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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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기와 용주는 하나씩 옷을 벗었다. 학기는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다가 용주에게 말했다.
“저 뚱뚱하다고 놀리기 없기입니다. 이름 가지고 많이 놀리셨잖아요.”
“절대로 그럴 리 없어요.”
용주는 학기에게 다가가 셔츠 단추를 마저 풀었다. 하얀 런닝셔츠에 젖꼭지가 두드러지게 튀어 나와 있었다. 용주는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학기는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부끄러워요?”
“네.”
“다른 사람한테도 이랬어요?”
학기는 고개를 저었다. 학기로서도 정말 이상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무덤덤하게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침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엉키었었다. 그런데 용주 앞에서는 맨살을 보이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한껏 흥분을 했으니 어서 용주와 함께 섹스를 하고 싶으면서도 혹시나 용주가 뚱뚱한 몸을 보고 실망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용주는 학기의 런닝셔츠를 들어올렸다. 학기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두 팔을 들어 용주가 옷 벗기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맨살이 드러나자 곧바로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용주는 학기의 혁대를 풀고 바지도 벗겼다. 트렁크 팬티가 봉긋 솟아올라 있었다. 학기는 한 손을 내려 앞섶을 가렸다. 용주는 하나 남아 있는 팬티마저도 벗겨 버렸다. 학기는 가슴과 자지를 가린 채 도망을 치듯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학기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학기는 물줄기를 맞으며 머리를 감았다. 샴푸 거품을 씻어내고 눈을 떴을 때 옆에 서 있는 용주를 발견했다. 용주도 당연히 알몸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가슴, 뱃살이 없는 허리에 쭉 뻗은 다리가 꼭 다비드 상 같았다. 무엇보다 곱슬한 음모를 배경으로 곧게 뻗은 자지가 숨이 막힐 듯 아름답고 섹시했다. 저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내 몸에 섹시함이라도 묻었어요?”
용주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학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는 학기 곁으로 다가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입술에 살짝 뽀뽀를 했다. 그리고 학기를 껴안고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귀에 속삭였다.
“발가벗은 몸까지 귀여울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의 입술이 또 맞부딪쳤다. 아래쪽에서는 두 개의 몽둥이가 서로 칼싸움을 벌였다. 학기는 용주의 얼굴을 잡고 혀를 집어넣어 입 안을 헤집었다.
침대 위에서도 키스가 이어졌다. 학기는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 세 번을 만나는 동안 참고 있었던 욕망이 불타올랐다. 용주도 학기의 반응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학기는 용주의 몸 위에서 격하게 움직였다. 학기의 자지가 용주의 탄탄한 허벅지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는 동안 용주는 학기의 뱃살에 눌려 먼저 끝을 맺었다. 학기도 곧이어 몸 안에 있던 욕망의 액체를 뿜어냈다. 두 사람은 다시 키스를 하며 리포트 작성이 끝났다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시켰다.
“학기씨 먼저 씻으세요.”
학기가 씻고 나오자마자 용주가 뒤이어 욕실에 들어갔다. 침대가 깔끔했다. 함께 리포트를 작성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옷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잘 개어진 옷가지의 가장 위쪽에 팬티가 놓여 있었다. 학기는 침대 상판에 기대고 앉아 용주를 기다렸다. 용주도 욕실에서 나와 학기의 옆에 앉았다. 학기는 담배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용주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 자기도 한 대 피워 물었다.
학기는 용주와 발가벗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사정을 하고 자지가 쪼그라 들었어도 전혀 허탈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더없이 편안했다. 아무런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도 그랬다.
용주가 먼저 담배를 다 피우고 침대에 누웠다. 학기도 담배를 끄고 따라서 용주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마주보고 누웠다. 용주가 학기의 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좋았어?”
학기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 이제 말 편하게 하네요?”
“그래서 싫어?”
“아뇨. 더 좋아요.”
“더 좋아? 그럼 섹스도 좋았단 말이지?”
