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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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하게 거리감을 두고 또한 적당하게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회에서 길에서 마주치는 누군가는, 어느 날 어느 순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라고 헐크로 변신하기 전, 미리 경고를 해주는 데이빗 배너 박사는 오히려 인간적이다.

그런 그의 말은,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자극함으로서 헐크를 끄집어 내어 봉변을 당할 수도, 그의 사적인 공간을 넉넉히 남겨 놓음으로서 배너박사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지킬박사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이드란 존재는 어둠의 저편에 형체를 보이지 않고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불쾌한 기분의 촉수로 뒤덮인 손을 불쑥 뻗어 우리의 세계를 급습한다. 

그것은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세계 속에 존재하는 디멘터와 같이 우리의 정신세계에 실망과 좌절, 그리고 역겨움과 분노를 남겨놓는다. 


가끔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하이드의 등장에 우리는 당혹감에 빠지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우리들은 그 존재가 원래 지킬박사의 탈을 쓰고 접근한 하이드였는지, 시간대별로 그 둘사이를 오가는 것인지, 혹은 50대 50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돌변하게 한 것이 방금 그의 폐를 채운 오염된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잘못된 술과 안주의 궁합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밴드의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장맛비는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귀찮아진 마음에 모임에 빠질 이유를 생각해내던 와중에 어둡던 창밖이 밝아지면서 비가 그치고 말았다.


우현의 사고가 있은 후, 일년동안 승환은 타인들과의 접촉을 가능한 피했다. 

그들의 6년간의 관계는 서울, 특히 종로에는 너무나 많은 포자를 뿌려 놓았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고사리 줄기 같은 기억이 스멀거리면서 그의 뒷덜미를 기어올랐다. 


추억은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은 동시에 놓아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그에게 우현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장소는 가능한 피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넉넉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그는 비로 인해서 깨끗 해진 거리를 가로질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랜만의 만남으로 인한 얄팍한 어색함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표정과 말투로 어느샌가 곧 사라져 버렸다.

그들 중 어느 누구의 표정에서도 그를 향한 거리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친절함과 호의에 그가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역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연민’ 이라는 감정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처럼 생각해 주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이런 특별한 감정이야 말로, 인간이 그 이외의 모든 생명체와 구분해 주는 불가사의한 신의 선물이었다.


예전에 친했던 두세명의 친구들과 터주대감 역을 맡아 주던 이제 오십이 다 되가는 방장 형은 그를 옆에 붙여 앉히고는 지나간 시간 사이에 다리라도 놓아서 이어보겠다는 듯 그의 부재중에 일어났던 종로에서의 대 서사시를 입에 침이 튀도록 열의를 다해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2차를 거쳐 3차로 자리를 옮기면서, 술이 취해가면서 그들의 분위기는 더욱더 고조되었다. 

  


한층 기분이 업이 되어,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 테이블 위에  ‘탁’ 하고 소리를 내며 내려놓는 승환을 향해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친구 주일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 종석이 형이랑 잘 되어가냐?”

“어. 그냥 그럭저럭....”

“그 형하고 얼마나 됐지?”

“6개월 정도...”

“아...” 주일이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로 히죽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고맙다.” 말을 마치고 승환이 소주병을 들어 주일의 잔을 채웠다.

“근데 말야. 내가 궁금한게 있는데...” 말을 멈추고 주일이 다시 한번 히죽거렸다.

“뭔데?”

“가끔 말야. 가끔....” 그가 말을 멈추고 소주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는 손을 뻗어 오이조각을 집어들어 한입을 베어물었다.

“우현이 형 생각 안나냐?”

“........” 

뜻밖의 주일의 말에 승환이 굳어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보면 정말 대애단 한 것 같애.”  

갑작스럽게 변한 눈빛과 여전한 히죽거리는 웃음 사이로 '대애단' 이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그가 빈정거리는 투로 승환을 조소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오이조각을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지 애인이 죽었는데, 지 애인의 베프랑 그것도 지 애인이 죽은지 6개월만에 사귈수가 있냐?”

“야! 너 취했어. 그만해!” 옆에 앉아 있던 방장이 주일을 향해 손을 뻗어 말을 막으려고 했다.

“뭘 그만해요. 형! 내가 못할 말 한것도 아닌데....” 그가 시선을 돌려 방장을 한번 본 다음 다시 승환을 한번 노려보고는 자신의 소주잔을 집어들었다.

“내가 살다 살다 별 쓰레기 같은 자식하고 한 테이블에 앉아서...”

“너 말 다했어?” 굳어진 표정에서 이제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승환이 주일을 노려보았다.

“왜? 너도 찔리지?” 인간이라면 찔리겠지 지두.“ 주일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승환의 시선을 무시했다.

“이 자식이 진짜!” 승환이 주먹 쥔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올렸다.

“야. 이제 사람도 패겠네? 패라 그래.” 주일이 승환의 주먹을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한쪽 뺨을 승환이쪽으로 들이밀었다.

