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you - 너를 꿈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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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you -1-
"선영아, 재훈이 새끼 어딨냐?"
"그 새끼를 왜 나한테 찾아?"
"야, 시끄러워. 엄마가 빨리 찾아오래!"
"이모가?"
"그러니까 빨리 불어봐. 어딨어?"
"아까 시장 통에서 삐끼새끼들 모여서 깝치고 있던데 거기가봐."
"고맙다! 내가 오늘 손님 좀 물어다 주라고 할께."
"미친놈..."
습기 찬 좁은 골목.. 시멘트벽에는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간밤에 비가 와, 가뜩이나 우중충한 동네는 한층 우울했다. 거미줄 같은 이 골목들은 밤이 되면 곳곳에 분홍빛 조명으로 단장하고 바깥 남자들을 기다리는 환락가로 변한다.
덕구는 그 골목을 바쁘게 헤쳐나갔다. 처음 오는 이들은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두어 시간을 헤맬 그 골목이 덕구에게는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였고 철이 든 이후론 일터였다. 그런 그이기에 이 골목은 그에게 손금보듯 쉬웠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큰길이 시작되고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삼거리 신호등 앞에 불량스러워보이는 남자들이 대여섯 자리를 잡고 히히덕거리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며 수군대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덕구는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가운데 앉아있는 놈을 불러 세웠다.
그는 모며 있던 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렇다해도 스물 대여섯 정도밖엔 되어 보이지 않았다.
"재훈아! 엄마가 오랜다."
"이모가? 왜?"
"와봐, 이 새끼야."
재훈은 꼬나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슬렁거리며 덕구를 따라 덕구가 나온 그 골목으로 기어 들어갔다.
조금 왜소한 덕구에 비하면 재훈인 꽤나 건장했다. 큰 키에 몸도 다부졌다. 얼굴도 예쁘장한 덕구와는 달리 남자다웠다. 어느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재훈을 한번 뒤돌아보곤 덕구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하늘조차 잘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골목을 또 한참 들어가고 나서야 나타난 꽤나 큰 업소 앞에 둘의 걸음이 멈췄다.
"들어가봐."
"왜 부르신 건데? 너도 모르냐?"
"엄마가 그런거 나한테 말씀하고 부르실 분이냐?"
"물어본 내가 병신이다. 기다리고 있어..."
문을 열고 재훈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덕구는 재훈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덕구와 재훈은 같이 자란 친구이다. 사실 재훈이 이모라고 부르는 덕구의 어머니, 진숙은
이 바닥에서는 꽤나 세가 큰 포주였다. 재훈의 어머니도 그녀가 대리고 있던 윤락녀였다.
덕구를 낳고 얼마되지 않았던 어느 겨울, 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불던 날 새벽 한 여인이 핏덩이를 안고 덕구네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반 거지꼴인 여인과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곤 진숙은 차마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동갑내기였던 덕구와 재훈은 형제처럼 같이 자랐다. 덕구와 재훈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위암으로 재훈모가 죽고 나선 진숙이 재훈을 키웠다.
그렇게 십여년이 흘렀다.
"무슨 일이에요? 이모?"
"..."
"이모?"
"야 이 새끼야!"
"이모 화났수?"
"너 이 개새끼! 요즘 뭐하고 싸돌아 댕겨?!"
"..."
"내가 너한테 괜히 27호 맏겼는 줄 알아?"
"그거 때문 이였어요?"
"이 새끼가? 그것 때문? 너 그게 어떤 가겐지 알아?"
"그럼 내가 그걸 모르겠소?"
"너 아는 새끼가 일을 그딴 식으로 해? 그리고 너 요즘 쌩양아치들이랑 어울린다며?"
"..."
"이 달만 지켜볼 꺼야. 요즘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나 가우."
"저 자식이! 야 이 새끼야! 내 말 다 안 끝났어!"
재훈은 뒤를 돌아보며 한번 씩 웃고는 가게 밖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갔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재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숙의 입에서 낮은 한 숨이 새어나왔다. 진숙은 몸을 돌려 낡은 화장대의 서랍을 열어 그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통장하나를 꺼내어 찬찬히 살펴보고는 다시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었다.