“네. 싸고 나면 허탈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나두 좋았어. 그러니까.... 너도 반말해. 겨우 두 살 차이잖아.”
“네....”
“뭐야~~~”
“응.”
“이제 안 부끄러워?”
“응. 너무 편하고 좋아.”
“나두 그래.... 학기야....”
“응?”
“나 한 번 불러봐.”
“형.”
“또.”
“형!”
용주가 밝게 웃으며 학기에게 뽀뽀를 했다.
“흐흐~~~ 너무 좋아.”
“뭐가?”
“니가 형이라고 부르는 거.”
“그게 왜? 형이니까 형이라고 부르는 건데.”
“한 번도 그렇게 불린 적이 없어서.... 아까 버스에서 니가 형이라고 했을 때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어.”
“진짜? 후배들이 형이라고 안 불러?”
“응. 다들 선배라고 불렀어.... 뭐 오빠 소리는 엄청 들었지만 형은 처음이야. 친구들이 오빠 소리 들을 때마다 기분 좋아하던 게 전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 그 기분 알겠어.... 근데 너 집에 안 들어가도 돼?”
“응. 자취방 보다 여기가 훨씬 좋은데? 형이랑 같이 있어서 더 좋고.”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놓인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친구집에서 자고 갈 거라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다시 학기의 옆에 누워 끌어안고는 말했다.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학기와 용주는 서로 부둥켜안고 잠이 들었다. 학기가 눈을 떴을 때, 용주는 침대 상판에 기대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깼어? 나 때문에 깼구나?”
“아니야.... 나도 담배 좀....”
용주는 담뱃불을 붙여 학기의 입에 물려줬다. 학기는 엎드려 누워 담배를 피우다 용주의 허벅지 너머에 있는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아침 발기가 된 용주의 자지가 보였다. 학기는 담배를 비벼 끄고 용주의 자지를 덥석 물었다. 그렇게 용주와 함께 새로운 리포트를 작성했다. 마지막은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서로의 검은 숲에 하얀 물감을 흩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학기와 용주는 퇴실 시간이 되었다는 인터폰이 울릴 때까지 발가벗은 채로 부둥켜안고 있다가 여관을 나섰다. 아무 말 없이 그냥 골목길을 걷던 학기가 먼저 용주에게 말을 건넸다.
“형, 배 안 고파?”
용주는 대답 대신 오히려 학기에게 물었다.
“우리 영화 보러 갈래? 밥은 시내 나가서 먹고....”
학기는 용주와 함께 시내로 나가 영화표를 끊고 밥을 먹었다. 용주가 영화를 보러 나올 때마다 먹는다는 순두부찌개였다.
“나 여기 처음인데 가격도 싸고 맛있네.”
“오늘은 평일이라 그렇지 주말에 오면 줄 서서 기다려야 돼.”
밥을 먹어도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으나 커피를 마시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냥 극장에 들어갔다. 남자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학기와 용주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처음 만나던 상황이 생각나서였다.
“내가 불 빌려 달라 그랬을 때 그냥 담배만 건네는 거 보고 나 같은 사람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귀찮게 하는 사람이 종종 있어서.... 형 들어가는 거 보고 바로 따라 들어갔는데....”
“그럼 내 옆에 앉지 그랬어.”
“용기도 없고.... 영화 보러 온 사람인 줄 알았어.”
영화가 끝이 났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기와 용주는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 용주는 가방에서 안경집을 꺼내 안경을 썼다. 학기는 안경을 낀 용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영화 볼 때만 안경을 써.”
“그날은 안 썼잖아.”
“영화 보러 간 게 아니니까.”
“안경도 참 잘 어울리네.”
삐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였다. 용주가 선택한 것이었다. 학기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용주가 가만히 학기의 손을 잡았다. 학기는 용주와 손깍지를 낀 채로 영화를 관람했다.
발칸반도의 흥겨운 음악과 함께 영화가 끝이 나고 상영관에 불이 켜졌다. 학기와 용주는 서로 마주보고 밝게 웃었다.
