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황석호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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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성기 노출 사건은 단순한 방송사고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특별시장은 공연팀을 조사해 퇴폐공연팀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각 구청을 통해 불법 공연이 이뤄지는 곳을 일제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경찰도 대학가 라이브 클럽으로 수사 확대 방침을 발표했고 클럽에 대한 경찰 단속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떠돌았다. 유명 가수의 스캔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음반제작자가 돈을 주고 생방송에서 노출 사고를 지시했다는 소문이었다. 착잡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영오를 맡기러 오던 석호가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았다. 공연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석호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는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고 있던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철우였다. 12월로 접어드는 때였다.
“영기야, 너 토요일 저녁에 별 약속 없지?”
“응.”
“그럼 얼굴 한 번 보자.”
철우의 목소리가 밝게 느껴졌다.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연습실로 가면 되지?”
“아니. 우리 동네로 와. 그냥 오지 말고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해서 와.”
“무슨 일인데?”
“나 학원 차렸어. 실용음악학원. 나도 이제 가장 노릇 좀 하려고.... 근데 학원에 냉장고가 없네.”
“이야~~~ 축하해.”
“고마워. 근데 민구도 냉장고가 없다네. 크크크크.... 잠시만.... 민구 바꿔줄게.”
“영기야~~~~ 나도 차렸어. 나는 학원이 아니라 교습소. 철우랑 아래위층으로 있으니까 양손에 냉장고 하나씩 들고 와서 한 층에 하나씩 내려놓으면 돼.”
“너는 무슨 교습소?”
“내가 투잡을 뛰게 됐어. 철우 학원 위층에서 수학 가르치고, 가끔 아래층 내려가서 드럼 가르치고.... 암튼 토요일 저녁에 개업식 할 거니까 꼭 와.”
“응.... 근데 석호는?”
“석호도 투잡 뛰어. 아버지 가게에서 기타 팔다가 철우네 학원 와서 기타도 가르치고 그래. 석호는 개업도 하기 전에 레슨 잡혔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밴드는....”
“그 얘긴 개업식 날 와서 하자.”
“응.... 그럼 주소 문자로 보내줘.”
“왜?”
“냉장고 사달라며?”
“진짜 사주게?”
“너무 큰 거는 말고 사무실에 적당한 걸루 사줄게.”
토요일, 개업식을 빙자한 모임이 이뤄졌다.
철우는 밴드 생활을 하는 동안 간간이 피아노 레슨을 해왔다. 음대 입시까지는 아니어도 피아노를 갓 배우는 아이들이나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체르니까지는 가능했고, 밴드의 키보드 반주는 탁월했으니 딱 어울렸다. 게다가 석호와 민구를 보조 강사로 활용하면 피아노뿐만 아니라 기타, 베이스, 드럼까지 확장할 수 있었으니 실용음악학원이라는 간판에 손색이 없었다.
민구의 수학 실력은 나도 인정을 했다. 학원에 다녀도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민구는 내가 딱 모르는 것을 짚어 해결해 줬고, 파트 강사를 하면서 제자를 감동시켜 결혼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아래 위층을 오가며 드럼까지 가르치면 가외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으니 민구에게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석호의 기타 실력이야 이미 딴따라 바닥에서도 유명했고, 가끔 세션으로 뛰기도 했으니 진짜 더 말이 필요 없었다. 게다가 내 베이스 선생이 바로 석호이지 않은가.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악기 때문에 좀 복잡한 철우의 학원보다 책상과 칠판밖에 없는 민구의 교습소가 한적해서 그곳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야, 어떻게 학원 차릴 생각을 다 했어?”
민구가 정말 모르겠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니가 과외해서 집까지 사는 거 보고 우리가 따라한 거 아냐. 예전부터 할까 하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 참에 한 거지.”
“그럼 마누라 등 처먹지 말고 진작 하지 왜.”
“씨.발....”
민구가 욕 한 마디로 입을 닫았을 때 철우가 이어서 말했다.
“너도 대충 분위기는 짐작할 거 아냐. 우리가 뭔 잘못을 했다고.... 씨.발.... 우리가 하는 공연이 퇴폐 공연이란다.... 씨.발 드러워서 밴드 떼려치웠어. 밴드 한답시고 백수로 살았는데, 이제 밴드도 안 하니까 돈 벌어야지. 학원은 영기 너 따라서 한 거지만 밴드 떼려치운 건 누구 때문인지 알지?”
나는 석호를 바라봤다. 석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술잔만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아버지 가게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지금이네. 아무리 못해도 마흔은 넘겨서 들어갈 줄 알았는데....”
