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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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 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음을. 특히 팬티가 걸려있을 허리나 허벅지가 한 몸으로 이어지는
사타구니 아래는 흠뻑 젖었을 것임을.

 그러면서 나는 상상을 한다. 그가 욕실에 들어가 축축하게 젖은
트레이닝복을 벗었을 때를. 그리고 이윽고 달랑 남은 팬티를 벗을 때.
그것을 벗어…, 아. 그것을 벗으면 그것이 닿아 있던 자리는 어떤 얼룩이….

 혹 김이 올라오지는 않을지.
땀과 미처 떨쳐내지 못한 몇 방울 흔적이, 밤새 야한 꿈이라도 꾸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종류의 몇 방울이라도 흘렸다면. 그 흔적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그 작은 의복을 그가 벗으면.

 일탈이었다. 분명 그건 일탈이었고 일탈의 귀정은 결국
다시 일상에로의 복귀가 아닐는지.

 그가 멈춘 곳은 구비 돌아가는 하천 안쪽, 제법 자리가 너른 퇴적지를
이용해 운동 기구를 갖추어 조성한 공원이었다.

 나도 그를 따라 그 쪽으로 들어섰다. 노인 몇 분이 분명 스스로
고안해 만들었을 체조를 하고 있을 따름, 아주 한산했다.
무엇보다도 그 점이 아쉬우면서도 한편 흐뭇했다.

 잠깐 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는 평행봉에 매달려 있었다.
몇 번 하체를 휘 젖는가 싶더니, 그는 시계추처럼 곡예를 부렸다.

 그의 하체가 뒤로 밀렸다가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선명하게 부각되는
어떤 물체. 분명 그의 몸 일부분이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그것.
작지만 늘 어떤 가능성과 신비에 휩싸여 있는 그것이 분명히 부각됐다.

 그렇지만 탐색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거기엔 뻔뻔함과 무심이 항상 깃들어 있어야 했고
어느 땐 나태와 나른함까지 갖추어야 했다.

 내가 아직 그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탓일까.
평행봉에서 내린 그가 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의 보폭이 빨리지는 만큼 내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었다.

 그 순간 목 뒤 털이 쭈뼛 섰다. 신은 이미 반이나 나가 의식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니 자연 운동은 건성이었다.

 이제 그는 바로 내 등 뒤에까지 왔다. 그리고 이어서….
그러나 그는 바로 내 옆을 스쳐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게
만든 나무 판대기 위에 몸을 부렸다.

 휴우. 남몰래 한숨을 내쉰 나는 오늘은 그만 여기까지 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미 딱 제 먹이를 찾아 맛을 본 눈은 좀처럼 상부의 지시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서로 얼굴은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말은 건네지 않은.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를 할 정도의 면식으로
무신경하게 서로를 대하는 중에도 그렇대서 아주 무관심할 수는 없는 사이.
그런 관계를 며칠동안 유지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그와 가까워지게 된 것은 폭설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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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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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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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좋다.
계속 이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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