극장을 나와 함께 커피숍에 들어가 앉자마자 용주가 학기에게 물었다.
“영화 어땠어?”
“좋았어. 특히 마지막에 결혼식 장면 너무 좋았어. 평소에는 그냥 줄거리 챙기고 재밌다 재미 없다로만 끝냈는데 오늘 본 영화는 좀 달라. 왜 감독이 중요한지 알게 됐어. 씨네21에서 칸영화제 기사 본 거 기억나. 마지막에 땅 갈라지는 거 있잖아. 유고연방이 갈라지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좀 짠하기도 하고 그래.”
용주는 말없이 학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제야 학기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방금 말 제일 길게 했어. 신기해서 봤어....”
용주는 담배를 피워 물고 말을 이었다.
“이 감독 진짜 영화 잘 만드는 거 같애. 아빠는 출장 중도 괜찮았고, 집시의 시간은 정말 좋았어.”
학기와 용주는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커피숍을 나왔다. 지하철에 올라 집으로 가는 동안 별 말이 없던 용주가 내릴 때가 다 되었을 즈음에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우리.... 같이 여행 갈래?”
“어디로?”
“그건 다음에 만나서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나 먼저 내릴게. 잘 가.”
학기와 용주가 처음 여행을 떠난 곳은 영주였다. 적당히 멀고, 괜찮은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다가 용주가 제안한 곳이었다. 교통수단은 기차로 정했다. 구체적인 목적지는 부석사였다.
학기는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즐거웠다. 대학에 오기 전에는 수학여행이, 대학에 와서도 M.T.와 졸업여행이 전부였던 학기는 단체여행이 아닌 단둘이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용주의 표정도 싱글벙글이었다. 먹을거리가 잔뜩 실린 카트가 지나갈 때 삶은 계란과 음료수를 사서 함께 나눠 먹었다.
“기차 타기 잘했지?”
“응.”
용주는 학기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부석사 부분만 읽어. 알게 되면 더 많이 보여.”
학기는 용주의 말대로 부석사 부분을 찾아 읽었으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용주 때문이었다. 용주가 옆에 있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냥 형이 설명해 주면 안 돼?”
용주는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학기에게 부석사의 내력에 대해 설명했다.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학기가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까지 곁들였다. 신라 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국유사를 보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오거든. 이를테면 왕의 성기 길이 말이야. 지금 관점에서 보면 승려들이 보수적일 것 같은데, 일연 스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 같애. 천연덕스럽게 구체적인 길이까지 제시를 해. 지증왕이 한 자 다섯 치....”
“그게 얼마나 되는 거야?”
“보통 한 자를 30센치, 한 치를 3센치로 보니까....”
“45센치. 미쳤어....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든 안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확인해 볼 수도 없으니까.... 암튼 엄청 컸던 것은 짐작이 가잖아. 그래서 지증왕이 왕비를 얻지 못했어. 너무 크니까.... 근데 결국 왕비를 얻어서 자식도 낳았어. 법흥왕 말야.... 근데 너 지증왕 업적 아직도 외우지?”
“순장 폐지, 우경 실시, 우산국 정벌....”
“그럼 법흥왕?”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금관가야 정벌.... 아직 안 잊어버리고 있었네.”
“하하하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여기 또 있네.... 구석기 유적?”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두루봉 동굴, 점말 동굴.... 하~~~ 이런 걸 왜 아직도 외우고 있지?”
“아마 평생 안 까먹을 거야. 뇌에 새겨졌으니까.... 암튼 지증왕이 왕비를 어떻게 얻었냐면 똥을 엄청나게 굵게 눈 여인을 찾아서 결혼을 한 거야. 천생연분인 거지....”
