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2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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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제2부 [03]  - 혼돈의 시작.

원래 별반 즐기지 않는 삼겹살에, 옆에서 챙기듯 보채듯 따뤄주는 소줏잔을 비워가며
이내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습관처럼 말수가 줄어드는 날 배려하듯,
양주임은 옆에서 귀찬치 않을 만큼의 이런저런 말을 시켜가며
자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영 고맙게 느껴졌다.
지사장을 비롯한 몇몇무리가 먼저 자리를 뜨고
자연스레 술자리는 무르익어갔지만,
소탈한 술자리에서도 양주임의 뜻대로 사람들은 날 윗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해가며 취기가 많이 올라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있으면서
이따금씩은 잠깐 잠깐 졸아가면서도 사람들의 대화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윽고 1차가 끝나고 사람들은 장안동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대리운전 전화번호를 챙기는 날 한사코 이끌어대는 양주임의 호기에
웃으며 노래방까지 동행했지만, 더이상의 술은 무리였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을만큼만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눈꺼풀을 덮을만큼 피곤한 상태였다.

벽에 기대어 깜빡 또 잠이 들었었는지 허벅지를 꽉잡고 흔드는 양주임의 손길에
놀라 눈을뜨니, 테이블엔 국산양주를 위시한 한상이 벌려져있고
도우미인듯한 몇몇 여인네들이 룸에 들어와 있었다.
가장 연배가 높은 최주임도 나에게 먼저 맘에드는 상대를 고르라고 호들갑을 떠는데,
이번엔 한사코 고개를 저어가며 난 필요없다고,
자꾸 그러시면 졸리니까 먼저 일어날꺼라했더니 그제서야 분위기를 정리하며
사이사이 여인네들을 앉히고 또 술판이 벌어진다.
졸지 않으려 하는데도 또 졸고 있었는지
이번엔 양주임의 손길이 어깨를 주무른다.

최주임의 굵직한 목소리가 "영영"을 부르고 있고, 쌍쌍이 일어나 좁은 홀을 누비며
불르스를 추고있다.
새로 가져온듯한 얼음물을 건네며 양주임이 귓가에 가까이 대고 큰소리로 말한다.
"아이거... 이거 과장님이 너무 취해서 재미가 없어요.
 그만 주무시고 이제 좀 같이 놀아요.
 이거 보세요. 이제 진짜 제대로된 맴버들만 남았는데
 과장님이 취해있으니 나만 심심하자나요. 네?"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키니 좀 정신이 들었다.
몇시냐고 물었더니 새벽두시란다.
참 체력들도 좋으시다고 너스레를 떨며 찬찬히 실내를 보니
정말 창고관리에 관련된 네명의 주요인물들만 남아있었다.
현대리는 특유의 몸놀림으로 함께하는 도우미가 마냥 맘에드는 몸짓이었고
최주임도 기분좋은 표정으로 젊은 아가씨와 함께 노래를 하고있었고
김씨 아저씨라 불리는 김정훈씨도 도우미와 몸을 부벼가며 나름대로 흥에 겨워있었다.
그러고 보니 양주임옆에는 사람이 없다.
"과장님 도우미 필요없으시다 하길래, 저도 보냈어요.
 근데 과장님 자꾸 주무시니 깨우지도 못하고 혼자 심심해 죽겠네요.
 자 이제 한잔 드시고, 저랑 좀 놀아주십시요."
스트레이트잔에 빛깔만 그럴싸한 양주를 부어 건네준다.
마치 새로 시작하는 술처럼 알싸한 맛이 생각보다 맛깔스럽다.
작지만 두툼한 양주임의 손길에 못이긴척 일어나 사람들 틈으로 나가니
저마다 흥겹던 사람들이 박수까지 쳐가며 환영한다.
작은키에 유난히 아랫배가 나온 양주임이 양손을 마주잡고 불르스를 치듯
이른바 관광버스용 몸짓을 시작한다.
어설프게 그 동작에 대응을 해 가는데, 비좁은 그 틈에서 양주임과의 몸이 자꾸 밀착되며
양주임보다는 훨씬 큰키인 나의 그곳이 자꾸 양주임의 아랫배에 가 닿아서
순간 순간 술이 확확 깨는 느낌이다.

