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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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가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본색을 드러내면 욕도 잘하고 또한 악의도 없어 가슴에 남아 있는 앙금을 털어 버렸다. 반이는 항상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담배와 같아서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는 친구이다. 반이는 한밤중에 꿈속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전화해서 다짜고짜로 용건을 말했다.
"뭐하냐."
"자는데 니가 깨웠지."
"술 한잔하자."
"왜?"
"에이, 자지같은 세상 포피로 확 덮어 버리고 싶다."
반이는 직장에 다니기가 힘들었나 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맞는 직장이 있을까? 경제적 자립이 뒷받침되는 돈을 벌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열심히 일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반이의 푸념을 들으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반이와 나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말문이 막히지 않았다. 그리고 비밀을 숨김없이 술술 털어놓았다. 둘이는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업 시간이 끝나자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반이를 나의 집으로 유도했다. 나는 반이와 함께 잠을 잘 생각으로 명령조로 말했다.
"옷 안 벗어?"
"난 누가 옷을 하나하나 벗겨 주면 좋더라."
"알았어. 내가 벗겨 줄게."
나는 반이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내가 반이의 옷을 벗기자 멋쩍게 씩 웃었다. 반이의 웃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아 농을 걸었다.
"나 유혹하지 마."
"니가 유혹한다고 넘어갈 놈이냐?"
"잘 아네."
반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해서 좋다. 특히 성적인 관계를 가질 때 스스럼없이 행했다.
"조금 더 아래 빨아 줘"
"여기?"
"거기 말고 잘 알잖아."
반이는 내가 혀로 날름날름 핥아 주는 순간 뿅 가고 말았다. 나는 항문 섹스를 거부하는 반이를 살살 달래었다.
"딱 한번만 하자, 응?"
"죽어도 거긴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야?"
"씹 새끼 넌 욕을 얻어먹어야 성에 차냐?"
반이는 나의 열렬한 애무를 좋아하면서 항문 섹스는 극구 반대했다. 굳이 싫다면,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자세를 바꾸어 반이의 그 곳을 맛있게 빨아먹었다. 반이는 아픔에 겨운 소리를 잇달아 냈다.
"끙끙~. 자지 나게 아프네."
"더 아프면 쌍 자지 되겠네."
"아하하~. 나하고 어울리더니 너도 다 버렸다."
친구란 함께 어울리면서 서로 닮는 법이 아닌가? 나는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반이를 닮아 가고 있었다.
"아파, 씨 팔 놈아! 살살 좀 해."
"알았어."
"넌 흥분하면 굶주린 늑대 같아."
"히히~."
반이가 전화를 걸어 욕 한마디 없이 다정히 통화하는 것을 보고 여자라는 것을 짐작했다. 나는 궁금히 여기고 반이에게 전화 상대가 누구인지 물어 보았다.
"반이야 방금 통화한 사람 여자지?"
"아니 여보지다."
"아하하~. 아주 재치 있는 조크(joke)였어."
그런데 갑자기 어릴 적 대화를 나누던 내용이 생각났다.
"너 어제 밤에 불난 거 봤어?"
"아니 못 봤어."
"에구, 자지 말고 보지."
반이는 한길을 걷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도 반이의 시선을 따라 그 사람을 보는데 반이가 절로 감탄했다.
"야, 저 사람 뒷모습 죽여 준다."
반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궁금하여 한걸음에 뛰어갔다. 나는 앞서가는 사람을 앞질러 힐끔 쳐다보고 반이에게 느끼는 바를 밝혔다.
"얼굴은 영 아니다."
"괜찮아! 뒷모습만 보고 뒤에서 하면 돼."
나는 말없이 반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너한테 그렇게 하고 싶어."
"씨 팔 새끼! 말하는 싹수가 노랗다."
"왜?"
"내가 얼굴은 못생기고 뒷모습만 괜찮다는 얘기 아냐?"
반이는 눈치가 빨라 나는 말문이 막혀 할말을 잊었다.
반이의 변화 중에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이었다. 약속 시간을 한참이나 넘기고서야 반이가 파마 머리하고 나타났다.
"내 헤어스타일 어때?"
"아줌마 머리네."
"뭔 말을 자지같이 하냐."
"왜, 느낀 그대로 말한 거 뿐인데."
