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선생님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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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와 잠을 깨운다.

밤새 악몽을 꾼 듯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것 하나 기억나는 꿈은 없다.

잠시동안 잊었던 현실로 돌아오자 다시 비참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침대에서 힘없이 일어나 씻고 식탁에 앉는다.

"영민이 왜캐 힘이없냐. 눈도 붓고 잠 못잤냐?"

"몰라요.."

아버지의 물음에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고개숙인채 밥을 먹는둥마는둥 했다.

지난 밤에 썼던 편지가 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한다.

등교길 내내 이 편지를 어떻게 전해줄까 고민에 빠진다.

순간순간 이성이 돌아와 편지를 전해주지 말라고 다그친다.


수업시간 내내 내면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수업이 모두 끝났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종례를 마치고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나간 교실에 앉아 한참을 고민한다.

'아 이판사판이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는 상담실로 향한다.

막상 문 앞에 다다르자 차마 문을 열지 못한다.

1시간 같은 5분이 지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상담실 문을 노크한다.

'똑똑'

조용하다. 기다렸지만 인기척이 없다.

다시한번 노크를 한다.

'똑!똑!'

역시나 반응이 없다. 조심스레 상담실 문을 연다.

상담실 안은 비어있다. 아직 선생님의 외투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퇴근하지는 않은듯 하다.

조심스레 들어간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지난밤에 쓴 편지를 꺼낸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외투 안주머니에 넣고는 도망치듯 상담실을 나온다.

"영민이 너 왜 거기서 나오냐?"

"네? 아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안계셔서요."

"응? 할말? 그래 그럼 들어와."

"아... 아니에요.. 다음에요..."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복도를 돌아 학교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심장이 벌렁거려 당장이라도 터질것 같았다.

결국 그 편지를 두고 나왔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편지를 다시 가져와야하나 수많은 후회들이 머리를 스친다.

'아냐... 몰라... 될대로 되라지...'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신경이 쓰인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2시간 넘게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발견했을까? 읽었을까? 뭐라고 생각할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문다.

'따르르릉'

집 전화가 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한건 아니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거실로 나가니 이미 엄마가 전화를 받아서 통화중이었다.

"네.. 잘 지내죠? 그럼요. 네... 영민이요? 영민이 방에서 공부중이에요."

내 이름이 나왔다. 통화중이던 엄마는 내 방쪽을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엄마.. 누구야?"

"응? 아 작은 삼촌이야."

'휴.. 선생님이 아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다시 걱정들이 머리를 금새 채운다.

그 이후로도 집 전화는 두어번 울렸지만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전화가 올때마다 거실로 나가서 서있는 나를 보고는 엄마는 이상한지 연신 갸웃 거렸다.

긴장감은 결국 풀리지 않고 잠자리를 한참이나 뒤척이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학교를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선생님과 어떻게 얼굴을 마주칠수 있을까...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

그런 걱정에 발이 안떨어진다.

평소에는 출발했을 시간인데 자꾸 왔다갔다하니 엄마가 무슨일인지 묻는다.

결국 늦장부리다가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에 집을 나섰다.

지각을 간신히 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에서야 교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미 아이들과 선생님은 조례 준비 중이었고 모두들 나를 돌아봤다.

그 많은 아이들의 시선들보다 선생님 한명의 시선이 나를 당황시켰다.

"영민이 오늘은 늦을뻔 했네."

그렇게 말하고는 조례를 시작했다.

'특별한 말은 안하네.. 하긴 애들 있는 앞에서 그 얘기를 하지는 않겠지..'

조례를 마치고 학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어제와 오늘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 변했을 뿐... 선생님 조차도 평소와 같다.

'편지를 못봤나?'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부를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종례를 위해 들어왔다.

선생님은 평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 못본거야.. 아냐.. 보고도 모른척 하는거야..'

이런저런 생각에 기분이 점점 울적해진다.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들 때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영민아, 잠깐 선생님 보고갈래?"

"네?? 아.. 네..."

'봤다...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혼나나?'

죄인마냥 선생님의 뒤를 따라 상담실로 향했다.

"편하게 앉아라"

"네.."

선생님은 나를 앉히고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컵에 따라 주셨다.

그리고 옆에 조용히 앉았다.

잠깐의 정적...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이 무한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윽고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영민아, 어제 편지 봤다."

"..."

"음... 영민이가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는 몰랐다...어...그래 선생님은 날 좋게 생각해줘서 좋다."

"..."

"그래.. 나는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거에 대해서 절대 나쁜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너는 선택한게 아니고 그렇게 태어난거고 취향은 존중받아야지."

"..."

"음..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과 학생이잖냐? 영민이 너랑 내가 사귀면 그건 손가락질 받을거다."

예상했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상이다. 내가 상처받을까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선생님의 배려가 넘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예상했던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다.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이내 뚝뚝 떨어진다.

참아보려했지만 점점 더 참기 어렵다. 

"꺼억꺼억"

꼴사납게도 눈물이 터져버렸다.

"영민아... 울지마라. 선생님이 뭐 좋은게 있다고 나같은 놈을 좋아하냐. 세상에 더 멋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엉엉.."

차마 선생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을 보고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말로 달래던 선생님은 이내 다가와 날 꼭 안았다.

"울지마라... 선생님이 너무 힘들다."

이 순간에도 선생님의 품은 포근하다. 

'안돼! 나약한 모습보이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인사를 하고는 도망치듯 상담실을 뛰쳐나왔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두 뺨을 타고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그래.. 예상했잖아. 홀가분하잖아...'

그렇게 나의 첫 고백은 비참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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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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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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