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정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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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낀 창문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난 그 햇살이 너무 눈부셔 잠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알몸을 보았을 때는 이미 오후 2시 30분이었다.
내 몸에는 어제 녀석과 흘린 4번의 사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난 장난끼가 발동해 내 몸에 남은 엄청난 사정의 흔적을 녀석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녀석을 찾았다.
\"승우야. 이것 봐. 나한테 우리 그거 묻었다. 니 몸에도 묻었냐?\"
하지만 내가 완전히 눈을 떴을 때, 녀석은 방안에 없었다.
순간 불안했다.
나는 얼른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누군가 목욕을 한 흔적만 있을 뿐, 녀석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녀석의 옷과 가방과 신발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가 되고 싶다면서......
다시 그리워하게 되는 건 아닌지......
자꾸만 불안했다.
불안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기 위해서 옷부터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팽개쳐져 있는 내 속옷을 집으려는 순간, 작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쪽지를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그 쪽지를 들어 떨리는 손으로 펴 보았다.
난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곱게 접은 그 쪽지를 한 겹, 한 겹, 폈다.
드디어 마지막 겹을 폈을 때, 그 쪽지에서 승우의 글씨체를 보았다.
-미안하다. 정현아......
난 그 순간 느껴야 했다.
이제는 그 어떤 그리움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승우를 그냥 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걸......
이것이 녀석과 나의 마지막일 것이다.
아무도 없이 오후의 햇빛만 가득한 여관방을 뒤로하면서 더 이상 녀석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슨 힘을 얻었는지 병원에서 바로 퇴원을 해버렸다.
그리고 이젠 내게 닥친 모든 환경에 그냥 힘들어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에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전철이 옥수역을 지나가고 있지만 난 그냥 자리에 앉아 피곤함에 눈을 감아 버렸다. 옥수역은 더 이상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다.
다시 태어나야 했다.
어제의 달콤할거라 믿었던 그 꿈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정신없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내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가만히 누우면 밀려드는 외로움을 느끼곤 하였다.
정말로 나는 하루종일 힘들게 돌아다녔지만 침대에 눕고보면 오늘 하루, 난 정말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자꾸만 깜깜해진 밤에 나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웠다.
너무나 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의 상대가 승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로 혼자되었기에, 외로움을 느낄 뿐이지......
오늘도 난 옥수역을 그냥 지나쳤다.
밤 11시가 넘어 온 몸이 땀에 젖은 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쪽 어깨에 맨 가방이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화려한 도심의 네온 불빛을 뒤로하고 난 어느덧 주택가 골목의 가로등 불빛을 맞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위해 모여든 날벌레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니까.....
어제처럼, 난 또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섰다.
그러자 또 다른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고개를 숙인 체,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익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날 두렵게 했다. 날 다시 벗어나려 했던 그 혼란에 부르고 있다.
그 사람도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고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앞만 본 체, 계속 걸어갔다.
내가 그 사람 옆을 스칠 때, 그 사람은 날 부르려 했지만 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승우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내가 녀석을 다시 보았을 때,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난 더욱 화가 났다.
그 날, 그렇게 날 떠나서가 아니라, 날 다시 그리움에 몰아넣어서가 아니라......
그냥 화가 났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퍽.\"
난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뭐하자는 거냐? 왜 다시 온 거냐고?\"
고개를 다시 들지 못하는 녀석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냥 서로 잊자. 난 벌써 너 잊었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 간다.\"
난 이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이게 아니라는 걸 나도 모르게 속으로 느끼면서 그냥 돌아섰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그냥 돌아섰다.
이런 나의 모습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냥 돌아섰다.
돌아서기 싫었지만 돌아섰다.
하지만 그 때 녀석이 돌아서는 나의 손을 다시 붙잡었다.
그리고 날 당겨서 녀석의 품안에 안았다.
순간 나도 녀석을 안았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녀석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 눈물 맞으며 녀석이 말했다.
