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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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뜨락에 새봄의 향기를 전해주었던 목련꽃이 지고 철쭉꽃이 꽃망울로 고개를 내밀즈음, 행인들의 옷차림은 어느새 가벼워지고 훈훈한 서풍이 불러와 테해란로에 깊어가는 봄을 전해 주고 있었다.
한강고수부지엔 유채꽃도 패랭이도, 그리고 가벼운 차림의 낚시꾼들도 저마다 봄을 낚고있었다. 고향 마을엔 영글어가는 보리내음이 있을것이고 길가 풀 섶에 뭉퉁하게 올라와 있는 삐비도 있을것이고 아카시아향기에 벌들이 창공을 가르며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도 있을것이다. 엄마손을 잡은 아가들의 들꽃구경 나들이도 있겠지.
한동민은 봄볕이 들어오는 창가에서서 깊어가는 봄을 느끼고 있었다.
상큼한 Joan baeg의 - Green Green Grass of home-이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민은 가까이서 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한다.
고향봄도 그립고 소백산의 봄도 느끼고 싶었다. 주말엔 혼자라도 밤열차를 타고 소백산에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곤 했지만 아직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사장님과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곤했다.



정민철은 한달가까이 아랫배의 더부룩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근처 병원에서 한달가까이 다녔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만성 대장증세라고만 말하고는 약만처방해주었다.
며칠전에 다시병원에 가니까 담당의사가 큰병원에 가서 대장 내시경검사를 한번받아보라고 말해서 대학 병원에 검사 예약을 해 놓은 상태다. 검사날 당일이다.
어제밤부터 먹지않고 장을 비우고는 준비해왔다. 오전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예약시간에 맞추기위해 혼자 사무실을 나와 택시를 탔다.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병원측에서 말했지만 혼자가고 싶었다.
운전기사와 함께 갈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리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정민철은 병원문을 들어서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이 검사로 인하여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검사실에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담당간호사가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내밀었다. 검사도중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인정하겠다는 검사자의 동의서였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검사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진통제를 놓고는 조금후에 담당지시속에 검사가 이루어 졌다. 검사가 끝났다.
"아무이상이 없습니다."
오래동안 염려하고 긴장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지고 안도감에 편안이 찾아왔다.
"만성대장증세니까 육식을 자제하시고 보행을 많이 하십시요."
"알겠습니다."
"등산이 좋을겁니다."
정민철은 아무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는 병원을 나서면서 몸이 소중함을 다시한번 확인했고 몸관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민철은 여유롭게 거리를 걸었다. 왠지모를 자신감이 내면으로 부터 생겨나왔다.
얼굴표정도 밝게 바꾸기로 하고 표정부터 바꾸어보았다. 모처럼 버스도 탔다.
사람들에 얼굴을 살펴보았다 . 모두다 근심어린 얼굴이며 무표정에 화난 얼굴들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 내려서 테해란로를 걸었다. 빈속인데도 허기가 느껴지지않았다. 몇끼니도 굶을수 있을것만 같았다.
다시 거리의 행인들을 처다보았다. 역시나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온갖시름 다 자기들이 짊어지고 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민철은 밝은 표정을 한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손가락으로 세워보기로 했다. 회사앞까지가서 두손바닥을 들어보았다.
구브러진 손가락이 한개도 없었다.
회사를 들어가 경비직원을 처다보았다. 근엄한 표정이다. 그래야만 일 잘하게 보이는지 말이다. 정민철은 자신이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몇개의 사무실에 들어가보았다. 다들 굳은 표정들이다. 마지막으로 한동민에게 갔다.
"사장님, 지금 나가십니까?"
"나갔다 들어오는길이네."
역시 한동민만이 정사장을 밝은 표정으로 맞았다. 그였다. 정사장은 그가 원했던 모습이 한동민에게서만 찾을수있었다. 한동민의 웃는 표정이 오늘 따라 천만금처럼 귀하게 느껴졌다. 한동민의 웃는 얼굴이 좋았지만 오늘따라 아주 소중하게 다가왔다.
정사장은 한동민에게 환한 미소로 답했다.
"사장님, 오늘더욱 좋아보이십니다."
"그런가?"
"예에, 뭔좋은일 있으세요."
"있지, 있고 말고."
정민철은 한마디 던지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래, 남이 밝은 표정을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하리라.)



