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you - 너를 꿈꾸다 [5]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夢you -5-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은 짙푸르게 멍들더니 이내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밤하늘은 검지 않았다. 빌딩의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백열등 불빛은 하늘은 금새 오렌지 빛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하늘아래, 거미줄 같은 골목에는 하나 둘, 술에 취한 중년의 사내들과 치기 어린 남학생들이 친구의 총각딱지를 때준다며 시끄럽게 떠들며 한 대 뭉쳐 어디론가 흘러가듯 사라지고 있었다. 붉은 유리방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얼굴에는 화장기 가득한 웃음이 조각되어 있었다.
몇 일 전에도 왔었던 곳이었지만 선우에게 이 곳은 아직도 두렵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마치 전에 이곳에 왔을 때, 누군가 자신의 허리춤에 단단하게 밧줄을 동여매어 놓고는 날마다 힘껏 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어디가?"
"총각, 좋은 아가씨 많아!"

선우는 자신을 붙잡는 손들을 하나둘 때어내고 한발, 익숙하지 않은 밤의 골목으로 해답을 찾아 들어갔다.




"하기 싫으며 하지마. 저 싫다는 놈, 나도 미련없어."

재훈은 낮에 진숙이 찾아와 한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훈은 그 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곱씹고 곱씹을 뿐, 재훈은 오래된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다른 주머니를 뒤지며 라이터를 찾고 있을 때였다.

"여기..."

언제 다가왔는지, 영란이 라이터에 불을 켜 내밀었다. 재훈은 영란을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영란은 요 몇 일 계속 저기압인 재훈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했다. 말도 걸지 않았고, 팔짱을 끼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서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다 가끔 재훈의 옆모습을 천천히 바라보기만 했다.
담배 한 개피를 다 피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재훈이 입을 열었다.

"가서 손님 받아...."
"오빠!"

손님을 받으라는 말에 속상한 듯 소라를 높여 영란이 대꾸했다. 재훈은 그런 영란을 한번 돌아보고는 시선을 거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푼수 떨지마... 너라고 쟤들이랑 다를 거 없어. 갑어치 없는 물건, 난 안 가지고 있어."

재훈은 차가운 한 마디만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린 영란의 손에는 재훈에게 주려고 들고있던 포장도 뜯지 않은 담배 한 갑이 무참히 구겨지고 있었다. 



"아깐 좀 심했다?"
"언제 나왔냐? 가게는?"

선영이었다.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물고있던 재훈을 용케 찾아냈다. 주위에는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영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도 없는 곳에선 재훈에게 말을 놓았다.

"덕구와서 잠깐 부탁하고 나왔다."
"또 진숙이모한테 불려가게 생겼군..."
"떨어진 물건들 사러 갔다고 했으니까 걱정마. 나도 하나 줘 봐라."
"미친.. 끊는다며?"
"병신 새끼... 너 같으면 이거 한번에 끊을 수 있냐?"
"크흣..."

재훈은 작게 웃고는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선영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한 손에 라이터로 선영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두운 골목에 담배연기가 낮게 깔렸다.

"이번엔 뭐냐?"
"..."
"늘상하던 그 뻘짓이야? 아니면 정말 뭐가 있는 거야..."
"니가 보기엔 어느 쪽이냐?"
"난 뻘짓이었음 좋겠는데 새끼 꼬락서니는 뭔가 있어... 맞지?"
"그러냐? 나도 모르겠다... 니 말대로 뻘짓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뭐가 있긴 있구나..."

하지만 선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이 재훈이 열어둔 선이 것이다. 그 선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기껏해야 선영이나. 덕구정도...

"너무 오래 비웠다. 나 먼저 가볼게 삼촌."
"다시 삼촌이냐?"
"그러게.. 어설픈 신데렐라쯤 되나보지?"

선영은 농담 같은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분주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재훈 사라지는 선영을 끝까지 쫓다가 이내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밤하늘의 그늘... 재훈은 별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에 젖은 자신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재훈은 손에 든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또 이 골목에서 더 큰 골목으로 몇 번쯤이나 꺾였을까? 어느새 멀리 27호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재훈의 걸음이 그 자리에 멈췄다. 재훈의 눈이 무엇인가를 주시했다. 가게 앞 전봇대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좁은 어깨에 자그마한 몸... 지나치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잔뜩 움츠러든 남자, 선우였다.
선우는 재훈의 가게 앞, 전봇대 뒤에 서서 가게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재훈은 그런 선우를 멀찌감치 뒤에서 바라만 보았다. 그는 나아가지도 뒤돌아서 왔던 길을 돌아가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선우만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우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재훈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27호 가게가 아닌 선우의 발걸음 이였다. 천천히 그리고 힘없이 걷는 선우의 걸음을 따라 재훈도 느리게 지분의 처마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숨어 선우를 따랐다. 골목을 지나고 골목을 지나 거미줄 같은 그 골목들을 빠져나와 큰길이 나타날 때까지, 선우가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대에도 재훈은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지 않았다. 숨죽여 선우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멀리 버스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우는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막차가 도착하고 나서야 선우는 버스에 올랐다. 그 버스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대가 돼서야 재훈은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났다. 그리고 버스가 사라진 늦은 밤의 고요한 거리를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선우니?"
"예, 어머니. 안주무고 계셨어요?"
"잠이 안 오네... 왜 이렇게 늦었어?"
"학원 일이 늦게 끝나서요."
"선우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저 저녁 먹고 들어왔어요."
"그래?"
"예, 씻고 금방 잘게요. 그럼 주무세요."

현자의 얼굴에는 못내 걱정스러운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선우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현자는 천천히 손으로 벽을 집어 발걸음을 옮겼다. 늘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들이었지만 뱃속에서 열 달을 키워 배아파 낳은 아들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을 어미 된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아들이 어떤 얼굴로 이야기하는지, 아들의 눈이 슬픈지, 기쁜지조차도 볼 수 없는 자신이 못내 답답하고 아쉬웠다. 현자의 입에서 소리 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닫힌 현자의 방문 너머로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나... 정말... 미친거구나..."

씻지도 앉은 체, 불도 켜지 않고 방안에 그대로 누워 버린 선우가 낮게 읊조렸다. 선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쉬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 재훈은 홀로 남겨져 있었다. 가금 지나가는 한두 대의 자가용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고요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골목과는 그렇게 멀지도 않은 곳인데, 그 곳과는 너무나 틀렸다. 재훈은 선우가 떠난 후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있었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체, 그냥 멍하니 선우가 사라진 곳만 주시 한 체로 그렇게 재훈은 굳어버렸다.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정말 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움직일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그의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말라버린 입술일 타고 정적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똑같은 모양으로 되풀이되는 그의 입을 보면 그는 분명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소리가 말라버린 말만 되풀이하던 그 의 입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 5편 end -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alrnr99" data-toggle="dropdown" title="아르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아르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f="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언능올려주세여^^기대되여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