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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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있는 호프집의 문을 열고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아직은 초저녁이라서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꽤 넓은 내부에 손님들이 여기저기 듬성듬성 따로 앉아 있는 바람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나의 시야에 손을 들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민호가 들어왔다.

 

 

, 진짜 오랜만이다.” 테이블에 붙어 있는 의자를 빼내어서 자리에 주저앉는 나를 보면서 민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대답 없이 실없이 한번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그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경민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경민이도 나왔구나?”

 

, . 형 얼굴 좋아 보이네요.” 경민이 나를 보고는 생글거렸다.

 

좋긴, 사는 게 그냥 그렇지.”

 

다가와서 멀뚱하게 바라보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맥주를 시키고는 등을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기대고 앉았다.

 

얼굴 좀 자주 보여라. 니가 무슨 잘나가는 연예인이냐? 왜 그렇게 얼굴보기가 힘들어?” 민호가 핀잔을 주었다.

 

, 나도 먹고 살아야지. 요새 회사에 일이 많아서 정신 없었어.” 슬며시 핑계를 대면서 또 다른 불편한 질문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너네 둘이 사귀냐?”

 

? 형은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내가 손가락으로 둘을 번갈아 가리키며 뭇자 경민이 손사래를 치면서 펄쩍 뛰었다.

 

내가 어때서 임마? 너 같은 건 트럭으로 갔다줘도 눈길 한번 안줘 새꺄.” 민호가 가소롭다는 듯이 경민을 한번 흘끗 보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맥주잔에 손을 뻗었다.

 

왜 이래요 형. 저 이래봬도 잘 팔려요. 제가 바에서 한번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기 시작하면 거기 있는 남정네들 다 오줌 질질-싸요.” 그러면서 경민이 마치 마이크를 잡고 있는 듯이 손가락을 모아 입에 갖다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리잇스은......”

 

때려쳐 새꺄. 머라이어 캐리가 니 그 노래 들으면 삼지창 들고 너 죽인다고 쫓아온다 임마.” 민호가 경민을 다시한번 가소롭다는 듯이 꼬아보고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욘센데요?”

 

그년이 그년이지. 뭐 다를게 있어?”

 

, 정말 너네 둘이 사귀는거 아니야? ” 그들을 실없이 실실거리면서 지켜보다가 민호에게 말을 걸었다. “내 생각엔 너네 둘이 잘 맞을 거 같은데?”

 

! 됐다고 그래.” 민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누구 좀 만나봐라.”

 

?” 그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진짜 괜찮은 애가 있어. 진짜 킹카야. 근데 너한테 관심이 많아.” 여전히 황당해 하는 내 표정을 바라보면서 그가 말을 계속했다.

 

예전에 모임에서 한두번 너 눈여겨 봤었대. 그러다가 너 다른 사람 사귄다고 하니까 마음 접었다가 이번에 너 다시 혼자 됐다니까 나더러 한번 네 마음 떠봐달라고 하더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그는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너가 그 자식 아직도 좋아하는거 아는데, 걔는 너하고 그냥 즐긴거야. 이 등신아.”

 

! 너 무슨말을.....” 그의 말에 눈과 연결되는 뇌 속에서 불이 튀었다. 노려보는 나를 보더니 민호가 표정을 슬며시 부드럽게 바꾸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말은....걔 봐라. 형제도 없이 아들이라고 자기 하나지. 집은 갑부에 아버지는 회사를 두 개나 돌리는 사장이지. 나눠가질 사람도 없이 부모 죽으면 그 재산 고스란히 제 몫인데 부모 눈 밖에 나고 부모 뜻 거스르면서 너랑 계속 살았겠냐구.”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부자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의 생일날 그를 따라 광명시 하안동에 살고 있는 그의 부모님 집에 갔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냥 대충 잘 살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만 한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상계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멋들어진 산이 올려다보이는 아파트에 혼자 독립해서 살고 있는 것도 그리고 꽤 비싸 보이는 승용차를 그가 몰고 있다는 것도 그 나이에 그만한 돈이 어디서 났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것까지 그에게 묻진 않았다.

 

돈과 재산에 관해서 사심없이 순수하게 묻는 다고 해도 그가 그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었고 회사에서도 잘나가는 그가 그 정도의 능력은 되겠지 하고 생각해버렸었다.

