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프린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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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8월말의 한여름의 길고 긴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버스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상점들의 간판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정훈은 창 밖에 시선을 두고 혹시 버스가 가는 큰길에 제과점이 있는 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일요일 7시 경 즈음에 자신이 일하는 호프집으로 잠시 들르라는 문자를 며칠 전 연희누나가 보내왔을 때 까지만 해도, 그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다음 주 목요일까지만 근무하고 퇴사를 하게 된 그를 그녀가 그렇게 따로 만나서 송별회를 해주고 싶은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틀 전 작업일지를 제출하러 사무실에 들렀을 때 우연히 상조회 업무도 담당하는 직원이 이제 곧 연희누나의 생일이 돌아온다고 하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이 떠올랐다. 


정확이 며칠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자신이 일하는 호프집으로 오라는 말에 아무래도 거의 틀림없이 그녀의 생일인 듯 싶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그는 작은 케이크나 사서 들고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천사거리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호프집 쪽으로 가기 전에 그는 큰 길을 따라 버스가 온 길을 다시 거슬러 걸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체인점 제과점이 눈에 띄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딸기가 예쁘게 올려져 있는 생일 케이크를 사고 난 후에 그가 막 밖으로 나와서 가게 앞에 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정현준!”


어딘가, 근처에서 낯익은 이름을 외치는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순간 정훈은 마치 낙뢰에 맞은 듯, 숨이 탁 막혀버리고 온몸이 마비되어 버렸다. 등줄기를 타고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진 충격에 뜨거운 덩어리가 훅 하고 뱃속에서 치고 올라와 그는 참지 못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다. 


예전에도 한 두 번의 누군가를 향한 감정으로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 경험으로 그는 이삼주 정도만 버티면 그런 모든 감정도 극복해 내고 원래 그 자신의 느릿하고 안전한 삶의 흐름으로 되돌아 올수 있다는 것을 배웠었다. 


이번에도 그는 현준을 보낸 후 한달동안의 기간동안 충분히 그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나온 그 이름이 그의 귓속에 울리는 순간 그는 마치 돌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놓았던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분출되어 한순간 꼼짝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서 있다가 이제 다른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신호등에 시선을 줄때에야 비로소 그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볼수 있었다.


마치 주문에 걸린 듯, 오른손으로 케이크를 들고 그는 그 목소리가 들린 약국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곳엔 현준과 비슷한 사람이 없었다. 약국을 돌면서 꺾여 들어가는 골목 안에도 한 커플과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만 어둠이 깔리고 있는 골목속으로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옆의 식당을 보았다.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본 그 안에도 역시 현준의 모습은 없었다. 갑자기 몰려온 현준을 향한 간절한 마음에 멀리서나마 그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그 옆의 분식점과 또 다시 그 옆의 선술집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현준은 보이지 않았다. 


간절함이 이제 필사적인 갈망으로 바뀌어 정훈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서 현준이 갈 만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길 건너편에는 1층에는 안경점과 2층에 갈비집이 보였다. 


그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피해서 길을 건넜다. 2층으로 부리나케 뛰어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봤지만 현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계단을 날듯이 뛰어내려 밖으로 나왔다. 혹시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는 절망감과 흥분을 가라앉히며 찬찬히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눈여겨 보았다. 


여전히 현준은 보이지 않았다. 


그 옆의 1층에는 일본식 이자카야 술집이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다시 밖으로 나온 후, 그는 횡단 보도를 건너 처음 그 약국의 골목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골목의 끝은 다시 큰 길로 연결되고 그 대로변에는 또 다시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렇게 정훈은 음식점에서 호프집으로 분식집으로 혹시나 현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뛰어다녔다.


