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버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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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훤칠한 키, 그의 인자한 외모에 어울리는 품격있는 정장, 연륜에서 뭍어나는 여유로운 눈웃음은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낸 카메라는 담아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슬그머니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카페의 내부를 돌아보던 그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고 씽긋 웃어보이고는 그가 나를 향해서 큰 걸음으로 당당하게 걸어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저도 방금전에....”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면서 언뜻 휴대폰의 액정창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겨우 30분 늦은 거였다. 


자신의 일에 한참 정열적으로 매진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40초반의 남자에게 약속을 칼같이 지키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허무맹랑한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매력으로 온 몸을 흠뻑 물들이고 다니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이박삼일 텐트를 치고라도 기다릴 수 있을 듯 했다.

  


“바쁘실텐데, 나와주셔서.....”


나도 모르게 처음부터 저 자세가 되어 버렸다. 


만남 사이트에서 서로에게 마음이 들어서 한번 보자고 한 것일 뿐인데 이렇게 한번에 온 몸과 정신을 사로잡힐 만한 사람이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 나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그가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커피는 다 마신거예요?”


그가 내 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에 시선을 한번 주고는 나에게 물었다.


“예.... 드시고 싶으신 거 제가.....”


“아니 뭐. 그럴 것 까지는....” 


그가 마치 무엇인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셔도, 뭐라도 제가 대접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젠틀하고 인텔리하게 생긴 남자를 내 인생에 언제 또 다시 만나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우선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그가 나를 보고 씽끗하고 웃어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의 오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어야 했다. 어떻게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가 사라진 카페의 뒷문에 여전히 시선을 두고는 나는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아, 저는요. 아....” 평상시의 나 답지 않은 얌전한 말투를 한번 연습해 보면서 휴대폰을 들고 액정화면에 비친 나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 씨씨크림을 좀 더 아랫볼 주위에 두툼하게 발랐어야 했다. 거뭇거뭇한 피부톤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데 지금 다시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공공장소에서 씨씨크림이나 얼굴에 쳐 바르고 얼굴에 비벼대고 있는 것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와 같은 숭고한 인물들은 그런 나를 본다면 ‘천박’ 하다고 혀를 찰 듯 했다.

  


급한 김에 머리를 굴리다가 입고 있던 7부바지를 천천히 접어 올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늘씬한 나의 맨 다리를 보여주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일 듯 했다. 예전에 상훈이 형도 그랬고, 종로에서 알게 된 친구들도 내 다리 만큼은 봐줄만 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무릎위로 올라간 바지의 끝단은 거기서 멈춰 버렸다. 통이 좁아서 나의 허벅지까지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머리를 한번 툭 하고 쳤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짧은 반바지라도 입고 올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인 듯 가장하면서 은근한 눈빛과 미소로 그를 바라보면서 슬며시 다리를 벌리고 매끈한 허벅지라도 은근히 보이면서 손가락 끝으로 무릎에서 허벅지를 거쳐 사타구니까지 슬며시 쓸어보인다면 가능성이 있을수도 있을 듯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그가 침이라도 꿀꺽 삼킨다면 그걸로 게임 끝 아닌가. 


  

여튼 그렇게 피가 돌지 않을 정도로 바지의 아랫단을 말아 올리고 잘 돌아가지 않는 나의 머리를 한탄하고 있을 때 그가 자리에 돌아왔다.


  


그런 나를 묘한 미소를 띄고 바라보던 그가 자리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무릎에 있는 상처는 뭐예요?”


그의 말에 나의 무릎에 있는 희미한 상처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예전에 등산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구른적이 있었거든요.”


“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 날뻔 하셨네요.”


  


그 상처의 진실을 내 입으로 말한 사람은 상훈형이 유일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쯤 되었을 때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저녁식사 후에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과일을 깎던 엄마의 손을 냅다 후려치는 바람에 엄마의 손에 쥐어있던 과도가 엄마의 손가락을 스치면서 날아와 나의 무릎에 박혔다.


  

놀란 엄마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나의 무릎을 만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저렇게 지지리도 재수없는 새끼!” 그런 엄마의 뒤에서 아버지가 나를 험악하게 노려보았다.


“있어도 꼭 그렇게 재수없는 곳만 찾아서 있는 바람에 병*신같이 일을 당하고 쳐 앉아 있네.” 


  


그렇게 말하는 나의 얼굴을 상훈형은 놀란 표정으로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의 얼굴과 무릎에 난 상처를 번갈아보던 그를 보면서 그 다음부터는 그냥 적당히 넘어갈 거짓말을 찾아내기로 생각했었다.


  


  


  


그가 호텔방의 문을 열었다.


최고급 호텔인 만큼 실내는 넓고 훌륭했다. 


창문 밖으로 도로 건너편의 공원이 내려다 보였다. 


작은 연못 주위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들 뒤로 작은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고 그런 푸르름은 작은 산 위로 연결되고 그곳에서 다시 파아란 하늘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리와서 앉아.”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에게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 


방금 따라 놓은 샴페인 잔 안에서 맑은 빛 음료 위에 하얀 기포가 보글거리면서 피어올랐다.


“최고급으로 준비한거야. 시원하게 목을 축이라고....”


그가 코를 찡긋거리면서 눈가에 주름이 생기도록 아련한 눈빛으로 해맑게 웃었다. 


“다 마셔.”


한모금 마시고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으려는 나를 보고는 그가 말했다.


“아예, 그냥 치워버리게. 들고 있기 귀찮잖아.”


그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남아있던 샴페인을 마치 맥주를 마시듯 한입에 넣어 삼키고는 빈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나의 눈두덩과 볼에서 시작한 그의 애무는 견딜 수 없이 나를 황홀경으로 몰아 넣었다. 


