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릴레이 소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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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준
종로 3가의 어느 조용한 원샷바 이른 시간에 60이 다 되어 가는 초로의 중년 혼자 바텐더에 앉아 있었다. 그의 행색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마티니를 주문하여 3잔째 마시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표정이 밝아 보이지도 않았다.
중년의 이름은 김동준, 올해 57세의 유부남이었다. 5년 전에 문청래에게 빠져 정신을 잃고 한동안 방황했던 사내였는데 그가 청래를 만난 것은 평생에 있어 최악의 실수였었다. 동준은 청래를 만나면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큰 손실을 입었었다.
평소에 대물을 좋아하던 동준은 사우나에서 우연히 청래의 물건을 맛보고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꽂혀 살았었다. 청래와 즐기던 지난 3개월은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맛본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제법 큰 슈퍼마켓 3개를 운영하는 동준은 와이프 몰래 어느 정도의 돈을 풍족하게 쓸 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간혹 이쪽 사람을 만나면 아낌없이 돈을 지출했는데, 그날도 그랬었다. 청래를 만나서 비싼 참치 집으로 시작해 3차까지 아낌없이 베풀었었다. 그리고 둘은 러브 모텔에 갔었다.
사우나 수면실에서 맘 놓고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일까? 둘만의 아늑한 공간에 있게 되자 더욱 흥분되었다. 동준은 말 그대로 청래에게 푹 빠져 버렸다. 그의 인간성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동준은 청래의 대물을 입에 물고서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까지 했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너무 좋았었다. 불나방이 죽을 줄 모르고 불 속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동준은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청래에게 올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간 동준은 청래가 하자는 대로 해주었다. 만날 때마다 용돈은 기본이고 먹는 거며 생활용품까지 가게에서 챙겨와서 청래에게 전해 주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그의 물건이 좋아서 그랬었지만 차츰 청래는 노골적으로 그에게 금전을 요구해왔다.
시작은 기분 좋게 용돈을 주는 식으로 출발했으나 나중에는 강요에 의해 돈을 주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그동안 모아 두었던 비상금은 벌써 바닥이 났었다. 현실이 이러니 그렇게 좋던 대물도 이젠 싫어졌다. 인제 그만 그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한번 돈 맛을 들인 거머리 같은 청래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좋은 돈주머니를 왜 걷어차? 그런 식이었다. 동준이 3개월이 지나면서 그를 잘 만나주지 않자 그는 어찌 알았는지 급기야 동준의 슈퍼마켓까지 찾아 가게 된다. 생각해 보니 술 김에 말해 준 것이었다. 자신의 사업처를 알려 준 게 실수라면 큰 실수였다.
- 고객님, 뭐가 필요하세요? (카운트 여점원이 청래를 보며 친절하게 물었다.)
- 여기 사장님 어디 갔당가!
- 사장님요...? (뜻밖의 말에 점원이 눈을 끔뻑거리며…) 지금 안 사장님만 계시는데요…
- 음마...? 바깥 사장은 어디 가셨지라...?
- 물건 납품하러 가셨는데요. 곧 오실 겁니다. 안 사장님이라도 불러 드려요...?
- 아냐! 그럴 필요 없어라. 나가 좀 기다리지…
청래는 그러면서 냉장고 진열 상자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 마신다. 상황이 좀 이상하다 싶은 느낌을 파악한 점원이 핸드폰을 꺼내 급하게 동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변에서 일하는 다른 점원들이 서로 눈짓으로
= 저 사람 뭐야?
라며 묻는다.
일을 끝내고 슈퍼마켓으로 오는 중, 점원의 문자를 받은 동준은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싶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청래가 설마 가게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었다. 돈을 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누누이 말을 했지만 돈 맛을 들인 청래가 그를 쉽게 놓아 주지를 않고 있었다. 동준은 차를 더욱 급하게 몰았다.
얼마 후, 동준의 슈퍼마켓 부근 공원에 둘은 서 있었다. 부근에 도착해서 청래를 불러낸 것이다.
- 아니, 어쩌자고 여기까지 찾아왔어...! 내가 지난번에 분명히 말했잖아! 마지막이라고!
- 그게… 나가 하는 일이 없다 보니… 헤헤… 성님, 한 번만 더 도와주쇼!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니ㄲ! 나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걸고 맹세 하지라!
- 나도 돈이 없어 지난번에도 카드로 돈을 뽑아 준 거 잘 알잖아! 정말 너무 하네! 내가 그렇게 해줬으면 알아서 떨어져야지 이게 뭐야...!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온 동준은 더 이상 청래에게 끌려갈 수가 없었다. 뭔가 강력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동안 청래에게 자신이 너무 말랑하게 보였던 것도 있었다. 그는 저런 인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카드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 동상이 자꾸 이러면 내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날 원망 말게...!
