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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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내 옆에서 고이 잠든 녀석의 모습이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 비친다.
녀석은 또 속옷 한 장만 걸친 체, 잠을 자고 있다. 분명히 어제 나에게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잠이 들고 싶다며 나처럼 청바지를 입고 잠을 잤는데, 아무래도 청바지는 녀석에게는 불편했나보다. 녀석이 입었던 청바지는 침대 옆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정현아. 오늘은 바다 보러 나가자.\"
녀석은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아직도 졸린 눈을 부비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나뒹굴고 있는 녀석의 청바지를 보고는 멀쑥해진 표정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야, 팬티만 입고 자야, 섹시하잖냐. 알지? 내 맘?\"
\"아니, 몰라. 추해. 빨리 바지 입어라.\"
제주도라고 해서 녀석과 나의 아침은 평소보다 이르지 못했다. 우리가 완전히 잠에서 눈을 떴을 때는 시계가 오전 11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나와 녀석은 대충 씻고선 어제 먹다남은 케익으로 꾸역꾸역 아침으로 해결했다.
난 케익을 먹으면서 계속 녀석에게 다시는 음식 만든다고 설치지 말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별장 앞에서 꺽은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선 사람하나 없는 추운 겨울바닷가를 걸었다.
녀석은 가끔 아무 말 없이 바닷가를 걷는 게 심심하였는지 강아지풀로 내 뒷목을 간지럽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녀석을 몸으로 밀어서 바닷물에 신발이 적도록 하였다. 그럼 녀석은 추운 바닷물에 발이 시려웠는지 폴짝폴짝 뛰며 내게 달려와서는 날 쥐어박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변 위 우리의 발자국의 끝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난 녀석과 나란히 앉아서 모래 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어린 파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생각했다.
내 어렸을 때 순수했던 꿈들이 내가 성장함에 따라서 저 파도들처럼 쉽게 부서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냥 쉽게 부서져서 내 본능대로 살아가면서 행복해질 수는 있는 건지...... 지금, 얼마 있으면 성인이 될 위치에 있는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기만 하다.
\"내가 니 또 다른 소원 들어줄까?\"
갑자기 내 복잡하고 말도 안 되는 개똥벌레 철학들을 승우녀석이 이 한마디로 깨버렸다. 난 내 자아 속에서 살다가 다시금 현실의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니 소원 들어줄게.\"
그러더니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집더니 날 모래 위에 눕혔다. 그리고선 내 위에 올라 녀석의 체중으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야! 너 뭐하는 짓이냐?\"
\"해변에서 뒹굴고 싶다며. 덤벼봐.\"
\"야, 그 때는 그냥 해 본 소리였지. 빨리 내려와\"
\"싫다면?\"
\"좋아, 해보자.\"
나 양다리를 녀석의 어깨위로 올린 다음 다리로 녀석을 뒤로 눌러서 내가 녀석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밑에 있는 승우를 바라보았다. 순식간 녀석의 이마에 땀이 맺힘을 알 수 있었다.
\"덤비지 말랬지? 이제 졌다고 한마디만 해라.\"
\"웃기지 마라.\"
승우는 다시 힘을 써서 날 밀쳐댔다. 그리고 우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엉켜 붙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남자 둘이서 서로 조르고 덮치고 하는 모습들이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와 함께 온 힘을 다해서 서로 뒹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 생각은 승우도 나랑 같을 것이다.
해가 질 무렵, 우리들은 그만 힘이 빠져서 해변 위에 나란히 누워있게 되었다.
별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우리는 온 몸이 땀에 젓어 있었다. 난 샤워를 생각하게 되었다.
\"승우야. 너 샤워 할꺼냐?\"
\"응, 해야지.\"
\"그럼 나 먼저 하고서 해라.\"
\"싫어, 같이 하자. 서로 등이나 밀어주면 돼겠네.\"
난 안 된다고 수 차례 승우에게 말했지만 녀석은 그때마다 꼭 같이 하겠다고 우겼다. 만약 같이 샤워를 하지 않으면 뒷일은 책임질 수 없다면서......
결국 우리는 같이 욕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욕실에 들어가서 우리는 한동안 어색함에 서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속옷만 남겨두고선 모든 옷은 다 벗어버리고선 그 다음엔 더 이상 어쩌지를 못했다.
난 이 친구사이라기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우정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먼저 속옷을 벗었다.
녀석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속옷을 아직 입었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발기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순간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지면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승우에게 말했다.
\"야, 너도 벗어라.\"
녀석은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수줍어하며 속옷을 내렸다. 그러자 녀석도 알몸이 되었다.
정말 아름다운 곡선의 몸이었다. 지금 녀석의 모습이 꼭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젊은 남자신의 나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자 나도 서서히 발기되는 것을 느꼈다.
