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고갈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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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갈비 좋아하신 다고요?"

"아..예.. 요즘은 이것  잘하는 집 찾기가 힘들더군요. 할머니께서 자주 해 주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좀처럼 할머니가 해주신 것처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가 없었거든요."

"할머니께서 솜씨가 좋으셨나보네요. 하늘에서도 손주 입맛을 못 바꾸게 만드셨으니 말입니다."
"감사 드려야 겠는걸요. 고 갈비 기억 때문에 지나쳐 갈 뻔한 손님 잡았으니까요. "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포장마차 안은 두 사람의 웃음소리로 커져 갔다. 30대 초반에 중소 기업 중역 자리에 앉은 능력 있고 운 좋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깔끔한 진 갈색 수트를 입은 조금은 멋을 아는 잘 익은 밤 톨 같았다.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아제는 갈색 구두 손님과 끝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디 군엘 다녀왔으며, 어느 대학을 나왔는고,.왜 할머니가 고 갈비를 자주 해 주셨는지...

"군대 다녀오는 바람에 좀 늦었지만, 전남대에서 경역학을 공부했었습니다.
"본가는 광주고, 지금은 직장 생황 때문에 부산에 와 있는 겁니다."

"네..? 전남대 나오셨다고요.?

"예.. 왜 그렇게 반문 하시는지.. 행여나 전남대 나오신 것 아니시겠죠? ..허허.."

"아니, 그냥 아는 사람이 예전에 전남대에 재학 했었거든요.! 오래된 얘기입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라 말씀 하셔도 모를 겁니다."

".........................."

한동안 침묵이 흐린 뒤 술잔을 기울이며 두 사람은 끝없는 얘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알 수 없는 흘러간 지난 일들을 소주와 함께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었나? 4학년이었나? 그때 광주에서 큰 시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거리마다 사람 비명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선 붉은 깃발이 흩어 졌었죠."
"골목 곳곳에는 군인들과, 경찰들이 길거리에 지나가던 젊은 사람들을 마구 밟고 때리고 하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그런 광경은 그전에 한 번 더 있었지만, 그때는 작은 시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얼마 뒤,군인들과, 
 경찰들이 몰려와서는 여기 저기 사람들을 마구 난도질하고 잡아가는 일이 사건이 생겼습니다."
" 밖에서 사람들 비명 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에 창문도 걸어 잠그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리고 저보곤 아무것도 하지말고 이불 뒤집어쓰고 다락방에 숨어 있어야
  된다고 말씀 하셨죠. 그래서 전 영문도 모른 채로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숨죽여 다락방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나절을 보내고 밤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밖이 조용해진 것 같으니 나와도 된다고
  하셨네요. 그때 할머니는 젊은 아저씨 한 사람을 방에 눕혀 놓고선 여기저기 물 수건으로 다친
  부위를 닦아주고 계셨었죠. 눈 주위가 터져서 피가 흐르다 말라 붙어 있었고, 다리는 곤봉으로
  맞았는지 정강이뼈가 부러져 살갗을 살짝 밀어내고 있었네요. 그리고 가슴에는 갈비뼈가 부러
  졌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누운 상태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락에서 내려온 난 방 안에 젊은 아저씨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니 놀라는 건 당연했고,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뒤에 숨어 버렸죠."
" 나중에 안 것이지만, 문을 걸어 잠그고 할머니는 불경을 외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 담을 넘는 소리가 나서 조심스럽게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젊은 아저씨가 피
  투성이가 돼서 쓰러져 있었다는군요. 곧이어 골목으로 군경들의 워커소리가 말 발굽 소리 마냥
  우르르 몰려가는 소리가 나고 호각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외던 불경을 장롱 밑에 밀어 넣으시곤 청년을 끌다 시피 데리고 와서 방안에 눕히고는
  정성스레 피 자국을 닦고, 상처부위를 치료 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나고 모두가 잠들은 깜깜한 밤이 되자 젊은 아저씨는 잠에서 깼고, 배가 고팠던지, 아픈
  몸으로 주방을 뒤지다가, 먹을 것이 없자 자리에 앉아 있었답니다."
" 무언가 주방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할머니는 잠을 깨셨고, 그제서야 할머니는 배가 고픈 청년을
  위해서 음식을 차려 주셨습니다. 행여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청년한테 먹고 싶은 음식이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고 갈비라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 늦은 밤에 고등어를 구할 길이 없어 할머니는 집에 남은 조기 한 마리로 반찬을 대신해 주었다고
  합니다."

얘기가 길어지자, 갈색 구두 손님은 술을 한잔 더 따르고, 갈증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입가에 고인 침을 닦아냈다. 하지만, 영호는 별로 재미도 없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태수 아제가 이상하리 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졌고, 포장마차 안에서 태수 아제의 오감을 자신에게 향하게 만든 손님에게 발끝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경쟁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고 갈비를 왜? 자주 해주셨어요?"
"주인 아저씨도 보기 보다 성격이 좀 급하시네요.. 이제 그 얘기하려던 참입니다.. 하하"
"그 청년은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밤 늦게 손수 밥을 차려 주셔서 감사하다며 아픈 몸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
 다. 그런 청년을 보는 할머니는 그러지 말라며 그럼 상처가 덧나니 날이 밝아지면 가까운 병원
 이라도 가보라고 했죠."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난 뒤에 청년은 잠이 들었고, 할머니와 저도 이내 잠이 들었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청년은 덮고 잤던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보이지가
  않았죠.."
"그런 청년이 걱정이 되었던지 할머니는 옆집에 가서 고등어라도 얻어 오는 것인데 하며 한 숨을
 쉬셨죠. 그 청년이 먹고 싶다고 하던 고 갈비라도 해주는건데 하시며 말이죠."
"그 뒤로 고등어를 자주 사오셨어요. 청년에게 못해준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밥 상에 고 갈비가 자주
 올라 왔죠. 그래서 할머니의 그맛에 입맛이 길들여 진 것이죠."
"첨에 들어 왔을 때 말씀 드렸듯이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고갈비를 먹어보기가 어려웠는데, 골목을
 돌아서 나가는데  어디선가 맡아본듯한 냄새가 발을 이쪽으로 옮기게 하더군요. 그리고, 누렁인가
 하는 개도 기억나고 해서요.. 하하.."

그렇게 얘기를 끝맺은 손님은 말이 너무 길어 졌다는 듯이 아제에게도 한잔 술을 권했다. 장사 할 때 손님에게 술을 권하긴 해도 잘 받지 않는 아제가 두잔 세잔을 마셨다. 통 알 수 없는 대화로 긴 시간을 죽이고 나서야 갈색 구두 손님은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돈을 계산하고 한마디 던지며 골목 끝으로 유유히 그림자를 접어 들어갔다.

"다음에 고 갈비 생각나면 한번 들려도 되겠죠?. 그 때는 좀더 오래 머물다 가고 싶네요."

그런 손님을 바라보는 태수 아제 눈빛에 온화한 기운이 맴돈다. 언젠가 한번 태수아제가 던져준 생선을 누렁이가 물고서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걸 바라보는 눈빛이다.

"아제요..손님 갔다. 돈 덜 받은 거라도 있나?,, 뭘 그리 뒷 꽁무니를 빤하게 보고 잇노?"

사념에 잠겨 있는 그의 귓가에 영호는 꿈 깨라는 듯 돌팔매질을 하고, 그제서야 아제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태수 아제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꼬깃꼬깃 먼지가 끼어버린 가셋트에서 테잎을 거내들고선 스잔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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