- 아니, 성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독하게 한다요! 나를 어떻게 해불라고 그라요...?
- 그러니까 더 이상 서로 얼굴 붉히지 않게 그만 하라니까! 나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
- 하하하...! 아니, 나가 좋다고 먼저 내 물건을 물고 빨고 한 사람이 누군데 인제 와서 날 보고 떨어지라고라...? (청래는 공원에서 누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 딱 그 말이 맞네잉...!
동준은 지금 있는 곳이 동네 공원이라 행여나 누가 들을까 아차! 싶었다. 일단 청래를 진정시켜야 했었다. 동준이 지갑에서 5만 원권 5장을 꺼내어 청래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청래가 그 돈을 받아서 허공에다 높이 획 뿌리며 말했다.
- 아니, 나가 이런 푼 돈이나 받으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아시요?... 징하게 너무하고만! 내 물건 값이 이거밖에 안 돼요...? 동네 사람들아! 여기 와 보쇼~! (청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이 사람 왜 이러나! 동네에서… 우선 이거라도 가지고 가. 내가 봐서 얼마 구해 볼 테니…
동준은 떨어진 돈을 주워 주면서 청래를 달랬다. 우선 당장이라도 급한 불을 꺼야 했었다. 동준은 돈을 주우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 정말, 이놈을 이대로 둘 수가 없겠어!
그렇게 청래를 급한대로 달래 보내고 동준은 여러 가지로 생각했다. 저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냥 경찰에 신고해? 아니야, 그러면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들통이 나게 된다. 절대로 그것 만은 막아야 했다. 행여, 와이프가 알게 되는 경우에?… 그건 최악의 그림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조폭을 구해서 손을 봐줘? 정말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며칠 후.
= 따르르릉! 따르르릉...! (청래의 핸드폰이 울렸다.)
- 여보시요!. 아이고, 동준 성님...! 반갑소... 그러잖아도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나 했지라...!
- 어디야? 좀 만나 세… 그래, 종로에 우리가 자주 갔던 바, 술집 있지?
- 아이고… 우리 동준 성님이 이제 정신을 차리셨고 만이라… 알았다니까! 좀 있다 보지라…
동준이 이른 시간에 바(가라오케)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청래를 기다리고 있는데 청래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동준을 알아보고 앞에 앉았다.
- 오래 기다리셨소...? 오는데 차가 막히어라…(옴마나? 참 나는 차가 없지라!...ㅠㅠ)
동준은 결심을 한 듯 바로 결론부터 말을 꺼냈다. 동준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였다. 그러자 청래도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 아니, 뭔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사람 겁을 준다요...? (청래가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 청래 동생. 내가 지금껏 동생을 만나 좋았던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나도 그동안 할 만큼 해줬고… 그건 누구보다 동생이 잘 알잖아...!
- 아, 그야 나가 잘 알지라...!
-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제 정말 여기서 끝내자! 응...? 나 정말 동생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 옴마? 이 성님 왜 이러신댜...? 그러고 보니 나 겁주려고 불러냈지라...! 그라지라?...
- 그래, 동생 겁주려고 불러낸 거 맞아!
그러면서 동준이 고개를 끄떡이자 갑자기 무대 뒤쪽에서 4명의 건장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청래는 기겁했다. 청래 자신도 속으로 설마 설마 하면서 동준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었다. 순둥이 같이 말랑했던 동준이 이렇게까지 하다니! 체구가 크지도 않은 데다 마르기까지 한 청래는 오금이 저려 꼼짝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 내가 이렇게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자넨 혼이 좀 나야겠어… 내가 경고했었지!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고… 자, 어쩔래? 한 번 주먹 맛을 보고 떨어질래, 아니면 그냥 떨어질래?
- 아따, 성님! 겁나게 왜 이런데요...? 나가 어쨌다고 이러지라… 나가 조용히 사라지면 그만 아닌가요…
- 그래? 약속할 수 있어! 한 번만 더 내 앞에 나타나면 넌 그때 정말 죽음이야! 이 바닥에 평생 발 못 붙이게 할 거라고!
- 아, 그라지라! 나가 돌아가신 부모님 앞에 맹세한당께...! 다시는 성님 앞에 안 나타나지라! 나가 조용히 찌그러져 있겠당께...! 아, 정말이에요...!
인간성이 못 됐기는 했지만 겁이 많은 청래는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 나고 싶을 뿐이었다. 겨우 바를 벗어 난 청래는 다리가 후들거려 잠시 길가에 주저앉았다. 영화에서나 보고 말로만 듣던 조폭 같은 놈들이 앞에 나타나다니! 다시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했다.