역시 우리는 서로 친구사이이지만, 둘 다 어쩔 수 없는 게이였다.
승우도 그런 나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날보고 씨익 웃었다. 나도 녀석을 보고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욕탕에 따듯한 물을 담가놓고 둘이 같이 탕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분위기와는 달리 녀석은 계속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변태새-끼야! 또 뭐하는 거야?\"
\"응. 그냥 니 그게 너무 좋아서.\"
난 그 말에 녀석의 머리를 물 속으로 쳐 넣었다. 녀석은 물 속에서 빠져 나올려고 안간힘을 쳐댔다.
그리고는 겨우겨우 물 속에서 나와서 헐떡거리며 말했다.
\"때 국물 다 마셔버렸잖아. 이번엔 니가 마셔봐라.\"
녀석은 갑자기 내게 달려들더니 자기가 당했던 것처럼 나를 물 속으로 쳐 넣었다.
내 머리가 물 속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혼자 씩씩 거리며 떠들던 승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내 입에서 나오는 공기거품들의 소리만 신비롭게 들리 뿐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물 속에 잠겨있던 녀석의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내 바로 눈앞에 그것이 보이자 난 물 속에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 결국 승우가 마셨던 물보다 배는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한참을 서로 물을 먹인 후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야. 때 좀 밀어라. 한 트럭은 나오겠다.\"
\"너도 아까 때 많이 나왔어. 말 안 할려니까......\"
나는 녀석의 등에 비누칠만을 하면서도 때가 나온다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같은 탕 안에서 장난을 치며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참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은 남자답게 발달한 넓은 어깨를 내게 맡긴 체,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말투로 내게 말하였다.
\"너, 양부모님이 계시다고 했지?\"
\"응.\"
\"근데 왜 집에서 나왔어?\"
\"알고싶냐?\"
\"응.\"
난 다시금 떠올리기 싫었던 생각을 애써 기억해내야 했다. 그리고 계속 녀석의 등에 필요없는 비누칠을 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입양된 얘였어. 난 그 사실을 양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알려줘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었어. 오히려 양부모님께 감사드렸지. 근데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입양아란 사실이 처음으로 싫었어.\"
\"왜?\"
\"너도 알지? 강남에 돈 많은 집 얘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있잖아.\"
\"응, 알어.\"
\"나도 지금 너희 집 만큼이나 부자인 양부모님 덕분에 그 고등학교에 들어갔어. 워낙 잘난 놈들만 모이는 학교였어. 근데 그곳에서도 난, 더 잘난 놈이었어. 그 얘들 가운데에서도 제일 잘 살았고, 또 여러면에서도 내가 그 곳 얘들보다 뒤쳐지는게 없었거든. 그래서 난 그곳에서도 얘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었어.\"
\"근데 뭐가 문제였냐?\"
\"그러다 어떻게 하다가 내가 입양아라는 소문이 퍼진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내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날 깔보더라. 근본이 어딘지도 모르는 입양아 주제에 그 동안 설치고 다녔다고. 그 때 난 내가 입양아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어. 그리고 많이 흔들렸고. 그러다 보니까 양부모님이까지 미워지고. 그 때에는 아주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벗어나고만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러다 결국 난 짐을 싸서 그 집에서 나오게 된 거다. 이제 알겠냐?\"
녀석은 아무말도 없었다. 그냥 내 눈에 고인 눈물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내내 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대고 살며시 말했다.
\"돌아가. 집으로 가서 용서를 빌어. 그게 니가 원하던 거였지?\"
\"......\"
\"니가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할 거라는 것도 알어. 하지만 걱정마. 내가 함께 할게. 내일 서울에 도착하면 바로 니네 양부모님 집으로 가자. 양부모님도 널 기달릴꺼야.\"
순간 난 나를 위하는 녀석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난 녀석을 더욱 더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의 귓가에 말했다.
\"고마워. 이 말 밖에 할 수 없다. 고마워. 정말로.\"
\"......\"
\"그리고 나도 내 곁에 니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우리는 그 날 저녁 서로를 꼬옥 안아준 체, 잠에 들었다.
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며 자는 녀석의 내음을 맡으며, 이불을 걷어 차버린 녀석에게 조심스레 이불을 씌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제주도에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즐겁고 풋풋한 추억을 남긴 체, 서울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녀석이 내게 해주었던 케익, 그리고 밤새 추웠던 왈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우리 둘만의 겨울 해변...... 내가 나이를 먹어 세상 힘든 일로 나약해진다 해도 이 추억들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옆에서 고이 잠든 녀석의 모습이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 비친다.