\"내가 잊기 싫어서 그래. 내가 힘들어서 그래. 미안하다.\"
승우의 그 말에 난 녀석을 더 세게 안았다.
많이 힘들어했을 녀석의 모습에 가슴 아파 하면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더 이상 이곳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 없었다.
\"승우야, 가자. 다른 곳에 가서 우리 차분하게 얘기하자.\"
난 녀석을 이끌고 근처 공원의 벤치로 갔다.
가로등 불빛만이 비치는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녀석은 또 아무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그런 녀석의 모습에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런 녀석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괜찮으니까 말해.\"
\"......\"
\"말 안 하면 나 그냥 가버린다.\"
\"미안해......\"
녀석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미안했어. 그 날은...... 하지만 난 그게 최선의 방법인 줄 알았어. 널 좋아하지만, 그런 니가 이제는 날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내가 너를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잖아. 난 너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나한테 얘기했었지? 착한 부인과 예쁜 아기와 함께 살고 싶다고...... 그런 너의 소원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데 왜 다시 왔냐?\"
\"근데...... 니가 그 동안 너무 그리웠어. 니 모습 잠시라도 보지 못하면 그리워 미쳐 죽을 것 같았어. 그냥 이것저것 상관하지 않고 너하고 함께 있고만 싶었어.\"
별 하나 없는 깜깜한 하늘 아래에서 녀석은 눈물을 흘렸고, 난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따라 눈물을 흘렸다.
난 고개를 숙인 녀석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도 입술에 묻어있는 녀석의 피를 녀석의 얼굴을 감싼 나의 엄지손가락을 닦아내었다.
\"다 필요없어. 내 소원? 너만 내 옆에 있어주면 돼. 임마 고맙다. 세상에 나 혼자되게 하지 않아서.\"
녀석의 눈물이 내 어깨를 한참동안 촉촉히 적시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이거 운 거 아니다. 침 흘린거지.....\"
난 웃으며 녀석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뒤에서 소리치는 녀석의 손을 놓치지 않은 체 뛰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녀석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느끼며......
그리고 내 뒤에서 날 쫓아 뛰는 사람이 녀석이라는 행복함을 느끼며.....
우리는 근처의 성당 앞에서 멈추었다.
녀석은 힘들었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녀석의 땀을 닦아주었다.
\"정현아, 너 성당 다니냐?\"
\"아니.\"
\"근데 여기는 왜 왔냐?\"
\"그냥, 갑자기 오고 싶었어.\"
\"그럼, 나 따라와. 내가 중학교 때 까지는 성당에 좀 다녔거든.\"
녀석은 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 곳은 성모 마리아상 앞이었다.
\"기도는 할 줄 알지?\"
\"그 정도쯤이야.\"
녀석은 날 바라보며 그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내더니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난 아름답다라는 말을 또 떠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그 황홀한 모습을 녀석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덧 녀석의 기도가 끝났다.
\"너는 기도 안했냐?\"
\"응, 나 처음 해 보는 거라서. 같이 하자.\"
\"그래.\"
녀석은 나의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가만히 안더니 내 두 손을 지그시 모아 주었다.
난 그 자세에서 눈을 감았다.
뒤에서는 녀석의 체온이 느껴졌다.
하느님.
전 님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와 승우가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의 사랑을 비난하겠지요. 님도 저희의 사랑을 죄악이라고 하셨다고요.
하지만 하느님. 지금 내 뒤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체온이 제게 말해줍니다.
저희의 이런 사랑은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거라고요.
저희에게 남들과 다른 사랑을 주신 분도 하느님입니다.
남들이 저희를 보고 죄악이라 비난할 때 저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서 주세요.
그리고 언제까지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저희의 사랑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마지막으로 지금 뒤에 있는 이 녀석.
하느님께서 영원히 보살펴 주시고, 저 또한 이 녀석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저희가 하나됐음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난 그 햇살이 너무 눈부셔 잠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알몸을 보았을 때는 이미 오후 2시 30분이었다.
