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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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승우씨가 자발적으로 박주형과장에게 거래서류를 건넸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계약서상의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많이 있어서 설명을 부탁드리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대리의 부탁으로 클리오네 본사의 2층에 있는 직원용 카페에서 면담이 시작되었다.

 

 

업무부의 대표로 50대 초반의 여성 팀장과 마흔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매서운 눈빛을 가진 법무팀의 팀원이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고 난 뒤, 보안상의 이유로 카페는 임시로 문을 닫았다.

 

질의가 시작되기 전, 그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모든 답변은 비밀이 백퍼센트 보장될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모든 대화는 녹음이 될 것이며 추후에 일어날 어떠한 분쟁을 방지할 목적이라고 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대답은 심사숙고 후에 해 줄 것을 그들은 나에게 요구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자료는 유출이 절대로 불가하다며 나에게 그것을 보장하는 기록을 넣겠다고 했다.

 

단지 이번의 모든 대화의 기록은 박주형 과장에 관한 징계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과 업무부에서 제소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에만 쓰일 것이라고 그들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음악까지 꺼버린 조용한 카페에서 그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뒤편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한수진 대리는 수첩에 열심히 대화의 내용을 적고 있었다.

 

 

 

클리오네사에 납품할 제조업체를 지정한 것도 박주형과장이 아니고 이승우씨 본인이란 말씀이지요?”

 

법무팀의 남자가 한쪽 눈썹을 치켜 세우며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참조할 수 있는 믿을만한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박주형 과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박과장님께서 제게 거래업체 열한곳이 적혀있는 목록을 보내주셨습니다. 상공회의소에 등록 되어있는 업체 중에서 담당자의 조언을 구하고 선정을 한 후, 정확한 거래의 성사를 위해서 박주형 과장님께 그들과의 미팅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우씨.”

 

대화를 계속 듣고만 있던 업무부 대표가 입을 열었다.

 

.”

 

우리는 그 건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한 비밀보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또한 필수적인 일이니까요.”

 

.” 그녀의 말에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승우씨 개인적으로 의심을 할만한 사람이나,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이 자리에서 말씀해주시겠어요?”

 

“..........”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녀석이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던 차가운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녀석은 나의 친구로 남아있었다. 그 녀석과 같이 보낸 지난 몇 년동안의 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내 눈앞에서 흘러갔다.

 

대학시절 돈이 없던 내가 성냥개비를 꽂은 초코파이를 녀석에게 내밀었을 때 개구쟁이처럼 웃으면서 입을 벌리고 불을 끄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던 그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녀석이 변해 버린 것일까? 아니 나도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나와 녀석의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업무부 대표와 법무팀 팀원의 사이로 그 뒤에 앉아 있던 한수진 대리도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나도 그를 이렇게 그들에게 넘겨버리는 것은 정당화 될수 있는 일일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 왼쪽 눈꼬리에서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 내렸다.

 

슬며시 손바닥으로 볼을 문질렀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업무부 대표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티슈박스에서 몇장을 뽑아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게....” 그녀가 건넨 티슈로 눈을 문지르고 나서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들의 시선이 다시 나의 입에 집중되었다.

 

마치 혀가 마취라도 된 듯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라고....”

 

내 앞에 앉아있던 그 둘의 표정이 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 순간 굳어버렸다.

 

한수진 대리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해외 영업 2부 이우영 사원을 말하는 건가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업무부 대표가 나에게 물었다.

 

.”

 

그 이우영사원하고는 어떤 관계인가요?

 

친구...였습니다.“

 

친구 였다는 그를 이승우씨가 의심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이 일이 있기전에....”

 

말을 꺼내고 나는 다시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침을 삼켰다.

 

술자리에서 저와 둘이 있을 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했나요?”

 

내 앞일 걱정하라고....박주형 과장이 나를 어디까지 커버 해줄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내 말에 잠시동안 그들은 할 말을 잊은 듯 다시 굳어진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법무팀의 고문을 맡고있는 저명한 변호사의 자제였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아버지의 영향력안에 있는 대기업에 입사를 했던 이우영이었다.

겨우 입사한지 6개월만에 팀장도 포기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우수사원으로 표창을 받았으며 사보에도 인터뷰 기사가 나서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였다. 그렇게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롤모델로 남부러울 것 없는 탄탄대로를 달리던 녀석이 사내의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내부고발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의 생각으로도 절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 난감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전혀 나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듯한 법무팀의 팀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승우씨.”

 

마침내 그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

 

고향이 어디죠?”

 

군산입니다.”

 

서울은 언제 올라왔나요?”

 

대학교 입학하면서.....”

 

대학명이 뭐지요?”

 

“.........”

 

대학교 이름이 뭐예요?” 그가 마치 짜증이 난다는 투로 재차 물었다.

 

삼현대학교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변하고 한층 여유를 보였다.

 

다시한번 묻겠습니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승우씨가 말한 이우영 사원이 해외 영업 2부 이우영 사원이 맞나요?”

 

.”

 

나의 말에 그가 소리를 내어 피식 웃었다.