더운 날씨에 땀이 흘러 머리카락 끝에서도 땀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겨드랑이와 등에서 흘러 내리는 땀으로 피부에 붙어버린 낡은 셔츠는 축 늘어져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하나씩 찾다보면 그 어딘가에서 현준의 모습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청구아파트 앞에 있는 대형마트에 와 있었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정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 어딘데? 늦어? 혹시 못 오는 건 아니지?” 연희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니예요. 지금 가는 중예요.” 당황한 목소리로 정훈이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현준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정현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셀수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이름을 잘못 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거워진 걸음을 옮기면서 간신히 꿰매놓아 아물어가던 찢어진 상처의 실밥이 풀린 듯,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목 안에 무엇인가 걸린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간신히 몇 걸음 옮기다가 그는 근처의 벤치에 쭈그려 앉았다.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양쪽 눈꼬리에 눈물이 맻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쥐어 가슴을 천천히 두드렸다. 


  


 


“너 무슨 일 있었어?”


호프집을 들어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연희누나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마라톤 달리고 온 사람같네?”


“네..... 좀... 걸었어요. 밤공기가 좋아서요.” 굳어진 표정에 희미한 미소를 간신히 지으면서 정훈이 대답했다.


“어디 아픈건 아니지?”


“아니예요. 멀쩡해요.”


맨 구석자리에 정훈을 앉힌 다음,  그가 젖은 타올로 얼굴과 팔을 문지르는 동안 그녀는 생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가져왔다.


“여기요.” 아직까지 창백한 모습에 헝클어진 머리와 땀으로 흠뻑 젖은 몰골로 정훈이 케이크를 담은 상자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손 안에서 열린 구겨진 상자안에는 모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케이크가 형체를 드러냈다.


“부지런히 뛰어오다보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정훈이 씩 웃어 보였다.


“괜찮아. 근데 내 생일도 알고 있었네?  너무 고마워." 그녀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훈을 바라보았다.


"다음 주 수요일이 내 생일인데 좀 이르다. 그치?”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요. 그래서 혹시 오늘인가 하고.....”


“아!” 그의 말에 그녀가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한테 줄게 있어서 오늘 오라고 부른거야.” 말을 마치고 그녀는 주방 뒷쪽으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포장된 큰 상자가 들려있었다.


“이게... 뭐예요?” 웃으면서 상자를 건네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가 물었다.


“선물!” 간단히 말하고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 이제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그녀가 그를 빤히 보면서 미소 지었다. “아! 정들었는데 이별이네... 그래도 자주 놀러올거지?” 


“그럼요. 지겹게 자주 올게요.” 그가 씨익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포장은 집에 가서 풀어봐. 포장지도 아깝다.  때 뭍을까봐...” 그녀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상자를 내려다 보면서 미소지었다.


“뭔데요?”


“집에 가서 풀어봐. 그냥 너한테 꼭 필요한거야.”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정훈이 웃으면서 상자를 들어서 자신의 옆자리에 내려 놓았다.


“아버님하고 동생들도 잘 있지? 다른 회사로 가는 거 말씀 드렸어?” 그녀가 물었다.


“네, 아빠가 사장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달라시는데...” 정훈이 이마를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뭐를?” 그녀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조의금 너무 과하게 주셨다고요, 너무 감사하다고요.” 그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같이 신입 현장직원한테도 신경 많이 써주셨는데, 입사할 때보다 퇴사할 때 더 예의 지키라고, 꼭 인사드리라고 그러셨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된다고? 따로 봉투를 만들어 주시지도 않고 회사 경조사비 걷어 한꺼번에 낼 때 겨우 오만원 주셔서 같이 넣은 건데......” 그녀가 다시 그에게 눈을 돌렸다.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나하고 소연이는 짠돌이라고 막 그랬었는데....”


“네? 따로 봉투 속에 큰 돈 넣어 주셨다고 그러던데.....” 정훈이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못 아셨네. 내가 직접 확인까지 다 해서 봉투 전달한 건데.....” 말을 멈추고 그녀는 문에서 나는 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호프집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정훈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고개를 끄덕하고 인사를 했다.