반이의 뽀로통한 얼굴을 보고 나는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보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에 넣고 대화하는 게 필요했다.
나는 일상생활 중에 반이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반이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하고 싶어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반이에게 속살이 비치는 사각으로 된 모시 팬티를 주었다.
"야, 선물이야."
"우아, 니가 웬일로 이런 걸 다 주냐? 근데 모시 트렁크네."
"사람 심리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아슴푸레하게 내비치면 감질난 듯 매력적이잖아."
"너 변태냐?"
아이고 이런! 젠장맞을, 뭐 되는 일이 있어야지. 내가 하고 싶은 선물을 주면서 변태라는 소리를 듣다니. 욱하는 성질 같아서는 반이를 한 대 쥐어박을까 보다.
반이는 한번 선물을 받으면 꼭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내가 준 선물보다 더 나은 것을 주었다.
"야, 선물!"
"와! 후드 티잖아."
"맘에 들어?"
"넌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애들 입는 걸 사냐?"
"니 나이에 맞춘 게 아니고 너한테 맞춰 산 거다."
"정말? 넌 욕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말도 참 잘한다."
반이의 말을 듣고 보니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솜씨가 있다. 나는 왜 반이 같이 언변이 좋지 않을까?
반이와 나는 동네 어귀 정자나무 그늘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의견 충돌이 생겼다.
"내기할래?"
"좋아!"
나는 정자나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아무나 붙잡고 사실 여부를 물어 보았다.
"저와 쟤 중에서 누가 더 잘생겼나요?"
"두 사람이 비등하네요."
"질문에 대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그 사람이 저만큼 멀어지자 불만을 표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랑 비등하다는 말이 되게 기분 나쁘게 들리네."
"누가 할 소린데."
"저 사람 정말로 사람 볼 줄 모른다."
반이와 내가 서로 잘났다고 부득부득 우겨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오십보 백보였다.
"반이야 가자."
"어디 갈건데?"
"우리 집."
"나 안 갈래."
"왜?"
"니네 집에 가면 밤새도록 안 재우잖아."
반이가 정곡을 찌르는 말속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았다. 반이와는 친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라도 상대의 입장도 생각해 보았다.
반이와 나는 시내를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거닐었다. 반이는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을 번화가에서 만나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나는 반이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고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야, 니가 꿩이냐? 머리만 처박으면 안 보이는 줄 알어."
"아하하~. 듣고 보니 그러네."
"누군데 그렇게 숨냐?"
"알 거 없어."
나는 그 사람이 동성연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비밀이 탄로가 났다. 반이가 이번 일은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
"배고픈데 밥 사 줘."
"알았어. 밥 사 줄테니까 넌 몸으로 때워."
"이런! 오줌통에 삶아 먹고, 똥물에 튀길 놈. 넌 그거 밖에 모르냐?"
반이가 그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섹스 밖에 모르냐로 들렸다. 사실 남자끼리 만나서 술을 마시고, 야한 농담 빼면 뭐가 있을까? 나는 반이를 일상적인 일로 만나는 것보다 성적 쾌감을 느끼고 싶어 만났다. 나는 반이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차림표를 펼쳐 보고 반이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뭐 먹을래?"
"니가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너 먹고 싶어."
"난 메뉴에 없잖아. 아무튼 매일 먹는 거 말고 색다른 거 먹자."
"그럼 나 먹어."
"자지나게 맛없던데."
"지랄하네. 너는 맛있는 줄 알어. 먹을 것이라곤 오직 너 뿐이라 그나마 널 먹는 거지."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나의 말을 여유 있게 맞받아치는 반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반이는 나의 욱하는 태도에 대응하지 않고 능글능글 웃기만 했다.
나는 한길을 천천히 걷다가 반이 얼굴을 한번 힐끗 보고 이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부탁 한 가지 들어 줄래?"
"뭔데?"
"들어 준다면 말하고 안 그러면 관둘래."
내가 본론을 간단하게 말해 반이가 들어 주면 좋고, 아니면 말하지 않으면 되는 것을 반이의 의사를 조심성 있게 타진하는 것은, 반이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들어 줄게."
"니 거 만지고 싶어."
"매일같이 만지면서 새삼스레 무슨 말이냐?"
