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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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오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는 술집의 입구쪽을 향해서 앉아 있던 종석이가 손을 들어 보였다.

 

일찍 오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약속시간 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나는 그렇게 어물쩍 미안한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고 녀석들 사이의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축하 모임이야?” 기분이 좋아보이는 녀석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물었다.

 

 

 

 

불금이라고 주형이 형과 약속까지 한 것을  취소 하고 참석하게 된 자리였다.

 

늦지 않게 출발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윤대리가 퇴근하려는 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클리오네와 관련된 서류를 모두 가져 오라고 했다.

서류를 건네주고 돌아서는 나를 그는 다시 불러 세웠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하나하나 확인 해야겠다면서 그는 나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나는 한시간 반 동안 그의 앞에서 그가 시시콜콜 묻는 내용에 대해서 대답을 하면서 그가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 지겨워질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류의 여기저기를 뒤져 보면서 그는 어딘가에서 꼬투리를 잡을 만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듯 보였지만 나는 그 일에 관해서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딴에는 그의 질문에 조근조근 논리적으로 답변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출발이 많이 늦어져서 친구들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이미 녀석들은 어느정도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우영이가 회사에서 벌써 두 번째 프로젝트를 맡았단다.” 웃는 표정으로 술잔만 들고 있는 우영이를 대신해서 종석이가 말했다.

 

정말 장난 아니지. 이제 입사한지 일 년 밖에 안됐는데....”

 

윗사람들에게 눈도장 확실히 찍은 거지...” 우영이에 관한 녀석들의 칭찬 일색의 대화를 들으면서 소주병을 들어 빈 우영이의 술잔을 채웠다.

 

! 늬들도 다 잘 나가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호들갑은.....” 녀석의 말에 우영이가 피식하고 웃었다.

 

너도 이번에 우리 회사하고 계약한 것 거의 완료했다면서?”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

 

계약 만료 기간은 7월초인데 진작에 끝냈다고 한 대리가 그러던데?”

 

... 원래 계약을 분할 한 것이라서.. 그렇게 눈에 띄게 잘 한거라고는....”

 

그래도 너가 대단한게....” 우영이가 눈에 빛을 내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제조업체하고 거래를 맺었냐?”

 

어디길래?” 그런 우영이의 말에 종석이와 민호도 관심이 생긴듯한 표정으로 나와 우영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틀란타라고 꽤 큰 제조업체거든. 승우가 거기하고 거래를 맺었더라고... 근데 거긴 여간해서는 계약하기가 쉽지 않은덴데... 신용이 쌓여있거나 믿을 만한 실적을 보여줄수 있거나...

 

그렇게 말하면서 우영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같은 신입사원이 계약을 할 수 있을 만한데가 아닌데...“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화제가 바뀌기를 바랬으나,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세 녀석의 시선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충 말해주고 내가 다른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형이형의 도움을 좀 받았어. 아무래도 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라서....“

 

그럼 그렇지...“ 우영이 녀석의 눈에 서려있던 의심의 눈빛이 슬며시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대단한거지...니네 학교 졸업해서 너처럼 잘 나가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을 걸?”

 

칭찬인지 디스를 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 이번에 네가 맡은 일 성공하면 너 특별 승진할 수도 있다면서? 대리로 말야.” 종석이가 우영이를 보고 다시 물었다.

 

사규가 있는데 뭐 그렇게 쉽게 되겠어?”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가 손을 저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너 저번 프로젝트도, 팀장도 힘들거라고 포기하는 걸 네가 해보겠다고 나서서 성공했다고 사보에도 나왔다면서? 표지모델 된 거 아니었어?”

 

표지에 나오긴 무슨....” 녀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냥 우수사원 표창 받으면서 인터뷰 기사가 조금 실린 거 뿐이야.”

 

 

 

오늘은 주형이 형은 안 나올건가 보다.” 알맞게 술이 취한 후, 분위기가 조금 지루해지자 민호가 입을 열었다.

 

그 형....” 우영이가 소주병을 들고 각자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입을 열었다.

 

애인 생겼대.” 짐짓 태연한 표정을 하고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 종석이와 민호가 똑같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공연히 얼굴이 빨개져서 우영이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긴장으로 숨이 막혀 왔다. 슬며시 눈치를 보면서 숨을 죽이고 우영이의 표정을 살폈다.

 

누군데?” 민호가 물었다.

 

모르지. 그건..”

 

“.......”

 

사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거 같긴 해.”

 

조금 쇼킹한 뉴스이긴 하다. 난 어짜피 너랑 잘 될줄 알았는데...”

 

종석이가 녀석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 나 사실....” 술기운이 많이 올랐는지 이제 부정확해진 말투로 우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자존심 다 버리고 그 형 따라다녔다.” 그가 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눈을 문질렀다.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일부러 돌아서 형 사무실 앞에서 기웃기웃 거려보고... 괜히 근처를 서성거리고... 일 때문에 지나가는 척 하면서 사무실 들러서 형한테 커피 건네 주고 가고...”