그를 한번 보고 미소를 지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희누나를 바라보았다.


“자기, 애인 잘생겼더라.”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우고는 연희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장을 바라보던 연희누나는 잠시 후에 무슨 말 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제 남자친구는 아니구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을 멈췄다. “그냥, 예전 회사 동료인데 앞에서 우연히 만난거예요.” 그녀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아, 난 또 자기 애인이라고....” 사장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자기도 이제 적은 나이 아니니까 빨리 애인 만들어야지.” 말을 멈추고 그녀는 정훈을 바라보았다.


“요새는 연상연하 커플도 대세인데, 혹시.....”


“아! 아니예요... 언니는 무슨! 같은 회사 동생인데....” 연희누나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사장과 정훈을 번갈아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정훈은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오해 받았다고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사장이 입구에 앉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합석을 한 후에 그를 돌아보면서 연희누나가 물었다.


“기분이 나쁘긴요. 좋기만 한데요.” 정훈이 너스레를 떨었다.


정훈을 보고 씨익 웃은 누나는 표정을 바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집에 가면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라고 아버님께 전화드려봐.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신 것 같다.”


“네” 정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 안에 들어서자, 불을 켜고 정훈은 큰 쇼핑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 포장지를 뜯고 열어보았다.


양복과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 3개가 모양도 예쁘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와이셔츠도 두벌이었다. 그리고 양복을 편 후 양복바지도 두벌인 것을 발견했다.


정훈은 옆에 놓았던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누나, 너무 고마워요. 디자인도 그렇고 색깔도 너무 맘에 들어요. 그런데 너무 과용하신거 같아요. 많이 비쌌을 텐데... 누나가 돈이 어디 있다고...” 정훈이 미안한 목소리로 느리게 휴대에 대고 말했다.


“아냐, 이제 사무실에서 멋진 신사로 거듭나야 하는데 꼭 필요한 거잖아... 맘에 든다니 다행이다...”


“전 아직 까지 누나에게 해 드린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아, 미안...손님 때문에 전화 끊어야 겠다. 내일 회사에서 보자.”  그녀가 급히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옷걸이에 주름지지 않게 펴서 양복과 와이셔츠를 걸어 놓은 다음, 그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아빠,”


“어, 그래. 저녁은 먹었고?”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몇시인데요. 아빠도 드셨죠?”


“그래, 지연이하고 성훈이랑 다 먹었다.” 말을 끊고 한번 헛기침을 하신 다음 아빠가 다시 입을 여셨다.


“정훈아.”


“네?”


“이제 아빠도 얼마만큼 자리 잡았어. 채권자들하고도 얘기 다 됐고, 아빠 친구하고 같이 새로 사업 시작한 것도 아직 처음이긴 하지만 괜찮은 것 같다.”


“다행이네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이제 너 아빠한테 돈 안보내도 돼. 아빠도 앞으로 나아지긴 하겠지만 지연이도 곧 대학가야 하고 성훈이도 있고 그래서.... 아빠도 가능하면 너도 뒷바라지 해주고 싶은데 아직은 여유가 없구나, 너 고생한 거 아빠 안 잊을테니까, 너는 월급 받으면 그냥 잘 모아라. 너 대학 졸업 해야지.....”


“........”


“아, 그리고 사장님에게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 드렸니?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꼭 인사는 해야하는 법이다.”


“근데 아빠...” 잔기침을 한번 해서 목이 메는 것을 참으면서 정훈이 입을 열었다. 


“그 돈 우리 사장님이 주신 게 확실한 거예요? 잘못 아신 거 아니예요? 사장님이 그 돈 주신게 아니라던데....”


“그럴 리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너네 회사 직원이 건네 줬다던데.... 봉투에 이름은 적지 않았지만, 받으면서 누구시냐고 물으니까 회사 사장님이 주시는거라고 그랬다던데...”


“연희누나는 아니라던데요. 혹시 받으신 분이 헷갈리시는...”


