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지하 주차장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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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많은 일들이 전과는 다른 일상으로 나를 빠져 버리게 하고 있다.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사람으로써, 굳이 살을 썩지 않아도 나를 잘 이해해주고 보담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기에 성격마저도 활발하게 변해갔다. 근본적으로 여성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어느새 장난기도 심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 서기도 좋아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친구로 두고 싶어질 수 있는 성격으로 변해 가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태수 아제의 충고로 이듬해 아버지와 갈등은 좁혀지고, 단지 그것이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만 했다. 사내 자슥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 없다는 말과, 지금은 작게 보여도 니가 공부해두면 나중에 다 필요하게 된다는 말에 마음 굳게 먹고 기술 배우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겉으로만 맴돌던 성격 탓에 학교 적응이 힘들었지만, 주위의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고 형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그렇게 학교생활이 적응이 되자 태수 아제 포장마차는 거의 들르지 못했고, 한 달에 두어번 정도 찾았다. 태수 아제도 학생 신분으로 내가 이반들이 많이 오는 포장마차에 들르는 것은 싫기는 했는지, 오히려 자주 볼 수 없음을 더 반겼다. 그렇게 시간은 사춘기를 밟고, 오월의 푸름보다 더 푸른 20대의 청년으로 치닫고 있었다.

후~두둑~ ..

매연이 가득한 도시 빌등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소낙비가 사람들 머리위로 떨어진다. 신호등 색깔에 맞추어 요리조리 피해 가는 자동차와 같은비가 내린다. 뭐 이렇게 굵은 소낙비가 내리냐며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학생의 눈 속으로 빗줄기가 떨어지자 "아이씨~!" 하면서 눈을 부비며 옆 건물 주차장으로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눈에 비를 맞은 듯 눈을 부비는 시늉을 한다. 비가 오는 날씨여서 그런지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해운대 바닷가를 가보고 싶다는 그리움에 목이 메여 하루를 보내게 된다. 지난 학창 시절 기술 공부가 하기 싫음 방과후에 늘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동백섬에 앉아 있는 인어 조각상이 행여나 걸어다니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더 가고 싶어 발정 난 개처럼 안절 부절 못한 채 공부는 뒷전이었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해변 도서관에서 바다 끝엔 분명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어도가 있을거란 믿음으로 인어 조각상 아가씨는 한번쯤 가보았겠지 하며 웃지 못할 이야기도 써보던 추억이 빗물 속에 묻어 난다.

저마다 비가 오면 다른 상념에 사로 잡혀 하루를 보내겠지..지난 추억 속에 떠난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이유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목이 메어 우수에 젖은 영혼들도 있을 것이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쉬지 못한 채 지하철 입구에서 김밥을 팔던 할머니를 그리워하게끔 만드는 비가 감사하다고 느껴본다.
그러나 옆 건물 지하 주차장 구석에 박스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술 냄새 풍기는 아저씨만은 그 비가 달갑지 않은가 보다. 연신 내리는 비가 지하 주차장에 스며 젖어 버린 박스 위로 또 다른 박스를 덮는 모습과 비와 싸움을 하며 연신 욕을 해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또한 누가 저들을 거리로 내 몰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다.

몇 일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 건물 앞에 서 있는 그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측은한 마음에 말이라도 붙여 볼까 하다가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캔음료를 사서는 말 없이 그 아저씨께 건네 들였다. 첨엔 머뭇거리더니 더웠는지 냉큼 캔 뚜껑 따고선 한숨에 들이켰다. 그리곤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다음 번에 빚을 갚아 준다는 말로 돌아섰다. 나이는 태수 아제랑 비슷해 보였지만, 바닥으로 가라앉은 도시의 매연을 모두 뒤집어썼는지 주름 속에 까뭇까뭇한 때가 끼어 10년은 더 들어 보였다. 하지만 시커먼 얼굴 속으로 드러나 그의 허연 미소만큼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듯 마냥 어린 아이 같아 보였다. 그 후 비가 오는 주차장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들이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였다.

"어떡한다?.. 우산도 안 가져 왔는데 .. 비가 이렇게 와서 집에 가면 흠뻑 다 젖고 말텐데.."

경비실 앞에 서서 내리는 비가 나에게도 이젠 걱정거리로 전락을 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경비 아저씨께 우산이 있으면 좀 빌려 달라고 했더니 아침에 출근하는 바람에 오후에 비가 올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우산을 못사는 거라면 내가 하나 사 주지하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만원권 한 장을 건네시며 농담으로 진담을 하신다. 그런게 아니라며 장난하지 말라며 주머니에 다시 만원권을 넣어 두라며 수고하시라는 인사 한마디와 부리나케 건물을 뛰어 나왔다.

비는 자꾸 젖어들어 신발 속의 양말이 살려달라며 꾸물꾸물 삐져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가면 우산이 두 개나 있는데 굳이 살 필요도 없고 해서 비를 피해가며 뛰었는데 빨간 신호등에 걸려 버렸다. 비라고 피할 수 있는 장소라곤 신호등 수신기 밑이라서 자동차 도로 측으로 몸을 조금 내어 맡긴 채 비를 피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언제 나왔는지 옆 건물의 주차장 아저씨가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었다. 그런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신호기 밑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저렇듯 오는 비를 즐기듯이 맞고 있는 아저씨와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고 내 모습이 어색해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었음과 동시에 녹색 불이 지포 라이터의 불빛처럼 빨갛게 변하는 것을 보고선 밑에 신호등도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볼 새라 보도를 뛰어 가는데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건너편에 노란 우산을 들고 있던 꼬마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보도를 뛰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어어 하는 주위의 웅성 거림과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모든 것이 스톱 모션처럼 뛰엄뛰엄 이어져 갔다.

"빠~~아~~앙~"
크나큰 경적 소리가 귓가에 굉음으로 음습해 오고 좌측 편에서 1ton 트럭이 빗 길에 정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미끄러져 시야를 가로막았다. 순간 어두컴컴한 상영관이 눈앞에 펼쳐지듯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좌석 등받이 같은 사람 등이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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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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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 좋아라 하는데 ^^ 열심히 써 주세요 ~!!
아자아자 화이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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