"벙신 같은 놈, 니 놈속은 내가 제일 잘안다."
진숙은 부스스한 머리를 한번 매만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장사가 좀 되려나?"
가게문이 열리자 가게 앞에 앉아있던 덕구가 급하게 일어났다.
"엄마가 뭐래?"
"맨날 하는 소리지 뭐, 한 두 번이냐? 나간다."
"어디가?"
"장사해야지!"
장사를 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재훈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덕구가 올려본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덕구가 고개를 내렸을 때는 이미 재훈은 멀리 뒤통수를 보이며 골목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는 재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덕구는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젓고는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
담배연기가 뿌옇게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골목은 점점 분주해지고 있었다. 분홍빛 불을 밝힌 골목골목에 가득한 유리방마다 갖가지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인들이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남자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두움 골목에 벽에 기대어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던 재훈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골목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왔다.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한번 쓰윽 둘러보는 재훈의 시선이 순간 한 곳에 멈췄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것 같아 보이는 어수룩한 놈 하나가 골목 초입에서부터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지나가는 취객들이나 여자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모습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재훈은 하루에도 몇 번 씩 길을 잘못 들어 당황하는 저런 종의 샌님들을 만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재훈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골목에 울려 퍼졌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재훈은 뒤를 돌아봤다. 영란이였다. 잘록한 허리에 탄탄한 가슴과 엉덩이에 이 바닥에서도 알아주는 얼굴을 한 그녀는 재훈에게로 뛰어와 그의 팔에 매달려 애교가 넘치는 눈웃음을 흘리며 그를 잡아끌었다.
"뭐야?"
"개시한지 한참 됐는데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아 다녔잖아."
"니가 날 왜 찾아..."
"하여간 쌀쌀 맞긴..."
"가서 장사나 해, 이 년아"
팔을 휘감은 영란을 때어내며 재훈은 뒤를 돌아 방금 그 샌님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새 그가 있던 자리에는 술 취한 중년의 남자와 실랑이를 하는 여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재훈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훈은 영란을 따라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헉... 헉.. 헉..."
"오빠... 하앗... 오.. 빠아..."
"아악! 하아... 하아..."
좁아터진 방, 어두운 그 속에 한 쌍의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체로 엉겨있었다. 가뿐 숨소리가 잦아들고 방안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방 한구석에 좁은 창 밖으로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이 어두운 방안에 원색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잠시의 정적을 깨고 남자가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벌써 가게?"
"..."
"오빠아~."
"손님 받아... 아직 안 늦었어."
"재훈오빠!"
"삼촌이라고 불러."
"오빠... 사랑해.. 알잖아? 나 오빠 없으면..."
"몸 파는 년이 사랑은.,.. 얼어죽을..."
재훈은 좁은 방의 문을 열고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영란은 그런 재훈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방문이 잠기자마자, 두 눈 가득히 고인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영란의 얼굴을 덮고있던 화장만 씻겨지고 있었다.
"몸 파는 년도 사랑할 수 있어... 개새끼..."
영란은 화장대에 티슈를 몇 장 뽑아 눈가를 닦고는 어두운 방안에 불을 밝혀 번져버린 화장을 다시 매만졌다. 그랬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재훈의 말대로 손님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영란이 지고있는 업보였다.
"삼촌!"
가게에 붙어있는 작은 방에세 벽에 기대 담배를 피고있던 재훈을 누군가 불렀다.
윤락녀들은 보통 자신의 뒤를 봐주는 남자들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진숙이 재훈에게 맡긴 가게의 종업원들도 재훈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뭐야?"
선영이였다. 짜증 섞인 재훈의 대답에 입이 댓발이나 나온 선영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웬 샌님이 주인 좀 보자는 데?"
"샌님?"
"그래.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던데? 크크"
"미친년, 남자도 영계가 좋은가보지?"
재훈은 재떨이에 대충 담배를 비벼 끄고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선영을 따라 간 곳에는 웬 젊은 남자하나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저기, 쟤야."
순간 재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아까 골목에서 본 그 어수룩한 남자였다. 그는 역시 이곳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길 잃고 잘못 굴러 들어온 줄 알았더니 무슨 일로 여기가지 와 자신을 찾는 지 재훈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주인이세요?"
