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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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적거리는 도시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먹구름이 우울한 비를 뿌리고 있었다.

 

하늘과 나의 사이를 간신히 가로막고 있는 겨우 손바닥만한 우산을 똑바로 지탱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를 실은 강한 바람이 내 등을 떠밀었다. '투투투투....' 마치 기관단총의 총알이 쏟아지듯이 그렇게 내 머리위에 가냘프게 펴져 있는 우산의 얇은 천 위로 굵은 빗방울이 무섭게 공격해댔다.

 

텅 빈 마음속에 수만가지 잡다한 생각이 들어와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기면서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바지의 허벅지 부분부터 그 아래로는 완전히 흠뻑 젖어있었다.

 

나를 보고 아는척을 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비스듬하게 구부리고 슬며시 외면하면서 지나치는 아파트의 경비아저씨의 모습도 잿빛이었고 낡은 아파트의 현관도 축축한 잿빛이었다.

 

 

 

일찍 왔네?” 마치 문을 열어주려고 대기라도 하던 것 처럼 현관 입구에 서서 실 없게 슬며시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는 그를 보면서 놀란 듯이 물었다.

 

내가 일찍 온 게 아니고 너가 늦게 들어온거야.” 말을 마치고 그가 내 어깨에 매달려 있던 가방을 마치 빼앗듯이 움켜 쥐더니 소파의 끝에 놓여있던 수건으로 축축한 가방표면을 슬쩍 문질렀다.

 

어머니 생신은....... 효도 잘 하고 왔어?”

 

나의 말에 그가 대답없이 피식하고 웃고는 가방과 수건을 소파위에 내려 놓았다.

 

소현씨도 같이 잘 갔다 왔지?”

 

나의 질문에 그가 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더니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잘 못 디뎌 통째로 젖어버린 구두를 벗어 버리고 마루로 올라섰다.

 

축축하고 불쾌하게 끈적거리는 양말을 발바닥으로 느끼면서 양복 윗저고리를 벗어서 소파위에 던져 놓았다. 그러자 그가 슬며시 몸을 돌려 내가 던져놓은 양복을 집어서 소파 등받이에 가지런히 펴서 걸쳐 놓았다.

 

벨트를 풀고 바지의 지퍼를 내리면서 그가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갑작스레 인식이 되었다. 슬며시 그를 외면하고는 다 젖어버린 바지를 벗어서 현관 옆에 놓여있는 쓰레기통 옆에 떨어뜨려 놓고는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손목의 단추를 풀자 마치 그가 내가 셔츠를 벗는 것을 도와주려는 듯 내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셔츠의 어깨 부분을 잡았다.

 

괜찮아. 내가......”

 

그의 얼굴이 바짝 가까워져서 당황한 나는 말을 삼켰다.

 

그의 코가 나의 것과 맞닿고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졌다.

 

왜애?” 그의 얼굴을 슬쩍 피하면서 슬며시 그의 눈을 드려다 보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그가 쓰윽 웃어보였다.

 

그의 손이 나의 등 뒤로 미끄러지듯 옮겨지고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나 빗물에 다 젖었어. 샤워할게.” 그의 손목을 잡고 빼내려는 나에게 그가 다시 얼굴을 들이대고 슬며시 키스했다.

 

지금.... 지금 하자.”

 

그가 다른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바지 앞섶에 가져다 댔다. 이미 빳빳하게 발기한 그의 것이 느껴졌다.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짓누르고 그의 허벅지가 내 다리를 벌렸다. 그의 입술이 가슴에서 젖꼭지로 옮겨갔다. 그의 가쁘고 뜨겁게 호흡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내 젖꼭지를 이빨로 물었다. 통증이 느껴졌다.

 

평상시에는 아프다는 신호를 보냈을 테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가 슬며시 미끄러져 올라와 두 손으로 내 볼을 만지고 내 이마에 눈두덩이에 그리고 입술에 키스했다.

 

 

그가 손을 뻗어 침대 옆의 테이블 서랍에서 콘돔을 꺼냈다.

