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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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출장 당일 월요일. 인천공항.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12시 20분에 나리타에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
도쿄는 사실 열 번 가까이 다녀왔기 때문에 두근거림이나 설렘 따윈 없었다. 어디까지나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이어지는 일의 연장선일 뿐.
나리타 항공에 도착 후 입국수속을 마치고 부장과 대리님께 보고를 드리곤 조금이나마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은호에게
[은호야! 형 도쿄 도착데스!]
는 문자와 함께 나리타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보냈다.
“아 지금, 은호 한창 일할 시간이겠네...”
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신주쿠로 향했고 4박 5일간 약속된 업체 미팅이 총 4곳 이였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하도록 신주쿠 역에서 근접한 곳으로 3주 전에 비즈니스 호텔 예약을 미리 해두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따로 챙긴 정장과 짐을 풀곤, 커튼을 젖히고 내려다 보이는 신주쿠 역 풍경을 바라보는데 남쪽 출구 방향으로 타카시마야 백화점 타임스 스퀘어 건물과 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NTT 도코모 요요기 빌딩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나저나 막상 와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미팅 일정은
화요일인 내일 오전 10시에 마츠모토 회사
그리고 바로 오후 4시에 후루타 회사
그리고 수요일은 하루 쉬고 그 다음날인 목요일 오전 11시에 이토 회사, 오후 4시에 하토리 회사
그리고 하토리 회사와 미팅을 마친 뒤, 목요일 밤 오후 7시에 우리 회사 주 거래처인 마츠모토 회사 직원들과의 회식 일정이 이번 출장 마지막 스케줄 이었다.
(※ 해당 소설에서 언급되거나 표현된 상호 및 일본 회사명 등은 모두 창작된 것으로 혹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숙소에서 좀 더 쉴까도 싶었지만 오랜만에 도쿄에 온 김에 머리도 식히고, 내일 미팅 준비 마무리도 할 겸해서 옷을 갈아입곤 노트북을 들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신주쿠 역으로 간 뒤 서울의 2호선과도 같은 도쿄 내 순환지하철인 야마노테선에 몸을 실어 요요기역, 하라주쿠 역을 지나 시부야 역으로 향했다.
시부야에 꼭 볼일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었지만 괜히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가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내일 미팅 준비도 최종 정리도 할 겸 해서 커피 한 잔이 하고 싶었달까.
시부야 역에 도착 후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 바로 보이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미마셍~ 아노..홋토 아메리카노 히토츠 오네가이시마스. 사이즈와 토르데. 소시테 텐나이데 노미마스.”
(실례합니다. 음.. 뜨거운 아메리카노 하나 부탁드릴게요. 사이즈는 톨 사이즈로. 그리고 매장 안에서 마실게요)
난 커피 주문을 하고는 자리 확인을 위해 잠시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스크램블 교차로가 보이는 창문 자리는 만석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자리 또한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두리번 두리번 하는 도중 구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길래 재빨리 그 쪽으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곳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아무래도 민폐가 될 것 같아 최대한 1시간 내로 내일 미팅 준비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트북 옆에 놓여진 이제 막 나온 뜨거운 아메리카노 위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금 밖을 바라보는데
확실히 여기가 시부야의 중심지이자 스팟 명소라 그런지 빨간불의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 마다 2~3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교차로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성은 못 버리겠는지 눈은 남자들을 보는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시부야엔 이케맨(잘생긴 남자)들이 바글바글 하구만.’
그러다 조금 더 시야를 멀리두고 역 앞, 하치코 동상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데
시부야 역 방향에 서서 이곳 스타벅스가 있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연신 찍고 있는 어떤 한 남자가 보였다.
스마트폰이 아닌 DSLR 카메라를 목에 건 채로 찍고 있어서 그런지 더 눈에 띄였었고, 등 뒤로 백팩을 매고 있는거보니 아무래도 관광객인 듯 보였다.
혼자 여행이라도 온 걸까?
“에휴...혼자 여행을 오든, 일을 하든 김준우 니가 무슨 상관이세요..휴(한숨을 쉬며) 이럴 시간이 없는데.. 김준우!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일부터 하자”
난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노트북을 열곤 내일 오전부터 있을 회사와의 미팅 회의 자료와 함께, 해당 자료를 기반으로 예상 질문에 대한 스피치도 준비를 하면서 최종 점검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으려나. 고개를 들어 밖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해는 넘어가 하늘 위로 붉은 노을빛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난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다 마신 컵을 정리한 뒤 스타벅스를 빠져나와서는 빨간불이 켜져 있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모처럼 시부야에 왔는데 뭘 먹을까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는 초밥, 모츠나베, 오코노미야끼, 돈가츠등 수많은 음식을 떠올리며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아직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고 그래도 시부야까지 온 김에 시부야 만남의 명소인 하치코 동상에서 시부야 역이 보이도록 셀카를 찍은 뒤 은호에게 보내줘야겠다 싶어서 하치코 동상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평일 저녁인데도 시부야 역 앞은 항상 그렇듯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렇게 하치코 동상쪽으로 거의 다 와가는데 예고도 없이 뒤로 슬슬 걸어오는 어떤 사람과 갑자기 ‘톡’ 하고 부딪쳤다.
“아임 쏘리. 아...스....스미..마셍!!!! 스미마셍!!!”
부딪치자 마자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는데 뭔가 상당히 서툰 일본어.
그렇게 고개를 들어 부딪힌 남자를 쳐다보는데 목에 걸린 카메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면서
어라!?
