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10) - 민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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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헤어졌기에 그런 표정을 짓는담.’

, 길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다시 내 손님이 될 가능성도 낮겠다. 지나가는 인연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 몫의 돈도 다 받았고.

 

‘6시 반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야겠다.’

터덜터덜, 민석은 다시 독서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그렇게 잠시간 더 멍 때리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640여분.
고향집에서 점심밥 먹고 몇 시간 운전을 했던 데다가,
비록 재영은 거의 받기만 했다지만 관계 자체가 은근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어서인지 배에서는 유난히 심한 꼬르륵 소리가.
그렇지만, 머리가 복잡한 탓에 밥 생각은 없다.

뭘 할까 잠시 고민하다 방 한켠의 책상으로 가 노트북을 켜 일 관련된 것들을 이것저것 본다.
이건 재영의 고질적인 버릇이다.
일상의 영역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해결할 수 없고 머리가 복잡할 땐 일거리로 도피한다.
사실 재영이 6년이나 연애를 하지 않은 것에는 (그리고 회사에서 자타공인 워커홀릭으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이런 일종의 방어기제가 수시로 작동한 탓이기도 하다.
물론 감정의 응어리와 쓸데없는 고뇌에 얽매여서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하는 타입보다야 낫다고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유보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별로 좋은 해결책은 아닐지도.
지금 이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간 일에 몰두했을까 (이 황금 같은 토요일에!), 어둑어둑해지고 일거리 하나가 대충 마무리될 때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정도로 꼬르륵 소리와 허기가 느껴진 탓에 대충 방 한 쪽에 있던 시리얼을 말아먹는다.
그리고,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든다.

 

*

 

 

다녀왔습니다-“

독서실에서 두세 시간 정도 더 공부하고 집에 들어온 민석은, 인사말만 툭 남기며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확실히, 이 일은 다 좋은데 중간에 공부 흐름이 끊기는 게 문제…’

그치만 어차피 돈 벌어야 하는 거, 더 오랜 시간씩 다른 알바했으면 이 문제는 더 심했겠지, 라고 합리화해 본다.

조금이라도 흐름 끊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씻기 전에 오늘 본 내용을 빠르게 복기해 본다.

 

 

벌써 10시 반빨리 씻고 자야지.’

마라톤 공부를 위한 체력 관리의 의미로나, 마사지사 업을 위해서나, 몸 관리는 생명.
내일 새벽에 일찍 나가서 운동하려면, 얼른 자야 한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 삶을 사는 민석이었다.)

 

방금 막 마지막으로 본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샤워.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난다.

 

뭐지? 뭐가 빠진 거지? 이러다 잠 설치면 안 되는데.’

뒤척이던 민석. 문득 왼팔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 내 갤X시핏2 어디 갔어.’

그냥 무시하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찾아도 되지만, 눈치가 빠른 만큼 예민한 성격인 민석.

찝찝해서 이런 건 해결하고 자야 한다

 

집에 와서는 동선이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기 방과 거실 화장실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아오.. 이렇게 물건 어디다 흘리고 찾는 일은 자주 없는데.

찾았는데 바로 안 나오는 경우는 더더욱.

 

독서실에 두고 왔나? 아닌데. 독서실에서는 손목시계를 풀 일이 전혀 없었는데.’

잠시 곰곰이 오늘의 행적을 되짚어보는 민석.

 

설마.’

그 집에 놓고 온 건가? 설마, 싶어서 다시 천천히 리와인드해 보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샤워한다고 화장실 들어가서, 아마 세면대 쪽에 벗어두고 온 듯.

 

이런 허술한 실수를 하다니.”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아 물론 내가 초짜 맞긴 한데.

이렇게 물건 흘리고 다니는 덤벙이는 아니라고. 자존심 상한다.

 

아닌가? 화장실에서 그게 나왔으면 연락 주지 않았을까? 한참 지나서 밤인데 아직 연락이 없다고

애써 현실부정해 보는 민석.

