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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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준우 시점]



“아까 인사한 매니저. 그 사람 좋아하냐고....”


“(당황한 표정으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형인..”


“(말을 끊으며) 거짓말... 제발 거짓말 좀 하지마. (소릴 지르며) 이제라도 나한테 솔직할 순 없어?”


“형 왜 그래.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이러는거 아니야. 다 보고 들은게 있으니까 이러는거지.."


"(당황한 듯 웃으며) 형이 도대체 뭘 봤는데?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소릴 들었는데??? (살짝 흥분하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매니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거야!? (잠시 생각하더니) 아 그건가 보네.. 얼마 전에 매니저님이랑 종로에서 술 한잔 하는걸 봤나본데, 근데 종로에서 같이 밥 먹고 술 한잔하면 다 좋아하는거야? (웃으며) 그거 아니잖아." 


“최은호 너 진짜 뻔뻔한 애였구나...”


“뭐???(표정이 변하곤) 뻔뻔하다고? 내가???(정색하며)”


“너 어젯밤!!!!! (목소리를 높이며)" 


"어젯밤 뭐!! (당황하며)"


"누구 보란듯이 저 매니저란 사람이랑 우리집 주차장 앞, 차 안에서 키스까지 했잖아.. 그런데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당황하며)”


“너 내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저 매니저랑 혹시 우리 집에서 잤니? 아니면 다른 곳에서라도 저 사람이랑 잔 적 있어?”


“.......”


"그래놓고 어제 뭐!? 남석이랑 닭갈비를 먹었어?? 남석이랑 술을 마셨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남석이가 아니라 저 매니저랑 같이 마셨겠지. 넌 어떻게 표정하나 안 변하고 형한테 그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 이런데도 니가 뻔뻔하지 않다고??"


"(당황하며) 어제 내가 같이 저녁먹고 술 마신 사람은 남석이가 맞아. 형..."


"야! 최은호! 너 진짜.. 끝까지.....(한숨을 쉬고는) 말을 말자. 됐고. 하나만 묻자. 도대체 너, 현수랑 무슨 관계야?”



내 입에서 현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은호가 화들짝 놀라더니 



“뭐야? 형!? (놀라며) 형이 우리 매니저 이름을 어떻게 알어? 혹시 학교 동창이야??”


“(화를 억누르며)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좀 해줄래.. 현수랑 너랑 도대체 무슨 관계냐고..”


“아니, 난 형이 우리 매니저를 어떻게 아는지 알아야겠는데..!?”


“넌 지금 내가 현수를 왜 아는지가 그렇게 중요해!? 명심해. 최은호. 너 어젯밤 내 눈 앞에서 다른 놈이랑 키스 까지 한 놈이야. 그러니 내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부터 해야 되는게 순서아냐? 어!? 그것부터 나한테 설명해야 되는거 아니냐고!!! (정색하며)”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은호)"


"최은호.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물을게. 너 혹시 현수랑 잤니?"


“그래 잤어......왜!?(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너 뭘 잘했다고 그렇게 당당해? ”


“근데, 사귀는 건 아니야...”


“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보이며)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뭐 그런 소리랑 같은 맥락인가? 내가 정말 이해가 안가서 그러는데 키스하고, 섹스까지 다 해놓고 사귀는 게 아니라고??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흥분하며)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거야?”


“목소리 좀 낮춰 형.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잖아.”


“뭘 낮춰. 지금 이 와중에도 넌 누가 들을까봐 겁나는거야? 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래서 지금 니가 잘 했다는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한숨을 쉬며)"


"그건 아닌 데 뭐!!! (흥분하며)"


"그래...솔직히 현수 형한테 많이 흔들린건 사실이야. 이쪽이라서 현수형을 아나본데...우리가 사귀면서 같이 살고는 있지만 요새 형이랑 잠자리도 거의 없고 형은 맨날 야근에, 그저 회사 집, 회사 집. 형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일이 우선이였잖아. 


게다가 집에 들어오면 피곤해서 잔다고만 하고. 나랑 대화도 없고. 그렇게 형이 자꾸만 날 방치하는데 그 때 마다 오히려 애인도 아닌 매니저가 자꾸만 나한테 잘해주고, 날 더 잘 챙겨주니까 나도 모르게 흔들리는 걸 어떡해.....형도 알잖아 나 외로움 많이 타는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니 말대로라면 외로움 많이 타는 사람은 연애중인데도 여기저기 바람 막 피면서 이 남자 저 남자랑 자도 되는거야? 어!? 너한텐 외로움이라는게 바람의 핑계가 될 수 있는거였어? 진짜 내 머릿속으론 이해가 안돼서 그래. 은호야. 그리고 방치!? 도대체 내가 널 얼마나 방치했다고 그래..? 너 진짜 말 섭섭하게 한다.”


