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부 그녀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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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녀석이 3주 예정으로 가평쪽의 어느 수련원으로 합숙훈련을 들어간 뒤,
이나라 고3이면 대부분 그렇듯이 나는 도서관-집-도서관-집.
그렇게 쳇바퀴 돌 듯 방학을 보내야만 했다.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아우야! 우리 여행가자!\"

오랜만에 만난 녀석이 뚱딴지같은 제안을 했다.

\"무슨 소리야? 방학도 다 끝나가는데...
또 지금이 어느때라고 놀러갈 궁리냐?
..............
근데 어디로 갈건데?\"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답답하던 가슴 한 켠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녀석 싱겁긴.
내가 기가 막힌데를 알고 있거든! 어때?\"

\"어디?\"

난 성급한 설레임을 느끼며 물었다.

\"섬\"

\"섬? 우리 말고 또 누구랑 같이 갈건데?\"

\"오붓하게 둘만 가지 왜 혹을 붙이고 가냐?\"

\"시커먼 (녀석은 합숙훈련으로 한층 짙게 그을려 있었다)
산적같은 너하고 둘이서만?
언제?\"

\"모레 어떠냐? 1박 2일 정도로.\"

\"야, 내일 당장 떠나자. 모레까지 어떻게 참냐?\"

\"나야 괜찮지! 근데 너 갈 수 있겠냐?\"

\"어떻게든 되겠지!\"


난 그날 저녁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1시간이 넘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내 집요한 설득에,
준석이와 둘만 간다는 말에,
(녀석은 앞에서 말한, 내 가방을 들어다 준 일 이후로
우리 부모님의 신임을 상당히 얻고 있었다.)
또 방학 시작 후부터 열심히 했던 나의 노력의 가상함이 인정을 받아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바로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인천에서 덕적도로 가는 배는 여름 휴가객들로 만원이었다.
사람이 많은게 좋지는 않았지만,
그 북적거림과 어수선함도 휴가의 한 맛이긴 했다.
여행을 한다는 기분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니까...

배에서 느끼는 바닷바람....
가슴까지 후련해져왔다.


덕적도에 도착해 배에서 내린 뒤 5분 정도 걸었을까?
녀석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선 한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녀석은 아저씨 한 분과 같이 나왔다.
녀석은 말없이 내 손을 끌고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그 아저씨의 것인 듯한 고기잡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20여분이 지난 뒤. 배는 또 다른 작은 섬에 도착했다.

그 아저씨는 우리를 내려놓고 재미있게 놀라고 말한 뒤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갔다.

그 아저씨는 녀석이 지난해 놀러왔다가 알게된 분인데
미리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해 놓았다고 배에서 내린 뒤에야 말했다.

\"너! 날 납치할려고 미리부터 다 계획한거였구나!\"

\"들켜버렸네! 하하--\"


적당한 자리를 찾는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은 섬 같았는데 섬의 크기에 비해 넓은 백사장과
그 뒤로 펼쳐진 아담한 소나무 숲.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런데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인 듯,
두어개의 텐트만 보일 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때? 죽이지 않냐?\"

소나무 숲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치며 녀석이 물었다.

\"정말 죽인다. 어떻게 이런곳을 다 찾아냈냐?\"

\"작년에 식구들이랑 같이 왔었는데,
꼭 다시 와 보고 싶었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이구! 그래?
미안하게 됐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같이 오게 돼서.
아니지, 아직 올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잖아?\"

녀석은 내 말에 그냥 씩 웃기만 했다.


텐트가 다 세워지고, 짐 정리가 대충 끝난 뒤,
녀석과 나는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온 몸을 감싸는 시원한 바닷물.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었다.

그 상쾌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이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등에 녀석의 단단한 가슴과 몸이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의 물건이
내 엉덩이에 와 닿아있다고 느끼는 순간,
녀석이 나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난 바닷물을 두 번이나 들이킨 후에야
겨우 물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너, 각오해.\"

난 녀석의 머리를 위에서 누르며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녀석은 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내 다리를 붙잡고는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다시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녀석과 난 한참이나 수중전을 치뤘다.
덕분에 난 바닷물이 짜다는, 확인하지 않아도 될 사실을
몇 번씩이나 확인을 해야만했다.

지친 나는 백기를 들고 기어나오다시피 물밖으로 나와
모래사장에 벌렁 누워버렸다.

녀석도 내 옆으로 와서 누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 바닷물을 머금은,
보기좋게 그을린 녀석의 몸과 얼굴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빛나고 있었다.

\"여기 너무 좋은데, 우리 여기서 그냥 살까?
돌아가지말고......\"

파란 하늘로 시선을 옮기며 내가 물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런 곳에서 산다는 거
그거 꿈같은 일 아니냐?\"

(녀석의 목소리 톤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야 드는건....)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여자도 없이, 산적같은 너하고 어떻게 둘이만 살 수 있겠냐?\"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벌떡 일어나 텐트쪽으로 달렸다.

\"야! 너 거기 안서?\"

뒤에서 녀석이 소리지르며 달려왔다.


그날 저녁 난 그렇게 어설픈 밥과, 어설픈 찌개를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설픈 밥과, 어설픈 찌개를
그처럼 맛있게 먹은 것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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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참으로 깔끔한 글을 접하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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