이번엔 마이크를 건네잡고 고향역을 불렀다.
이 연배의 사람들과 어울릴때면 분위기 흔들리지 않는 몇곡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노래 참 구성지다며 너스레를 떨던 사람들이 한층 신나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시 마이크가 테이블에서 쉬고, 술판이 재개되었다.
얼마나 마셨을까...
처음보다 많이 취한거 같았지만, 중간에 한숨 잠을 자서 그랬는지 몸을 가누는게 영 어색했다.
계산대 앞에 가서 섰더니, 지점장이 2차비용까지 미리 주고 갔었다고 최주임이 귀띰을 한다.
3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몇번이고 몸을 휘청이자
양주임이 아예 옆구리를 감싸안고 부축을 해준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그러니, 그런말 하는게 더 실수라고 너털웃음을 지어보인다.
집이 같은 방향인 최주임과 김씨가 먼저 택시를 타고, 현대리는 합승택시운전사의 고함소리에
바삐 인사를 하고 떠난다.

"오늘 참 고맙습니다. 제가 실수가 많았습니다.
 다음에 제가 한잔 사죠뭐.."
"허허, 실수는 무슨.. 실수한거 없습니다요.
 영 미안하시면 진짜 담에 한잔 사시고,  택시타고 혼자사는 집으로 가시지 말고
 저희집이 바로 이동네니까 그냥 좁더라도 같이 가십시더.
 ...... 어, 자꾸 사양하시면, 집이 누추해서 그런거라 섭섭해 할겁니더.
 편하진 않으시겠지만, 불편해 하실필요도 없고, 괜찮으실겁니더."
술기운인지 특유의 억양이 강해진 양주임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날 눈치채곤
더이상 말을 붙일 틈을 주지 않고 손목을 잡아 이끈다.
가까운곳이라 번화가 앞에 기다리던 택시들이 전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버리니
"그라문 마, 따불줌 될꺼아이가.."
호통을치고는 택시뒷문을 열고 날먼저 밀어넣는다.

시립대가 멀지않은 청량리 근처인듯한 어두운 골목에서 내려 다시 옆꾸리를 감싸안은채
이끄는 양주임을 따랐다.
"울 집사람이 뭐 잘난건 하나 없어도, 해장국하나는 참 좋습니다.
 낼 아침에 아마 놀래시지나 말아야 하실텐데... 허허허"
녹녹치 못한 살림인듯 했으나정갈하게 정리된 다가구주택 2층집에 들어서니
양주임만큼이나 인심이 넉넉해 보이는 부인이 현관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이 봐라. 진짜 큰 손님이니까 니가 오늘 아들래미좀 델꼬 자라."
"아이구.. 큰손님은 무슨... 늦은시간에 죄송합니다. 집으로 간다는데 한사코..."
"어허, 과장님도 참. 뭐 좁아도 하룻저녁은 걱정안해도 됩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나오니, 양주임이 뒤이어 욕실로들어가며 비워둔 큰방을 가르킨다.
거실이라고 하기보단, 주방에 가까운 좁은 공간에
얇은 이불이 깔려있다 . 아마도 양주임이 거기서 주무신단 말인가보다.
뭐라 말할수 없이 황송한 기분이들어 열려진 큰방안으로 그 이불들을 옮겨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급한 샤워를 마친듯한 양주임이 이제야 조금 나즈막해진 목소리로
- 내같은거 밖에서 자도 되는데, 이거 집이 좁아 영 죄송합니다..
멋적게 말을한다.
- 그럴수야 없죠 양주임님. 어디 죄송해서 제가 잠이 오겠습니까.
- 그럼 마, 편할대로 잡시다. 방은 널찍하니까.

양주임의 말대로 널찍한 방에 이불은 따로한채 누웠다.
가볍지 않은 취기에 습관대로 금새 잠이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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