녀석은 또 속옷 한 장만 걸친 체, 잠을 자고 있다. 분명히 어제 나에게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잠이 들고 싶다며 나처럼 청바지를 입고 잠을 잤는데, 아무래도 청바지는 녀석에게는 불편했나보다. 녀석이 입었던 청바지는 침대 옆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정현아. 오늘은 바다 보러 나가자.\"
녀석은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아직도 졸린 눈을 부비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나뒹굴고 있는 녀석의 청바지를 보고는 멀쑥해진 표정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야, 팬티만 입고 자야, 섹시하잖냐. 알지? 내 맘?\"
\"아니, 몰라. 추해. 빨리 바지 입어라.\"
제주도라고 해서 녀석과 나의 아침은 평소보다 이르지 못했다. 우리가 완전히 잠에서 눈을 떴을 때는 시계가 오전 11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나와 녀석은 대충 씻고선 어제 먹다남은 케익으로 꾸역꾸역 아침으로 해결했다.
난 케익을 먹으면서 계속 녀석에게 다시는 음식 만든다고 설치지 말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별장 앞에서 꺽은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선 사람하나 없는 추운 겨울바닷가를 걸었다.
녀석은 가끔 아무 말 없이 바닷가를 걷는 게 심심하였는지 강아지풀로 내 뒷목을 간지럽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녀석을 몸으로 밀어서 바닷물에 신발이 적도록 하였다. 그럼 녀석은 추운 바닷물에 발이 시려웠는지 폴짝폴짝 뛰며 내게 달려와서는 날 쥐어박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변 위 우리의 발자국의 끝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난 녀석과 나란히 앉아서 모래 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어린 파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생각했다.
내 어렸을 때 순수했던 꿈들이 내가 성장함에 따라서 저 파도들처럼 쉽게 부서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냥 쉽게 부서져서 내 본능대로 살아가면서 행복해질 수는 있는 건지...... 지금, 얼마 있으면 성인이 될 위치에 있는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기만 하다.
\"내가 니 또 다른 소원 들어줄까?\"
갑자기 내 복잡하고 말도 안 되는 개똥벌레 철학들을 승우녀석이 이 한마디로 깨버렸다. 난 내 자아 속에서 살다가 다시금 현실의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니 소원 들어줄게.\"
그러더니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집더니 날 모래 위에 눕혔다. 그리고선 내 위에 올라 녀석의 체중으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야! 너 뭐하는 짓이냐?\"
\"해변에서 뒹굴고 싶다며. 덤벼봐.\"
\"야, 그 때는 그냥 해 본 소리였지. 빨리 내려와\"
\"싫다면?\"
\"좋아, 해보자.\"
나 양다리를 녀석의 어깨위로 올린 다음 다리로 녀석을 뒤로 눌러서 내가 녀석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밑에 있는 승우를 바라보았다. 순식간 녀석의 이마에 땀이 맺힘을 알 수 있었다.
\"덤비지 말랬지? 이제 졌다고 한마디만 해라.\"
\"웃기지 마라.\"
승우는 다시 힘을 써서 날 밀쳐댔다. 그리고 우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엉켜 붙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남자 둘이서 서로 조르고 덮치고 하는 모습들이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와 함께 온 힘을 다해서 서로 뒹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 생각은 승우도 나랑 같을 것이다.
해가 질 무렵, 우리들은 그만 힘이 빠져서 해변 위에 나란히 누워있게 되었다.
별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우리는 온 몸이 땀에 젓어 있었다. 난 샤워를 생각하게 되었다.
\"승우야. 너 샤워 할꺼냐?\"
\"응, 해야지.\"
\"그럼 나 먼저 하고서 해라.\"
\"싫어, 같이 하자. 서로 등이나 밀어주면 돼겠네.\"
난 안 된다고 수 차례 승우에게 말했지만 녀석은 그때마다 꼭 같이 하겠다고 우겼다. 만약 같이 샤워를 하지 않으면 뒷일은 책임질 수 없다면서......
결국 우리는 같이 욕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욕실에 들어가서 우리는 한동안 어색함에 서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속옷만 남겨두고선 모든 옷은 다 벗어버리고선 그 다음엔 더 이상 어쩌지를 못했다.
난 이 친구사이라기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우정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먼저 속옷을 벗었다.
녀석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속옷을 아직 입었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발기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순간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지면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승우에게 말했다.
\"야, 너도 벗어라.\"
녀석은 이미지와는 맞지 않게 수줍어하며 속옷을 내렸다. 그러자 녀석도 알몸이 되었다.
정말 아름다운 곡선의 몸이었다. 지금 녀석의 모습이 꼭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젊은 남자신의 나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자 나도 서서히 발기되는 것을 느꼈다.