나의 가슴과 젖꼭지에서 맴돌던 그의 입술이 느껴지고 난 후, 갑자기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복바지에서 벨트를 빼어 들고 와서는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그가 한번 웃어보였다. 


그가 고개를 숙여 나의 입술에 키스했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그런 섹시한 목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런 거 좋아해요?” 


그의 목소리를 마치 흉내라도 내듯이 나지막이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가 손을 뻗어 나의 양손을 그의 벨트로 묶었다. 


매끈한 침대시트가 나의 볼에 느껴졌다. 술기운인지 점점 정신은 몽롱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기분은 더욱더 좋아져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황홀함에 흥분이 더해졌다.


  


한순간 그가 왼손으로 나의 목을 눌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의 목 주위를 천천히 조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그런 행동에 놀란 나는 숨이 막혀와 헐떡대기 시작했다. 


“하지 마세요.”


순식간에 공포가 엄습했다.


정신없이 도리질을 하는 나를 보고는 이제 나의 목에서 팔을 풀은 그가 나를 빤히 내려다 보았다.


“왜?”


마치 실망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좋아 할 줄 알았는데........ 섭이라고 돔 찾는 것 아니었어?”


그제서야 그가 올린 글의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의 프로필에 올려진 나이와 신체 사이즈 그리고 황홀한 그의 외모를 보여주는 사진에 신경이 몰려서 그가 원한다는 상대를 묘사한 내용도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 말아요.”


하지만 이제는 나의 온몸과 정신을 휘감은 공포가 너무나 컸다. 그런 그에게서, 이 호텔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른 해진 몸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거 싫어요. 하지 마세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 짜증스러운 소리를 냈다.

  


나의 뒷통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가 나를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나의 등 뒤로 그가 올라왔다.


침대 한 쪽에 놓여있던 나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두 손은 내 머리 위쪽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나의 휴대폰을 쥐고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가 나의 몸 안으로 강제로 들어오면서 잠깐의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다.


  


  


  


어느 한 순간 귀에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나의 왼쪽 볼에 부드러운 튜브 표면의 촉감이 느껴져 왔다. 


손을 뻗어 튜브 주위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만져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참 날도 좋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풀장의 물가에 놓여 있는 의자에 편안히 앉아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던 날도 이렇게 좋았었는데.....”


“그 날은 더 좋았었지. 엄마는...” 


외할머니의 옆에 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할머니를 바라보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엄마.”몸을 일으켜 보려 하지만, 풀장안의 물결이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내가 타고 있는 튜브 주위에만 계속해서 파도가 일고 있었다. 


“나 좀....”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손이 닿지 않았다.


“니가 알아서 나와야지. 임마.” 


그 옆에 앉아있던 상훈이형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어보이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는 그를 나는 무시해 버렸다.


  


“이제 나는 가야겠다.”


갑자기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서셨다.


“엄마, 나도 이제 가야지.”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돌아보면서 할머니가 쯧 혀를 찼다.


“너 잘 좀 살아보라고 그 놈도 내가 억지로 끌고 갔는데, 어떻게 또 너는 이렇게 빨리 가려고...”


“아냐. 엄마.”


엄마가 할머니를 올려다 보고는 얼굴을 붉히셨다.


“그 다음엔 엄마 덕분에 승우 아버지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그럼 됐지 뭐.”


“승우는 어쩌고?”


할머니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셨다.


“이제 다 컸는데 뭐.”


엄마가 나를 한번 보시고 마치 기특하다는 듯,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엎어지면 코닿는 곳으로 상훈이가 와 있으니, 걱정도 덜었고...”


힘들게 몸을 일으키시는 엄마를 옆에 앉아 있던 형이 무릎을 꿇고는 두 손으로 붙잡았다.


“어머니는....”


그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식사 대접 한번 해 드릴테니 드시고 가세요.”


“식사는 무슨식사.” 그의 말이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마치 빈정거리는 듯한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아.”


“아니예요.”


그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래도 저와 식사 한번 같이 해요. 네?”


마치 애원이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엄마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뭔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엄마가 물었다.


“나중에 보시면 알아요.”


“.........”


“네?”


  


난처해 하는 엄마의 표정은 모른 척하고 그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알몸으로 누워있던 곳을 순간 알아차리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방을 돌아보았다.


이제 창밖으로 어두움이 몰려들고 있었다.


무심코 내려다본 나의 팔목에 벌겋게 피부가 쓸린 자국이 눈에 띄었다. 


나의 시야에 여기 저기 바닥에 널려있는 나의 속옷이 보였다. 


그리고 어디에도 나와 함께 있었던 그의 흔적은 없었다. 마치 기분 나쁜 꿈이라도 꾼 듯한 느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서려는데 마치 도수 높은 안경을 낀 것 마냥 눈 앞이 어지러웠다. 


간신히 손을 뻗어 팬티를 주워 입고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휴대폰이 켜지기가 무섭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상훈형의 화가 난 목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왜?” 힘들게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너, 어머니 병원에 계시니 당장 튀어와.”


“누구....어머니?”


“야!” 나의 말에 그가 내 귀에 대고 악을 썼다.


그리고 그의 그런 목소리가 내 머리 전체에서 마치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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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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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뽑히지 않는 천륜이 남긴 흔적,
유년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글은 그동안의 분위기와는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꿈꾸던 인물과의 만남은
성적 취향의 결이 다름으로 악몽으로 이어지고
가위눌림에서 허둥대며 눈을 뜨며
만나는 현실은 어머니의 입원.
그런 소식을 전하는 인물은 옛연인.
짧은 문장들 속에서 상황의 긴장을 불어넣는
작가님의 감각이 놀랍다.
한편 '나'가 모르는 어머니와 상훈의 관계를 통햬서
그려질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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