기차가 영주에 도착했다. 오후에 출발을 한 터라 부석사에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갔다. 이제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20대의 청춘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던져 놓고 키스를 하며 옷을 벗었다. 여행은 핑계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욕실에서 씻는 동안에도 학기와 용주는 떨어지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는 제대로 원초적 본능을 발산했다. 하지만 학기도 용주도 사정을 늦추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끝을 내기가 싫었다. 서로의 몸을 애무하며 사정 직전까지 간 두 사람은 잠시 뜨거운 욕망을 가라앉히면서 담배를 피웠다.
“형~~~”
“응?”
“혹시.... 뒤로 해 봤어?”
학기는 용주를 만나기 전까지 남겨 두었던 욕망을 이끌어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가장 훌륭한 퀄리티의 리포트를 작성하고 싶었다. 용주와의 만남은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용주는 학기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가는 사람이었다.
“너는?”
학기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용주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해보긴 했어.... 하고 싶어?”
“응....”
“그럼 하면 되지 뭐.”
용주는 모텔에 비치된 싸구려 콘돔을 뜯어 학기의 자지에 씌웠다.
“나는 지증왕이 아닌데....”
“지증왕만큼 기골이 장대하잖아....”
학기는 처음으로 용주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리포트 작성을 끝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용주도 자신의 배 위에 하얀 물감을 뿌림으로써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다.
“형.... 미안해....”
“뭐가?”
“내가 너무 빨리 끝냈지?”
“아니. 딱 좋았어. 처음이라 그랬을 거야....”
다음 날 아침 작성한 리포트는 과정부터 달랐다. 학기는 더욱 농밀하게 은밀한 부위까지 애무를 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다시 한 번 용주의 몸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한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스스로도 만족한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었다. 용주의 표정과 몸짓도 지난 밤과는 확연히 달랐다. 용주는 학기의 목을 끌어안고 길고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학기와 용주는 버스를 타고 부석사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부석사로 올라가는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은 계단을 올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용주가 학기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좋지?”
“응.”
학기와 용주는 아무 말이 없이 나란히 기대서서 서로 같은 곳을 응시했다.
- 우리 열차는 잠시 후 김천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학기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용주와 함께 내렸다. 그리고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영주역에 도착했다. 학기는 용주의 한 발자국 뒤에서 졸졸 따라갔다. 오는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용주에게 학기가 말을 걸었다.
“형.... 우리 버스 말고 택시 타자.”
용주가 택시정류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기도 곧장 뒤따라갔다. 말을 하지는 않아도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용주가 고마웠다.
영주역에서 부석사까지 택시로 가는 길은 짧고 편했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3만원이 넘는 요금이 나왔다. 학기는 돈을 지불하며 용주의 눈치를 봤지만 용주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어쩌다 늦어서 택시를 타야 할 때 온갖 잔소리를 퍼붓던 용주가 아니었다. 모든 여행 경비를 학기가 부담하기로 하고 떠난 여행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잘 따라오던 용주가 택시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버텼다. 학기는 기사의 눈치를 보며 겨우 용주를 잡아 끌어 내리게 했다. 그렇게 부석사 일주문을 향해 용주는 학기의 앞에서 가고 학기는 용주를 뒤따라갔다.
하지만 또 용주가 입구 앞 계단에서 못 가겠다고 말썽을 피웠다.
“여기까지 와서 왜 그래? 무량수전 앞에서 보는 풍경이 좋은 거 형이 누구보다 잘 알잖아.”
학기가 아무리 달래도 용주는 완강하게 버텼다. 잡아 끌고 등을 떠 밀어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업히라고 해서 가고 싶었다. 젊었던 시절, 춘향전을 따라한답시고 학기가 용주를 업고 놀기도 했기에 용주에게 업히라고 하면 마지못해 업힐 사람이라는 것을 학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 쉰을 넘긴 학기는 용주를 업고 무량수전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 형이 싫다는데 나도 억지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럼 우리.... 바다로 갈까? 형도 정동진 좋아했잖아.”
학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용주가 방향을 틀었다. 학기는 긴 한숨을 내쉬고 용주의 뒤를 따라갔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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