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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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멍하니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던 첫 출근을 한 남자가 쭈뼛거리면서 지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무슨 일을.....”


“아......”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나서 지환이 사무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은 첫날이니, 마음 편하게 하고요.”

그가 손을 들어 그 남자의 뒤쪽에 있는 서류함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먼저 저 서류함 맨 위쪽에 있는 파일부터 한번 읽어보세요. 올 상반기에 거래 완료된 내용인데, 어떤 거래처와 어떻게 일을 시작해서 어떤 작업을 거쳐서 거래완료를 하는지 여러 번 반복해서 보시면 이해가 될 거예요.”

 

시선을 돌려 지환이 가리키는 서류함을 한번 돌아보고는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거래처 들르셨다가 오후에 출근 하실테니 자세한건 그때 사장님 말씀 들어보시구요. 그때까지는 거래처 이름 정도는 머릿속에 넣어둬 주세요. 대충 어떤일로 거래하는 회사구나 하고 알고 있어야 혹시 전화라도 받게 되면 당황하지 않게 되니까요.”

 

서류함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한번 흘끗 보고나서 지환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 띄어져 있는 계약서를 서너줄 읽던 녀석이 집중이 되지 않는 듯, 낮은 한숨을 쉬고는 책상의 한쪽에 놓여있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안이 사라진지 벌써 몇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안의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만나서 확인해 보았지만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의 가족은 시간이 되면 돌아 올 것이라며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해 보였다.
오히려, 그의 가족은 우안을 찾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우안과 어떤 관계인지,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꼬치꼬치 물으면서 궁금해했다.


그런 그들을 만나고 오는 길에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장현의 표정이 떠 올랐다.

“준하처럼 우리도 호구로 잡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지환의 머릿속에 다시 술에 취해 자신을 노려보던 준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우안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네가 눈꼽 만큼이나 알기나 해?”


그리고 다시 장현의 집에서 무너져 내린 모습으로 비통에 잠겨서 읊조리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우안이 다시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방 한구석의 책장에 올려져 있던 작은 상자를 집어들고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을 뒤로 밀고 그는 묶여있는 녀석을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냈다.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놈의 모습이 테이블 아래에 드러났다.

몸을 굽히고  험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서 준하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상자를 그놈의 부어있는 눈 앞에 내밀어 보였다.

“내가 너를 위해서 전부터 준비해 놓은 게 있다.”

그리고 그가 상자를 열어 그 속의 내용물을 녀석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네가 오늘 밤 지옥까지 갈 때 쓸  노잣돈이다.”

준하가 공포에 질려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어린 준하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 지옥도 아까울 새끼야.”

그의 악문 입 주위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놈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눈은 분노와 고통에 차 있었다.

그가 잔인한 눈빛으로 분노의 신음을 내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살려달라고 네 더러운 목숨 구걸하지 말고 인간답게 죽여달라고 빌어! 이 쓰레기야!”

 
 

 

“이제. 여기가 네 놈의 끝이다.”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준하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번 문지르고 놈을 내려다보았다.

“빨리 끝내자.”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듯 검붉게 부어오른 눈 사이로 그를 올려다보는 눈을 내려다 보던 그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구겨진 손수건을 꺼내서 그것으로 녀석의 얼굴을 가렸다.

 

 

양손을 뻗어 녀석의 목의 피부에 닿는 순간  그것의 닿는 감촉에  갑자기 그의 왼손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런 손가락의 반응에 놀라, 쭈그리고 앉아 그는 자신의 가슴에 왼손을 얹고 진정을 시켰다. 그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그의 입 밖으로 분노를 삼키는 신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의 떨리는 왼손은 간신히 진정 되는 듯 했다.

 

쓰러져 있는 녀석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녀석의 코와 입 사이의 인중을 덮고 있는 손수건의 천 조차 미동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녀석의 목을 향하는 그의 왼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왼손을 잡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의 오른손 안에서 조차 왼손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을 내려다 보면서 상체를 굽히고 있던 그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와 그의 눈을 자극하고 미간 사이를 따라 흐른 땀은 코 끝에 매달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묶여있는 녀석의  가슴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자식의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준하는 비탄과 고통으로 범벅이 된 한 숨을 내쉬었다.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된 등에 그의 속옷이 달라붙어 있었고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그의 양손이 다시 경련을 일으켰다.
 

“아아....*발!!”

분노와 한숨의 신음을 크게 내뱉고는 그는 손을 뻗어 녀석의 얼굴을 덮고 있던 손수건을 집어들고 어린 준하를 노려보았다.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는 놈을 그렇게 노려보고 있는 준하의 악문 어금니 사이로 분노와 괴로움의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는 현관을 향해 비틀거리며 발을 옮겼다.

 

새벽의 찬 바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속옷 차림의 그를 매섭게 스치며 지나갔다.