내 몸에는 어제 녀석과 흘린 4번의 사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난 장난끼가 발동해 내 몸에 남은 엄청난 사정의 흔적을 녀석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녀석을 찾았다.
\"승우야. 이것 봐. 나한테 우리 그거 묻었다. 니 몸에도 묻었냐?\"
하지만 내가 완전히 눈을 떴을 때, 녀석은 방안에 없었다.
순간 불안했다.
나는 얼른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누군가 목욕을 한 흔적만 있을 뿐, 녀석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녀석의 옷과 가방과 신발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가 되고 싶다면서......
다시 그리워하게 되는 건 아닌지......
자꾸만 불안했다.
불안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기 위해서 옷부터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닥에 팽개쳐져 있는 내 속옷을 집으려는 순간, 작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쪽지를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그 쪽지를 들어 떨리는 손으로 펴 보았다.
난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곱게 접은 그 쪽지를 한 겹, 한 겹, 폈다.
드디어 마지막 겹을 폈을 때, 그 쪽지에서 승우의 글씨체를 보았다.
-미안하다. 정현아......
난 그 순간 느껴야 했다.
이제는 그 어떤 그리움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걸......
그리고 승우를 그냥 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걸......
이것이 녀석과 나의 마지막일 것이다.
아무도 없이 오후의 햇빛만 가득한 여관방을 뒤로하면서 더 이상 녀석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슨 힘을 얻었는지 병원에서 바로 퇴원을 해버렸다.
그리고 이젠 내게 닥친 모든 환경에 그냥 힘들어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에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전철이 옥수역을 지나가고 있지만 난 그냥 자리에 앉아 피곤함에 눈을 감아 버렸다. 옥수역은 더 이상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다.
다시 태어나야 했다.
어제의 달콤할거라 믿었던 그 꿈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정신없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내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가만히 누우면 밀려드는 외로움을 느끼곤 하였다.
정말로 나는 하루종일 힘들게 돌아다녔지만 침대에 눕고보면 오늘 하루, 난 정말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자꾸만 깜깜해진 밤에 나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웠다.
너무나 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의 상대가 승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로 혼자되었기에, 외로움을 느낄 뿐이지......
오늘도 난 옥수역을 그냥 지나쳤다.
밤 11시가 넘어 온 몸이 땀에 젖은 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쪽 어깨에 맨 가방이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화려한 도심의 네온 불빛을 뒤로하고 난 어느덧 주택가 골목의 가로등 불빛을 맞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위해 모여든 날벌레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니까.....
어제처럼, 난 또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섰다.
그러자 또 다른 가로등 아래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고개를 숙인 체,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익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날 두렵게 했다. 날 다시 벗어나려 했던 그 혼란에 부르고 있다.
그 사람도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고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앞만 본 체, 계속 걸어갔다.
내가 그 사람 옆을 스칠 때, 그 사람은 날 부르려 했지만 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승우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내가 녀석을 다시 보았을 때,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난 더욱 화가 났다.
그 날, 그렇게 날 떠나서가 아니라, 날 다시 그리움에 몰아넣어서가 아니라......
그냥 화가 났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퍽.\"
난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뭐하자는 거냐? 왜 다시 온 거냐고?\"
고개를 다시 들지 못하는 녀석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냥 서로 잊자. 난 벌써 너 잊었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 간다.\"
난 이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이게 아니라는 걸 나도 모르게 속으로 느끼면서 그냥 돌아섰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그냥 돌아섰다.
이런 나의 모습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냥 돌아섰다.
돌아서기 싫었지만 돌아섰다.
하지만 그 때 녀석이 돌아서는 나의 손을 다시 붙잡었다.
그리고 날 당겨서 녀석의 품안에 안았다.
순간 나도 녀석을 안았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녀석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 눈물 맞으며 녀석이 말했다.
