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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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산을 좋아했다.
나의 정체성을 모르고 지내던 시절엔 고독함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날은 북한산을 가기로 작정하고 아침 일찍 전철을 탔다.

정규 등산로에서 벗어나 좀 한가로이 걷는다고 찾은 길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유난히 등산을 좋아하던 나는,
생활에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나, 복잡한 머리를 식힐때라도
언제든 산을 찾곤 했었다.

아무튼,
그때에는 기분전환을 위하여 예정에도 없는 등산을 결심했던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면 이런 길은 엄두도 못내지...'

길은 잃었지만,
평소 가보지 못하던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새로움을 위로삼아
다시금 길을 찾고 있었다.

날은 이른 아침이기도 하고,
'북한산'이라는 비교적 작은 산(?)이라는 이유로
길을 잃고서도 조바심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어쩌면 그런 것을 조금은 즐겼는지도 몰랐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의 낙엽 밟는 소리와
간간히 새소리만 들려올 뿐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30여분 즈음 걸었을까,
아무래도 길을 찾을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어떤 신음 소리와 함께 저만치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뭐지...?'

눈을 잔뜩 찌푸리고 내다 보는데,
순간, 너무 놀라 자빠질뻔하였다.

사람이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게,
무슨 고문이라도 당했던 모양으로
입은 옷이 울긋 불긋 피가 배어나와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가슴이 꽁닥꽁닥 뛰어서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신고해야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지만,
전파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를 초침 움직이듯 할뿐,
연결은 깜깜이었다...

잠시 그러고 앉아 있으려니,
다소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돌렸던 고개를 고쳐 다시 앞에를 보니,
조금씩 꿈틀꿈틀거리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어찌 해야 할지가 암담했다.
두려운 마음중에 갈등이 되었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주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50여 미터 되는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를 어떻게 다가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그 줄을 푸는 일이었다.
붉은 색 빨래줄... 집에서 흔히 보던 그 줄이,
여기서는 사람을 묶는 오라줄이었다.

양 발목에 줄을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놨지만,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서 매달았던지,
줄의 한쪽 끝은 나무 밑중에 묶여 있었다.

그 사람은 보통은 넘는 체격인지라,
나무 밑둥에 묶인 줄을 풀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직으로 떨어져
목뼈라도 부러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팽팽한 줄을 팔에 감아가며 묶인 줄을 조금씩 풀자,
그 사람이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천천히, 천천히...'

땀이 송글송글 이마에 맺히기 시작했다.

몇분후 나는 그를 완전히 땅에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나도 팔에 감았던 빨랫줄을 풀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키는 한 175 즈음 될까... 체중은 85-90 즈음...?
얼굴에 쏠렸던 피가 가시질 않아 눈은 퉁퉁 부어있고
여전히 얼굴 색은 붉은 빛이었지만,
짧은 머리에 다부져 보이는 인상의,
(어떻게 보면 귀엽게도, 어떻게 보면 믿음직스럽게도 보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낮은 신음을 내며 누워있었다.

"괘-괜찮으세요?"

양복차림이었는데, 상의는 어디있는지,
와이셔츠와 바지뿐이었고,
와이셔츠는 여기저기 찢기고 피가 배어 있었다.

나쁜 사람같지는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좀더 침착해 질 수 있었다.

출혈을 많이 일으킬 만한 어디 큰 상처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무엇으로 맞았는지, 등과 배에 출혈이 좀 있었지만,
그다지 심한 상황은 아닌듯 했다.

일단은 산아래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몇시간 묶여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바로 들쳐업고 내려간다는게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일단은 그대로 누워있도록 두기로 하고,
난 내 외투를 벗어 바닥에 깔고 덮어주었다.

그렇게 한 10여분 즈음 흘렀을까,
그가 눈을 조금씩 움직움직하는게 보였다.

"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

"....무....무....ㄹ...."

" 물요? "

주변을 둘러보니 들고 왔던 물통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다가....?'
생각해보니, 아까 깜짝 놀랐을때 그때 떨어뜨렸던 것 같았다.

" 잠시만요. "

힘차게 달려가 그 자리에 가보니,
역시나 500 ml 짜리 '석수'가 있었다.
집어 들고 달려와
내 무릎을 그의 머리에 베게삼아,
석수 뚜껑에다 조금씩 물을 담아 목에 흘려넣어 주었다.
몇번은 그냥 넘기나 싶더니 이내 기침과 함께 다 내뿜고 나서는
좀더 수월히 물을 넘기기 시작했다.

" 괜찮으세요? "

그가 가만히 눈을 떴다.
조금 뜬 눈이었지만, 왠지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 예... 아저씨가 여기 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

여기까지 말하는데, 그가 내 말을 끊고 다급한 듯이 말을 이었다.

" ...놈.....놈들이 다시.... 올......거야... 어서.... 여....기.....빨리...."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자시고가 없었다.
난 그를 들쳐 업었다.

'꽉 잡으세요'

내 혼잣말이었지만,
그의 손이 내 옷을 꼭 잡는 것 같았다.
난 그를 업고 산을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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