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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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달 후.
나에게도 영장이 나왔다. 

승우 없이 보내야 했던 2年 6개월이란 시간도 어느 새 지나버렸다.
살을 째는 것 같은 추운 겨울밤에 보초를 설 때면 항상 날 기다리며 콧물을 흘리던 녀석의 모습이, 세상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 같은 더운 여름 훈련의 끝에서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있으면 녀석과 함께 장난을 치며 샤워를 하던 추억들에 잠기게 되었다.
10대의 풋풋한 웃음을 항상 내게 지어주던 녀석의 모습이 항상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것이다.

가끔 고참들이 나의 그곳을 만져왔다.
그럴때면 처음에는 그런 고참의 손길을 피했었지만, 한창인 나이였기에 점점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허벅지 위에다 고참이 사정을 하게 도와주웠었지만 난 고참의 명령에도 사정을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허벅지위에 고참의 정액을 닦아낼 때 떠오르던 녀석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제대를 한 후 복학을 하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집에서 아무 할 일 없이 보내야만 했다. 정말로 허무한 시간이었다. 
난 서울에 와서도 승우를 찾지 않았다. 아니 아예 이 쪽 세계를 찾지 않았다.
통신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검색어에 '동성애'란 단어를 치는 나를 비난하기도 하였고,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위를 하는 내 자신에게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정말 내가 세상 속의 게이로써 살아가는 것이 힘든 시기였다.

다시 한달 후 복학을 하였지만 학교에서도 난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제대를 하고 다시 돌아 온 학교에는 온통 내가 모르게 변해있었고, 또 내가 알고 지나던 사람들마저도 학교에는 없었다.
항상 난 원치 않게 혼자 지내야만 했다.
학교에서도 동호대교를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에도 내 곁에는 아무도 없이 난 혼자였다.
승우의 빈자리가 3年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크게 느껴질지는 몰랐다. 이런 고독함에 녀석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녀석이 입영하기 전날 녀석의 사랑을 우정이란 이름으로 거절해 버렸다는 이유로 녀석이 다시 내 곁에 있는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을 거면서도 나를 찾지 않는 것 같은 승우에게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였다.

혼자 지내야만했던 어언 한 달간의 시간이 날 금세 지치게 하였다.
학교 캠퍼스를 나 홀로 걸어가면서 피곤함에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었다.
오늘따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저 강렬한 태양에 난 심한 갈증을 느꼈다.
나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전화번호부 기능에 들어가서 그 곳에 저장된 사람들의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몇몇 친하지 않은 학교 여자후배들의 번호만 적혀있을 뿐, 정작 내가 필요로 하던 사람의 연락처는 찾을 수 없었다.

나를 더욱더 피곤하게 하는 땀으로 온몸을 적신 후에야 난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난 캠퍼스를 나와서 가로수에 몸을 기댄 체, 콜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네, 콜택시입니다.\"
\"네, 여기 D대입구인데요.\"
순간 내 머릿속에 텅 빈 옥수역에 막 들어오는 3호선 열차의 모습이 떠올랐다. 열차가 막 동호대교를 건너 옥수역으로 들어올 때 일어오는 바람을 맡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요, 됐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난 학교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번 역은 옥수, 옥수역입니다.\"
난 집으로 향하는 동호대교를 건너지 않고 열차가 역에 멈추어 문이 열리자마자 플랫홈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반대편 플랫홈 의자에 앉아 방금 내가 상상했던 자유를 느꼈다.
한낮의 태양에 달구어진 몸이 열차가 동호대교를 지나오면서 가져온 한강의 시원한 바람 때문에 조금은 식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몸에서 땀이 완전히 마를 때쯤 난 그 곳에서 잠이 들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난 크게 한숨을 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또다시 심한 갈증과 함께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내 머리위로 치솟은 플랫홈 바닥과 함께 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 날, 병원 1인용실의 침대 위에서였다.
\"정현아! 이제 정신이 드니?\"
내가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와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두 분은 그냥 누워서 쉬라며 내가 일어나는 것을 말리셨다.
\"더위를 먹었나 보다. 그 동안 니가 군대를 갔다오고 나서 이것저것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더니 힘이 들었나 보다. 한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푹 쉬어라.\"
난 덕분에 일주일은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서 푹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매일 가족 말고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산책과 독서로 무료한 한나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금방 싫증이 났다. 그리고 예전의 생활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다.
무료하기만 한 오후 2시에, 난 병원에 있는 공원의 나무그늘에 밑에서 또다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한 한시간 쯤 지났겠다 하고 시계를 바라보면 10분밖에 지나지 않아 매우 실망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난 새삼 그 동안 내 곁에서 항상 재잘거려주던 승우의 빈 공간을 더욱 크게 느꼈다. 이럴 때 승우가 내 곁에 있어줬다면......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또 다시 뜨거운 햇살에 쉽게 지쳐가며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정현아.\"
건장한 20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동안 가족과 여자후배들 말고는 내 이름을 쉽게 불러주지 않았었기에 난 정말로 반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마구 뛰어올라서 내 호흡을 방해하였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승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난 낯선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 모르겠냐? 이태원에서 같이 일 했었잖아.\"
난 그제서야 그가 이태원 업소의 스트립 댄서라는 걸 기억해냈다.
평소 같으면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인데도 지금 이 곳에서 시간이나 죽이고 있는 나에겐 너무나 반갑고 귀한 손님이었다.
\"안녕하세요, 형. 여긴 웬일이세요?\"
\"뭐 나야 이것 때문이지.\"
그는 왼손에 들려있는 에이즈 검사표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너는 왜?\"
\"더위 먹어서 며칠 쉬려고요.\"