"뭐냐고 묻잖아..."
가까이에서 본 그는 정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놈이었어. 원래 하얀피부가 겁에 질렸는지 새파랗게 질려 백지장 같았다. 조금씩 떨리는 입술까지도... 한 대 치면 고꾸라질 것 같은 그런 숙맥이었다.
"여기에... 지연이라는 아이 있지요?"
"...."
"지연이요. 김지연, 얼마 전에 여기로 들어왔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재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는 지연이라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재훈은 더욱 궁금해졌다. 이런 숙맥이 여기서 여자를 찾는 이유가 뭘까? 재훈의 앞에서 떨고있던 그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데려갈게요."
"뭐?"
"돈... 가져 왔어요."
"돈"
재훈은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자신이 웃어버리면 앞에 선 이 남자는 울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돈까지 준비해 온 걸 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샌님은 아닌것 같았다.
"얼마나 가져왔어?"
"얼마나 있어야 하죠?"
"지연이라고 했지... 걔 데려올 때 삼천 줬으니까, 삼천 오백만 내놔."
"예? 오백씩이나 더 붙인다구요?"
"데려가기 싫어?"
사실 데려올 때는 2이천 오백을 주고 데려온 아이였다. 천이나 더 붙여 부르자 남자의 얼굴에는 절망적인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삼천이에요."
"?"
남자는 가방에서 신문지에 쌓인 두둑한 돈 뭉치를 꺼내어 재훈의 앞에 내밀었다. 재훈이 돈 뭉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시선을 남자에게로 돌리자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백은 내일까지 드릴게요. 내일 돈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대신 지연이 좀 만나게 해주세요."
"..."
"부탁.. 합니다..."
끝내 남자의 눈에 이슬이 맺혀버렸다. 그 순간 재훈은 주변에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처럼 그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재훈의 가슴이 아팠다... 오래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날 이후 처음 느끼는 감정에 재훈은 혼란스러웠다.
'뭐야.. 이 놈은 뭐야.. 대체 뭐냐구?'
- 1편 end -
"선영아, 재훈이 새끼 어딨냐?"
"그 새끼를 왜 나한테 찾아?"
"야, 시끄러워. 엄마가 빨리 찾아오래!"
"이모가?"
"그러니까 빨리 불어봐. 어딨어?"
"아까 시장 통에서 삐끼새끼들 모여서 깝치고 있던데 거기가봐."
"고맙다! 내가 오늘 손님 좀 물어다 주라고 할께."
"미친놈..."
습기 찬 좁은 골목.. 시멘트벽에는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간밤에 비가 와, 가뜩이나 우중충한 동네는 한층 우울했다. 거미줄 같은 이 골목들은 밤이 되면 곳곳에 분홍빛 조명으로 단장하고 바깥 남자들을 기다리는 환락가로 변한다.
덕구는 그 골목을 바쁘게 헤쳐나갔다. 처음 오는 이들은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두어 시간을 헤맬 그 골목이 덕구에게는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였고 철이 든 이후론 일터였다. 그런 그이기에 이 골목은 그에게 손금보듯 쉬웠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큰길이 시작되고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삼거리 신호등 앞에 불량스러워보이는 남자들이 대여섯 자리를 잡고 히히덕거리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며 수군대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덕구는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가운데 앉아있는 놈을 불러 세웠다.
그는 모며 있던 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렇다해도 스물 대여섯 정도밖엔 되어 보이지 않았다.
"재훈아! 엄마가 오랜다."
"이모가? 왜?"
"와봐, 이 새끼야."
재훈은 꼬나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슬렁거리며 덕구를 따라 덕구가 나온 그 골목으로 기어 들어갔다.
조금 왜소한 덕구에 비하면 재훈인 꽤나 건장했다. 큰 키에 몸도 다부졌다. 얼굴도 예쁘장한 덕구와는 달리 남자다웠다. 어느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재훈을 한번 뒤돌아보곤 덕구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아 하늘조차 잘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골목을 또 한참 들어가고 나서야 나타난 꽤나 큰 업소 앞에 둘의 걸음이 멈췄다.
"들어가봐."