한동민은 요즘들어 더욱 밝아진 사장님의 표정이 더욱 보기 좋았고 온화하게 풍기는 모습에서 더욱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가끔 정사장과 눈을 마주칠때면 사장님에게 빠져가는 자신이 들켜 버릴까봐 눈을 다른곳으로 돌리곤했다.뒷자석에 사장님을 모시고 운전하노라면 마냥 행복했고 간혹 등을 어루만져주는 사장님의 손잔등이 좋았다.
지방 출장에서 한방에서 자면서 주무시는 사장님의 숨소리가 좋았고, 연륜에 피로해하는 사장님의 몸을 안마 한답시고 살결을 만지노라면 자신의 호흡이 가파오고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못해 자신의 살결을 꼬집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사장님이 삼성동의 이사장처럼, 광주있는 지점장처럼 자신을 덮쳐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먼저 다가갈수없는 현실앞에 애만 태웠다. 늘 선을 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수있다는것이 힘이들었다. 언젠가는 다가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리라.



"미스터한, 요번 토요일날 시간낼수있나?"
구미 공장에 갔다가 올라오는 고속도로상에서 정사장이 말한다.
"특별한일은 없습니다. 출근을 해야하니까요."
"그래, 그럼 등산이나 갈까?"
"좋습니다. 근데 오전 출근은요?"
"요번토요일은 쉬기로 했네."
한동민은 백미러로 정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거울속에서 정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로 갈까?"
"사장님, 소백산이 어떻습니까. 경치가 그만입니다."
"나같은 사람이 등산하기 힘들지 않을까."
"사장님은 오를수있습니다. 넓다란 산등성이가 시원하니 좋고 철쭉이 조금씩 피어 있을겁니다."
"그래, 한번 가보세."
동민은 마음이 벌써부터 들떠가고 있었다. 소백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게."
"사장님, 금요일 오후에 청량리에서 저녁기차를 타고갈까요."
"자네알아서 스케즐을 잡게나."
"알았습니다."
동민은 음악을 틀었다.
"죤덴버의- Annie's song- 이 흘러나왔다. 맑고 호소력이 짙은 죤덴버의 목소리가 차안을 채웠다.
"죤덴버아닌가?"
노래가 끝나자 정사장이 묻는다.
"맞습니다. 이분 노래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네. 그사람 노래는 다 좋아하네."
"사장님은 팝송도 많이 알고 계시네요."
"그렇게 보여, 자네하고 어울릴려면 이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않나."
"...."
"자넨 노래라면 누가 따라올사람이 없지않은가."
"과찬입니다."
"아닐세. 자넨 노래를 부를때 한이 섞여 있는듯한 목소리가 매력 있어. 그리고 감동을 주는 목소리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이어서 죤덴버의 -Sunshine on my shoulders- 가 흘러 나왔다.
동민은 어딘가 모르게 사장님과 통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고 일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가까울 수 있다는것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은 사랑 할 수 있다는것이다. 동민은 부풀은 풍선이 되어 있었다.
사장님과 산에 간다는것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수 있는 기회였다.


금요일날 동민은 사장님과 지방출장이 있다고 와이프에게 알리고는 집을 나왔다.
오전에 한가한 틈을타서 근처 마켓에 가서 산행준비를 했다. 여기저기 알리바이를 맞추고는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졸던 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넘어가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빌딩에서 나오는것이 보였다. 동민은 사장님을 모시고 사장님댁으로 갔다.
"사장님 제가 준비 다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등산화는 신발장에 있길래 준비않했습니다."
"집에 신던것 한컬레있네."
두사람다 여행가는 것에 들떠 있었다. 동민과 정사장은 택시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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