역시 우리는 서로 친구사이이지만, 둘 다 어쩔 수 없는 게이였다.
승우도 그런 나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날보고 씨익 웃었다. 나도 녀석을 보고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욕탕에 따듯한 물을 담가놓고 둘이 같이 탕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분위기와는 달리 녀석은 계속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변태새-끼야! 또 뭐하는 거야?\"
\"응. 그냥 니 그게 너무 좋아서.\"
난 그 말에 녀석의 머리를 물 속으로 쳐 넣었다. 녀석은 물 속에서 빠져 나올려고 안간힘을 쳐댔다.
그리고는 겨우겨우 물 속에서 나와서 헐떡거리며 말했다.
\"때 국물 다 마셔버렸잖아. 이번엔 니가 마셔봐라.\"
녀석은 갑자기 내게 달려들더니 자기가 당했던 것처럼 나를 물 속으로 쳐 넣었다.
내 머리가 물 속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혼자 씩씩 거리며 떠들던 승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내 입에서 나오는 공기거품들의 소리만 신비롭게 들리 뿐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물 속에 잠겨있던 녀석의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내 바로 눈앞에 그것이 보이자 난 물 속에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 결국 승우가 마셨던 물보다 배는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한참을 서로 물을 먹인 후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야. 때 좀 밀어라. 한 트럭은 나오겠다.\"
\"너도 아까 때 많이 나왔어. 말 안 할려니까......\"
나는 녀석의 등에 비누칠만을 하면서도 때가 나온다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같은 탕 안에서 장난을 치며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참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은 남자답게 발달한 넓은 어깨를 내게 맡긴 체,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말투로 내게 말하였다.
\"너, 양부모님이 계시다고 했지?\"
\"응.\"
\"근데 왜 집에서 나왔어?\"
\"알고싶냐?\"
\"응.\"
난 다시금 떠올리기 싫었던 생각을 애써 기억해내야 했다. 그리고 계속 녀석의 등에 필요없는 비누칠을 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입양된 얘였어. 난 그 사실을 양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알려줘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었어. 오히려 양부모님께 감사드렸지. 근데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입양아란 사실이 처음으로 싫었어.\"
\"왜?\"
\"너도 알지? 강남에 돈 많은 집 얘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있잖아.\"
\"응, 알어.\"
\"나도 지금 너희 집 만큼이나 부자인 양부모님 덕분에 그 고등학교에 들어갔어. 워낙 잘난 놈들만 모이는 학교였어. 근데 그곳에서도 난, 더 잘난 놈이었어. 그 얘들 가운데에서도 제일 잘 살았고, 또 여러면에서도 내가 그 곳 얘들보다 뒤쳐지는게 없었거든. 그래서 난 그곳에서도 얘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었어.\"
\"근데 뭐가 문제였냐?\"
\"그러다 어떻게 하다가 내가 입양아라는 소문이 퍼진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내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날 깔보더라. 근본이 어딘지도 모르는 입양아 주제에 그 동안 설치고 다녔다고. 그 때 난 내가 입양아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어. 그리고 많이 흔들렸고. 그러다 보니까 양부모님이까지 미워지고. 그 때에는 아주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벗어나고만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러다 결국 난 짐을 싸서 그 집에서 나오게 된 거다. 이제 알겠냐?\"
녀석은 아무말도 없었다. 그냥 내 눈에 고인 눈물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내내 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대고 살며시 말했다.
\"돌아가. 집으로 가서 용서를 빌어. 그게 니가 원하던 거였지?\"
\"......\"
\"니가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할 거라는 것도 알어. 하지만 걱정마. 내가 함께 할게. 내일 서울에 도착하면 바로 니네 양부모님 집으로 가자. 양부모님도 널 기달릴꺼야.\"
순간 난 나를 위하는 녀석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난 녀석을 더욱 더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녀석의 귓가에 말했다.
\"고마워. 이 말 밖에 할 수 없다. 고마워. 정말로.\"
\"......\"
\"그리고 나도 내 곁에 니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우리는 그 날 저녁 서로를 꼬옥 안아준 체, 잠에 들었다.
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며 자는 녀석의 내음을 맡으며, 이불을 걷어 차버린 녀석에게 조심스레 이불을 씌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제주도에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즐겁고 풋풋한 추억을 남긴 체, 서울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녀석이 내게 해주었던 케익, 그리고 밤새 추웠던 왈츠, 그리고 아무도 없는 우리 둘만의 겨울 해변...... 내가 나이를 먹어 세상 힘든 일로 나약해진다 해도 이 추억들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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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신ㅅ동 현대고등학교나 청담동 청담고등학교, 압구정동 구정중고등교 같은 이름이 실제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기분이 불쾌하군요. 저도 그 곳들 출신인지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