"왜 부르신 건데? 너도 모르냐?"
"엄마가 그런거 나한테 말씀하고 부르실 분이냐?"
"물어본 내가 병신이다. 기다리고 있어..."
문을 열고 재훈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덕구는 재훈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덕구와 재훈은 같이 자란 친구이다. 사실 재훈이 이모라고 부르는 덕구의 어머니, 진숙은
이 바닥에서는 꽤나 세가 큰 포주였다. 재훈의 어머니도 그녀가 대리고 있던 윤락녀였다.
덕구를 낳고 얼마되지 않았던 어느 겨울, 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불던 날 새벽 한 여인이 핏덩이를 안고 덕구네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반 거지꼴인 여인과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곤 진숙은 차마 쫓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동갑내기였던 덕구와 재훈은 형제처럼 같이 자랐다. 덕구와 재훈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위암으로 재훈모가 죽고 나선 진숙이 재훈을 키웠다.
그렇게 십여년이 흘렀다.
"무슨 일이에요? 이모?"
"..."
"이모?"
"야 이 새끼야!"
"이모 화났수?"
"너 이 개새끼! 요즘 뭐하고 싸돌아 댕겨?!"
"..."
"내가 너한테 괜히 27호 맏겼는 줄 알아?"
"그거 때문 이였어요?"
"이 새끼가? 그것 때문? 너 그게 어떤 가겐지 알아?"
"그럼 내가 그걸 모르겠소?"
"너 아는 새끼가 일을 그딴 식으로 해? 그리고 너 요즘 쌩양아치들이랑 어울린다며?"
"..."
"이 달만 지켜볼 꺼야. 요즘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나 가우."
"저 자식이! 야 이 새끼야! 내 말 다 안 끝났어!"
재훈은 뒤를 돌아보며 한번 씩 웃고는 가게 밖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갔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재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숙의 입에서 낮은 한 숨이 새어나왔다. 진숙은 몸을 돌려 낡은 화장대의 서랍을 열어 그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통장하나를 꺼내어 찬찬히 살펴보고는 다시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었다.
"벙신 같은 놈, 니 놈속은 내가 제일 잘안다."
진숙은 부스스한 머리를 한번 매만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장사가 좀 되려나?"
가게문이 열리자 가게 앞에 앉아있던 덕구가 급하게 일어났다.
"엄마가 뭐래?"
"맨날 하는 소리지 뭐, 한 두 번이냐? 나간다."
"어디가?"
"장사해야지!"
장사를 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재훈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덕구가 올려본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덕구가 고개를 내렸을 때는 이미 재훈은 멀리 뒤통수를 보이며 골목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는 재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덕구는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젓고는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
담배연기가 뿌옇게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골목은 점점 분주해지고 있었다. 분홍빛 불을 밝힌 골목골목에 가득한 유리방마다 갖가지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인들이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남자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두움 골목에 벽에 기대어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던 재훈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골목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왔다.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한번 쓰윽 둘러보는 재훈의 시선이 순간 한 곳에 멈췄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것 같아 보이는 어수룩한 놈 하나가 골목 초입에서부터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지나가는 취객들이나 여자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모습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재훈은 하루에도 몇 번 씩 길을 잘못 들어 당황하는 저런 종의 샌님들을 만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재훈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골목에 울려 퍼졌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재훈은 뒤를 돌아봤다. 영란이였다. 잘록한 허리에 탄탄한 가슴과 엉덩이에 이 바닥에서도 알아주는 얼굴을 한 그녀는 재훈에게로 뛰어와 그의 팔에 매달려 애교가 넘치는 눈웃음을 흘리며 그를 잡아끌었다.
"뭐야?"
"개시한지 한참 됐는데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아 다녔잖아."
"니가 날 왜 찾아..."
"하여간 쌀쌀 맞긴..."
"가서 장사나 해, 이 년아"
팔을 휘감은 영란을 때어내며 재훈은 뒤를 돌아 방금 그 샌님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새 그가 있던 자리에는 술 취한 중년의 남자와 실랑이를 하는 여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재훈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훈은 영란을 따라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헉... 헉.. 헉..."
"오빠... 하앗... 오.. 빠아..."