“미안해. 잔 건 실수였어..”


“뭐 미안? 실수!? 나랑 사귀는 도중에 다른 남자랑 자놓고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실수였다고????? (극도로 흥분하며) 최은호 너 취했어? 취하지 않고서야 이게 제정신에 나올 수 있는 말이야? 아니, 설령 취했다고 한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는 은호)"



답답한 마음에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봐!!!!!!!!!!!!!!(소리를 지르며)"


그러자 은호가 고개를 살며시 들더니 


"형도.......(작은 목소리로)."


"뭐."


"형도....."


"나 뭐!!!! 어디 한 번 이야기해봐!!!!!!!!!!!!!"


"형도 나한테 거짓말 했잖아!! (소리를 지르며)"


"뭐?(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하는 은호) 그 사람이 입고 있던 나이키 후드티가 똑같아서 많이 놀랬다고? 그 바보 같은 소릴 나보고 믿으라는 건 아니지? 누가 봐도 형 옷인걸 내가 모를까봐? 그 사람 잃어버린 물건 다 찾았다며~~~~ 그럼 그걸로 두 사람 볼 일은 전부 끝난거 아냐????

 

도대체 왜!!!! (목소리를 높이며) 그 사람이 고깃집에도 있고 시부야에도, 오다이바에도, 이자카야에서도..그렇게 형 출장 내내 찍었던 사진 속에 함께 있는건데????????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그 누구도 이해 못할걸!? 형이야 말로 혹시 그 사람이랑 숙소에서 같이 자기라도 한거 아냐? 어차피 일본이니까 아는 사람도 없겠다..그 사람이랑 키스를 하든 섹스를 하든 누가 알겠.."



'철썩'



순간, 흥분해서 이성을 잃어버렸는지 은호의 뺨을 때려버리고 말았다. 



"최은호. 너 지금 제정신 아니구나...적어도 난 맹세코 너에게 미안할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아니면 아니지. (목소리가 떨리며) 왜 날 때리고 그래!?.. 왜 때리고 그러냐고!!!! (소리를 지르며)"


은호를 잠시 쳐다보다..

 

"나랑 사귀고 있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랑 잤다는 소릴 그것도, 애인인 본인한테 직접 들으면....은호야, 이럴 땐 내가 너한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거니? 어? (담담한 목소리로) 혹시 알면 좀 형한테 가르쳐 줄래!? 이런 말을 듣고도 너한테 당장 헤어지자고 말도 못하는 나같은 병.신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는거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 손으로 뺨을 어루 만지며)”


“(잠시 뜸을 들이곤) 니가 꼭 알아야겠다니까 대답은 해줄게. (차분한 목소리로) 형이 예전에 너한테 너 만나기 전 4년 동안 만나던 애가 있었다고 했던 말 기억나? 그게 바로 현수야. 니 매니저. 이현수. 놀랍지? 믿기지가 않지? 나도 아주 소름끼칠 정도로 믿기지가 않아. 근데 지금 우리 싸움에 현수와의 4년은 전혀 상관 없는거 알지?”


“뭐? (놀라며) 둘이??? 사귀였었다고?”


“지금 내가 사귀고 있는건 이현수가 아니라 최은호 너야. 너라고.”


“......”


“(한숨을 쉬곤) 일단 형에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줄래..? 뭐 여기서 생각을 더 한다고 한들 현 상황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한숨을 쉬며) 됐고, 얼른 회식이나 하러 가라...”


“그러지 말고 있다가 집에서 다시 이야기해. 최대한 일찍 들어가볼테니까..”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때린 건 형이 미안했다. 얼른 가라."




그렇게 은호에게 뒤돌아서는데..


그래도 한 번은 날 붙잡을 줄 알았는데. 


날 부르기는 커녕 달려와 붙잡지도 않고, 나에게서 몸을 돌이켜 회식 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은호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참아왔던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이건 나 대신 현수를 택하겠다는 간접적인 대답으로 들려왔다. 


이 때, 처음으로 은호와의 이별을 직감했다. 아니.. 직감이 아닌..이제는 은호와 이별을 해야 맞는거라고 ..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뭔가 마음 속이 응어리진 듯 답답했다. 


