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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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네는 송내역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변두리의 동네에서 3층짜리 연립주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고모네 집의 2층 한쪽 구석방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키도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아무리 고모네 집이라고 해도, 혼자서 타지에 뚝 떨어져서 살아야하는 것이 못내 걱정되어서 나는 슬며시 아버지에게 섬의 생활을 정리하고 뭍으로 올라오시는 것이 어떠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종수야, 아버지는 한평생을 여기서 농사나 지었는데, 지금에 도회지에 가면 뭘 해먹고 살겠니...”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아버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시고는 내 뒷통수를 쓰다듬으셨다.
부모님은 보고 싶었지만, 키도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꿈속에서도 그려보는 고향이었지만 돌아가는 것은 두려웠다.
화재가 난 이후, 아침에 눈을 뜨고 집 밖으로 나오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이 화재후의 자취가 여전히 여기저기 남아있는 태현이네 집터였다. 아이들은 한밤중에 그 집터 근처에서 귀신을 봤다는, 혹은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 애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친한, 마음속에 깊이 품어 놓았던 그를 그렇게 잃었다는 것이, 또한 그가 그렇게 화마 속에서 고통스럽게 갔다는 것이 기억속에서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상기가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나는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방학 동안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쁜 농사일 틈틈이 부모님이 겸사겸사 고모댁도 방문한다는 이유로 올라오시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자기를 찾지 않는 나를 태현이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웃는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집안의 툇마루였다. 갑자기 등과 뒷통수가 후끈 거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대문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 불길 사이에 누군가의 옷자락이 보였다. 놀란 나는 태현이의 손을 잡고 끌고 나오려고 했지만 그는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웠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는 나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불길이 거세지면서 내 주변이 그리고 곧 그의 얼굴도 불에 휩싸였고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그 꿈이 그가 나를 원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가야만 했던 그가 절친이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있는 나를 향한 배신감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그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꿈을 꾼 다음에 깨어난 후에는 나에게서 떠나달라고, 제발 없어져 달라고 그에게 사정을 했다.
어느 순간, 언뜻, 혹시 그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꿈, 같은 장소, 같은 그의 미소, 같은 불길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은 잠자기 전에 그에게 부탁까지 한 적도 있었다.
“너라면 똑똑하니까 알겠지만, 나는 멍청하잖아. 제발 뭘 얘기하려는 것인지 알려 줘.”
얼마 후에 같은 꿈 속에서 나는 해답을 찾았다.
불이 시작된 곳이었다.
경찰은 태현이가 촛불을 켜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태현이네 집에 자주 가서 늦게까지 놀다 오거나 자고 온 적도 있었지만 그 애는 촛불을 켠 적이 없었다.
키도의 자가 발전기가 돌아가는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네 시간 동안은 도심과 같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때 우리들은 10시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초등학생에게 밤 10시는 어른들의 새벽 서너시에 상응하는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그가 뭍에서 가져온 동화책들도, 그는 몇 번을 이미 읽었던 책이었고 처음 읽는 내 옆에서 나의 눈을 따라서 나를 위해서 같이 읽어준 것 뿐이었다. 그런 그가 10시에 발전기가 꺼진다는 소등 신호 이후에 촛불을 켜고 할 일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간단한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내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꿈 속에서 불의 시작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문 쪽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나마 보이는 누군가의 옷자락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꿈을 꾸고 난 후에도 눈 앞에서 스쳐 지나간 그 옷자락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화재가 난 그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가 기억이 났다. 아버지의 외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꿈속의 그 옷자락이 아버지의 외투의 색깔과 일치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힘껏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장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 수 있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건너마을 김씨 아저씨와 집에서 담근 술을 늦게 까지 마셨다고 했다. 이장을 김씨 아저씨네서 본 사람도 둘이나 더 있었다. 혹시 이장이 아버지에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해칠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약삭바르지 못하고 이기적이지 못하신 분이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순진하고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화재가 나던 그날 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있다고 한밤 중에 일어나셨다. 그리고 물건을 팔고 다시 방으로 들어오신 것 같지 않았다.
불이 났을 때에도 어머니 말처럼 나도 현장에서 아버지를 보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동네 남자 어른이라 봐야 기껏해야 이십여명,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아버지를, 어머니나 내가 둘 다 보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셨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그 화재가 난 곳에 아버지는 없었을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외투는 어쨌나는 말에 불을 끄느라고 벗었다고 거짓말 까지 하셨다.
그럼 그 외투는 어떻게 된 것일까. 외투에다 불을 질러서 초가집 지붕위에라도 던졌던 것일까?
아무리 아닐 것이라고, 아니라고 부인을 하려고 해도, 아버지를 향한 의심이 커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이제 나의 의식에는 ‘왜’ 아버지가 그런 짓을 하셨을 까 하는 의구심만 남게 되었다.
