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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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윤이와 원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참석했다. 지루한 행사가 끝나고 교정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촬영하는 사이에 한 소녀가 주위를 맴돌았다. 소녀는 윤이와 원이 중에 한 조카와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나는 사진을 찍다 말고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소녀야, 왜 그러니?"

"원이와 사진 한번 찍으려고요."

"그래, 원아  소녀와 같이 서 봐." 

원이는 싫다 좋다 말없이 돌아서고 소녀는 어리둥절하여 한동안 서 있다. 나는 공연한 짓을 해서 원이와 소녀에게 오해를 샀다. 일이 묘하게 얽힌 것을 풀려고 원이에게 쫓아가 소녀의 입장에 서서 대변했다. 

"원아, 니가 그러면 소녀의 입장이 뭐가 되니 그러지 말고 한번 찍자."

"싫어요."

"원아, 삼촌 말 안 들을래?" 

원이는 들은체만체하고 저만치 도망갔다. 소녀는 붉으락푸르락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는 겸연히 소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미안해 소녀야."

"괜찮아요." 

나는 소녀의 표정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얼른 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학교를 나왔다.

 

   8년 뒤, 나는 아침에 택시를 운행하기 전에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담배를 두 갑 샀다. 그런데 하루 종일 택시를 운전하면서 청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둘째 날, 나는 일부러 청년을 만나기 위해 편의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청년은 담배 두갑을 진열장에서 꺼내 바코드를 찍은 뒤 돈을 받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덧붙이기로 빵과 우유를 사서 돈을 지불하고 계산대에 놔둔 채로 등을 돌려 나오려고 하자 청년이 나를 불렀다.

"아저씨, 빵과 우유요?"

"내가 피는 담배를 기억해 준 보답으로 주는 거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아요."

"네. 삼촌!" 

나는 소리 없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편의점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세쨋 날, 나는 청년의 행동을 지켜보기 위해서 유리창을 통해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청년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독서 삼매에 빠져있다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돌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두메산골 소년처럼 자연스러운 표정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만 치켜세웠다. 청년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는 표시했다. 진열장에서 담배 두 갑을 꺼내 바코드를 찍은 뒤 내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편의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며 청년에게 물어 보았다. 

"무슨 책을 그렇게 보냐?"

"나중에 빌려 드릴게 읽어 보세요." 

"말만 들어도 고맙다!"

 

   나는 지속적으로 청년에게 관심을 가지고 만나서 정을 돈독히 했다. 청년은 편의점 맞은편에 있는 아침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자정에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했다. 카라 없는 반팔 면 티셔츠에 카키색 반바지를 잘 입었고, 아름다운 인상에서 강렬한 자극을 받았다. 청년의 신상을 파악한 뒤 나는 쉬는 날 청년과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반이야, 우리 놀이 공원 갈래?"

"정말요? 그럼 좋죠."  

 

   나는 반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달려 놀이 공원에 갔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반이와 적당한 간격을 두고 걸었다. 반이는 어느새 나의 곁으로 다가와 심성이 좋은 아이처럼 손을 잡았다. 나는 반이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공원을 휘휘 둘러보았다. 

"남자끼리 이러면 남들이 쳐다봐."

"삼촌인데 어때요?"

"나랑 하룻밤 자면 진짜 삼촌한다."

"허! 그것 참 큰일이로군요."

 

   반이는 놀이 기구를 즐겨 타면서 괴성을 지를 때 청년답지 않게 고음이었다. 나는 반이가 놀이 기구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반이와 함께 놀이 공원을 걸으면 반바지 앞 지퍼 부분이 볼록하게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반이는 스낵코너에서 이것저것 마구 사달래 먹고 흡족한 듯 말했다. 

"삼촌, 그만 가요."

"그래."

 

   나는 놀이 공원을 떠나면서 돌아오는 길은 여유로이 국도를 택해서 운전했다. 신호등 체계를 잘 파악하면 규정 속도로 달리 수 있어 고속도로 못지않다. 반이는 승용차에 타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감상했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승용차를 멈추면 왕방울 같이 커다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반이 귀에 꽂은 이어폰 하나를 빼서 나의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Boy George의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 노래가 들렸다. 승용차 안에서 졸고 있던 반이는 갑자기 놀라 깨어 다급히 볼일을 요청했다. 

"삼촌, 배 아퍼요. 화장실 좀."

"알았어,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동안 갔다 와."

 

   반이는 승용차가 주유기 옆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차 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주유가 끝나고 한참을 기다려도 반이가 오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삼촌, 저예요."

"너 어디니?"

"화장실인데 휴지가 하나도 없어요."

"고거 참 쌤통이다."

 

나는 반이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웃음을 꾹 참으며 주유할 때 받은 지갑 티슈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지갑 티슈를 화장실 틈새로 주려고 하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 열어."

"‥‥‥." 

반이는 아무런 대꾸하지 않아 가만히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텅 빈 화장실을 보자마자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 있니?"

"여자 화장실에 있어요."

"으하하~, 너 아주 쇼를 해라." 

반이는 황급히 서두느라 여자 화장실인 줄 모르고 들어갔다. 나는 여자 화장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티슈를 가지고 장난했다. 

"문 열어 티슈 줄게."

"그냥 주세요,"

"그럼 나 간다."

"알았어요. 문 열게요."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반이의 그곳을 뚫어지게 보았다. 반이는 양다리를 오므려 왼손을 짝 펴서 그곳을 가리고 오른손으로 지갑 티슈를 받았다. 나의 시선은 반이의 그곳을 보고 음모만 조금 보여 실망하는 투로 투덜거렸다. 

"보여주면 어디 덧나냐?"

"허!"

