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부 그녀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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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과 나의 '여름여행'이 그렇게 지나간 뒤,
방학도 끝나고
2학기는 정말이지 빠르게 흘러갔다.
녀석은 추계 전국대회 참가다 뭐다 해서 바빴고,
나도 나름대로 정신이 없는 듯 그 가을을 보냈다.
수능도 끝난 후.
넘치는 여유로움으로 시간을 보내던
12월의 첫 주말. (그 때는 매일 매일이 주말같긴 했지만..)
녀석과 나는 시내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종로의 한 호프에 앉아 있었다.
\"아우야! 오늘은 왜 그렇게 못 마시냐?\"
1000cc 한잔을 겨우 마시고, 두번째 잔을 반쯤 비운채
생각에 잠겨 있던 날 보고 녀석이 말했다.
\"야! 지난 번에 마셨던 술 냄새가 아직 나는것 같다.\"
\"짜식! 그게 언제라고...
좀 하는 줄 알았더니 이거 영 아니잖아!\"
\"............\"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녀석과 난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술을 마셨었다.
그래 봤자 내가 마신거라고는 소주 반 병에 맥주 3병 정도?
사실 난 술을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날 바닥을 본 건 녀석이었다.
맥주부터 시작해서 소주까지....
같이 술을 마신게 처음은 아니었고,
녀석과 난 친구 생일, 100일이다 뭐다 해서,
55일,..,33일,...등등을 핑계삼아 마시긴 했지만
그 때는 그냥 가볍게 맥주 한 두 캔으로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밑 빠진 독' 이란 말이 생각날 정도로
녀석이 술을 들이키는 걸 봐야만 했다.
'마신다'기 보다는 정말 '들이킨다'는 표현이 맞을정도였다.
그 날.
녀석은 평소에 자주하던 장난도 하지 않았고,
나를 '아우'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 날.
녀석은 취해서인지, (아니면 취기를 빌려서인지)
참 많은 말들을 했었다.
녀석과 나는 전처럼 변함없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녀석의 이야기는
뭔가 빠뜨린 듯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야기 도중 간간이 끊어지던 대화.
취해가면서도,
발음은 조금씩 흐트러져가면서도,
내 얼굴을 바라보며
오히려 맑아져가던 녀석의 눈빛.
그 날.
녀석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었다.
잔뜩 취한 녀석을,
젊은 사람들 기분을 이해한다는 어느 맘 좋은 아저씨와 둘이서
끙끙대며 집으로 데려다주게 했고,
많은 말들을 하면서도,
하고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내가 그냥 바라만 보게 만들었었다.
\"잔 앞에다 두고 뭐하냐?\"
넋을 놓고 앉아있던 내게 녀석이 말했다.
\"응? 아..아무것도 아냐!\"
\"야! 지난 번 처럼 힘들게 하지 않을테니까
안심하고 마셔라!!\"
\"짜식! 내가 힘들었다는건 아냐?\"
\"물론이지!
사실, 그날 난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너 그날 왜 그렇게 많이 마셨냐?\"
\"기분이 좋아서!\"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니가 시험이 끝나서!\"
\"야! 시험은 나 혼자봤냐?\"
\"난 뭐 별로 신경도 안썼잖아!\"
(녀석은 이미 럭비 특기생으로 거의 진로가 결정되어 있었다)
\"내가 시험이 끝났는데 왜 니가 기분이 좋냐?\"
\"그냥, 아우하고 이렇게 같이 있는시간이 많아졌잖냐!\"
녀석은 말을 하면서 씩 웃어보였다.
\"야,야! 누가 보고 들으면
우리가 사귀는 줄 알겠다.\"
\"아우야!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한 번 사귀어 볼까?\"
\"................\"
녀석과 난 두번째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녀석은 말이 없었다.
길거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나도 그런 녀석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진호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집이 가까와졌을 때. (녀석은 그 전에도 자주 우리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녀석이 입을 열었다.
녀석과 둘이 앉아있는 아파트 근처 간이공원에는
초겨울 밤의 싸늘한 밤공기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
\"..................\"
\"저기......
진호야.......!!\"
\".................\"
\"..................\"
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진호야.........!\"
\"준석아..........\"
나는 바닥에 시선을 둔채 녀석을 불렀다.
\"...............\"
\"힘들면........말 안해도 돼!\"
\".............\"
나는 고개를 들고 녀석을 보았다.
녀석도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녀석의 눈빛.
나는 조용히 녀석의 어깨를 안았다.
녀석은 순간 움츠리면서 몸을 뒤로 빼는듯 했다.
그런 녀석을 나는 더욱 힘주어 안았다.
녀석에게서 가벼운 떨림이 전해져왔다.
\"진호, 너.........\"
\"그냥 이대로 있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녀석은 내 팔에 안긴 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알고 있었냐?\"
한참만에 팔을 푼 내게
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리며 녀석이 물었다.
\"확실....하지는 않아!
그냥 느낌일 뿐이지...!
\"............\"
\"좀 더 일찍 말 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오늘에야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했냐?
그 동안......힘들었을텐데......\"
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이제 수능도 끝났잖냐!\"
\"..............\"
나는 녀석의 그 말에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두 손으로 녀석의 고개를 들어
나를 보게 했다.
그리고는
입을 맞추었다.
녀석의 입술에...
녀석이 아닌 내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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