“새끼. 지는 애인도 옆에 두고 바람피다가 걸린 주제에....”

승환의 말에 주일이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너 모를 줄 알았지? 말을 안하고 쉬쉬해서 그렇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알아. 이 쓰레기 새꺄.” 

“이 새끼가 뒤질라구!” 주일이 승환의 멱살을 잡고 벌떡 일어나면서 테이블이 중심을 잃고 소주병이 넘어져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발치에서 병은 깨졌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테이블을 따라 젓가락과 수저들이 국물과 함께 미끄러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쏟아져 내렸다.

  

“야! 그만해 이 새끼들아!” 방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둘을 떼어냈다.

모두의 시선을 느끼면서 승환은 여전히 주일이를 노려보면서 자신의 옷을 매만졌다.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방장이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늬 지금 누가 더 막장인지 내기하냐? 빙신같은 새끼들. 진짜.”

“저 새끼랑 있으려니까 술맛이 떨어져서 그래요.” 눈으로는 승환을 노려보면서 주일이 방장에게 투덜거렸다.

“야! 너 가!” 방장이 주일이를 향해 손가락으로 문쪽을 가리켰다.“

“더 있으라고 잡아도 갈거예요. 그러지 않아도.” 주일이 큰소리로 말을 내뱉고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낮짝도 두껍지. 어떻게 지 죽은 애인 베프하고 시시덕 거리면서 종로바닥을 돌아다녀. 돌아다니길...”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주일이 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정말!” 


  

  

“아! 새끼. 술을 제대로 처먹지. 못돼 처먹어 가지고.” 술집 앞의 처마 아래에서 입에 담배를 물고 방장이 혼잣말 하듯 내뱉었다.

“형. 저.. 정말 막장이예요?” 입으로 담배 연기를 뿜고는 손끝으로 재를 떨어내며 승환이 물었다.

“너. 내가 아까 말한 것 때문에 그러는구나?” 방장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

“그럼, 술취해서 지랄난 놈한테 너만 막장이고 승환이는 잘살고 있으니까 입다물라고 하냐?”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신경쓰지마. 이런일 저런일 다 있는 거지 뭐.” 그가 길 양쪽을 한번 훑어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그 자식 그렇게 안봤는데 술취하니까 완전히 상종 못할 인간이 되네. 새끼가.” 

“.........”

“그래도 그냥 넘겨야지 어쩌겠냐.” 그가 승환을 바라보았다.

“그거, 너도 알고 있네. 그 자식 예전에 바람피다가 걸린거.”

그의 말 승환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사정 모르는 남은 쉽게 말하게 되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야.” 방장이 고개를 돌려 승환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물론, 쉽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 왜 없겠어. 사람과의 인연도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고 하지. 그 자식이 백번 잘못한 거야.” 

“........”

“그런데, 혹시라도 너가 또 걔 사정 잘 모를까봐 얘긴데...” 그가 다시 담배갑을 열고 한 개피에 불을 붙였다.

“걔가 전에 눈 때문에 몇 달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거든. 사람한테 중요하지 않은데가 어디 있겠냐만, 또, 눈이 얼마나 중요하냐. 눈이 아프니까 항상 두통이 동반되어서 일상적인 일 조차고 집중이 안되고 힘들고 짜증이 난다고 그랬었거든. 그런데 걔 애인이 또 싹싹하고 다정다감한 애는 아니었거든. 애인 사이가 서로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 서로 좋을때야 물고 빨고 하는 건 누구는 못해? 근데, 우리가 친구도 힘들때가 진짜 친구라고 하잖냐. 하물며, 지 애인이 몸이 안 좋으면 좀 더 신경써주고 더 참아주고 의지가 되어주고 해야 하는데 그걸 전혀 못해준거야. 오죽이 힘들고 섭섭했겠냐. 몸 아플 때 애인이 조금만 잘 못해봐라. 그것도 마음에 상처되고 오래남지. 

걔가 바람을 피웠다는게 잘했다는게 아니고, 또 그걸로 걔가 딴 놈을 만난게 정당화 된다는 것도 절대 아니야. 그냥 내 말은 그 애 사정을 좀 알고 입장을 조금만 바꿔보면 상대방의 행동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은거야.“

“그래도....” 말을 잇기전 승환이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그 자식이 그렇게 나에게 말 한건 절대 용서 못해요.”

“말해 뭐해.” 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살살거리면서 친한척 하던 놈이 순식간에 돌변하네.” 방장이 피식 웃었다.

“무슨 싸이코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


“아이고 머리 아프다. 우선 들어가자. 다른 애들도 있잖냐.” 방장이 슬며시 승환의 팔을 잡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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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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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말의 무게는 입 속에서는 가볍지만
입밖을 나오는 순간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술이 죄라고 하지만 인간이 죄인 거다.

승환이의 드러내지 않은 사연의 동굴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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