결국 방송사고는 석호 플라이가 밴드 활동을 접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마녀사냥처럼 클럽 주변을 조사하는 경찰 때문인 것보다 그렇게나 기대를 하던 방송 출연이 좌절된 것이 훨씬 더 큰 이유 같았다. 처음부터 기대가 없었으면 모를까 한껏 기대를 했다가 타의에 의해 좌절이 된 것은 꿈과 희망의 동력이 완전히 멈춘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신해철도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한 마디를 했다. 인디씬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뭔가 해보려고 했던 모든 음악인과 거기에 공감해 지지해온 팬들까지 포함해서 여러 사람 등에다 칼을 꽂았다고.... 서태지가 TV 몇 번 나와서 대박이 났고,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흐름이 바뀌었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는 밴드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라며 가능성의 측면에서 서태지만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디밴드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신해철다운 말이었다.
석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석호가 TV 방송에 출연을 하고 나면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에도 출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TV에 나가 대중들 앞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며 석호 플라이라는 밴드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뒤, 자신의 우상인 신해철을 만나러 가는 것은 석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석호에게는 단순한 TV 출연이 아니었다. 밴드 활동을 하는 내내, 그리고 앞으로의 밴드 활동에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TV 출연이었다. 대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석호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우상으로 여기는 신해철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터였다.
인정을 받는 것이 꼭 TV 출연밖에 없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석호는 그랬다.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석호니까, 또 자기가 믿는 한 가지 외에 다른 가능성들은 타협이라 생각해서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 우직한 사나이 석호니까.
해가 바뀌고 학생들도 꽤나 늘었다는 자랑을 담은 연락이 민구와 철우에게 몇 번 왔다. 석호는 몇 달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에 집으로 찾아왔다.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영오가 보고 싶어 했다고. 나도 석호를 보고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영오 핑계를 댔다.
“영오야, 아저씨 많이 보고 싶었어? 아저씨도 영오 많이 보고 싶었어. 뭐 먹고 싶어. 아저씨가 다 해줄게.”
함께 저녁을 먹고 나면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석호는 영오를 데리고 작은방에서 자고 갔다. 가끔은 내가 영오를 데리고 자기도 했다.
한 해 한 해 뭐 특별한 것도 없이 지나갔다. 내가 하는 일도 디테일한 업무가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10대 시절은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가더니 30대는 총알처럼 흘러갔다. 하루하루는 더디게 흘러가서 퇴근 시간은 멀기만 하더니 1년은 정말 금방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지난 시절의 일기를 꺼내어 읽어보면 10대 때의 일기, 특히 고등학생 때의 일기에는 빨리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얘기가 자주 보여 나를 웃음 짓게 했다. 그때를 기준으로 보면 어른이 된 나는 오히려 그 시절, 악몽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이 갑갑하기는 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나이 마흔을 바라보고 있던 때,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0대 때는 죽어라 안 가던 시간이 20대는 화살 같고, 30대는 총알 같이 흘러간다고 푸념을 했다. 그랬더니 40대 중반을 넘어선 직원이 나에게 웃으면서 40대가 되면 세월이 빛과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했다.
그렇게 총알 같은 세월이 흘러 빛의 속도에 진입하기 몇 달 전이었다. 토요일 저녁 무렵에 초인종이 울렸다. 석호였다. 당연히 영오도 함께였다.
“영오야 어서와....”
나는 석호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밥 하기 귀찮아서 그냥 라면 끓여먹으라 그랬는데.... 좀만 기다려. 밥 할게. 근데 반찬 별로 없으니까 그냥 먹어.”
“밥 하지 마. 우리 나가서 사먹자. 맨날 니네 집에서 얻어먹기만 했으니까 내가 또 한 번 사야지.”
메뉴는 영오가 골랐다. 골랐다기보다 그냥 물어볼 것도 없이 돼지갈비였다. 달달구리한 양념돼지갈비를 영오가 엄청 좋아했으므로 석호가 외식 겸 한 턱 쏠 때는 항상 메뉴가 똑같았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 TV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석호가 예전에 개봉한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너 혹시 ‘즐거운 인생’ 영화 봤니?”
2007년 개봉 당시에 극장에 달려가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DVD까지 산 영화였다. 개봉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다소 뜬금이 없었다.
“응. 개봉할 때 봤어. 너무 좋아서 DVD도 샀어.”
“진짜? 나 며칠 전에 우연히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 그럼 지금 또 볼래?”