하긴 자기가 그러고 내보냈는데, 다시 자기 쪽에서 연락하기도애매하지.

어차피 아쉬운 쪽은 물건을 잃어버린 쪽이니, 아무래도 내가 연락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괜히 찝찝할까봐 굳이 일어나서 찾으러 다닌 건데. 훨씬 찝찝해졌어. 잠은 다 잤다.

 

지금은 밤이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연락해 보자…’

아니 꼬여도 뭐 꼭 이런 식으로 꼬이냐

 


*


다음 날, 7시 반. 잠을 설친 탓인지, 예정했던 여섯 시 알람은 못 듣고 일어났다.

지금도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예민한 민석으로서는 아쉬운 상황.

그렇다고 좌절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더 늦어지면 아예 미루고 오늘은 스킵해 버리니까, 운동부터 하자.

그 손님한테 톡은운동하고 나서 할래. 혹시 아나, 그 쪽에서 먼저 연락 올지

손님 집에 물건 흘리고 와서 다시 연락하는 마사지사? 자존심 상해.

어차피 그 사람이 다시 내 손님이 될 가능성은 없다지만, 그래서 더 찝찝해!

실제로 받으러 가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으 생각하기 싫다. 일단 보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만 더 집안을 뒤져보지만, 역시 나오지 않는 갤X시핏.

민석은 단념하고 헬스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

 

 

(민석) “고객님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만 혹시 화장실에 스마트워치가 없었는지요?”

운동을 다 마치고 대략 아홉 시.

말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최대한 고심한 끝에,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최대한 사무적으로 톡을 남겼다.

독서실로 향한 민석. 집중을 위해 다른 알림은 다 끄고 그 손님과의 톡방 알림만 켜 둔 상태.

 

공부에 매진한 지 얼마나 됐을까, 톡 알림이 울린다.

(재영) ‘내 있어요. 여기 다시 올래요?’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다시 찾아가려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그래도 뭐별 수 있나. 아쉬운 건 내 쪽인데. 밖에서 보자고 하면 그건 더 이상하고.

 

(민석) ‘네 알겠습니다. 1020분쯤 도착할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재영) ‘네 알겠습니다. 근처 와서 톡 주세요.’

그렇지본인도 아무래도 불편하겠지. 이렇게 핵심만 담아 톡을 보낸 걸 보면.

에휴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딱 보고 물건만 받아오면 돼. 너무 예민한 성격은 나만 피곤하다. 기억하자.

 

 

*

 

 

(민석) ‘근처 다 왔습니다. 건널목만 건너면 됩니다.’
출발할 때 대충 도착시간을 얘기해주긴 했지만. 일요일 아침이기도 하고.

아직 집에 손님 맞을 준비는 안 됐을 수도. 마지막 5분 정도 준비할 시간을 주자.

그렇게 2-3분 더 걸어 손님의 집 앞 횡단보도에 선 민석. 무심코 앞을 보니 손님이 서 있다.
그 베이비페이스에, 어제보다 좀 더 정리된 콧수염. 뜬금없지만 털이 섹시하게 났던 그 몸이 생각난다.

 

아니날 더운데. 그냥 집에만 있어도 되는데 굳이 나오네. 배려심 많은 사람인 건 확실,’

그치만 그건 그거고. 다회차 손님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해도
어쨌거나 () 손님과 이런 식으로 사적으로 얽히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어제 헤어질 때 그런 식으로 어색하게 헤어진 게 아니었더라도 이건 마찬가지다.

손님과 마사지사의 랍뽀(rapport: 심리학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

어디까지나 마사지 시간 내에서만 발전하고, 종료되어야 한다.

그 경계를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안 되는 상황은 생각도 하기 싫어.


그렇지만 일단 예의는 갖춰야지. 눈이 마주친 민석은 꾸벅, 목례하듯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맞은 편의 손님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뀐다. 민석이 횡단보도를 종종걸음으로, 살짝 뛰듯이 걸어온다. 시선은 손님에게로 고정. 그 때

끼이익-!”
갑자기 골목에서 좌회전하며 차 한 대가 튀어나오더니 민석 바로 옆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춘다.