쌓여만 가고, 복잡하게 꼬인 이 고민이라는 끈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가고 싶은데...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쪽 지인인 태균이에게 뭐하냐고 문자를 보내려다..이상하게 또 태균이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나 뿐만 아니라 은호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로만 채워질 것 같아 그건 또 맘이 편치는 않았는지 문자를 다 지워버렸다. 


누군가라도 붙잡고 진중하게 고민 상담이라도 하고 싶은데...그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가 게이라는 걸 오픈하지 않으면 진실된 상담이 될 수 없을거란 생각에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만 뱉어낼 뿐이었다.  


계속 서 있기가 힘들었는지 백화점 바깥에 있는 벤치에 앉아 몇 분 정도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는데 



바보같이 그 때, 승준이 형이 떠올랐다. 



[형. 혹시 어제 저한테 같이 저녁 먹자고 한거.. 그거 이번주 금요일 저녁 말고, 너무 갑작스러지만 오늘은 힘..드시겠죠?]



문자를 보내고 나서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앗! 준우씨!! 지금 시간이 저녁 8시 45분이니까 진짜 엄청 갑작스럽긴 합니다만..ㅎㅎ 당일 저녁 번개 입니까?]


[너무 갑작스러웠죠..죄송해요. 아니에요. 형 신경쓰지 마세요.]


[장난이에요~ 근데 마침 저 오늘 영등포 쪽에 나와있어서 준우씨랑 꽤나 가까울 것 같은데. 아 그리고, 저 아직 저녁 전이긴 합니다.]


[헉. 얼마나 바쁘셨길래, 이 시간까지 저녁도 안 드시고 뭐하셨어요..]


[볼 일 마치고 먹으려 했죠. 저 지금 차 있으니까 그 쪽 주소 찍으세요~ 제가 그리로 가죠]


[네.] 



그렇게 주소를 보내주고 난 후, 정말 근처에 있었는지 15분도 안돼서 그가 5분 내로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그리곤 내 앞에 세워지는 검은색 제네시스 한 대. 


'뭐지? 이 고급 승용차는..?'


창문이 지------익 내려가는데 운전석 쪽에 승준이 형이 보였다. 


“엇...형! 진짜 금방 오셨네요”


그렇게 조수석에 타자마자 밸트부터 매는데


“어젯밤에 이번주 금요일 밥 먹자고 했던거 바로 거절 당해서 ..우리 한 2-3개월 정도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보네!? (날 한번 흠칫 보고는) 뭐야! 왜 갑자기 반말이냐는 그 어색한 표정은? (웃으며) 우리 다시 만나면 형이 너한테 편하게 말 놓기로 공항 에서 약속 했잖아. 설마 잊은건 아니지??"


“아 잊긴요! 형이 말 놓으시니까 훨씬 편하고 좋네요."


"좋다는 사람이 표정은 왜 그래? 무슨 일 이라도 있어?"


"아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제가 갑자기 보자고 했으니 제가 저녁 대접할게요. 뭐 드시고 싶으신거라도..”


“에이.. 대접은 무슨, 사더라도 내가 사야지.”


“근데 공방이 경기도 어디라고 하셨죠”


“남양주.~~오늘은 서울에 켈리그라피 강의 수업이 있어서 모처럼 바람 좀 쐬러 서울에 나온거고~”


“형 그럼 저 남양주 구경 좀 시켜 줄래요..? 돌아오는 건 택시를 타든, 지하철 막차를 타든 할테니 돌아오는 건 걱정 안하셔도 돼요..”


“어?? 이렇게 갑자기?(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좀 심란하기도 하고, 바람이 쐬고 싶어서요.. 그냥..”


“무슨 고민 있는거 맞구나"


“그냥 조금~(멋쩍어하며)”


“나 그럼 진짜 남양주로 간다!? 고속도로 타면 후진 못하는거 알지? 갑자기 뭐 차 돌려달라. 그런거 안돼!!!”


“네 형! 근데 가는데 시간 좀 걸리죠? 저기 보이는 카페 앞에 잠깐만 세워주세요. 제가 커피 좀 사올게요.”


“예썰~~~~”



그렇게 커피 두 잔을 사와 다시 차 안으로 돌아와선 승준이 형과 함께 남양주로 함께 향했다. 



“근데 차가 엄청 좋네요.”


“내 차 아니고, 우리 엄마 차~~ 서울에 나들이 올 때 빌려주곤 하셔. 제발 남양주로 돌아올 때 혼자 돌아오지 말고 옆에 여자 한명 좀 태워서 오라고 얼마나 닦달인지. (웃으며) 그거 사실 불가능한건데.”


