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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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어. 니가 군대가던 날 왜 내게 그런짓을 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이젠 다 말한거야?\"
\"아니......\"
\"괜찮아. 니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아도 니 말이 모두다 사실이라는 거 나도 알아. 그러니까 이젠 됐어. 괜찮아.\"
\"아니, 내가 더 말해야겠어.\"
\"......\"
\"니가 나에게 갖는 그런 감정을 나도 너한테 느끼는 것 같다.\"
\"뭐라고? 무슨 뜻이야?\"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수원, 수원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그 동안 표정의 변화가 없던 승우는 꽤 놀란 표정이었다.
곧 그런 놀란 녀석의 얼굴에 전철이 이는 바람이 스치기 시작했다.
다시 날은 어두워지고 전철에서는 또 몇 사람만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전철은 내 머리카락을 날리며 유유히 역을 빠져나갔다.
녀석과 나는 서로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말도 못한 체,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다시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 나와 승우 둘만이 역 플랫홈을 지키게 되자 녀석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음료수 자판기로 걸어가더니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었다.
녀석도 지금 나처럼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녀석은 손이 떨리는지 자판기에 지폐를 제대로 집어넣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런 녀석의 모습을 고개를 숙인 체, 힐끔 쳐다 볼 뿐이었다.
긴장된 몸동작으로 겨우 녀석은 음료수 2개를 뽑아 그 중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난 그 음료수를 받아 단숨에 마셔버렸다. 승우처럼......
음료수를 다 마시고 난 계속 의자에 앉아있었고 녀석은 자판기에 몸을 기대어 비스듬히 서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몰래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특히 녀석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면서 가끔 내 눈치를 살피었다. 그리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녀석의 수줍은 표정을 보면서 얼굴이 더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녀석은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의자에 와서 앉았다.
하지만 우리는 의자 한 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이미 새까만 밤이 하늘을 색칠하였고, 가끔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의 우리의 땀을 식혀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심장박동 소리 때문에 숨소리조차 조심하였다. 그리고 행여나 몸을 움직이면 무슨 큰 소리라도 날까봐 움직이지도 앉았다.
그러다 승우가 살며시 내 눈치를 살피며 내 바로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난 예전과는 다르게 바로 옆에 앉은 녀석 때문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녀석의 땀내음이 베어온다.
또 녀석의 달아오른 체온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심장을 자꾸 조여오고 있음을 느껴졌다.
녀석이 살짝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순간 녀석에게서 예전에 우리가 같이 쓰던 샴푸냄새가 느껴졌다.
그 익숙한 냄새에 조금은 긴장감이 풀렸다.
녀석이 한번 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점점 내게 다가왔다.
난 그 다음이 무엇인지를 알았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서 승우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동자가 또렸히, 하지만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녀석은 살며시 눈을 감으며 내게 더 가까이 온다.
나도 눈을 감아버렸다.
내 입술에 짜릿한 작은 진동이 느껴진다.
그리고 녀석의 호흡이 느껴진다.
또 녀석의 체온과 근육의 작은 움직임도 느껴진다.
내 입술에 맞댄 녀석의 촉촉한 입술이 너무나 감미롭다.
내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녀석의 입술이 날 지탱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입술을 맞댄 체, 서로의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청량리, 청량리 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우리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서로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앞만 바라보았다. 차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곁눈길로 녀석의 아쉬우면서도 작은 미소가 보였다.
난 그 미소에 다시 심장이 이상하게 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그 수줍은 미소를 내가 소유하고 싶어졌다.
내 숨소리가 가빠온다.
전철은 한 명도 타고 내리는 사람없이 그렇게 역을 떠났다.
난 전철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녀석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출구로 향하는 계단 밑으로 우리의 몸을 숨기었다.
녀석은 날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런 녀석에게 긴장되는 내 마음을 감추고는 이번에는 내가 녀석에게 향하였다.
녀석은 다시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었다.
난 내 숨소리를 죽인 체,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게었다.
이번엔 녀석의 건조한 입술이 느껴진다.
난 그런 녀석의 입술사이로 그 동안 녀석에 대한 내 그리움을 불어넣었다.
이런 자극적인 나의 행동에 녀석은 처음엔 놀랐는지 그냥 가만히 내가 하는데로 있었다. 그러자 녀석의 건조한 입술은 금방 젖어들었다.
이번에는 녀석이 거칠어진 내 윗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난 내 윗입술을 깨무는 녀석에게서 그 동안 나를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그 그리움에 더 강렬히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그 동안 몇 대의 기차가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보든 말든 더 이상 상관없었다.
그냥 이 시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한참을 서로의 입술을 향해있었다.
그리고 입안이 바싹 마를 때쯤 우리는 서로의 입술에게서 떨어졌다.
녀석을 바라보았다.
조금전과는 달리 나와 마찬가지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녀석의 눈동자는 또렸히 나만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의 눈동자 안으로 내 모습이 보였다.
점차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은 달아올랐다.
그 눈이 내게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녀석의 눈빛에 내 생애 그 어느 날보다도 심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 긴장감에 난 점차 힘이 들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은 날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꾸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참지 않고 먼저 말을 꺼냈다.
\"난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
그러자 녀석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자는데로 할 수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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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랜 만에 글 올리셨습니다..많이 기다렸는데..혁기의 더러운글을 정화 시키는 님의 글....반갑습니다...깨끗하군요 역시 기대 합니다....글 쓰시기 많이 힘드시지요?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