“?! 민석 씨 괜찮아요?”
깜짝 놀라며 넘어지는 민석, 그걸 맞은편에서 보던 손님이 놀라 뛰어온다. 운전자도 놀란 눈으로 운전석에서 나온다.

민석 씨, 민석 씨 괜찮아요?”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고, 재영은 쪼그려 앉아 팔로 민석의 어깨를 감싸며 묻는다. 힘을 주어 일으키려고 하는데

아아! 지금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아요.”
뭐지, 근육이 놀랐나? 쥐라도 났나? 아니면 뼈에 금갔나? 하긴 부딪히기 일보 직전에 저런 식으로 털썩 넘어졌으니

 어떡해 미안해요 괜찮아요 학생?”
발을 동동 구르며 연신 미안하다고 하는 아주머니 운전자.

민석 씨 움직이지 마요. 구급차 부를게요 잠시만요.”
아주머니, 일단 명함아니 연락처 남겨주세요. 지금은 병원에 가보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뭐야 이 사람지가 내 보호자야 뭐야. 고맙긴 한데 왜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아니 물론옆에 운전자 아주머니 상태를 보아하니 이 분이 척척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긴 하지만.

“… 구급차도 불려 주시고 고맙습니다. X시핏은…?”

아니 이 상황에 지금 그게 중요해요?”

 

“… 당연히 병원부터 가야죠. 보험사도 부르고. 맞는데, 수습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젠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휴, 당신이랑 엮이는 게 기분이 좋겠습니까. 더군다나 아직 짐작일 뿐이지만

지금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사태 수습해 주는 게 혹시 전 애인이 생각나서 그러는 거라면 더 찝찝하다고

아니눈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네 그래요!’ 하고 시계만 던져주고 가면 그게 사람입니까?”
그런 식으로 도의적인 얘기를 들먹이면 할 말 없긴 해.

비록 본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배려가 많은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으니까.

“…그 마음 너무 감사하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전 괜찮으니까, 그냥 가주세요.”
이쯤하고 빨리 가 줬으면 좋겠지만, 슬슬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렇다고 그걸 마구 폭발시킬 순 없지

아니 그래도그래도 그렇지…”
아 됐으니까 그냥 가시라구요!”
싶은데 계속 이렇게 나오면 나도 별 수 없지. 적당히 한두 번 철벽치면 알아 들으세요 아저씨
결국 민석이 폭발한다. 한층 더 불편해지는 공기. 기온이 높고 끕끕해서 유독 더 그런 것 같기도.

이 때 이제야 좀 진정이 된 듯한 운전자가 입을 열려는데, 들리는 사이렌 소리.

뭐야 벌써 온다고? 아니 지금 통화한 지 몇 분이나 됐다고근무 인원도 지금 다 없을 텐데
미리 근처에 준비해 둔 거야 뭐야..’

“…
감사합니다. 구급차도 왔으니 이제 제발 가 주세요.”
그래, 그래도 고마운 분인데. 아무리 덥고 습해서 더 쉽게 짜증난다지만 이런 거, 나답지 못해캄다운.

“… 알겠어요. 지금 저기 오는 구급차에 타는 것까지만 보고 갈게요.”
그래요, 그러시든가요, 착한 아저씨. 계속 거절하자니 나도 입 아프다. 대신 그걸로 끝. 각자 갈 길 갑시다.

손님이 안쓰러운 눈으로 주저앉아 있는 민석을 내려다 보며, X시핏을 건네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민석은 들것에 실려 들어간다.

 

그렇게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숨기지도 않고 쳐다보고 있으면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일부러 안 보겠다는 듯 눈을 살며시 감는 민석.

공부하러 나간 줄 알았는데 엉뚱한 데서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부모님께는 뭐라 한담…’

실려가면서도 마음이 뒤숭숭한 민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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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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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의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였나보네요. 전애인과 닮은 사람에 질척이는 건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닌거군요.
이렇게 또 한 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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