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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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어요?"

"아...예..이런 인연도 다 있네요.."

"인연이라.. 그런 게 있을까요?"

"책 사러 오셨나봐요?."

"예... 그냥 지나가다 날도 덮고, 책도 좀 볼 겸 해서..겸사겸사요.."

"그렇셨구나...책은 사셨어요?"

"아직.."
"책 고르는 게 만만치가 않아서요.."

영호는 책을 살 것도 아니면서 왠지 책을 사야 될 것처럼 애기를 했다. 두 번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괜스레 고른다는 게 힘든 것처럼 말을 했다. 그랬더니 갈색 구두 아저씨가 제가 하나 골라 드려도 되겠냐며 책을 사는데 도와 주겠단다. 여러 번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친절하게 나오자 불안감과 함께 마음 한 켠에서 불쾌감까지 느껴지던 참이었다. 다른 이의 그런 친철함엔 익숙할 법도 한데, 구두를 밟히고도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갈색 구두 아저씨의 친절은 알 수 없는 가슴 밑바닥의 화를 끌어낸다.

"저 이 책은 어떠세요?"

"괭이 부리말 아이들...?"

"도시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를 터전으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죠. 숙희, 숙자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어두운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리고 있죠.
동준이, 동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가러 돌아오지 않고, 숙자네는 술주정꾼 아버지때문에 친정에 갔던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처참하게 죽어요.
괭이부리말은 경제가 발전하는 사회의 뒤안길에 밀려난 힘없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로 괭이부리말
에서의 가난은 아직도 사람의 영혼과 육체, 사람 사이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주제임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 나온 지 꽤 되었는데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구석으로 밀려났네요. 제가 봤을땐 내용도 괜찮고 좋은데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게 안타깝네요.."
"마음에 든다면 사시고 소문좀 내주세요. 이 책을 읽어본 독자로써 권하고 싶으니까요."

"예.. 그런데, 다른 것 좀 보고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책 홍보를 하듯 줄줄 내 뱉는다. 그런 설명에 반감이 생겨 쌀쌀 맞도록 그 책은 싫고 다른 책을 보겠다며 갈색 구두 아저씨가 건네준 그 책을 내려놓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의 친절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 이 책은 어떠세요?"

"고구려의 발견"

"문명 발전사를 시각으로 살핀 고구려 역사와 그동안 축적된 연구성과를 묶어 독창적 문명권을
형성하고 705년 동안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문명을 꽃피웠던 고구려의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는 책이죠."
"더불어 여담이지만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해서 겨우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그동안의 분을
터트려 납작한 물고기에 "가오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납작해진 물고기를 고구려인
에 빗댄 것이라는 유래도 있죠."
"아픈 과거일 수밖에 없지만, 찬란했던 우리 문화이기에 우리가 지켜야 될 것 같아 권해드
리고 싶네요."

"전 역사는 별로 라서요...그런 것 읽으면 왠지 머리가 좀 아파서...헤헤.."

자기가 역사가도 아닌데 뭐 그런 세세한 유래까지 다 외고 다녀. 웃기지도 않네. 하는 식으로 쌀쌀맞게 내려놓았던 게 미안해 머리를 뒷통수를 긁적이며 건네준 책을 고스란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이책 저책 피해버리자 아예 책을 들이밀었다.
마치 외판원처럼 책을 가슴팍에 들이밀고선 꼭 한 번은 읽어봐야 되는 책이라며 떠 밀 듯 팔에 안겨 준다. 그렇게 그는 책을 소개 해주고 안겨주고선 뒤돌아 서점을 나가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조금 남아서 서점에 들어 왔었던 것이라며 시간이 다 되어서 먼저 가야 된다고 한다. 그럼 빨리 가보시라고 하며 혹 때어 내듯이 등을 떠다밀다 시피 하여 보내버리곤 그가 안겨준 책을 훑어보았다.

"사랑은 결코 이유를 묻지 않고 아낌없이 주고도 모자라지 않나를 걱정합니다. 사랑은
인내의 한계를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에는 믿음의 끝도 없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믿는 일입니다. 믿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진
다고 해도 사랑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끝이 있는 사랑은 끝을 맺기 마련입니다. "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 자신의 장점 때문에, 또 어떤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여느 책과는 다른 표지에 하트 그림이 잇는 것이 독특했다. 글자는 두 줄로 나란히 적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본문의 내용을 읽고 난 뒤
그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내가 미안해졌다. 그가 환한 미소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세세한 책의 설명까지 덧 붙였지만, 그런 그의 친절을 배려라고 믿지 못하고, 불쾌함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쉬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란 걸 뒤늦게 알았지만, 그는 떠나가고 없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이 그 때도 생각이 났더라면 하고, 다음 번에 그를 만나면 최선을 다해 친절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서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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