아까 카페 안에서 바라보았던 그 남자였다.
가까이서 보니 피부도 좋고 꽤나 잘생긴 얼굴. 게다가 어깨도 넓고 체격도 좋다.
그는 남색 면바지 위에 흰티 위로 체크 남방을 입고 있었고 그 위에 Canon 문구가 그려진 카메라를 목에 걸고있었다.
내 나이 또래 같긴 한데.
그리고 아무리 동양사람이라도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은 가까이서 보면 티가 나기 마련인데 그를 자세히 올려다보니 꼭 한국사람 같았다.
아니, 내 직감에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한국사람 임에 틀림없었다.
근데 한참 전부터 사진 찍더니 아직도 여기서 사진을..
“이야, 다이죠부데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난 그가 한국사람 임을 확신했지만, 이 곳은 일본이니까, 일본어로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는 나에게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곤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핀 후 열 걸음 정도 앞으로 이동하더니, 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시부야의 풍경을 찍고 있었다.
난 내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그를 뒤로 하고 하치코동상 앞에 서서 스마트폰을 셀카모드로 한 뒤 한 껏 팔을 길게 뻗어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하치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맛집에서 줄을 서다시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때문에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은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최대한 웃는 표정으로 시부야 속의 날 담아 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또 한 번 어플로 보정한 뒤, 최종 편집된 3장을 은호에게 보내려는데 아까 오후 1시경 나리타에서 보낸 문자를 그 녀석이 아직도 읽지 않았다.
“이 녀석은 휴대폰 들고 화장실도 안 가나 ...왜 문자를 안 읽어.”
[은호야! 여기 보이는 이놈이 그 유명한 충견 하치코닷!!]
[일 하느라 많이 바쁜가보네. 형 시부야 왔어~~~ 하치코와 함께 인증샷 몇 장 보내~]
[퇴근시간까지 진상손님 없이 잘 마무리 해랏!! 파이팅!!]
그렇게 문자를 보내두고는
동상 주변에 있는 큰 나무 밑으로 둘러싸인 은색 기둥에 엉덩이를 잠깐 붙이곤 오늘 저녁에 대해 무엇을 먹을지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사실 나에게 있어서 오늘 저녁 메뉴 만큼 중요한 건 없지.
근데 아까부터 계속 카메라를 들고 내 시야에서 왔다갔다 하는 저 남자.
신경쓰지말고 내 저녁메뉴에 집중하자 싶다가도 15m 정도 앞에서 자꾸만 왔다갔다 하면서 사진을 연신 찍어대는 그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에게 오롯이 집중을 했다.
그가 무엇을 찍는지. 그가 어떤 제스처로 사진을 찍는지. 짧은 시간에 그를 자세히 바라보고 관찰했다.
높은 빌딩을 찍는걸까?
아니면 간판을 찍는걸까?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들??
그러다 그가 잠시 고개를 드는데 점 하나 없는 깨끗하고 고운 목선에 한번 더 그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리곤 몇 장 더 찍다가 사진이 잘 찍혔나 카메라로 확인을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꽤나 잘 찍혀서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웃으니까 훨씬 낫네.’
그렇게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찍고 확인하고 반복된 행동을 하다가 몇 분 후 조금은 힘이 부쳤는지 나무 밑으로 이동하더니 가방과 카메라를 잠시 옆에 내려놓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더니, 가방 안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한 낯선 여자가 지도 같은 종이를 들고는 길을 묻는지 그의 옆에 불쑥 다가와 말을 건네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두 손을 들어 흔드는 그 남자의 제스처를 보아하니 난 이 곳을 잘 모른다, 혹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건지,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또 다른 낯선 한 남자가 내 시야에 들어오더니
아까 그 남자가 앉던 자리에 잠시 앉길래..
‘어...? 거기.. 저 남자 자린데....’
라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그 때
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옆에 놓여져 있던 가방과 카메라를 본인 물건마냥 자연스레 챙기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어라...?’
‘뭐지....저걸 저 남자가 왜 가져가는거지? 저 가방 저 사람껀데...’
순간 지금 내가 본 게 실화가 맞나 싶어서.
처음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분명히 일행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곤 길을 물었던 여자도 제 할 일이 끝났는지 뒤 돌아 가는데 그 남자가 그 여자를 보내고 뒤를 돌아 아까 앉았던 자리로 돌아 오는데
그 자리에 가방과 카메라가 없어진 것을 눈치 채고는 도둑맞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난 벌떡 일어나면서 그 자리에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그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도로보-다!!!!!!!!!!!!!”
(도둑이야!!!!!!!!!!!!!!!!!!!!!!!!!)
내가 도둑이야 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그 남자를 향해 뛰어가자
“악!!!!!!!!!!!!!!!!!!”
"꺄악~!!!!!!!!!!!!!!!!!! (비명소리)"
“에~~??? 에??????? 나니!? 나니!? (뭐야 뭐야)”
곳곳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놀라는 소리가 들리면서 순간 이곳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가 소리지르는걸 그가 듣자마자 더욱 더 속도를 내어 도망가고 있었고 난 빠르게 도망가는 그를 뒤쫓아가는데 사진 찍던 그 남자도 나를 뒤따라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 그 때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왔고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횡단보도에 몰려드는데
‘절대 못 찾겠지? 찾을테면 어디 한 번 찾아봐!’ 라고 대신 말을 전해주는 것처럼 한꺼번에 수 많은 인파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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