 

   나는 승용차를 몰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반이 먼저 아침해 아파트 단지 입구에 내려주면서 의의(依依)했다. 나는 반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엉뚱한 말로 대신했다. 

"오늘 반이하고 즐거웠어."

"저도요. 삼촌, 안녕히 가세요."

"그래, 반이야 잘 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일 근무를 위해서 샤워한 뒤에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 반인데요. 삼촌 집에 놀러 가도 되요?"

"정말? 지금 태우러 갈게."

"아뇨, 바로 갈게요."

 나는 본심을 감추지 못하고 반이의 의사에 흔쾌히 승락했다. 반이와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반이요." 

나는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반이를 보자마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너 어디서 전화했니?"

"요 앞에서요."

"만일에 내가 거절했으면 어떻게 할려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왔지요. 히-." 

 

   나는 전에 입으려고 사놓은 아껴 둔 팬티를 서랍장에서 꺼내 주며 반이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반이 씻을래?"

"네."

 나는 반이가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조명등을 끈 뒤 침대에 누워 기다리다가 스스로 잠들었다. 반이가 샤워를 끝내고 욕실문을 여는 소리가 나자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반이가 욕실에서 나오는 사이에 어두운 공간이 욕실등으로 환하게 비춰주고 다시 어둠으로 채워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반이의 모습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 설레이는 마음을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남자끼리 잠자면 스스럼없이 팬티만 입고 잔다. 반이의 팬티를 어떻게 벗기고 그곳을 만지거나 맛을 보아야하는데 더 중요한 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 의문이다. 


나는 반듯이 드러누운 반이의 허벅지에 자연스레 뻗은 손을 댔다. 반이는 평소 심장 박동 수 보다 빠르게 뛰었고 나도 덩달아 그랬다. 처음에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설렘은 한층 더 욕망을 자극했다. 한참 뒤 용기를 내어 반이의 팬티 밴드 부분에 손을 얹고 쿵덕거리는 심장을 안정시켰다. 반이는 아무런 반응하지 않아 이제는 마지막 단계인 그곳까지 손을 넣는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악, 반이가 여자였어?"

"왜요? 실망했나요?"

"응, 여자라면 가슴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빵빵해야지."

"여자라고 다 그런가요." 

반이는 천연히 말대답했지만 나는 상상도 못한 일이라 성욕이 싹 가시고 발기했던 그곳도 따라서 풀이 죽어 등지고 돌아누웠다. 반이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반이가 먼저 이야기했다. 

"삼촌, 쌍둥이 초등학교 졸업식 날 사진 찍고 싶었던 소녀를 기억하세요?"

"응. 그럼 그 소녀가 반이란 말야?"

"네, 맞아요. 삼촌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어요."

"그랬구나."

"그동안 삼촌을 가끔 보면 남자하고 다니던데 ‥‥." 

반이는 말끝을 흐리면서 나의 모든 면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나는 밀려오는 잠에 의지한 채 반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나는 반이가 근무하는 시간에 편의점 주변을 피해서 운행했다. 반이는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정녕 미련은 없다고 여겼는데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우체국 앞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반이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택시에 타자마자 목적지를 말했다. 

"아침해 아파트로 가주세요."

"어! 헤어스타일 바꿨네."

"네, 얼마 전에 잘랐어요."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택시를 출발했다. 나와 반이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흘렀다. 나는 리어 미러로 반이를 쳐다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 허심탄회하게 술 한잔 할래?"

"그럼 저야, 좋죠."

 

   나는 일찍이 택시 운행을 마치고 반이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가윗날 선물로 받은 술을 정답게 마주 앉아 연거푸 마셨다. 술을 먹고 취해야지 생각하니까 먹으면 먹을수록 정신이 더 말짱했다. 나는 술에 취한 척 하면서 넋두리했다. 

"나 평범한 거 같아도 지랄 맞을 정도로 남자가 그리울 때가 있어."

"근데요?"

"사람들은 왜 내 맘을 몰라주지?"

"이성 보다는 동성을 좋아하나 봐요." 

반이에게 더 이상 거짓은 통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나는 야비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 한 사람이면 더 이상 바랄 거도 없어."

"키득키득."

"왜, 웃지?"

"차라리 저랑 하룻밤 자고 싶다고 말하세요."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나는 남자 대신에 여자인 반이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했다. 반이와 처음에 잘 때는 망설였지만 이제는 서로가 잘 아는 사이라 무작정 그곳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그만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악, 언제 반이가 남자가 됐지?"

"네에? 저는 반일인데요. 

"으으~, 그럼 쌍둥이 남매!"

"언제 제 여동생하고도 잤나요?" 

반일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쌍둥이 남매를 건드렸으니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다. 

'아~, 큰일났다. 차라리 이게 꿈이였으면 ‥‥.'

그런데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심상치 않은 느낌과 동시에 주먹이 날아와 안면을 강타했다. 제법 주먹이 매서워 더 버티고 있으면 다시 맞을 거 같아 에라 나도 모르겠다 뒤로 벌렁 자빠졌다. 

 

   "삼촌 안 아프세요?" 

나는 잠이 확 달아나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며 반이한테 대들었다.

"야, 때려놓고 안 아프냐고 묻는 심보는 뭐냐?"

"삼촌이 꿈속에서 다짜고짜 저를 겁탈하길래 주먹으로 한대 때렸는데 진짜로 맞았네요." 

나는 얼굴이 아픈 건 둘째치고 다행한 일이라 속으로 외치면서 반이를 덮쳤다.  

'이야, 나는 살았다!' 

그런데 반이는 또다시 주먹으로 나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퍽~!

"으으~, 그냥 좋아서 덮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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