 

이우영 사원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당황한 얼굴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살아온 지역, 배경, 출신학교 등등. 클라스가 전혀 다르고 공통점란 것은 눈씻고 봐도 한가지도 찾을 수 없는데 이승우씨가 그 이우영사원하고 친구사이였다고 하니 묻는 거예요.”

 

“........”

 

친구이긴 커녕 두 분은 한 장소에서 마주칠 일도 없어 보이는데요? 내 눈에는?”

 

“.......”

 

클리오네사와 업무를 보느라 자주 왕래를 하다가 혹시 로비에서 지나치는 그를 본 것은 아닌가요? 목에 걸려있는 그의 사원증을?”

 

“........”

 

아무말도 못하고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띠고 빤히 바라보았다.

 

이승우씨.”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업무부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이우영씨와 어떻게 만나서 친구가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여전히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빤히 보던 법무팀 팀원이 고개를 으쓱하더니 옆에 앉은 업무부 대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시간낭비 같은데....”

 

 

종로에서요.”

 

그런 그의 반응에 나도 몰래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

 

모두 내 말에 시선을 나에게 돌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디라고요?”

 

뚱딴지 같은 나의 대답에 여전히 피식 웃으면서 법무팀 팀원이 물었다.

 

종로에서 만나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그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종로.... 게이클럽에서 이우영 사원을 만났습니다.”

 

이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나의 입을 통해 나온 정확한 발음의 말에 그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상치 못한 나의 뜻밖의 답변에 업무부 대표도 놀란 표정이었다.

 

한수진 대리만이 침착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황한 목소리로 법무팀 팀원이 말을 더듬었다.

 

사적인 부분이니 기록에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업무부 대표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록하시고 사용하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고 그녀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도 또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녀석과의 우정을 뒤로 한 채로 녀석을 그들에게 넘겨버렸다.

 

한순간 막강한 힘을 가진 듯 보였던 녀석이 이제 서울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어져 버린 나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렇게 녀석과 나의 우정이란 이름으로 이어졌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나 버렸다.

 

 

 

 

정문까지 따라나온 한 대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승우씨 정말 고마워요. 쉽지 않았을텐데.”

 

아닙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이제 우영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제 조사가 들어가야죠. 어떻게 되어가는지 이승우씨에게 계속 알려줄게요.”

 

.....”

 

?” 말을 꺼내고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그녀가 물었다.

 

박과장님은 잘 계시는지....”

 

나의 말에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피식 웃어보였다.

 

이번일로 마음고생이 심하셔서 얼굴이 좀 상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지실 거예요.”

다시한번 나에게 손을 들어 슬며시 흔들어 보이고는 그녀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프루스트와의 거래가 마침내 종결되고 마지막 출근을 한 날이었다.

 

 

파일을 모두 정리하고 책상 주변도 정리 한 후, 나에게 주어졌던 노트북도 반납을 했다.

 

5층의 상품관리과 과장과 안면이 있는 직원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했고,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영업 3팀의 직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정지영씨를 슬며시 불러내어 따뜻한 커피한잔과 작은 케익을 건네 주었다.

 

그녀가 예전에 내게 베푼 작은 말 한마디가 내가 아직까지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돌아오지 않는 윤대리를 기다리다가 김과장에게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얼굴에 복잡미묘한 표정을 하고 그는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면서 때마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윤대리와 마주쳤다.

 

마음속에 증오가 쌓여있던 그였지만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한없이 위협적인 사람이었지만 어느 새 나의 눈에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도록 그는 작아보였다.

 

그에게 슬며시 고개를 숙여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 나를 보고 그가 마치 아니꼽다는 투로 피식하고 비웃었다.

 

깜도 되지 않는 놈이 걸맞지 않은 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런 그의 말에 나의 입에서도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나의 후임으로 오는 신입사원에게는 잘 대해주세요.”

 

그런 내 말에 그가 콧방귀를 끼었다.

 

내가 내 후임을 내 마음대로 대하는데 너 까짓게 무슨 상관인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런 그의 태도에 오기가 발동한 나의 입에서 반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난 똑똑하지도 못해. 스펙도 형편없어. 하지만 당신이 한 모든 짓이 내 머릿속에 다 저장되어 있어.” 그를 노려보며 손을 들어 검지로 나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뜻밖의 나의 태도에 그가 입을 벌리고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회사직원들도, 우리회사와 거래하는 거래처 직원들도 모두 나와 안면이 있고....”

 

“........”

 

만일 내 후임이 당신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말을 소문으로라도 듣는다면 그에게 당신의 그 잘난 비밀을 모조리 폭로할거야.”

 

나의 말에 그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개의치 않았다.

 

직장생활 똑바로 해. 최소한 회사에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아야 할 것 아냐!”

 

그렇게 여전히 나를 노려보는 그를 여유있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이제 더 이상 내가 속하지 않는 건물의 정문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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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여전히 드래그를 해서 이곳에 올리면 아랫부분이 잘리는 현상이 발생하네요.   

혹시 잘린 부분을 읽으신 분이 계시면 다시 올렸으니 아랫부분을 마저 읽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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