석호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석호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집들이 겸 멤버들이 모두 모였을 때였다. 석호가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며 같이 보러 갈 것을 먼저 제안했고, 철우가 극장 안 가 본 지 오래 되었다며 격렬하게 동조를 했다. 민구와 나는 별 생각 없이 따라 갔다. 넷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탄식과 안타까움이 새어 나왔다.
석호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라며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였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침대에 기대 앉아 석호와 나는 영화를 봤다. 내가 사놓은 블록을 가지고 놀던 영오도 석호와 내 사이에 가만히 앉아 TV 화면을 응시했다.
“진작 봤어야 했는데,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어.... 육아의 고통 중에 하나가 바로 극장 구경을 못한다는 거야. 철우 마음을 알겠더라고....”
영화 ‘즐거운 인생’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주는 따뜻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영화라서 정말 좋았다. ‘왕의 남자’를 보고 내 처지를 생각하며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라디오 스타’도 마찬가지였다. 브로맨스가 돋보이는 영화라서 그렇지 싶었다. 게다가 즐거운 인생은 밴드가 나와서 더욱 좋았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드럼을 치는 김상호 배우가 민구랑 닮아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우습기도 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공연 장면은 가슴이 찡해서 볼 때마다 울컥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 먹고 살기 위해 살아도 음악, 밴드에 대한 열정만큼은 같아서 그 에너지가 터지는 장면이었으니 몇 번을 봐도 한결 같았다.
영화 '즐거운 인생' ost - 즐거운 인생
영화가 끝나고 석호의 눈도 젖어 있었다. 나처럼 눈가에 물기가 맺힌 정도가 아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으면 화면을 놓칠 새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고 콧물까지 훌쩍였다.
“영기야.... 나 밴드 다시 할래....”
석호가 갑자기 영화에 나온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 이제 날아가는 거야 하늘 끝까지 그래 노래하는 거야 즐거운 나의 인생~~~~아 ♬
석호는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민구야, 우리 밴드 다시 하자. 갑갑해서 미치겠어.... 진짜지? 그래 내일 보자.”
또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당연히 철우일 것이었다.
“철우야, 우리 밴드 다시 하자.... 민구도 한대.... 나 영기네 집.... 그래 알았어. 내일 연습실에서 보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는 석호에게 내가 물었다.
“몇 년 동안 밴드 안 했는데.... 연습실 아직 있어?”
“응. 하루라도 기타 안 치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데 어떡해. 거기밖에 내 맘대로 기타 칠 데가 없는데.... 안 없애길 잘했어.”
“철우 학원에서 기타 치면 되잖아.”
“연습실 빌려서 합주하던 밴드들한테 내가 밴드 안 한다고 연습실 없앨 거니까 오지 마 할 수가 없어서....”
석호는 나를 쳐다보며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기야.... 우리 밴드 다시 하자....”
석호의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 나도 하고 싶었다. 무료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베이스 연주를 하며 멤버들과 합을 맞추고, 많지는 않아도 석호 플라이의 노래를 듣고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방방 뛰면서 공연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장 속의 새에게는 조그만 통에 꼬박꼬박 모이와 물이 채워졌기에 굳이 날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내가 그랬다. 따박따박 정해진 날에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십 년 가까이 살아온 세월은 내 열정도 사그라 들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석호 플라이와 함께 날 수가 없는 새장 속의 새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시작하려는 석호 플라이에 나 같은 존재는 없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석호를 위해서였다.
“공무원이 무슨 밴드를 하냐? 나는 그냥 너희들 열심히 응원할게....”
석호는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다시 밴드를 시작했다. 민구와 철우가 생업이 생겼으므로 예전처럼 전투적으로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대학가 라이브 클럽들에 부활의 소식을 알렸다.
몇 년 간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하게 되니 석호의 표정도 예전의 해맑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연을 할 때마다 영오를 맡기는 것도 또 다시 잦아졌다.
세월의 흐름이 빛의 속도에 진입을 한 마흔 살은 정말 하는 것도 없었는데 금세 지나가 버렸다. 딱 하나 한 일이라고는 영오가 학교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라 과외를 할 때처럼 공부를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 읽는 것은 곧잘 했으니 쓰기 연습을 위해 열심히 받아쓰기를 시켰다. 받침이 어려운 단어들을 골라 받아쓰기를 하고 음운의 변동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받침 발음이 변하는 원리에 대해 가르쳤다. 영오가 100점을 받은 날에는 석호가 데리러 오면 동그라미가 수십 개 그려진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자랑을 했다. 석호는 영오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하면서도 나에게는 잔소리를 했다.