건물의 외벽에 간신히 기대어 서있던 그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치의 세계에서 성공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던 어렸던 자신의 모습이 그런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권력을 손에 거머쥐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어린 그의 꿈이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성공했다고 칭송을 받고 있었고, 자신도 그렇게 존경하던 그의 아버지도 정계의 고위인사라는 어떤 이에게 꼼짝도 못하고 무릎을 꿇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어렸을 때의  꿈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어떻게든,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런 세계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그의 삶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학연과 인맥의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그 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정치의 세계에서 어떠한 흠이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은 확실히 감추고 살기로 결심했었다.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해서 생길수도 있는 아웃팅이 정치의 세계에서도 아웃이라는 것을 그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자신의 발목을 잡힐 오점이 되는 일은 결코 얽히지 않겠다고 그는 맹세했다.

그리고 입학한 후로 정치쪽에서 성공했다는 가문출신의 자제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성공한 미래를 향해 모든 시선을 집중했다.

 


교내에도 게이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동아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는 참여는 커녕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고 종로에도 발걸음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이룰 자신감과 굳은 의지가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동물적인 본능까지는 억제할 수 없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한 학기동안 같은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그때 그는 인혁이를 알게 되었다.

그룹과제를 같이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알게 되었다.
사려깊고, 진실해 보이고 믿음이 가는 그를 보면서 오로지 정치의 길로 향하는 방향만 바라보던 그의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서로가 상당히 친해지고 편해졌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교양수업의 자료를 공유하려고 그 두 녀석은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고 교제를 뒤적거리던 인혁이의 책갈피에서 전단지 한 장이 튀어나왔다.

아무 생각없이 준하가 날렵하게 손가락을 내밀어 빼어 든 그것은 어떤 게이 인권단체의 모임 안내장이었다.

당황해 하는 인혁을 보면서 준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성공한 정치가가 될 거야.  그리고 소외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인생을 바칠거야.  그러니 너의 모습이 나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쯤은 신경쓰지마.”
 


그렇게 인혁의 비밀을 알게 된 준하의 마음속 한켠이 슬그머니 바뀌기 시작했다.

녀석의 앉아있는 뒷 모습이 신경이 쓰이게 되고, 자신의 눈에 비치는 녀석의 눈웃음에 어느 한 순간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지금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마침내 녀석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밖으로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 하나가 점점 큰 파동을 일으키고 있을 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그의 작은 실수에서 발단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교내식당에서 내로라하는 집안 출신인 같은 과 녀석들과 같이 미래의 모습을 점치면서 희망에 부풀어 올라 대화의 삼매경에 빠져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평상시에 자신을 못마땅하게 보는 듯 하던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던 같은 과의 한 녀석이 음흉한 미소를 띠고 그에게 다가와 히죽거렸다.

“너. 이거 뭐냐?”

그 친구가 준하의 배식판 옆에 유에스비 한개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그것을 본 순간 준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버렸다. 태연하려고 했지만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한순간에 느끼고 있었다.

 

1인실 기숙사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의 하드에  욕망을 해소할 수단으로 야동을 보관하는 대신, 그는 유에스비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번 사용하고 난 후에는, 유에스비를 제거하고 반드시 흔적과 쿠키마저 잊지 않고 삭제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유에스비도 옷장 깊숙한 곳의 철이 지난 옷의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결코 타인이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과 친한 친구 녀석들과 친해지려는 의도에서,  또한 자신은 개방적이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는 문을 잠가 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필요할 때에는 자신의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방 출신인 그가 서울 본토박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발을 넓히고 성공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한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완벽하게 뒤처리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이 그는 믿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그를 비웃는 얼굴로 녀석은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니 컴퓨터 본체에 꽂혀있더라.” 녀석이 비웃듯이 말하고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뭐,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지.”

녀석은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니까 이해는 한다만.....”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변명도 못하고 있는 준하의 얼굴을 여전히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면서 빤히 들여다보고는 녀석이 피식 웃었다.

“관리는 잘 해라.”

 

“그거.....”

아직까지의 그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벗어나야했다.  인생의 전부라고 믿으면서 아직까지 그렇게 고생해서 쌓아올린 노력이 이렇게 무너져서는 결코 안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꿈 꿔왔던 미래가 이렇게 물거품이 되면 절대로 안되는 일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 순간을 벗어나야 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를 산채로 잡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진정시키고 빠져나갈 궁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떠한 방법도 있을리 없었다.

구내식당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려 있었다. 

그런 그들을 둘러보다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혁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야. 이거....”

그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던 유에스비를 집어들었다.

“내꺼 아닌데....”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녀석들과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히죽거리며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노려보던 녀석의 표정이 바뀌었다.

“인혁아. 이거 혹시 니꺼 아니야?  이거 니꺼 맞지?”

꺼져가는 꿈을 되살리기 위해 그는 그렇게 친구를 팔았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온 인혁이가 그의 손에 들려있던 유에스비를 집어들었다. 

“미안하다. 내가 깜빡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그는 등을 돌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식판을 들고 식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저 자식꺼였어?”