\"내가 잊기 싫어서 그래. 내가 힘들어서 그래. 미안하다.\"
승우의 그 말에 난 녀석을 더 세게 안았다.
많이 힘들어했을 녀석의 모습에 가슴 아파 하면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더 이상 이곳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 없었다.
\"승우야, 가자. 다른 곳에 가서 우리 차분하게 얘기하자.\"
난 녀석을 이끌고 근처 공원의 벤치로 갔다.
가로등 불빛만이 비치는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녀석은 또 아무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그런 녀석의 모습에 짜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런 녀석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괜찮으니까 말해.\"
\"......\"
\"말 안 하면 나 그냥 가버린다.\"
\"미안해......\"
녀석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미안했어. 그 날은...... 하지만 난 그게 최선의 방법인 줄 알았어. 널 좋아하지만, 그런 니가 이제는 날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내가 너를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잖아. 난 너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나한테 얘기했었지? 착한 부인과 예쁜 아기와 함께 살고 싶다고...... 그런 너의 소원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데 왜 다시 왔냐?\"
\"근데...... 니가 그 동안 너무 그리웠어. 니 모습 잠시라도 보지 못하면 그리워 미쳐 죽을 것 같았어. 그냥 이것저것 상관하지 않고 너하고 함께 있고만 싶었어.\"
별 하나 없는 깜깜한 하늘 아래에서 녀석은 눈물을 흘렸고, 난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따라 눈물을 흘렸다.
난 고개를 숙인 녀석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도 입술에 묻어있는 녀석의 피를 녀석의 얼굴을 감싼 나의 엄지손가락을 닦아내었다.
\"다 필요없어. 내 소원? 너만 내 옆에 있어주면 돼. 임마 고맙다. 세상에 나 혼자되게 하지 않아서.\"
녀석의 눈물이 내 어깨를 한참동안 촉촉히 적시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이거 운 거 아니다. 침 흘린거지.....\"
난 웃으며 녀석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뒤에서 소리치는 녀석의 손을 놓치지 않은 체 뛰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녀석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느끼며......
그리고 내 뒤에서 날 쫓아 뛰는 사람이 녀석이라는 행복함을 느끼며.....
우리는 근처의 성당 앞에서 멈추었다.
녀석은 힘들었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녀석의 땀을 닦아주었다.
\"정현아, 너 성당 다니냐?\"
\"아니.\"
\"근데 여기는 왜 왔냐?\"
\"그냥, 갑자기 오고 싶었어.\"
\"그럼, 나 따라와. 내가 중학교 때 까지는 성당에 좀 다녔거든.\"
녀석은 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 곳은 성모 마리아상 앞이었다.
\"기도는 할 줄 알지?\"
\"그 정도쯤이야.\"
녀석은 날 바라보며 그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내더니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난 아름답다라는 말을 또 떠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그 황홀한 모습을 녀석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덧 녀석의 기도가 끝났다.
\"너는 기도 안했냐?\"
\"응, 나 처음 해 보는 거라서. 같이 하자.\"
\"그래.\"
녀석은 나의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가만히 안더니 내 두 손을 지그시 모아 주었다.
난 그 자세에서 눈을 감았다.
뒤에서는 녀석의 체온이 느껴졌다.
하느님.
전 님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와 승우가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의 사랑을 비난하겠지요. 님도 저희의 사랑을 죄악이라고 하셨다고요.
하지만 하느님. 지금 내 뒤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체온이 제게 말해줍니다.
저희의 이런 사랑은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거라고요.
저희에게 남들과 다른 사랑을 주신 분도 하느님입니다.
남들이 저희를 보고 죄악이라 비난할 때 저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서 주세요.
그리고 언제까지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저희의 사랑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마지막으로 지금 뒤에 있는 이 녀석.
하느님께서 영원히 보살펴 주시고, 저 또한 이 녀석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저희가 하나됐음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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