"음, 스스럼없이 만지는 것보다 어렵게 허락을 받거나 강제로 만지는 그 맛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어. 사람 심리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잖아."
"아하하~. 아주, 제법 어른 같은 말을 하네. 너한텐 안 어울리니까 평소대로 해라."
사람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반이는 외모가 단정하고, 남성미가 넘치는 우람한 체구를 가졌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반이가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승용차를 거칠게 몰았다. 반이는 옆 좌석에 앉아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내 것을 더듬었다. 나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그 곳이 팽팽하게 발기했다. 그 곳은 꽉 끼는 옷을 밀어붙이느라고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반이는 내 바지 지퍼를 당겨 열고 팬티 소변구로 그 곳을 꺼내 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머리를 운전대 아래로 내려가 그 곳을 입 속에 넣었다. 나는 짜릿한 성적 쾌감을 느끼고 스릴이 넘치는 액션 영화처럼 가속 페달을 막 밟으려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아, 씨 팔! 왜 갑자기 급브레이크는 밟고 난리야!"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니가 내거 입에 넣은 채 죽어 봐.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
"키득키득. 죽은 뒤에 뭐 알겠냐?"
"하긴 그 말이 맞아."
나는 인터넷을 통하여 쪽지의 글을 주고받는 동안 그 사람과 정들었다. 그 사람은 나와 만날 시각과 장소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으로 정했다. 나는 상행선 열차를 타고 서울을 향하여 떠났다. 그 사람은 나를 서울역 광장에서 만나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그 사람의 속내를 알아채고 그에 대비하여 넌지시 마음을 떠보았다.
"제가 맘에 안 들면 물러도 돼요."
"정말요?"
"예, 그 대신 왕복 교통비는 부담하세요."
"네?"
반이 몰래 바람피우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을 통하여 정들어도 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가 이루어질 수 없는가 보다.
휴일날 오전, 나는 반이를 도심 공원에서 만났다. 반이는 나의 행동을 그때그때의 상황으로 미루어 얼른 알아차렸다.
"너 오늘 따라 이상하다."
"뭐가?"
"너 뒤가 켕기는 게 있지?"
"나 구린 데 하나도 없으니까 공연히 넘겨짚지 마라."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태연하게 해 댔다. 정작 실제의 속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면서 행동거지가 수상한 건 어찌 그리 잘 알까? 나는 반이 얼굴을 바라보고 화제를 돌렸다.
"나 이다음에 결혼하면 대중목욕탕에서 할 거다."
"누구랑 할 건데?"
"물론 남자겠지."
"나는 초대하지 마."
"왜?"
"니 거 볼 거 다 봤으니까."
반이는 야속하게도 내 간절한 바람을 몰랐다. 사실은 반이랑 함께 하고 싶었는데 나의 속마음을 조금도 몰라주어 반격을 가했다.
"난 동성애자를 안 믿어."
"나도?"
"응!"
"나도 너 안 믿는다."
"왜?"
"너도 나랑 똑같은 놈이니까."
이런 걸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하는 건가? 나는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나 후회가 막심했다. 나는 마음을 바꾸어 먹고 온화한 말투로 질문했다.
"나하고 잘 사람 손들어 봐?"
"‥‥‥."
"아무도 없네. 그럼 반이야 나한테 자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 봐."
"넌 누구랑 자고 싶은데?"
"바로 너."
반이는 공원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놓았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줄행랑을 놓는 반이의 뒤통수에 대고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에이, 자지 만한 새끼 보지로 확 덮어 버릴까 보다."
"아하하~, 내 욕 표절하면 신고한다."
"니가 도망 간다고 해도 소용없어. 꼭 돌아오게 만들테니까. 이 홀아비자지 같은 새캬!"
밤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더더욱 외로움을 많이 탄다. 밤낮 없이 붙어 다니는 그림자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꿈꾼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이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전화 수화기를 통하여 들렸다.
"지금이 몇 신데 전화냐?"
"나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뭐가?"
"나랑 같이 자자니까 도망 가."
"나 지금 달거리하거든."
"아하하~, 내가 졌다 졌어. 도저히 말로는 널 못 당하겠다."
이 세상에 반이 같은 친구는 없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환상에 불과하다. 어쩌면 반이는 내가 되고, 나는 반이가 되는 상상의 날개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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