“아니야,” 아빠가 정훈의 말을 끊으셨다.


“같이 온 남자 직원이 줬다던데, 그 사람한테 한번 물어보렴.”


  


휴대폰을 귀에 대고 정훈은 땅에 떨어진 낙엽처럼 쭈그리고 누웠다.


아무리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고 해도 항상 그는 정훈의 옆에 있었다. 그를 기억속에 묻어버릴 수도 찾아 낼 수도 없게 돼 버렸다. 


갑자기 현준의 슬픈 눈빛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나, ....너 한번만 안아보면 안될까?” 


귀에서는 계속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혹시 사장님 비서는 아니냐? 너는 모르는 사람이야?”


  


 


(현준)


“정현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도로 건너편에서 진수가 웃으면서 한번 손을 흔들고는 달리는 차들을 피해서 무단행단을 해서 그에게 뛰어왔다.


“야! 큰길에서 쪽팔리게 남의 이름은 그렇게 크게 부르고 난리야!” 그가 진수의 어깨를 툭 쳤다.


“니가 날 못 알아보고 헤매니까 그랬지!” 현준의 팔을 한번 치면서 진수가 말했다. 


“근데 이쪽으로는 웬일이냐?” 


“어, 그냥 누구한테 뭣 좀 부탁할것이 있어서...” 현준이 한번 씨익 웃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냥 여기 가자 여기 예전에 한번 왔었는데 해물찜 먹을 만 하던데?” 진수가 일본식 이자카야 술집이 있는 2층을 가리켰다.



 

“앗 참! 축하한다.” 자리에 앉자 진수가 현준을 웃으면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뭘?”


“시끼! 다 알고 있는데. 너 좋은데 됐다면서? 영국에 본사 있는 다국적 회사라던데 맞지?”


“어, 어떻게 하다보니 글루 들어가게 됐다.”


“그럼 이제 서울에서 살아야겠네?”


“그렇긴 한데 다음달 말 경에 추석 지나고 런던에 있는 본사로 갈 것 같다.”


“정말? 입사하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됐냐?”


“그러게. 어쩌다 보니 일이 또 그렇게 돌아가게 됐다. 다행이지, 뭐.”


“전에 회사 일은 다 완결 된거구?” 진수가 넌지시 물었다.


“어, 그럭저럭. 사실 캐나다 총 대리점 건은 내가 계속 물고 늘어졌어. 혹시 내가 갈 회사에서 연락이 갔을 때 이사가 좋게 말을 안해 줄까봐.... 요번에 입사 확정이 난 다음에 완료 지어줬다.”


“짜식, 그렇게 안보이는데. 여우짓 좀 했네?” 진수가 아주머니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술병을 받아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게. 먹고 살려다 보니 여우짓도 하게 되네?” 현준이 진수를 바라보고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서울 가더니 옷차림도 바뀌고 말야.” 그가 현준의 옷차림을 한번 훑어보면서 말했다.


“항상 양복만 폼나게 입고 다니던 놈이 어울리지 않게 청바지에 티셔츠는....” 진수가 픽하고 웃었다. 



“고맙다.” 현준이 술병을 받아들고 진수의 잔을 채우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진수가 얼굴을 들어 현준을 한번 본 후에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 들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뭐, 내가 힘을 쓴 건 아니고, 면접 보니까 꽤 괜찮더라고. 성실해 보이고, 뭐 그럭저럭 우리 회사 시스템도 잘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사장도 오케이 한거지.”


“그래도 너가 말 잘해 줬겠지. 이번에 너 신세 한번 졌다.” 현준이 잔을 들어 진수의 잔에 부딪히면서 이를 드러내면서 밝게 웃었다.


“3개월 지나면 정직원으로 정식 채용 해 주는거지?”