“야, 이런 받침은 나도 헷갈리겠다. 너 초딩 1학년한테 이런 걸로 시험 치면 그거 아동학대야.”
그리고 농담인 듯 나에게 말했다.
“니가 알아서 시키는 거지 내가 공부시키라고 안 했으니까 돈 받을 생각하지 마. 나 백수라서 고액 과외 못 시킨단 말야.”
석호도 웃고 나도 웃었다. 덩달아 영오도 웃었다.
그렇게 나이 마흔을 보내고 만으로도 마흔이 되는 2010년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에 대해 가끔 한숨이 나왔다. 억지로 우기면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봐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런데 석호를 비롯해 철우나 민구를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딱 봐도 40대 아저씨였다.
나처럼 날씬하지는 않아도 뚱뚱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던 철우도 배가 나와서 허리띠 구멍이 변했다고 푸념을 했다. 민구와 석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까딱하다가 몸무게 세 자리 될 거 같애. 마누라가 무겁다고 당장 내려오라더라. 살 안 빼면 이혼이래.... 씨.발 나 어떡해.... 야, 이영기 너는 어떻게 늙지도 않냐? 우리만 나이 먹는 거 같애.”
민구가 이렇게 말을 꺼내면 철우가 받아서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씨.발, 이영기 씨.발새끼, 이 몸매 유지하면서 총각이랍시고 아직까지 여자들 존.나 따먹고 다닐 거 아냐. 존.나 재수 없고 존.나 짜증나....”
민구와 철우는 마누라들의 등살에 그나마 이것저것 건강식품을 챙겨 먹으며 몸 관리를 했으나 석호는 나처럼 잔소리를 할 마누라가 없으니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담배 피우고 싶은 거 다 피우면서 편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철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석호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이었다. 한 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내 질문에 민구가 대답했다.
“합주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지금 수술 들어갔는데, 혈관이 막혔다나 어쨌다나.... 큰일 날 뻔 했어.”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 석호는 일반 병실로 오자마자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인 석호만 남겨두고 우리는 병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씨.발.... 살 빼야겠어. 이 담배도 끊든지 줄이든지.... 20대는 결혼식 쫓아다니고, 30대는 친구 부모님 문상 다니다가 시간 다 보내고, 40대 되면 먼저 가는 친구 본다던데....”
민구의 말에 철우가 발끈 하며 욕을 했다.
“씨.발 재수 없게 뭔 소리야.... 암튼 이제 건강 좀 생각하면서 살아야 될 거 같기는 해.... 울엄마가 항상 나 보고 니 몸이 니 꺼가 아니라고 그랬는데 그 말이 뭔 말인지 이제는 알겠어. 민구야, 너 보험 뭐뭐 있어?”
유부남들은 달랐다. 자기의 몸을 챙기는 것도 마누라와 자식을 위해서가 먼저였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무진장 노력하는 것을 보고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다 이런 맥락이었다.
의무적으로 들어 있는 국민건강보험 외에 그 어떤 보험도 들지 않는 나를 두고 사무실 사람들이 별종이라고 미쳤다고 그랬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보험료 낼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건강에 훨씬 더 좋다며 코웃음을 쳤다. 사람들은 나에게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면서 보험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데 그걸 하지 않는 나를 미련곰탱이 취급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내 미래는 내가 알아서 대비하는데, 왜 자기네들이 나서서 난리인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 입장이 되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기들 기준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내가 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 수가 없으니 저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그냥 웃음으로 받아 들였다.
그랬다. 나는 대비할 미래가 없었다. 수술 같은 치료를 했을 때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7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노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정말 죽기 싫고 오래오래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정신과 몸으로 살고 싶은 것이지 아픈데 목숨만 유지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큰 수술을 해서 나을 병이라면 내가 모아둔 돈으로 얼마든지 치료비는 가능했다. 과외로 번 돈이 반이 넘게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받은 월급도 돈 쓸 일이 별로 없으니 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내 미래에 대한 대비는 이걸로 충분했다. 죽을병이 걸리면 나는 순리대로 죽을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딸린 가족이 없기 때문에 그냥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보험 따위로 내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없었다.
정작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은 풍을 맞아 몸이 운신을 못할 정도로 한쪽이 마비가 오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가 왔는데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이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석호는 언제 수술을 했냐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철우의 말로는 퇴원을 하는 날 바로 연습실에서 기타를 미친 듯이 쳤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하루라도 기타를 치지 않으면 손가락 끝에 가시가 돋는다 했으니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쳤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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