한편, 동준은 청래가 나 살려라며 도망을 가자 마음이 놓였다. 동준은 최후의 수단으로 청래를 떼어 내기로 결심하고, 우선 그가 아는 이쪽 지인들을 통해서 힘 좀 쓰는 후배들을 몇 명 모으라고 부탁했었다. 그렇게 해서 동준이 자주 가는 바에 미리 집합을 시켜 놓은 것이다.
청래가 이쪽 바닥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할 심산이었는데 다행히 조용하게 일이 잘 해결되었다. 그렇게 일이 끝난 후, 지인의 후배들과 한잔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사실, 지인의 후배들은 조폭이 아니라 덩치가 큰 후배들이었다.
아무튼 동준과 청래의 관계는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로 동준은 아무리 대물이라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분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애인도 없이 가끔 혼자 종로에 나와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었다. 동준은 청래 이후로 사우나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동준이 4잔 째 마티니를 주문하는데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쳤다. 나이가 동준보다 좀 어려 보였으나 동준은 이내 마음을 닫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때 옆에 있는 사내가 말을 걸었다. - 저... 혹시, 담배 있으면 한대… 동준이 안 피우는 담배를 청래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옆 사내를 힐끗 보고는 담배를 한 개비 주었다. - 감사합니다… 혼자 오셨나 봐요...?
- …... 네… - 초면이지만 담배도 얻어 피우는데 제가 같은 걸로 한 잔 사죠! 여기요! 같은 걸로 두 잔 주세요...! - 괜찮습니다. 만… 아무튼 감사해요… - 저는 준이라고 합니다. 이쪽에선 그냥 준… - 그래요...? 나는 끝 이름이 준인데… 하하하! 신기하네요…(갑자기 분위기가 업 된 동준) - 아무튼 반갑습니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냥 예명을 사용합니다. 양해를… - 아… 아닙니다. 나도 이번 기회에 예명을 하나 만들어야 할까 봅니다. 내 이름은 동준입니다. 좀 전에 준이라고 해서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 그러셨군요!… 이곳에선 흔한 이름이라… 뭐, 훈이, 준이 등… -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군자동에서 삽니다. - 네. 저는 인천에서 왔습니다. 송도 부근입니다…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저는 올해 57입니다. 만으로 56이지요… - 이런! 나이도 저와 같군요...! 갑장이십니다. 하하하...! - 그래요? 하하하… 이런 우연이...! 아무튼 정말 반갑습니다. (잉? 되게 어려 보이는데?...ㅠㅠ) 둘은 초면이었지만 갑자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둘을 보면 친한 친구로 보았을 것이다. 둘은 분위기가 좋아지자 2차로 자리를 옮기려 소주방으로 향했다. 준이 안내한 대로 간 소주방에는 시간이 이르는데도 손님들이 꽉 찼었다.
아무래도 바(가라오케)나 원샷바와는 달리 소주방은 일찍부터 손님이 몰려들고 있었다. 공간이 좁은 데다 그나마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으니 더욱 비좁게 보였다.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 데다 쥔장도 보이지 않아 그냥 돌아서려는 데, 쥔장이 둘을 보고 불렀다. - 준 아냐...? 이 친구...!
- 하하! 그새 봤구만...!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가려 했더니… - 이 사람, 그래도 오랜만에 와서 그냥 가면 안 되지! 이쪽으로 들어오시게...! 주인장은 둘을 안내하였다. 주방으로 향하는 곳인데, 바깥 문을 열자 스페셜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VIP를 위한 공간 같았다. 붉은 벽돌이 낮게 벽을 이루고 담장처럼 붉은 장미가 탐스럽게 둘려 피어있었다. 계절은 오월이라 시원한 게 그만이었다. 파라솔이 우산처럼 펼쳐져 있고 플라스틱 의자가 네 개 놓여 있어 분위기가 나름 괜찮았다. 알고 보니 준과 소주방 주인장은 친한 친구 사이였다. 주인장(김영철)은 혼자서 가게를 꾸리다 보니 자리를 안내하고는 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안주와 소주를 알아서 가지고 나왔다. 셋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영철은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술을 마시는데,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좀 깊은 이야기를 하려 하면 자리로 돌아왔었다. 세 명 모두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정말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 오늘, 안주 값만 내고 가! 동준 친구 만나서 술은 서비스야! (영철이 기분 좋게 말했다) - 아니야! 그러면 안 되지. 오히려 이렇게 멋진 친구들 만나서 내가 기분이 좋은데… 내가 낼게! (동준이 기분 좋게 말했다) - 이런… 그럼 나는 그냥 먹기만 하면 되겠네? 하하하...! (준이 한마디 곁들였다.) 동준은 모처럼 편하게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준과 주인장 영철의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으며 헤어진 것이다. 그래,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은 거야! 동준은 그간 청래로 인하여 몇 년 간 어두웠던 마음이 한결 밝아 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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