 

 

타인의 뒷담화는 가장 맛있는 안주라고 했던가. 민호는 나의 눈치를 봐가면서 계속해서 나의 연인이었던 윤호에 대해서 까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란게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잖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 뭐 어디 가겠냐?” 그가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폈다. 아차 하는 듯이 보였다. 헤어졌어도 그는 내 연인이었고 그 감정이 상당부분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었다.

 

또 고아로 자란 내 앞에서 가정교육을 논한다는 사실이 말을 털어놓고 실수한 것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듣기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미 헤어진 그의 뒷 배경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금 이 테이블 위를 맥주의 향과 구워진 오징어의 냄새와 함께 떠다니고 있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더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애써 지어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서현이 모르냐?” 나의 질문에 용기를 더 얻은 듯 술기운이 돌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가 한껏 더 의기양양해졌다.

 

잘 모르겠는데.”

 

, 넌 모를 수도 있겠다. 근데, 워낙 시흥, 안양, 반월이 좁은 동네잖아. 특히 우리쪽 커뮤니티는 말야. 그래서 무슨 모임이라도 하면 그렇게 모여서 했다고, 그래서 대부분 모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지. 한두번만 모임에 참석하면 다 알게 되고 말야. 거기에 서현이라고 너나 나보다 한 두 살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여튼, 그 사람이 그.. .. 전 애인 아버지의 운전사였다고.”

 

술기운에 약간 부정확해지고 산만해지는 말 속에서도 내가 알고 있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아버지의 존재는 혼란스러울 만큼 예상 밖의 일이었다.

 

뭐라더라? 회사 하나는 반월에 있고, 또 하나는 시흥공단에 있는 목장갑 만드는 회사라고 그러던데... 중소기업이니까 자가용 운전사이면서 비서역할도 하게 되잖아, 그러다 보니 사적인 일을 대충 다 알게 되고 말야. , 돈 많이 벌겠다. 다리 사이에 있는 그거 멀쩡하겠다. 사장니임 하면서 따르는 여자 많겠다. 세컨드고 술집여자고 걸리는 대로 후리고 다니는 것도 지 마음이겠지만, 회사 안에서도 사장이라고 못된 짓 많이 했다더라고...” 그가 목이 타는지 말을 멈추고 맥주잔을 들어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윤호의 아버지라는 존재는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앞에 있는 민호가 나에게 인터넷 어딘가에 돌아다닌다는 연예인 엑스파일의 한 조각을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털어내는 듯한 느낌만 들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12년 넘게 경리로 일하던 여직원도 단칼에 잘랐다더라. 서현이가 그러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여직원도 없을 거라고 그러던데. 자신이 하는 경리일 뿐 만이 아니고 현장일이면 현장일, 트럭 몰고 배송까지 회사일이면 무슨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데 먹고 살아야 한다면서 울면서 애원하는 여직원을 그냥 내쳐버렸대.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이년도 아니고 십이년이 넘게 몸바쳐서 일했는데 말야.”

 

왜 짤랐대? 이유는 있을거 아냐?” 슬며시 그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그 경리 여사원이 회사일 끝나고 호프집에서 알바도 뛰었나봐. 사실 경리 여사원 월급이 몇푼이나 되겠냐. 서현이 말로는 군대 제대하고 다시 공부해서 올해 대학 들어간 남동생하고 둘이 산다고 불쌍하다고 그러던데 먹고 살라고 그렇게 투잡을 뛴 게 재수가 없으려니까 회사 관리과장이 친구들하고 같이 술한잔 하러 간 데가 하필 그 여직원이 알바하는 호프집이었더래. 그 과장이 사장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고자질하고 사장은 잘됐다 싶어서 짜른거지 뭐. 근속연수 오래돼서 조금이라도 월급 더 주는 거 싫었을텐데 기회다 싶었겠지. 그렇게 잘살면서도 그 불쌍한 여직원 퇴직금도 미루다 미루다 그 여직원이 찾아와서 고발한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마지못해 지불했다고 하더라.”

 

참 안됐네요. 그럼 그 여자는 뭐 해 먹고 사냐. 남 얘기 같지가 않네요.” 경민이 옆에서 거들었다.

