"야. 너 흥분하지마. 그거 밖으로 나온다.\"
\"새-끼 진짜. 다 입었다. 이젠 안 보이지? 그러니까 빨리 너도 그만 그거 내놓고 바지 입어라.\"
우리는 속옷 위에 청바지만 입고서 가만히 앉아서 멍청하게 텔레비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지루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려고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승우가 불렀다.
\"정현아. 춤 잘 추냐?\"
\"아니.\"
\"그럼 내가 가르쳐 줄게, 옛날에 학교에서 왈츠 배웠었거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어디서 이상한 테이프를 가져와서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왈츠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녀석은 날 끌고 거실 한 가운데로 갔다.
그리고선 나를 살포시 안았다. 그러자 녀석의 맨살이 내 맨살에 닿았다.
녀석은 말없이 손을 내 허리에 가져 대더니 날 끌어안고서는 천천히 기본 스텝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난 계속 어색한 발 동작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차차 스텝이 발에 익기 시작하면서 왈츠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녀석의 가슴위로 흐르는 땀이 내 가슴살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맨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그럴수록 아무 말 없이 좀더 내 몸을 자신에게 더 당기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땀으로 몸을 부대끼게 되었다. 하지만 녀석의 땀냄새가 싫지는 않았다. 난 나도 모르게 녀석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본다. 그러자 녀석은 내 허리를 움켜줬던 손으로 내 머리를 감쌌다.
몇 시간이 지나 테이프가 몇 번씩이나 감아져도 우리는 계속 그 상태로 왈츠를 추었다.
청바지의 허리 부분이 땀에 젖어버렸다.
우리는 다음 날,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의 몸을 더욱 더 밀착시킨 체, 계속 음악에 맞춰 무의식적인 스텝에 우리를 맡겨버렸다.
그날 난 녀석의 부드러운 육감의 상체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 겨울저녁의 달이 참 밝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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