어느 날 고모 댁으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돌아와 세수를 하고 있던 나는 나를 부르는 고모의 목소리에 삼층 고모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버지였다.
“인편으로 네 학비하고 용돈 보냈다.”
“네, 아버지.”
“어디 아픈데 없고 건강하지?”
“네, 그런데 어디서 전화를 하시는거예요?”
“오늘 전화선이 여기까지 깔렸다.” 아버지의 웃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장님네하고 우리집하고 몇 세대에 전화를 놨어.”
“예, 아버지, 잘됐네요.”
“이장님네 아들 너도 알지? 석호말야. 걔가 서울에서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그러더구나.”
“네? 석호요?”
“그래, 이번에도 전교에서 일등을 했다나? 그랬다고 기분이 좋으셔서 이번에 전화선이 우리 섬까지 연결되면서 전화기를 서너대를 주문하셨대. 우리도 한 대 주시고 가셨다.”
“석호라면....... 전에 행방불명된...”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꼬리를 흘렸다.
“아녀. 알고보니까, 서울 친척네 있더래. 그 어린게 섬 생활이 싫어서 가출을 한거라던데. 한사코 섬으로 내려오기 싫다고 그러면서 서울서 살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나보더라.”
“네, 그랬군요.”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종수야, 손님왔다.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하고...”
“아버지!”
전화를 막 끊으시려는 아버지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이 울컥 하고 순간 쏟아져 나왔다. 옆에서 나의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고모도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왜?”
“아버지 얼마 받으셨어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아버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예요. 쉬세요.”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그렇게 말하고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려 놓아 버렸다.
등 뒤에서 고모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내려 2층의 한구석에 있는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쓰러지듯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 도대체 얼마나 받으셨어요!”
눈물이 흘러내리고 목구멍에서 컥 하고 뜨거운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오른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매일 보는 동네 사람 한가족을 그렇게 죽여서 그 인간쓰레기 이장새끼 한테 도대체 얼마나 받으셨나요. 아버지이!” 아무리 입을 막고 눌러도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시골 구석에서 농사나 짓는 아버지가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셨나요. 아버지이! 아이고 아버지이! 도대체 왜!” 방바닥을 주먹으로 한 대 내려치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렀다. 입고 있던 셔츠의 목덜미를 힘껏 잡아당겼다. 목 근처 어디에서 실밥이 풀려 뜯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머리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 뭍으로 내보내서 학교 보내야지.”
자리를 옮겼다.
키도 작은 내가 맨 뒤로 오자 덩치 큰 녀석들이 우습다는 투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뭐야, 너 약먹었냐?” 내 옆에 있던 진철이가 픽 하고 웃으면서 내 뒷통수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서 그를 돌아보았다.
“야, 노는 시간에 담배나 한 대 줘라.”
내 말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번 지었다.
“이 새끼가!” 그의 주먹이 날아 들어왔다. 그 한방에 나는 교실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잡고 있던 책상이 뒤집어 지고 의자가 옆으로 굴렀다.
“한주먹 꺼리도 안되는 새끼가 존나 기어오르네 죽고 싶으니까, 씹새끼.”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녀석들 하고 나는 어울려 다녔다.
가끔은 술도 마시고 가끔은 서넛이 수퍼에서 과자도 훔쳤다. 주인에게 붙잡혀서 경찰서에 끌려가면 나중에 아버지가 어떤 얼굴을 하실까 궁금했다. 영혼까지 악마에 팔면서까지 공부를 시키려 했던 아들을 찾아 온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했다. 경찰서에 붙들려 있는 나를 찾아오신 아버지 앞에서 경찰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살인마” 라고 일러바치고 싶었다.
두툼한 수학정석 책의 가운데를 칼로 사각형으로 도려냈다. 담배 갑 사이즈와 딱 맞아 떨어졌다.
책을 들고 진철이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꺼내 피웠다.
“야. 담배도 하두 펴 대니까 이제 별 감흥이 없다. 안 그러냐?” 진철이의 말에 담뱃재를 옆에 툭툭 털고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연예인이나 높은 새끼들은 대마초도 핀다는데, 우리 같이 괜찮은 놈들이 담배나 피고 앉아있어야 하니 말야.” 그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뒷통수를 끌어당겨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아. 이새끼가.” 그가 나의 가슴을 밀어냈다.
“보는 눈은 또 있어서... 형님 잘 생긴건 또 알아가지고.....” 그가 싱긋 웃으면서 손을 들어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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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이네 불길이 '나'의 내면으로 옮겨 붙어서 타오른다.
반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치졸해 보이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아버지'처럼 그리고 '이장'같은 어른이 되기는 싫은
'나'의 몸부림과 소리없는 아우성의 그 길을 조용히 따라가는
재미가 솔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