친구녀석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준하의 어깨를 툭 쳤다.

“친구도 가려서 사귀어라. 성공하려면...”

녀석들이 준하를 향해 어색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는 그렇게 친구를 배신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준하는 인혁에게 큰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와 인혁이 살아가는 곳은 소위 말하는 학문의 전당이며  뛰어난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강의 시간에, 혹은 공적인 모임에서는 앞 다투어 그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노래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인권에 관련되어서 무지한가를,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인권 후진국인가를 침이 튀도록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들 자신이 얼마나 진보적인지를, 자신이 아닌 타인의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들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떠들던 그들의 가려져 있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자신만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와  자신을 감출 수 있는 곳에서는 그들은 그렇게 그럴듯하게 보이던 위선의 가면을 벗고 내면에 감추고 있던 비열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잠시 비워둔 사이에 누군가가 인혁의 가방에 개똥을 넣어 놓은 것으로 그의 피곤한 삶이 시작되었다.

강의실 칠판에 ‘호모는 어떻게 그 짓을 하는가.’  라는 글 아래에 입에 담기 힘든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의 표현들을 그는 직면해야 했다.

그의 옆을 지나쳐 가던 서너명의 남학생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야 저기 호모다.” “호모봤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그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슬그머니 다가와서 ‘제것이 배터리가 다 나가서 잠시 휴대폰 좀....“ 하고 그의 것을 빌린 어느 여학생은 그의 휴대폰을 손에 쥐자 슬그머니 시멘트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아 죄송! 손이 미끄러워서....’ 라는 말을 하고는 옆에 서 있던 친구와 킬킬거리면서 사라졌다.

같은 게이모임에 있던 녀석들도 그런 그를 피해 다녔다.

그리고  곧,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안하다.“

학교와는 동떨어진 작은 공원에서 한 밤중에 준하는 인혁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너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그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에 인혁이 손을 얹고 토닥거렸다.

“너가 얘기 했었잖아. 정치쪽에서 성공하고 싶다면서....”

“.........”

“약점 잡히면 처음부터 불가능해진다면서...”

나지막한 그의 그런 말에 그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해.”

울음섞인 목소리로 사과를 하면서 그가 인혁의 발 옆으로 쓰러졌다.

“일어나. 난 괜찮아.”

손을 뻗어 인혁이 그런 준하의 팔을 잡아 끌어 올렸다.






“이제 8부 능선 넘었다.”

이제 공원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인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지나면 지들도 지겨워져. 알아서 새로운 거 찾아서 떨어져 나갈거야. 그럼 곧 나는 잊혀질거고....”

 

“정말 미안해....”

차마 인혁이를 보지 못하고 그가 아픈 목소리로 다시한번 사과를 했다.

“그러지 마라.”

인혁이 그런 그의 등을 토닥였다.

“넌 나중에 반드시 성공한다면서?”

“.......”

“그때 세상에 뭔가 보여줘.  너가 이렇게 노력해서 성취한 너의 진면목을 .....”

“........”







“친구를 팔아먹는 놈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무슨 진면목을.....”

벽에 기대고 쪼그리고 앉아 괴로운 듯 준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머릿속에 다시 고속도로의 난간을 들이박는 순간의 인혁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 광경에  그의 입 밖으로 고통의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인적은 찾아 볼수 없는 황량한 들판에 곤두박힌 차의 찌그러진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빼끔히 열리고 피가 뭍은 손이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을 힘들게 인혁이 간신히 차에서 빠져나왔다.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배어나와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팔로 땅을 짚고 그가 간신히 일어서더니 고개를 들고 가만히 준하를 바라보았다.

한순간 그의 모습이 준하의 앞으로 클로즈업되어 다가왔다.
상처가 사라진 환한 얼굴이었다.

“힘들었지?”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준하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이제 괜찮아.”
얼굴에 미소를 띠고 그가 준하를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펴고 준하가 그의 볼을 만졌다.  손가락이 그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인혁을 바라보던 그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맺혔다. 

“조금만 기다려. 그 자식이 저 안에 있어.  곧 그 자식을 내 손으로....”

“그냥 용서해라.  이미 지난 일이야.”

“난 그렇게 못해.”
준하가 이를 악물고 머리를 저었다.

“내가 왜 아직까지 숨쉬며 살아왔는데!”
충혈된 눈으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그가 인혁을 바라보았다.

그런 준하를 보면서 그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랬잖아. 시선만 조금 돌리면 되는 일을 네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네가 너무 외골수라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난 그렇게 못해.”
굳어진 표정으로 준하가 그를 외면했다. 

인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 녀석을 용서했어.  여기까지면 충분히 됐어. 네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 지 이제 충분히 다 보여줬어.  그거면 돼.”

“내가... 내가 용서 못 해.”
손을 들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가 손바닥으로 무의식적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인혁에게서 집의 현관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집의 창문에 비친 너울거리는 화염의 빛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놀란 그가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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