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고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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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거리 시위가 한창일때 신입생이던 나는 전경들에게 잡혀 닭장차라는 것을 탔다.
철망으로 창을 가린 전경들이 가득찬 버스였다.
나를 잡아온 전경이 "이 새끼도 화염병 던졌으니 뜨거운 맛을 봐야해," 하며 옷을 다 벗으란다.
팬티만을 남기고 벗었는데 팬티도 벗으란다. 팬티를 벗고 손으로 앞을 가리자 "열중쉬어.." 하며
손을 뒤로 빼란다. 뒷짐지고 제자리 뛰기를 실시하란다.
성기가 덜렁거리기 시작하자 전경들이 보며 즐거워한다,
그때 고참병인듯한 사람이 올라오더니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고 나더러 빨리 옷을 입으란다.
경찰서 취조실로 갔다, 30대 형사는 느끼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마주 앉아 이것저것 묻는다.
운동권 배후조직을 대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지만 나 살자고 선배들을 팔수는 없었다.
형사는 구두를 벗고 발을 내 의자에 얹고 사타구니 사이를 문지른다.
내가 엉덩이를 뒤로 빼자 "이 XX놈이 죽을라고 지랄하네, 빨리 못비벼?" 하며 더 바싹 대란다,
이젠 형사 발이 가만있고 거기에 내 자지를 좌우로 비비자 발기가 되었다.
그는 발을 거기로 간지르는 것이 꽤나 즐거웠나보다.
내얼굴 앞에 앉아 쟈크를 내려 자지를 꺼내고 빨라고 한다. 마른 사람이었으나 자지는 꽤 컸다.
내가 싫다고 하자 주먹이 날라온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시키는대로 하란다.
난 열심히 그의 것을 빨았고 그는 내얼굴에 사정하고 그 비린것을 손으로 훑어서 먹으라고 했다.
맛이 어떠냐고 그가 묻는다. 난 구역질이 날거 같았지만 할수없이 "좋은데요" 하며 말했다.
그는 내옷을 모두 벗기고 수갑을 채우고 책상 위에 눕힌후
자지털을 한웅큼씩 뽑는다. 진짜 아팠다. 전기선을 가져와 자지에 감고 전류를 강하게 흘린다.
찌릿찌릿 온몸에 전기가 올라 견딜 수가 없다.
내 고환을 세게 잡아 비틀어 터지는줄 알았다. 이어 다리를 수갑찬 손 사이로 넣어 둥글게 만든후
봉에 걸어 책상 사이에 걸치는 통닭구이를 했다.
30분이 지나자 손발이 몸무게를 지탱하여 죽을거 같았다.
살려달라고 하자 곤봉으로 내 항문을 쑤신다. 바닥에 내 피가 흐른다, 눈물도 흐른다.
어머니 우는 모습이 간절히 떠올랐다. 어머니 이게 당신의 아들입니다.
다음날은 다른 형사가 취조하여 빨아주니 더 이상 안괴롭힌다.
아마 거기 형사들 정액은 한번씩 다 먹었던거 같다. 전기고문 후엔 몇달간 발기도 안되었다.
이러다 고자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제목엔 추억이라고 했으나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아마 요즘엔 가장 심한 고문이 잠안재우기 아닌가?
성고문은 86년 부천경찰서의 권인숙양처럼 여자만 당했던 것은 아니다.
성고문이나 성학대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심장이 조여오는 것은 평생의 상처가 될것이다.
철망으로 창을 가린 전경들이 가득찬 버스였다.
나를 잡아온 전경이 "이 새끼도 화염병 던졌으니 뜨거운 맛을 봐야해," 하며 옷을 다 벗으란다.
팬티만을 남기고 벗었는데 팬티도 벗으란다. 팬티를 벗고 손으로 앞을 가리자 "열중쉬어.." 하며
손을 뒤로 빼란다. 뒷짐지고 제자리 뛰기를 실시하란다.
성기가 덜렁거리기 시작하자 전경들이 보며 즐거워한다,
그때 고참병인듯한 사람이 올라오더니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고 나더러 빨리 옷을 입으란다.
경찰서 취조실로 갔다, 30대 형사는 느끼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마주 앉아 이것저것 묻는다.
운동권 배후조직을 대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지만 나 살자고 선배들을 팔수는 없었다.
형사는 구두를 벗고 발을 내 의자에 얹고 사타구니 사이를 문지른다.
내가 엉덩이를 뒤로 빼자 "이 XX놈이 죽을라고 지랄하네, 빨리 못비벼?" 하며 더 바싹 대란다,
이젠 형사 발이 가만있고 거기에 내 자지를 좌우로 비비자 발기가 되었다.
그는 발을 거기로 간지르는 것이 꽤나 즐거웠나보다.
내얼굴 앞에 앉아 쟈크를 내려 자지를 꺼내고 빨라고 한다. 마른 사람이었으나 자지는 꽤 컸다.
내가 싫다고 하자 주먹이 날라온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시키는대로 하란다.
난 열심히 그의 것을 빨았고 그는 내얼굴에 사정하고 그 비린것을 손으로 훑어서 먹으라고 했다.
맛이 어떠냐고 그가 묻는다. 난 구역질이 날거 같았지만 할수없이 "좋은데요" 하며 말했다.
그는 내옷을 모두 벗기고 수갑을 채우고 책상 위에 눕힌후
자지털을 한웅큼씩 뽑는다. 진짜 아팠다. 전기선을 가져와 자지에 감고 전류를 강하게 흘린다.
찌릿찌릿 온몸에 전기가 올라 견딜 수가 없다.
내 고환을 세게 잡아 비틀어 터지는줄 알았다. 이어 다리를 수갑찬 손 사이로 넣어 둥글게 만든후
봉에 걸어 책상 사이에 걸치는 통닭구이를 했다.
30분이 지나자 손발이 몸무게를 지탱하여 죽을거 같았다.
살려달라고 하자 곤봉으로 내 항문을 쑤신다. 바닥에 내 피가 흐른다, 눈물도 흐른다.
어머니 우는 모습이 간절히 떠올랐다. 어머니 이게 당신의 아들입니다.
다음날은 다른 형사가 취조하여 빨아주니 더 이상 안괴롭힌다.
아마 거기 형사들 정액은 한번씩 다 먹었던거 같다. 전기고문 후엔 몇달간 발기도 안되었다.
이러다 고자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제목엔 추억이라고 했으나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아마 요즘엔 가장 심한 고문이 잠안재우기 아닌가?
성고문은 86년 부천경찰서의 권인숙양처럼 여자만 당했던 것은 아니다.
성고문이나 성학대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심장이 조여오는 것은 평생의 상처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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