우리는 아까 내가 쉬고 있었던 나무 그늘 밑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몇 年 동안 통 보이질 않더니, 이렇게 만나네. 그 동안 뭐하고 지냈냐?\"
\"군대 갔었어요.\"
\"그랬었구나. 그렇지 않아도 승우녀석도 몇 年 동안 보이질 않다가 몇 달 전에 찾아와서 니 소식 묻길래 나도 몇 年 동안 너 못 봤다고 그랬지. 그러더니 녀석 또 이주일 전부터 안 보인다.\"
난 녀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귀가 솔깃해졌다. 그리고 그리움이 변질된 설레임으로 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승우가요? 승우 어딨데요?\"
\"글세, 승우도 요즘 보이질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수원대학교에 복학했다던데. 아, 그리고 너 찾으러 온 날, 술 취해서 돌아가는 것 보니까 너 옛날에 살던 이태원 그쯤에 방 얻은 것 같던데.\" 

그렇게 난 댄서형에게서 승우 소식을 듣고 나서 병원침대에 몸을 뉘였다.
\"승우가 너 찾았었어. 그 날 술도 많이 취했었고.\"
갑자기 난 무슨 힘이 났는지 난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사복을 챙겨입고 담당의사 몰래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아저씨 이태원이요.\"

 택시가 이태원을 향하고 있는 도중 난 계속해서 조바심에 양 엄지손톱을 서로 찔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팽팽히 날 조여오는 긴장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2年 6개월 만이다.

 택시가 기억에 익숙한 이태원 한 동네의 어귀에 날 내려주었고 난 다시 내 기억을 잘 생각해서 예전에 내가, 그리고 승우가 살았던 빌라를 찾았다.
골목을 하나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긴장감이 내 목을 막은 것처럼 내 호흡을 방해하였다.
드디어 기억속의 빌라를 찾아냈다.
난 그 곳 문 앞에서 한참을 숨을 고른 다음에야 조심스레 빌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맨 위층인 4층의 한 현관문 벨을 눌렀다.

\"딩 동, 딩 동, 딩동딩동딩동.\"
난 벨을 세차게 눌러봤지만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와 밑바닥을 쳐다보았을 때, 몇 달 동안치의 신문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현관문을 돌린 내 손에는 자욱한 먼지가 묻어났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금세 날아다닐 것 같이 힘이 났었는데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계단을 걸어내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1층 빌라의 현관에 도착했을 때 난 승우에게 배달된 여러 통의 먼지 낀 우편물들을 발견하였다. 난 그 먼지들을 털어내고 우편물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보내는 이 최승우. 그리고 받는 이 김정현.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서 한참을 그 우편물을 바라보았다.
그 때 이 곳 빌라에 사는 듯한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402호 총각 친구가 보네?\"
\"네. 그런데요.\"
\"그래요? 402호 총각 여기 안 온지 몇 年 되는데. 가끔씩 와서 잠자고 가는 것 같은데 그것도 몇 달에 한 번이고 그러면서 방세는 꼬박꼬박 낸다고 그러더라구요.\"

난 그 아주머니의 말에 다시 우편물을 바라보았다.
보내는 이의 주소를 보아하니 녀석이 군대에서 보낸 것 같았다. 난 그 우편물에 승우를 느껴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빌라의 옥상으로 향하였다.
옥상에 올라가자 후덥근했던 빌라 안의 공기와는 다르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난 옥상의 낮은 벽에 내 몸을 기대어 앉아서 녀석이 보낸 우편물의 봉투를 찢었다. 그 손이 마치 알코올 중독자처럼 떨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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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님의 글은 한마듸로 너무 멋지구나..! 하고 생각합니다....글 쓰시기 힘드시죠? 계속 주관대로 밀고 나가십시요...이뿐혁기 항상 님팬....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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