그의 말에 진수가 피식 하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뭘” 진수의 말에 현준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그 말 하려고 나 보자고 한 거지? 그 녀석 정직원 되는 거 힘 좀 써달라고.” 말을 마치고 다시한번 진수가 피식 하고 웃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현준이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만한 힘이 있냐? 당연히 없지. 그래도 면접 때 사장도 싫지 않은 눈치였고 일을 시켜보니 알아서 잘 하는 것 같아서 벌써 사장이 다른데 도망 안가도록 잡아보라고 하더라.” 그의 말에 현준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졌다.

  


그런 그의 얼굴에 시선을 한번 준 후에 진수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근데 영국 가면 얼마나 있게 되냐?”


“아직은 모르겠어. 다음 주 중반에 확실하게 계획이 잡힐거야. 그때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들를게.”


“그래 여튼, 잘 됐다. 그 녀석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진수가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띄면서 현준을 바라보았다.

 


“여튼, 너한테 그 녀석 부탁 좀 할게. 너가 신경 좀 써줘.” 다시 진수의 술잔에 술을 채우면서 현준이 입을 열었다. 


“어, 걱정하지마. 내가 친형처럼 신경 써줄게. 너 걱정이나 해.” 진수가 술잔을 들면서 현준을 바라보았다.


"그 놈, 내 사촌동생 과외도 꽤 잘 가르치나 보더라, 이모가 그럭저럭 만족해 하는 걸 보니까."


"다행이다.  다 니덕이야. 이 은혜 잊지 않을 께." 현준이 진수를 보면서 슬쩍 윙크를 했다.


피식하고 한번 웃은 후에 술병을 받아 현준의 술잔을 채우며 다시 진수가 입을 열었다.


“어머님은? 집에 갔다 나온거야?”


“아니, 이따가 집에 들어가야지. 내일 짐 챙겨서 서울 셋방에 옮겨 놓으려고.”


“어머님이 섭섭해 하시겠다.” 진수가 현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글쎄, 앓던 이 빠진 것 같으실거야.” 현준이 말을 끝내고 한바탕 웃었다. 


“여튼,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다. 잊지 말고 다음번에 오면 꼭 다시 연락 줘.”


  


새벽 한시가 넘어 있었다.


현준은 슬그머니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소리 내지 않고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난 한달 동안 그는 헤드헌팅업체 여러 곳과 서울에서 그래도 가장 저렴한 셋방도 알아보러 다녔고 그 와중에 이전 회사의 업무처리도 같이 병행 해왔다. 


회사에 들락거리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현준을 보고 김 이사는 근처의 카페로 항상 그를 불러서 같이 업무를 보았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현준의 변경된 휴대폰 번호를 한번 물어보고는 곤란한 듯한 그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는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너와 내가 쌓인 정이 얼만데, 내가 니 발등을 찍겠냐” 자신이 지원한 회사에서 확인 차 연락이 오면 제발 좀 좋게 말씀 좀 해달라는 현준의 말에 믿지 못하는 현준이 답답하다는 듯 김이사는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었던 듯, 영국을 본사로 둔 작지만 건실해 보이는 다국적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연봉도 덩달아 올라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던 현준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기 위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다행히도 부장과 사장은 외출중이었다.


그의 책상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당황해 하는 그를 보고 정소정씨가 다가와서 그에게 그의 소지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테이핑까지 해 놓은 상자를 건네 주었다. 

  


건물 앞까지 그를 따라오면서 그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중에 자신이 성공하게 되면 그녀를 스카웃하겠다고 말을 건네면서 웃어주었다.


  

불을 켜지 않고 그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슬며시 침대 위에 누웠다.


 


“저 새끼 저러다가 아무데도 발 못붙이고 지 몸하나 건사 못해서 죽네 사네 하고 들어올까봐 그러지!”


문틈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짜증에 가득한 목소리에 그는 잠이 깨어서 퓨대폰으로 시간을 확인 했다. 9시가 넘어있었다. 


