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시작되는 사랑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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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봄 ,영수가 국민학교 입학 할 쯤이 되자, 혼자서 애들 다섯 키우느라 여유 없는 막내 여동생을 보며 영수 애비는 미안해서 선을 보기로 하고 날짜를 잡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재혼을 미루고 있던 사이 여동생은 매제에게 신경 쓸 틈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남자는 타인의 시선을 늘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마누라가 친정 일로 정신을 뺏겨버려 신경을 써주지 못하자 매제는 밖으로 맴돌기만 했다. 그러기를 일년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매제는 막내 동생에게 친정 일로 신경 쓰는 당신과는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이라고 했던가?"

일이 그렇게 번지자 자신을 탓하던 영수 애비는 매제를 찾아가서 여자가 신경 쓰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며 모든게 자신의 탓이니 날 봐서라도 한번만 참고 같이 살라고 빌고 빌었지만, 매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헤어지겠다며 사촌 여동생 둘을 데려가고, 이혼을 해버렸다. 그 후로 영수 애비는 새 사람을 맞아들였고, 친청 식구들 일로 이혼녀가 되어버린 막내 동생은 형부 없이 남매 키우고 있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80년대 대기업의 외국 투자에 힘입어 중동 지역의 근로자 붐이 일어나 돈을 벌러 외국으로 나간 형부 없이 살고 있는 언니에게 힘이 되어줄 요양으로 같이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헛된 수고도 알아주는 이 없다는 듯이 영수 애비가 재혼한지 1년 만에 애들 새엄마는 죽은 전처의 보상금과, 전세금을 빼돌려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 영수 할아버지는 고향에 있는 친구들을 뵈러 네 딸들 집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둘재 아들놈 영호를 데리고 시골로 자주 다니셨다. 홀로 있던 아들놈 집에 있어야 봐야 끼니 제 때 챙기기도 힘들고, 혼자서 넷 벌어 먹이기도 힘든 상황이니 하나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아들놈 짐을 덜어주려 그랬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들놈의 재혼을 권한 할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술을 좋아하시게 되었고, 영호가 12살 되던 해 할아버지는 술과 노환으로 인해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식구라곤 아버지, 형, 나, 여동생, 네 식구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영호는 사춘기도 겪게 되면서 자연스레 몸에 털이 나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굵어지기 시작했다. 性(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져 아버지가 보다 치워둔 잡지도 손대게 되고, 친구들과 알게 모르게 담배도 피게되었다. 그렇게 사춘기를 맞이하던 영호도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세요"

말없이 둥그런 유리창 안으로 민증을 들이밀며 한마디 거든다.

"가는 내 친굴시더"

손짓으로 나를 가르치며 영화 표 두 장을 받아 계단을 따라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눌러 쓴 채로 바닥만 보고 걸어 가던 나는 앞에서 멈추어 선 형의 등에 살짝 부딪혀 그 자리에 멈춰 서야만했다. 순간, 심장이 메몰차게 요동치고, 얼굴은 어떡해 할지 몰라 찌푸러져 있었지만, 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서인지 창 아래로 일그러진 얼굴을 검표원이 잘 보지 못했나보다. 순간 별것 아닌 것에 몸이 쪼그라들은 내 자신이 웃기기도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표를 내고 들어가는 사촌 형을 보면서 대단하다 하는 존경심의 눈빛을 흘렸다.

그렇게 표 검사를 하고 들어선 극장 안은 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보이는 남녀가 뒹구는 영상말고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후끈한 상영관을 덮고 있었다. 어렴풋이 기둥이 보이는가 싶어 만져보면 극장 안 좌석 등받이였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사촌 형이랑 같이 우뢰메나, 태권브이가 아닌 남녀가 벌거벗고 나와 키스를 하는 영화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자니 빳빳해진 남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시커먼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이라곤 앞에 앉은 사람 뒷통수와 넓게 뿌려대는 영사기의 필름 뿐 이었지만, 옆에 사촌형이 있어서 어색했던지 얼른 손으로 그 부위를 가리고선 검표원이 눈치 채지
못하게 화장실을 다녀왔다.

" 최민수 ,박영선 주연의 리허설"

내가 최초론 본 성인 영화이다. 사촌형이 주민등록증이 나온 기념으로 좋은 곳 구경 시켜 준다며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 시골의 한 극장에서 나의 미래는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두 컴컴한 극장에서 내 또래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뿌듯함도 느껴지고,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는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내게 다가왔다는 것이 신선한 충동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로 틈이 날 때마다 성인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을 전전하게 되었고, 17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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