"아악! 하아... 하아..."
좁아터진 방, 어두운 그 속에 한 쌍의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체로 엉겨있었다. 가뿐 숨소리가 잦아들고 방안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방 한구석에 좁은 창 밖으로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이 어두운 방안에 원색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잠시의 정적을 깨고 남자가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벌써 가게?"
"..."
"오빠아~."
"손님 받아... 아직 안 늦었어."
"재훈오빠!"
"삼촌이라고 불러."
"오빠... 사랑해.. 알잖아? 나 오빠 없으면..."
"몸 파는 년이 사랑은.,.. 얼어죽을..."
재훈은 좁은 방의 문을 열고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영란은 그런 재훈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방문이 잠기자마자, 두 눈 가득히 고인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영란의 얼굴을 덮고있던 화장만 씻겨지고 있었다.
"몸 파는 년도 사랑할 수 있어... 개새끼..."
영란은 화장대에 티슈를 몇 장 뽑아 눈가를 닦고는 어두운 방안에 불을 밝혀 번져버린 화장을 다시 매만졌다. 그랬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재훈의 말대로 손님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영란이 지고있는 업보였다.
"삼촌!"
가게에 붙어있는 작은 방에세 벽에 기대 담배를 피고있던 재훈을 누군가 불렀다.
윤락녀들은 보통 자신의 뒤를 봐주는 남자들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진숙이 재훈에게 맡긴 가게의 종업원들도 재훈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뭐야?"
선영이였다. 짜증 섞인 재훈의 대답에 입이 댓발이나 나온 선영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웬 샌님이 주인 좀 보자는 데?"
"샌님?"
"그래.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던데? 크크"
"미친년, 남자도 영계가 좋은가보지?"
재훈은 재떨이에 대충 담배를 비벼 끄고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선영을 따라 간 곳에는 웬 젊은 남자하나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저기, 쟤야."
순간 재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아까 골목에서 본 그 어수룩한 남자였다. 그는 역시 이곳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길 잃고 잘못 굴러 들어온 줄 알았더니 무슨 일로 여기가지 와 자신을 찾는 지 재훈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주인이세요?"
"뭐냐고 묻잖아..."
가까이에서 본 그는 정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놈이었어. 원래 하얀피부가 겁에 질렸는지 새파랗게 질려 백지장 같았다. 조금씩 떨리는 입술까지도... 한 대 치면 고꾸라질 것 같은 그런 숙맥이었다.
"여기에... 지연이라는 아이 있지요?"
"...."
"지연이요. 김지연, 얼마 전에 여기로 들어왔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재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는 지연이라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재훈은 더욱 궁금해졌다. 이런 숙맥이 여기서 여자를 찾는 이유가 뭘까? 재훈의 앞에서 떨고있던 그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데려갈게요."
"뭐?"
"돈... 가져 왔어요."
"돈"
재훈은 어이가 없었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자신이 웃어버리면 앞에 선 이 남자는 울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돈까지 준비해 온 걸 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샌님은 아닌것 같았다.
"얼마나 가져왔어?"
"얼마나 있어야 하죠?"
"지연이라고 했지... 걔 데려올 때 삼천 줬으니까, 삼천 오백만 내놔."
"예? 오백씩이나 더 붙인다구요?"
"데려가기 싫어?"
사실 데려올 때는 2이천 오백을 주고 데려온 아이였다. 천이나 더 붙여 부르자 남자의 얼굴에는 절망적인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삼천이에요."
"?"
남자는 가방에서 신문지에 쌓인 두둑한 돈 뭉치를 꺼내어 재훈의 앞에 내밀었다. 재훈이 돈 뭉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시선을 남자에게로 돌리자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백은 내일까지 드릴게요. 내일 돈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대신 지연이 좀 만나게 해주세요."
"..."
"부탁.. 합니다..."
끝내 남자의 눈에 이슬이 맺혀버렸다. 그 순간 재훈은 주변에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처럼 그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재훈의 가슴이 아팠다... 오래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날 이후 처음 느끼는 감정에 재훈은 혼란스러웠다.
'뭐야.. 이 놈은 뭐야.. 대체 뭐냐구?'
- 1편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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