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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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컴퓨터를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관심있던 분야도 아니고. 컴퓨터 게임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였다.

그냥.

눈앞에 씁쓸한 빛깔을 내며 아까 넣은 설탕이 채 녹지 않았을 - 아마도 - 커피잔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컴퓨터나.. 배워볼까..?"

".. 안 어울려."

6년 친구라는 녀석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고작 무심한 목소리로 '안 어울려' 라니..

"망할놈..."

"갑자기 왜?"

"..."

할말 없음..

"뭐, 배우기야 하면 할수는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배울지, 그게 문제지."

4번.

너무 많다.

손바닥보다 작은 커피잔에 티스픈으로 녀석이 설탕을 부지런히 나른 횟수.

'달텐데..'

"그럼 학원 다니려고?"

학원.. 학원이라..

과연..

".. 어디 아는데 없어?"

----------

적당히 강의 시간 조정해서 원하는 시간별 타임으로 수업 들을 수 있는 학원 하나를 등록했다.

등록금 만으로도 허덕이시는 부모님께 죄스러워

지난번 알바해서 모아둔 돈으로 14개월짜리 코스를 들어가기로 했다.

"주말 빼고 나오시면 됩니다."

냉정. 싸늘.

필요한 말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요즘 학원 강사들은 원래 이렇게 얼음같은건가.. 아니면 이 사람이 유별난건가.

푹신한 상담실 쇼파에 걸터 앉아 마주 앉은 내 담당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감상했다.

그래.. 확실히 감상이다.

섬세한 턱선과 얼굴형. 매력적인 이목구비.. 마른듯 하면서 균형잡힌 체격..

모델을 하지 그랬느냐는 말, 빈말 말고도 여러번 들었을 법한 외모와 몸매..

기관지가 약한 나에게는 그에게서 뭍어나는 옅은 담배향마저 거슬려야 하겠지만...

필립?

.. 필립이 원래 이렇게 색시한 향이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았다.

모든게 마음에 든다.

저 강사가 가끔 멍하니 있는 날 노려보는 것만 빼면 말이다....

------

"보충입니다."

"예?"

즐거운 마음으로 교재를 집어들고 일어서려는 나를..

석화시키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

"보충.. 이라니..?"

단어의 뜻은 알고있다.

그래.. 그랬다. 고등학교때부터 진절머리나게 들었던 '보충있다' 라는

- 그래.. 난 야자 새대다.. -

담임의 협박.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오늘도 튀면 부모님과 상담이다. 알았냐!!' 라는 멘트.)

그 말을.. 대학까지 들어와서.. 그것도 학원에서 들을줄은 정말 몰랐다.

"지난번 강좌 빠지셨잖습니까. 유. 성. 민 씨."

안 그래도 싸늘한 목소리에 강세까지 넣어가며 내 이름을 부른다.

..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고 3때 담임 이후로.

누가 내이름 부르는게 무섭다고 느낀건 정말 처음이다.

".. 약속 있는데.."

"다음 타임까지 비워뒀습니다. 제 2 강의실로 오시죠."

... 많아야 20대 중반. 나랑 나이차이도 별도 안나는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꼬여서 나를 괴롭히는 건지..

저 젊은 강사는 수업시간에도 그렇게 인상 구겨가며 야단치더니

안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인 보충에 목숨을 거는 걸까..

------

-끼익.

잿빛 니트티에 남색 면바지.

적당한 길이의 결좋아 좋이는 검은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올리며 내가 들어선 문을 응시한다.

"한.. 시간이면 됩니까?"

".."

'뭐?' 라고 묻는 듣이 살짝 턱을 비틀며 나를 바라본다.

"보충.. 한 시간안에 끝낼수 있겠죠?"

"하는거 봐서 틀리겠죠. 일단 앉으시죠."

"..."

망할.. 잘못 걸렸다.. 지난번 땡땡이친 타격이 그렇게 컸던가..

욕을 중얼거리며 대충 아무 컴퓨터에 앉아 전원을 킨다.

"117페이지"

"..."

-팔락. 팔락.

별 생각 없이 책을 넘기는 사이 부팅이 끝난 컴퓨터가 윈도우 화면으로 나를 맞이한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계 특유의 소리에 머리가 아프다.

"..."

".."

보충하라고 불렀으면 말을 하는게 보통 아닐까.

그는 칠판 앞에 놓인 책상에 다리를 편안히 꼬고 앉아

내가 하는 모양을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기..?"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나보지?"

"?"

잘생긴 얼굴로 낮게 (비)웃으며 긴 손가락 사이로 담배를 하나 끼워든다.

- ( ) 안의 단어는 성민한테만 느껴지는 감각을 표현한 겁니다. by 아카상 -

역시 필립.. 내 후각은 내가 느끼기에도 천재적인..

아니.. 그보다 강의실에선 금연인데..

"아니면 단순히 나랑 있는게 싫은건가?"

"아.. 아뇨. 특별히 그런건.."

왜 쫄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싫어."

.. 뭐하자는 건지..

"..."

잠시 간격을 두고 내 얼굴을 응시하며 그가 말을 이었다.

"너랑 둘만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아."

"쿨럭..!!"

갑자기 기침이 심하게 올라온다.

담배연기가 컴퓨터에 안좋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컴퓨터 고장나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

"쿨럭.. 쿨럭.. 흠.. 흠.."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손짓했다.

"흠.. 아. 담배.. 꺼주세요. 기관지가 많이 약해서."

"..."

잠시 가슴을 잡고 괴로워하는 나를 응시하다 탁자에 아직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눌러버린다.

원장이 보면 당신 해고다..


기관지쪽 문제와는 별도로 담배연기.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피우는 담배는 심한 가슴의 통증만을 유발할 뿐.

결코 불쾌한 냄새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묘한..

"후우.."

".."

낮게. 한번. 짧게 내쉬는 그의 한숨.

그리곤 천천히 아직도 살짝 이마살을 찌푸리고 있는 - 그리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

내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하군.. 괜찮아?"

"아. 예.."

굉장하군. 이 얼음왕자 - 학원 수강생 여자애들이 붙인 별명 - 한테 인간적인 말을 듣다니..

"..."

"...?"

서늘한 감촉이 뺨에 닿는다.

담배향이 희미하게 뭍어나는.. 그의 손가락이 조용히 내 뺨에 와 닿는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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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상입니다.

그럼.. 2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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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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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로맨스 소설을 읽는듯한 착각이드네요...멋진글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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