“네!? 근데 서른 다섯이면.. 아직 그렇게 늦진 않으셨는데~~”


“그치?? 근데 우리 엄만 그게 아닌가봐.. 너도 좀만 더 나이들어봐. 결혼 잔소리 시작될거야~”


“그나저나 일본에서 따로 연락오거나 우편 같은거 온 건 없는거죠. 혹시 몰라서 추가로 제 휴대폰 번호랑 주소도 적긴 했는데..”


“잔넹나가라..(유감스럽게도)”


“헐....? 형 일본어 공부 하세요?”


“조금씩 시간 날 때 공부 하고 있어~ 일본 사람들 작고 세심한거 좋아하니까 일본어로 예쁘게 글씨 새긴 열쇠고리나 컵 같은거 만들어두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혹시나 나중에 쇼핑몰 같은거 하게 되면 일본어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말야.“


“와.... 방금 유감스럽다는 표현은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놀랬네요”


“그래? 아싸! 준우한테 칭찬받았다!!!”


“제가 뭐라고 그렇게 까지 좋아하세요~(웃으며)”


“에이... 일본에서 너 완전 나한테 하늘 같은 존재였는 걸!!!!!못하는 것도 없는 만능맨!!!!! (웃으며) 게다가 아침에 두고 간 만엔은 진짜 감동 받아서 울 뻔 했다. 사실 그 전날 신주쿠에서 너랑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일어나자마자 머리는 아파 죽겠고 근데도 해장은 해야겠어서 일어났는데.. 아 나 돈 없지 하면서 고민했거든. 근데 테이블 위에 딱 만엔짜리 지폐가 있는데... 그거보고 살짝 울컥 했다니까... 이거 진짜야.”


“형.. 이러다 제 손 발 없어지겠어요.. 그만하세요(살짝 미소를 지으며)”



사실 은호와의 일 때문에 수심이 가득했지만 형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준 탓에 나도 모르게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 남짓 달렸을까.

 

수석 IC를 빠져나와 한강이 보이는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 101]


이곳이 바로 새벽까지 영업하는 카페에다가 식사까지 가능하다며 차에서 내리기 전 승준형이 간단히 소개를 해주었다.



“와.. 이 시간까지...”


“남양주 카페들이 바로 데이트의 명소이자 불륜의 메카지(웃으며)” 


그렇게 10시를 넘어선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아무래도 이 시간에 식사하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파스타와 피자를 먹는 테이블 하나가 보였다. 



고르곤졸라피자와 로제크림파스타 하나씩 주문하곤 어젯밤부터 은호와 현수일 때문에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해서 배고팠는지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많이 배고팠구나..더 먹어~~”


“아....아니에요.”


식사를 다 하고난 후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진동소리가 지-----------잉 하고 울렸다.


[형 집이지? 나 회식자리에서 나왔고,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이야] 


은호였다. 


[나 지금 집 아니야. 그리고 형 오늘 집에 안 들어가]


[뭐? 지금 어딘데?]


[남양주]


[뭐? 남양주? 형 제정신이야?]


[제정신이라니? 넌 그 와중에 뒤도 안돌아보고 회식하러 잘만 갔으면서, 난 바람 좀 쐬러 남양주 좀 오면 안돼?]


[혹시 그 사람이랑 같이 간 건 아니지..?]


[니가 나한테 지금 그럴 소리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지친다. 형.. 문자로 이러지 말고 나중에 얼굴 보고 직접 이야기 해.]



"준우야, 누구랑 문자를 하는데 표정이 왜 그렇게 또 심각해?? 커피 왔어. 식겠다."

 

“아 아니에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고는) 형”


“어?”


“형이 볼 때도 제가 일 중독인 것 같나요?”


“중독이라기 보단, 지금 네 나이에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아닐까 싶은데.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안색도 진짜 안 좋아 보이고 그런 얼굴 좀 낯설다.”


“직장을 가지고 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기보다 일이 먼저냐는 소릴 들어서요. 제가 연애에 많이 서툰가봐요..”


“준우, 연애중 인가보구나..(웃으며) 일이 먼저라..(곰곰히 생각하다) 근데 하루 24시간 내내 일을 하는 건 아닐꺼 아냐. 충분히 만나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을거라 생각하는데. 혹시나 어느 한쪽이 부족함을 느꼈다거나, 서로에 대해 식어진 감정을 알아챘으면서도, 그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마주하고 싶지 않아 일을 더 만들거나 해서 일부로 회피하려거나 그랬던건 아니였고..?”



