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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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도 모르는 다방에 들어와서 우리 넷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찰스는 파르페 나는 아아 민석도 아아 병팔은 아이스티를 시켰다.
민석이 찰스를 보고 얘기했다.
"철구, 너만 아이스크림 시켰나?"
찰스는 눈을 쨍하니 뜨고 노려보면서 한 숨에 대답한다.
"니도 먹고 싶으면 시키지 그랬나.
....그리고 철구라고 하지 말라고 그랬지."
찰스는 파르페에 입을 갖다대고 조곤조곤 맛을 음미했다.
웅얼웅얼 말을 이었는데 잘 들리지는 않았다.
'유명한 스트리머랑 이름이 똑같아서 기분 나빠...'
뭐 이런 말로 들렸다.
내가 보기에는 찰스도 그다지 좋은 이름처럼은 안 들리긴 했지만...
앞에 앉아 있던 찰스는 곰곰히 뭔가를 떠올리면서
아차하는 표정을 하더니 휴대폰을 들고는 바쁘게 무언가를 찾더니
무슨 화면을 유심히 보고 내 얼굴을 비교하듯이 보면서 뭔가 알아 차린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내 눈과 마주치니깐 그때서야 내 눈을 피하고 화제를 돌렸다.
"날씨 참 좋다."
"덥기만 하구만"
퉁명스럽게 민석이 되받아쳤다.
병팔과 민석이 밖에 나가고 찰스와 나만 조용히 남겨져 있을 때였다.
찰스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내게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도 민석이는 안 돼요."
"네?"
"모른 척 하지 말아요."
난 다 마신 아메리카노에 얼음만 빨대로 물고 있었다.
에어컨이 추웠는지 얼음이 추웠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목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두 번 큰 헛기침을 하고 내가 물었다.
"민석이 좋아해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안정된 표정으로 바뀐 찰스.
"이젠 애증의 관계죠."
고요하면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바다 깊은 어두운 답답함이었다.
그 침묵을 깬 찰스의 한 마디.
"전 애인은 정말 어떻게 된 거예요?"
난 이미 알고는 있었구나 싶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오만 가지의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난 다시 아주 깊은 심해에 풍덩 떨어진 기분이었다.
물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는 그런 느낌
목이 조여오고 짜디 짠 바닷물이 내 모든 구멍 속으로 들어와 내 몸이 부풀고
부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주르륵 짜디짠 물이 밖으로 흘러내렸다.
앞에 보이는 찰스는 일렁이는 파도 속에 갇혀 있었다.
목소리도 흐릿했다.
찰스는 내 옆자리로 와서 가볍게 안아주고 위로해줬다.
"이럴려고 한 건 아니였어요. 미안해요."
너무도 큰 고통은 펑펑 울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넘는다.
무감각하고 건조하지만 그 안에서 폭포처럼 줄줄 세어 나오는 그런 감정이다.
마침 민석과 병팔이 와서는 찰스에게 무슨 일이냐며 호되게 야단을 친다.난 그 와중에도 눈물이 멎지 않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찰스가 싹싹 빌어 상황이 안정이 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설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을 내가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았는데 입밖으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린 그 무거운 침묵 안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도착했다.
"씻고 자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 금방 올게요."
친절한 민석은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혼자 거실에 놓여졌고
지구에서 나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난 그냥 바위가 되고 싶었다.
몇 분이 지나고 정신을 차리니 몸을 차게 하고 싶어졌다.
욕실로 가서 그대로 샤워기를 틀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실현의 상처를 받은 것처럼 샤워기를
틀고 하염없이 맞고 있었다. 몸이 차가워져서 기분은 점점 나아졌다.
차가워지고 추워져서 그대로 또 주저 앉았다.
내가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먼지처럼 되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는 다급하게 나를 부르면서 욕실의 문이 열렸다.
민석은 다급하게 소리지르며 나를 안았다.
그리고는 괜찮다면서 위로해줬다.
민석은 천사가 맞는 것 같았다.
난 그래도 눈이 풀리면서 민석의 품에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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