 

반짝 거리는 껍질을 이빨로 슬쩍 물어 내용물을 꺼내는 동안 나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그의 목에 입술을 갖다 댔다.

 

입 밖으로는 뜨거운 입김이 마음속에서는 서늘한 한숨이 나의 몸 밖으로 새어나왔다.

 

 

 

 

타올로 젖은 머리카락을 비비면서 목욕탕 밖으로 나왔다.

 

목욕가운을 걸친 채로 베란다에서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의 도시를 내다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머리 위로 흐릿한 담배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커피?”

 

내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냐,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축축해진 타올을 식탁의자 위에 던져 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올려놓는 것을 보면서 그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냐.” 그가 나를 외면하고 식탁위에 놓여있던 잡지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손동작으로 불편하게 책의 페이지를 넘기던 그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말해.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

 

집에서 가족들 친척들 다 모여 있을 때 무슨 일 있었던 거지?”

 

“.................”

 

아무 대답도 없이 물끄러미 펼쳐진 책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멍한 눈빛과 맺힌 곳이 없는 그의 뽀얀 얼굴은 마치 그의 피부색의 물감이 주르르 흘러내릴 듯이 보였다. 아니 그의 몸 전체가 무너져 내릴듯이 힘겨워 보였다.

 

환이야.” 한참을 그대로 꼼짝 않고 석고상 처럼 굳어져 있던 그가 커피를 젓고 있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집에서......”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다시 침묵을 지켰다.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들을 것이 두려워서 모르는 척 느릿하게 말을 걸었다.

 

소현씨하고 결혼하래?”

 

“..................”

 

아니면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온 거야?”

 

내 말에 그가 낮은 기침을 했다.

 

우리 그냥...........”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가 다시 고개를 슬며시 떨궜다.

 

그냥 뭐?”

 

“.....................”

 

우리 그냥 어쩌자고? 헤어지자고?”

 

톤이 조금 높아지고 둔탁해진 나의 목소리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냥 잠시만...... 떨어져서 .....”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가 들고 있던 커피잔에 두었다.

 

소현씨가 널더러 나 내보내래?”

 

“................”

 

진정하려하지만 속으로 떨려오는 감정을 감추기 힘든 나의 목소리에도 그는 묵묵부답으로 그저 무거운 시선만 내리깔고 있었다.

 

그래, 우리도....... 이렇게 끝나는 거네. 그치?”

 

그런거 아냐. 우리 끝내자는 건 아냐.” 낮은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긴 뭐가.......? 다 이렇게 끝나는 거야. 적당하게 서로 친해져서 사귄다는 미명하에 만나고 섹스하고....” 나도 몰래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딱 적당한 기간이네. 26개월." 기가막힌 한숨이 속에서 밀려나왔다.

 

"그래, 그 정도면 양호한거지. 한번짜리도 있고 하루짜리도 있고 며칠, 몇 개월짜리도 있는데, 그래도 우린......, 꽤 오래 버텼다.”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다고 취급하지 마!” 고개를 들고 그가 굳어진 얼굴로 툭 내뱉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가 뭐가 다른데?”

 

나의 말에 그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 너하고 나, 우리.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뭔데?” 나의 질문에 얼떨떨하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변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 헤어지자는 건 아니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난다. 땡큐 베리 머치다. 그래서... 지금 너, 날더러 니 세컨드 하라고?”

 

그가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말 아냐? 너는 결혼하면서 나랑 헤어지지는 않겠다면 날더러 니 이거나 되라고 그러는거 아니냐구!”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그의 얼굴 앞에 주먹 쥔 손에 펴서 세워놓은 새끼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너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으면 삼대독자가 아니라 오대독자였더라도 어떻게든 가족을 설득시키던 굴복시키던 했을거다. 차라리 다 버리고 나만 보고 살거나.”

 

눈이 아파오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너 나하고 처음 시작할 때 나에게 한 말 기억 안 나?”

