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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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나인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소풍을 기다리는 꼬마 마냥 밤새 잠을 뒤척거리는 걸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은 일에 대한 감정은 다 똑같나 보다. 많이 피곤했지만 나름대로는
하늘을 날것도 같은 기분인 것 같았다.
 언제부터 세웠던 계획인데 미루고 미루다 첫눈이 온지 이틀이 지나서야 우리는 여행길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동우녀석은 나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기 보다는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데 더 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오늘이라고 별반 다를 일은 없는 듯하다. 벌써 30분이 훌쩍 넘어 버렸으니까.
 문제는 녀석의 그런 점을 알면서도 행여나 늦으면 기다릴 녀석이 안쓰러워 늘 30분씩
먼저 나와 기다리는 내게 있었던 것이다.

 손등을 반쯤 가린 재킷을 들춰 시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드니 늦은게 미안하기라도 한듯 겸언쩍은
미소를 머금은 녀석이 뛰어 오며 날 반겼다.
" 미안. 많이 기다렸어?"
" 아니 별루 "
" 또 미련하게 30분 먼저 나와 기다린건 아니겠지?"
" 어? 아 아니. 늦었다. 빨리 표 끊구 어서 버스타자."
" 그래."

 우리는 더 이상 미루면 계획이 그냥 계획으로만 남을 거란 결론을 내리고 제주도가 아닌
순창 강천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제대 후 군대 동기를 만나러 갔다가 가본 곳인데 단일이나 1박 2일 코스로는
그만 일거란 생각에 이곳을 향하게 된 것이다. 아는 곳이기도 하고 지난 추억에 다시 가 보는것도 좋을것 같았기 때문다.

 서울을 떠나는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더 들뜨게 하는 이유는 내가 많이 사랑하는 이녀석과의
처음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피곤한 것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못했다.
 동우는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거의 중무장에 가깝게 온 몸을
두터운 스웨터와 점퍼로 휘감은 상태였다 . 마치 녹을까봐 옷을 입혀 방에 들여논 눈사람 같았다.
 귀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녀석의 뺨에 키스를 해버렸다.
"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구 "
" 내가 좋다는데 누가 뭐래 "
 능청스레 말하며 나는 동우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웠다.
" 아! 좋다 "
 동우의 눈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 오늘은 왠지 이러고 싶어."
" 그치만 여긴 공공장소구 게다가 우린 게이잖아 "
" 이러면 안된다고 헌법에 쓰여 있는 것두 아닌데 뭘."
"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 쳇 "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사실 당당히 이럴 수 있는 게이가 몇이나 될까?
 동우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자연스러울 일들이 우리에겐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타까울 따름이었다.
 우리의 여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창 밖의 집과 산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우리가 허기를 느낄 무렵 버스는 어느새 중간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직 빈속인데다 뭔가 따뜻한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엔 고를 만한게
그다지 많질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해 토스트와 커피로 속을 채운 후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

  나는 동우와의 추억만들기의 일환으로 새로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마침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나는 동우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의 머리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저항을 조금 느끼긴 했지만 그도 포기한듯 나에게 순응했다. 당황스러웠던건 우리가 아니라 그 여학생이었다.
물론 나에겐 아무 문제가 되질 않았다.

 버스안의 약간의 수근거림이 들리긴 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앚았다.
 그들의 수근거림도 나의 행복을 침범하기엔 내 행복이 너무 소중했던 것이다.

 조금은 다른 집들, 다른 산들, 다른 햇살. 이런것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조금씩 순창에 가까워 갔다.
 순창에 다다랐을땐 우린 이미 다정한 커플처럼 껴안은채 잠이 들어있었다.
 눈을 슬며시 떴을때 역시도 우리는 다른 이들의 시선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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