오늘 짐 정리를 하고 서울로 옮겨 갈 것이라는 말을 미리 해 놓았으므로 미리 알고 있는 엄마와 누나들이 식전 댓바람부터 올 것이라는 것을 그는 미리 예상 하고 있었다.


“그럼 그냥 쫒아내면 되지, 엄마는 뭘 걱정이야? 그리고 지가 낯짝이 있으면 집에 어떻게 기어 들어오겠어? 그냥 길바닥에서 뒈지겠지.” 큰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 누나가 집에 오는 날이면, 그래서 엄마와 누나가 큰 목소리로 거실에서 떠드는 날이면 이상할 정도로 현준의 방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로 빼끔히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이 들으라고 그렇게 한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들곤 했다.


“제발 말 좀 조심해.” 둘째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틀린 말 했어?”


“너는 니 동생이 돈도 못 벌고 길거리 배회하면서 살 생각하면 걱정도 안돼냐?” 엄마가 거들었다.


“엄마! 별 걱정 다해. 암튼.” 둘째누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별 걱정이 아니라, 나중에 지 먹고 살 거 없다고 그러면, 그 꼴 안볼 수도 없고 어떻게 하냐구. 내가 그래도 엄만데.”

  


“엄마.”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다시 낮은 둘째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중에 더 늙어서 수족 움직이기 힘들고, 어디 아프기라도 해봐. 치매라도 걸려봐. 언니가 엄마 받아 줄거같애? 언니 성격에? 그리고 형부하고 준호도 있는데?” 


현준은 가만히 누워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나도 엄마, 가끔씩 챙겨주려고 하겠지만, 나도 내 생활 있는데, 내가 아무리 엄마 생각 많이 하고 그래도, 현실이 어쩔수 없더라구, 가끔 집에 오는것도 사실, 현수 아빠 눈치도 보여.” 

  


어젯밤에 마신 술 기운 때문에 목이 말라왔지만 현준은 그냥 계속 가만히 밖에서 들려오는 말만 듣고 있었다.


“엄마, 나중에 더 늙어서 병나고 거동 불편하고 그러면 그래도 엄마 받아줄 사람은 쟤밖에 없어. 나중에 엄마 구박받을 짓을 왜 지금 사서하고 그래?”


“저 쪼-다 새끼가 퍽도 엄마 돌봐드리겠다!” 큰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둘째 누나의 목소리가 커졌다.


“말 조심 좀 해, 좀!”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큰 누나의 목소리도 지지 않고 커졌다.


“언니는 참 인복은 타고 났어. 언니 성격에 현준이도 그냥 죽어주지, 형부도 그냥 나 죽었다고 살지, 우리 현수가 그러는데 준호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러대. 애를 얼마나 잡았으면 그냥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어!”


“뭘 또 내가 인복이 좋아? 내가 항상 옳은 말 하니까 지들이 꼼짝을 못하는 거지!”


“나 같았으면!”   현준은 이제 화장실도 가고 싶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현준이었으면 언니 내 손에 벌써 죽었어! 나였으면 그런 말 듣고 절대 가만 안있었어!  언니는 현준이한테 고맙다고 절 해야 해. 언니 그 못돼먹은 히스테리 걔가 다 받아줬잖아! 인간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녀들의 대화가 마치 그와 전혀 상관없는 티비의 드라마속의 갈등과 같이 멀리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지만 또한 갈증에 화장실이 점점 급해졌다. 그녀들의 싸움속으로 유유히 빠져나가 화장실로 갈 것인지 갈등을 겪고 있는 순간 낮은 노크 소리와 함께 슬며시 문이 열렸다.

 


“일어났니? 오늘 남은 짐 가져간다면서? 한차에 싣기에도 많으면 현수아빠가 잠시 들른댔어. 일어나서 밥 먹고 내가 짐싸는 거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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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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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현준은 이제 런던으로 진짜 가는건가요
그냥 서울에 잇고 가끔씩 내려와 정훈이 모습이라도 보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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