 

“......”

 

주형이 형이 카페인 중독이거든...”

 

“......”

 

얼마전에도 백화점에서 형하고 잘 어울릴 것 같은 넥타이 사가지고 갔었거든..... 승우 너도 알지? 그때 너 주형이형 사무실에 있었잖아.”

 

우영의 말에 다른 녀석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

 

그랬는데도, 그 형이 그 다음에 내가 준 넥타이 한 것, 아직까지 한 번도 못봤다. 비싼 거였는데....”

 

종석이가 소주병을 들어 그런 우영이의 앞에 내밀었다.

 

잔을 받으면서 우영이가 붉어진 눈으로 휴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울한 표정으로 채워진 소주잔을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도대체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

 

언제 소개한번 시켜달라고 그래.... 그게 뭐 어렵겠냐? 아무래도 술 한잔 하러 오는데가 종로일텐데...”

 

민호의 말에 우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다고 하더라...”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축하해줄수는 없는 일이고...” 이제 마찬가지로 꽤 취한 듯해 보이는 종석이가 실실거리면서 우영이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형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야지. 아니면 내 손에....”

 

녀석이 빈 술잔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움켜 쥐었다.

 

, 도저히 그런 꼴 못 봐. 내가 죽으면 죽었지.”

 

녀석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고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영이가 손을 뻗어 소주병을 움켜 쥐고는 자신의 잔에 넘치도록 따랐다.

 

그리고 친구 녀석들은 그를 이제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우영이를 보면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영이가 화장실로 간 후였다.

 

자식, 말하는게 살벌하네.” 민호가 우영이가 사라진 곳을 보고 시선을 돌리면서 혼잣말 하듯 말했다.

 

, 예전부터 보통은 아니었다는데, 무슨 일 벌이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종석이가 민호와 나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걔 고등학교때 담임이 지 마음에 안든다고 애들 부추기고 지 부모까지 압력 넣게 하고 탄원서까지 넣어서 지 입맛에 맞는 다른 선생을 담임으로 바꿨다고 자랑 했었잖아. 담임했던 선생은 거기서 못 버티고 다른 학교로 전근가고...”

 

그거야....” 종석이의 말에 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는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는 십대였을 때고... 지금은 다르지...”

 

그렇겠지?”

 

 

 

쟤 혹시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건 아니냐?” 화장실로 향하는 쪽을 흘끗거리던 종석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지가 능력있고 일을 잘한다고 해도 이제 겨우 2년차 되는 건데....”

 

우영이 걱정은 넣어 둬.” 민호가 피식 웃었다.

 

걔네 아버지가 강남에서 잘 나가는 로펌의 간부다. 그리고 지금 우영이가 다니는 회사 법률팀에 고문도 자기 아버지가 맡고 있거든. 그런 아버지가 회사에서 밀어주고 있는데 걱정은 무슨....“

 

그런 걸 보면 주형이형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거야. 그치?”

 

그렇지. 그 형도 진작에 부장으로 승진도 했어야 하는데... 요새 회사에서도 배경 없고, 인맥 없으면 승진은 커녕 은근히 퇴사 압력까지 받기도 하잖아.”

 

그렇지....” 민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겉으로 티가 나게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모두 다 그런 인맥과 배경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거지... 고구마처럼 말야. 뿌리 하나를 잡아당기면 땅 속으로 사방팔방으로 다 얽혀 있잖아. 그렇지 못하면 혼자 뚝 하고 떨어져 나가는 거지 뭐.”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만취한 듯한 우영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야 괜찮은거냐?” 민호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마.” 녀석이 의자에 털썩 앉아서 손을 저었다.

 

씨이팔.” 험악해진 얼굴로 녀석이 갑자기 욕을 뱉어냈다.

 

놀란 나와 다른 녀석들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네 그거 아냐?” 녀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그 형 약점하나 쥐고 있다는 것 아니냐.”

 

“........”

 

그 형도 알아. 내가 그 형 목에 개목걸이를 채워 놓았다는 걸 말야.”

 

한순간 험상궂은 표정을 한 녀석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녀석의 눈빛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자식이 형에게서 떨어져나가지 않으면...”

 

“........”

 

여전히 녀석은 나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천천히 줄을 당겨서 숨통을 조여버릴거야.”

 

‘“! !” 민호가 그런 녀석을 불렀다.

 

취했냐? 이 자식,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민호의 말에 녀석이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민호를 바라보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녀석의 말투가 조금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 형 아버지가 사업하다 들어먹어서 빚만 남겨놓고 죽었거든. 그 충격 때문에 어머니는 치매 걸려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고....”

 

“........”

 

내 부탁으로 우리 아버지가 그 형 이래저래 많이 도와줬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 못 있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쪽 일에서 그 형 발도 못 붙여....”

 

녀석이 말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들려 슬며시 나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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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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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일까? 성악설일까? 문득 궁금해지는 글이네요.
리얼한 느낌의 대화체가 몰입도를 높여주네요.
더운 날,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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