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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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이 감싼 손목 부위가 울고싶을 만큼 차갑다.
차갑기로 따지자면 훨씬 더 오랬동안 밖에 있었던 내가 더 체온이 낮아야 할텐데.
손목 부위의 피부가 바짝바짝 얼어가며 세포가 파열음을 내지른다.
만약 지금 내가 힘을 주어 뿌리친다면.
그렇게 한다면 지금 이 감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내 손을 이끌고 학원의 개인별 상담실까지 올라올 때까지.
나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니..
뿌리치지 않았다...
미쳐버릴 것 같은 필립..
.. 앞으로 친구자식이 필립 피우는 꼬라지 보면 한대 갈겨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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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1인용 쇼파가 마주보고 있는 작은 공간.
"미치겠군.."
"..."
미치겠다라..
뭐가?
나는 학원을 그만 뒀고, 당신은 계속 일한다.
이대로 돌아가도 언제나 그랬듯이 멸망할 기미도 안보이는 이 세상은 계속 돌아갈 것이다.
부모님은 등록금때문에 싸우실거고,
나는 아르바이트때문에 강의 시간을 조절해가며 눈에 핏발을 새울 거다.
친구는 굶어 죽어도 필립을 피울거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내 앞에서 언제나 무표정으로 모두에게 일관하는 이 잘난 남자가
미쳐버리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 미치겠는건 나라구..
"너 .. 그럼 왜 여기 온거야..?"
"...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야..."
내가 묻고 싶다고..
그의 길고 섬세하다는 인상을 주는 손가락이 조용히 탁자위에 놓인
별 의미없는 종이를 집어든다.
"특별히.. 당신 만나러 온것도 아니고.. 학원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그냥...?"
정갈한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간다.
"그냥.. 왔어요."
"그게 설명이 된다고 생각해?"
"설명할 생각 없어요."
나.. 원래 이런 말투를 썼던가..
"... 제길.. "
"..."
답답하다.
뭘 기다리고 있는거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담배같은거 왜 피우는지 모르겠어.
-니가 안피우니까 모르는 거 뿐이야.
-폐암걸려 죽고 싶냐?
-.. 그러니까말야.. 여기가 꽉 막힌것 같을때. 그걸 연기랑 같이 버리는 거야.
-그게 뭐야?
고등학교때. 반에서 좀 논다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과 함께 종종 수업을 재끼고 - 담임한테 걸리면 죽음이지만.. - 녹슬어 열리지도 않는
옥상문을 비틀어 열고는 녀석은 담배를.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수면을 취했다.
한번은 그 담배연기가 자꾸 바람에 실려와서 거슬리는 탓에 왜 담배를 피우냐고
질문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녀석은 정말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내게 말했다.
- 연기가 나를 어디론가 보내줄 것 같아서말야..
.. 알리가 없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지금 이순간에는
그가 피웠던, '나를 어디론가 보내줄 만한 담배 연기'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 니가 수강 취소한 거 확인하고 내 기분이 어땟을 것 같아..?"
담배라도 피우듯 손에 집어든 종이를 말아 손가락사이로 끼워 돌리던 그가
한참만에 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 말하려고 했어. 그날.. 그날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제길.."
"......"
"네가.. 그런 표정을 하고.. 더럽다는 듯이.. 그렇게 날 바라보는 너를 보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게 아니잖아요!"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부정할 것 없어.."
뭘?
알고있다고?
알고 있어?
"뭘 안다는 거야!!"
"...?"
나도 모르게 쇼파에서 벌떡 일어서 그의 옷깃을 잡아 쥐었다.
그의 호흡이 이마에 느껴진다.
달콤하지만..
아주..
서늘하다.
"알아? 뭘? 더럽다고 생각한다고? 차라리 그렇게라도 생각하면 좋겠어!"
"뭐..?"
"하루에도 몇번씩 당신 생각만 나. 친구자식이 피우는 담배향에서조차 당신을 찾는다고!
더러워? 넌 기분 더러울 때 사정해? 좋았어.. 미치도록 좋았단 말야!!"
"성민아.."
"남자가.. 아니.. 그런걸 떠나서. 당신이 나한테 그런게.. 그 감각이 오싹할 정도로 몸에
새겨졌어. 별것도 아니라고 당신을 말할지 모르지만 난 . 나는..."
"...."
낮은 온도의 감촉이 허리에 둘러져 온다.
"나는.. 흑... 으흑흑...."
".. 울지마.."
나지막히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묘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 흑..... 으흑.."
".. 내가 미쳤다는 건.. 알고 있어.. 니가.. 정상이라는 것도 .. 알고 있었어. 하지만.."
"....."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조심스래 나를 안아든 그의 가슴에서. 목덜미에서
매력적인 필립의 향기가 베어 나온다.
".. 하지만.. 놓칠수 없었어."
싸아한 감각이 머리를 휘젖는다.
하지만.
그전에 느꼈던 비참한 감각과는 달랐다.
아마.. 아마도..
고등학교 옥상에서 녀석이 느꼈던 감각과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 .. 않으면 되잖아요."
"?"
"놓치지 않으면.. 되잖아... ... 이런.. 제길.."
".........."
그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
"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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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야비한 부분에서 끊고 싶지는 않지만
... 다음편 가능하면 빨리 올려야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상 써주시는 분들도 정말 고맙습니다.
힘이 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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