 

뭐 전에 그 회사에서 일하던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친했나봐. 누나 동생하는 사이였는데, 그 남자직원이 알음알음 자기네 회사에 소개 시켜줘서 다시 일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다행이네요. 근데 그 사장 진짜 못됐다. 정말 부자가 더 무섭다니까.”

 

그 아줌마 얘기도 알아. 더 해줄까?” 민호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윤호라는 니 전 애인의 엄마말야.” 그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서현이가 사장 개인 운전사이다 보니까 사장집도 들락거리게 되고 그 가족들도 잘 알게 되고, 그러니 그 사모님 이라는 사람도 알게 되지 않겠냐? 근데 그 아줌마도 보통은 훨씬 넘는 거 같더라고..”

 

아냐 됐어.” 내가 그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

 

그래. 그럼 알았다.” 의기양양하던 그의 목소리가 슬며시 수그러 들었다.

 

 

근데....” 내가 어렵게 입을 떼려는 것을 보면서 민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윤호 아버지라는 것은 어떻게 안거야?”

 

내가 알고 있는 그와 지금 앞에서 민호가 말하는 그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결코 어떠한 식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현실속의 그와 허구속의 그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나는 그를 보면서 어떤 면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에 그와 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최선을 다 해 사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최소한 나에게 이별을 고할 때 까지는.

 

 

꽤 오래전일껄? 한 사오년 됐나? 그때도 안양시흥반월 술모임이 있었어. 인터넷에 접한 같은 동네 사람들 모여서 한잔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때 나도 갔었고 서현이도 나왔었어. 근데 그 자리에 그 니 전 애인도 나온거야. 회사 사장 운전사하고 사장 아들이 그 모임에서 만나게 된거지. 거기서 둘이서 서로 얼굴 보고 얼마나 놀랬겠냐. 뜻밖이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민호가 마치 자신이 당황한듯 얼굴이 붉어졌다.

 

, 둘이서 어떻게 소문내지 않기로 약속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뭐, 이렇게 저렇게 다 알게되지.” 그가 다시 맥주잔을 들었다.

 

그러다가 전에 너가 명동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윤호하고 둘이서 나란히 다정하게 있는 거 보고 사실 나도 뜻밖이었거든.” 그가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는 말을 멈췄다.

 

, 미련이나 그런 것 갖지마. 그럴만한 가치도 없어. 물론 사실 나라도 내 부모가 갑부라면 아마 나도 내가 게이인거 숨기고 살지도 몰라. 아마 그럴거야 십중팔구는 말야. 여자랑 대충 결혼해서 대충 살면서 대충 섹스해주고 대충 아이도 낳고 그러면 그 많은 재산 다 내 것이 되는거고 그러면 만고 땡이지 뭐.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수 있는거고. 인생 별거 있어?” 그가 취한 얼굴을 끄덕거렸다.

 

근데 그건 그 놈 사정이고, 넌 또 다르잖아. 넌 또 네 인생 살아야지.” 그가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열심히 무엇인가 뒤적거리더니 나에게 액정창을 들이밀었다.

 

이 새끼야. 너 맘에 든다는 놈 말야. 만나 봐. 사랑은 사랑으로 극복하고 끊어진 인간관계는 또 다른 인간 관계를 맺어서 치료하라는 말도 있잖아.”

 

선명하지는 않지만 꽤 호감가는 얼굴이 내 눈안에 들어왔다. 웃는 얼굴이 서글서글해 보였다. 윤호의 얼굴이 뒤통수에 떠올라서 뇌의 한쪽이 시큰거렸다.

 

뭐 만나서 꼭 어떻게 해보라는게 아니라. 친구로 시작해도 되잖아. 조금 감정의 발전을 열어놓은 그런 관계말야. 그냥 편한 친구가 아니고 연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게 말야. 그러다가 기면 긴거도 아니면 마는거지 뭐. 그만 두던가 평범한 친구로 남던가.”

 

그가 내 눈앞에 그의 휴대폰 사진을 더 바짝 들이댔다.

 

 

이곳에 오는 길에 소현과의 통화중에 들린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귓전에서 울렸다. “어머니 모시러 가야해. 이제 그만 전화 끊어.” 그의 삶 속에 이제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말이었다.

 

만나볼게.” 민호를 보면서 고개를 한번 끄덕 해 보였다.

 

괜찮으면 사겨보지 뭐.” 뇌의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윤호의 잔영이 조금씩 스러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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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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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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