질문 하나만 했을 뿐인데 승준이 형의 말에 머리에 망치를 세게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현수도 그렇고 지금 은호도 그렇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깊은 대화를 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아니면 정말 은호말대로 내가 은호를 방치해버린걸까. 


날 방치했다는 은호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면서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한 방울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아....죄송해요.(눈물을 훔치며)... 뭔가..제 마음을 들킨듯한 기분이에요..아 창피하네요...“


“별게 다 창피하네. (휴지를 건네며) 자. 여기 휴지..근데 내가 일본에서 본 넌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당당했었는데.”


“제...제가요?”


“응.. 도난 당한 날, 나에게 같이 저녁 먹자고 했던 그 순간에도. 그리고 신주쿠에서 방황하던 날 붙잡았을 때도. 얼마나 당당했었다고!”


“그; 그랬나요”


“널 오래 보진 못했지만, 준우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형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이런 상황에도 마음이 일렁이는 날 보며, 


난 형에게 아직 감정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나만의 착각이였을까.  


근데 승준이 형이야 말로 정말 괜찮은 사람 이라고 보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을 시부야에서 처음 만나고, 얼마 보진 못했지만, 그래서 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있는 날 매우 신중하고, 진중하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수심으로 가득했던 날, 어느새 편안하게 만들어 줄 정도로 참 따뜻한 사람이였다.     



“준우야. 밤이라서 잘 보일려나 모르겠는데~ 저기~~(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앞이 한강 이거든. 저 앞까지 걸어가볼래?” 


“네 형”


그렇게 카페 주변 조명이 반짝거리는 길 사이로 형과 나란히 서서 길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 들어온 한강물.


그리고 그 주변으로 반짝거리는 수 백개의 조명 불빛들이 모여 한 순간에 고즈넉한 강물을 밝히는 마법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치 살아있는 물고기 처럼 물 안에서 넘실거리는 불빛들이 지금 꼭 흔들리는 내 마음과도 같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 어깨에 두 손이 올려지더니 


“야경 예쁘지...?”


라는 소리와 함께 형이 내 뒤에 바짝 다가섰다. 


시부야에선 내가 모든 걸 도난 당했었던 형의 처진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려 이자카야로 함께 이끌었었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어 내 처진 어깨위에 승준형의 두 손이 올려진채 한강물을 함께 바라보며 내게 위로를 더해주고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낭만적이네요. 남양주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답답할 땐 강물이나 바다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 조금은 마음이 풀리더라구..적어도 나는 그래.. (잠시 뜸을 들이다) 얼마전에 누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더라. 


혹시나 연애하는 도중에 애인이 다른 사람을 몰래 만나거나, 본인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면 그 땐 어떻게 해야되냐고..헤어져야 하는게 맞는거냐고.”


“(순간 왜 저렇게 익숙한 질문 같지 하는 기분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못한 채 형을 바라보며)”


“10년을 사랑하다가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한 번에 식을 수도 있는 게 사랑인데, 사람 감정이라는 건 그렇게 갑자기 변할 수도 있는거라 생각해.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니가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냐? 는 말 많이들 하잖아. 근데 내가 아무리 잘해준 것 같아도 상대방에겐 한 없이 부족할 수 있거든. 


태풍처럼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사랑을 원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나무의 그늘처럼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랑을 원하기도 하는 것 처럼. 이래서 사랑이라는게 참 어려운 거겠지. 사람 마음 변하는 걸 무슨 수로 막겠어~~~ 우리가 신은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인데. (웃으며) 나도 사랑에 서툰 주제에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네.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묻는다면 내가 뭐 주제넘게 관계를 정리해라 또는 화해부터 하고 대화부터 해봐라 같은 말은 차마 하지 못하겠고, 


난 그냥.. 준우 너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



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에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더니 이내 한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분위기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그냥 그에게 더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을까.


한강물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이켜 승준이 형의 한 쪽 어깨에 내 머리를 잠시 기댔다. 


“형... 잠깐만...이렇게.. .아주 잠깐만..”


“아이구.. 많이 힘들었구나. (내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는 형)”


난 아주 잠깐만 이라고 했지만 형의 품이 너무나 따뜻하고 아늑해서 꽤나 오랜 시간을 기대 안겨있었다. 



그렇게 형의 가슴과 내 가슴이 맞닿은 채 포옹을 하는데 



주위엔 풀벌레 울음소리와 함께 실바람에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한강물 위로 조명 불빛이 반짝거리며 이곳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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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회 까지 4-5편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제 소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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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벌써 4~5편밖에 안남았다니 도대체
결말이 우찌나려나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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