 

내 말에 그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 너랑 사귀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너만 믿으라고 했어. 어떻게든 네가 너의 집안일 해결 한다고. 그냥 너만 믿고 있으면 된다고 했어. 아니야?”

 

그가 고개를 숙여 식탁의자 등받이에 걸려있는 겉옷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래. 그랬어. 알아." 그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어떻게...."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변한건 아니지만...구질구질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너가 혼자라서........... 내 입장을 잘......” 그가 말을 멈추고 입에 물려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 내가 부모 없는 고아로 자라서 니 입장 모르겠지.”

 

내 말에 그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는 너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길 바랬어. 그랬는데, 툭하면 너 그 말. '너가 혼자 컸다'는 말..... ‘고아로 컸다는 표현만 안 한 것 뿐이지. 너 항상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왔어. 아냐?”

 

그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다 못된 짓도 하고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 타인들에게 상처도 주고, 그러면서 살아. 아니 더 못된 인간들도 바글바글하지. 그런데도, 꼭 내가 어떤 눈에 거슬리는 일이나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부모없이 자란 후레자식이니 가정교육이 저래서 필요한 것이니 하면서 비웃었었지. 그래, 난 너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근데 너가 다른 사람들 하고 겨우 다르다는게 고작 고아에서 혼자자란이라고 말을 바꾼 것 밖에는 없더라. 너도 툭하면 나에게 그랬어. ‘니가 혼자이기 때문에 날 이해 못한다....부모 멀쩡한 네 다른 친구들하고 비교해서 내가 그렇게 혼자자란이란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정말 너와 소통이 안되었던 거야? 내가 그랬어?”

 

고개를 숙이고는 슬며시 머리를 젓는 그를 보면서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알았어.”

 

가능한 한 목소리를 낮추고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고 발버둥 친다고 해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었다. 판결은 내려졌고 난 그 냉혹하고 무심한 배심원들이 결정한 판결문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짜피 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웃으면서 등을 돌리고 떠나리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추한 모습으로 가지는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니 그 굿바이 섹스 고마웠다.”

 

내 말에 그가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돌렸다. 거실의 텔레비전 받침대 옆에 놓여있는 그가 선물로 사 준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부터 가슴으로 내려가는 핑크빛 사선이 눈에 띄게 멋들어져 보였었다. 이제 그 기억이 송곳처럼 심장을 찔렀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않고 밍밍하게 그냥 그런 말을 꺼내서 하기가 미안했겠지. , 너 이해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나도 뻔히 알고 있었어. 그게 언제일까 손꼽아 기다렸다." 슬며시 한숨이 나왔다.

 

"그냥 그 일이 막상 닥치니 너에게 공연히 섭섭도 하고..... 네가 감당못할 일이라는거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 시작한 건데 공연히 화가 나고....”

 

말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어두운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짐 챙길게. 주말까지는 짐 정리 다 해 줄게."

 

그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니 마치 정말 눈 앞이 높은 벽이 가로막은 듯 해서 답답하고 아득해졌다.

 

"그런데 말야, 니가 나 한테 사준 것들 하고 선물로 너한테 받은 시계는 너에게 못돌려준다.”

 

이제 그 없는 삶 속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내 인생을 찾아야 한다. 간신히 삶의 밝은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던 터인데 놓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알면서도 믿겨지질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다. '너 없이도 난 행복할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고 또렷하게 말을 하고 싶지만 말끝이 떨려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추억은 다 내꺼야. 그것까지 지우고 가라고 강요하지는 마라. , 그 정도는 너에게.......나를...너에게 다 줬던 놈이야. 그러니 그럴 권리는 있는 놈이야. 안 그래?”

 

비참한 표정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말을 끝내고 그에게서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그가 뒤에서 나의 팔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는 벗어나려는 나를 그는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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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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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찌 햇살뿐이겠는가?
헤어짐을 앞에 두고 체온을 나누는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돌아올 거라고.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말은 못한 채 "그'는 헤어짐을 선택하겠지만.

돌아와보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왜 울고 있을까?

어설픈 상상에 멈춰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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