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우체통 02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느린우체통 02

#이중생활(?)


지훈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반에서 처음보는 남자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지훈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리고 숨이 턱하고 걸렸다. 심장이 갑자기 시렸다. 아니 아렸다? 뭔가 찡해지면서 아팠다. 착각인가? 지훈은 저 아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함께 저 아이를 너무 많이 알고 싶어졌다. 좋아하게 된건가?


지훈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아이에게 떨려왔다. 눈도 마주하기 힘들었고 말도 걸기 힘들었다.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두려워졌다. 좋아하는게 맞는건가? 이게 설렌다는 건가? 


지훈은 네이버에 검색 해보았다. '남자인데 남자가 좋아요' 라고 지식인창에서 본인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글을 발견했고, 질문과 답변을 한글자한글자 곱씹으면서 읽었다.


지훈은 생각했다. 나는 동성애자. 아 게이구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주위시선은 무서웠다.


겁이 많은 지훈은 외톨이가 되었고, 자신을 가두고 친구들을 멀리했다. 그 아이와도 역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



-너 금진농고 맞지?


지훈은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4교시 수업시간이었다.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잠시 후 한번 더 울렸다. 다행히 애들과 선생님이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연락올 곳이 없어 순간 뭔가 싶었다. 스팸이거니 싶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잭디 알람이었다.


지훈은 잭디 알람을 끄려고 잭디를 켰고, 위치 활성화가 되었다. 쪽지내용은 궁금하지 않았고, 설정으로 가 알람을 비활성화 시켰다.


"그때구나.."


그럼 노픽으로 쪽지 날리는 이 이상한 놈도 자신과 같은 학교인가 싶어서 살짝 경계심이 생겼다. 물론 지훈도 노픽이다. 학교에서는 잭디를 켤 생각이 없었는데 지훈은 아주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자신을 질책하고, 자책했다.


"어쩌지.."


한참을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 서빙을 하시는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지훈은 방에서 나가 엄마를 맞이했다. 지훈의 엄마는 일이 많이 고되었는지 지훈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왔어?"


엄마는 곧장 안방으로 향해 가방을 내려놓고 옷장에서 편한 옷을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지훈은 매일 그러는 엄마의 모습에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얼른 잠이나 자, 새벽에 인나야하잖아."

"응. 엄마도 잘자."


엄마의 무심한 말에도 지훈은 발걸음을 멈추고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화장실로 들어간 엄마는 문을 닫았고, 지훈의 말을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훈은 최근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가 급하게 시작한 서빙일이 많이 힘든 것 같았다. 급격히 줄어든 말 수와 웃음기. 지훈은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보는게 괴로웠다.


지훈은 복잡한 생각에 새벽내내 선잠을 잤고, 새벽 5시 알람을 듣고 눈을 떴다. 체감상 2~3시간 밖에는 못 잔 것 같았다.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고 학교갈 준비를 했다.


6시 10분까지 스쿨버스를 타야했다. 5시 50분 서둘러 밖으로 나가 스쿨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늦지 않게 도착했다. 자신의 고정석에 앉아 가방을 껴안고 잠에 들었다.


순식간에 깊게 잠들었다 눈을 뜬 순간 이곳이 어딘지 자각하지 못한 지훈은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지훈의 옆자리에는 하진이 앉아있었고, 하진의 어깨에 기대고 자고 있던 지훈은 한참 뒤에야 자신이 하진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라 몸을 똑바로 일으키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에 들었다. 물론 하진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멋쩍게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약간 흐르자 금세 깊은 잠에 빠졌는지 지훈은 앞으로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한 지훈을 힐끔힐끔 몰래 보던 하진이 조심스럽게 지훈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뉘웠다.


하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지훈이 깨지 않았다.


하진은 매일 지훈의 옆자리를 앉으려고 노력했다. 가끔 다른 아이에게 빼앗길 때도 있었지만 거의 80% 이상은 지훈의 옆자리를 앉을 수 있었다.


하진은 지훈을 화장실에서 처음봤다. 쉬는시간이었고, 오줌을 싸고 손을 대충 씻고 화장실을 나가려던 찰라 지훈과 문앞에서 왔다리갔다리를 하게 되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발이 어디로 움직일지만 보고 있는 것 같은 지훈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지훈은 놀랐는지 고개를 들었고, 순간 너무 가까이에서 지훈과 눈이 마주친 하진은 지훈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아..아..]


벙쪄있는 하진을 피해 지훈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급하게 소변기 앞에서 오줌을 싸는 지훈의 옆모습을 살짝 보고 하진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하진은 영혼이 빠진 것 마냥 멍하니 걸어서 1학년 3반 농기계과 교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가서 앉고서도 끝임 없이 생각했다. 누군지, 이름이 궁금했고, 몇반 무슨과 인지 궁금했다. 살짝 들은 목소리도 더 듣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날 때까지 지훈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스쿨버스에서 우연히 지훈을 발견했고 빈 옆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됐다. 하진은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하진은 지훈의 이름이 너무 궁금해서 몰래몰래 살짝씩 쳐다보았지만 지훈의 명찰을 보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그냥 대놓고 갸웃거리며 명찰을 보았고, 정지훈이라는 이름 석자를 읽고나서는 괜히 창가쪽에 손을 뻗어 커튼을 쳤다.


그냥 말을 걸면 되는데, 그냥 이름을 물어보면 되는 거였는데, 어색하고 말꺼내기가 어럽고 그래서 그냥 관뒀다. 하진은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하진은 지훈이 모르게 지훈에 대해서 차근차근 몰래 알아갔다. 지훈은 4반 식품과 학생이며, 4반 식품과 학생이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알게 된거라고는 이름과 반 뿐이었다.


'왜 정지훈 이 자식은 쉬는시간에도 코빼기를 안보이고, 점심시간에도 코빼기를 안보이고, 스쿨버스 귀신인가.. 왜 학교만 들어가면 자취를 감추는거야..'


하진은 등굣길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붙잡혀 골목에서 멀리 등교하고 있는 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진아. 넌 진짜 안필거냐?"


하진과 제일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담배를 피던 키도 크고 덩치도 산만한 오진장이 물었다. 하진은 자신의 얼굴로 뿜어져오는 담배연기에 연신 기침을 했다. 괜히 더 오바하면서.


"이 X끼봐. 개웃기네."

"죽을라 그러는데?"

"적당히 해. X신아."

"야아.. 하지마. 하진이 불쌍해.."


진장과 아이들은 하진의 오바스러운 모습에 웃기 시작했고, 진장이 살살 하진의 머리를 여러번 쳐대다가 결국에는 세게 한 대 후려치니 하진은 기침을 멈추었고, 옆에 있던 이미진이 진장을 말렸다.


"불쌍하긴 해. 그래서 내가 친구해주잖아."

"아 뭐래에..! 진장아 너나 잘행~"


미진의 말에 애들은 웃음이 터져나왔고, 하진도 풉하고 참으려던 웃음이 나왔다.


"아, 이미진 짜증나 진짜."


진장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골목을 먼저 나갔다. 애들도 뒤따라 나가며 쭈뻣쭈뼛 서있는 하진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끌고 나오다시피 모두 골목에서 나왔다.


하진은 덩치큰 애들이 자신에게 서스럼없이 팔을 자꾸 걸치는 게 불편했다. 처음엔 뭔가 소속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자꾸만 짓눌려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작지만.


교실에 도착한 하진은 괜히 자신에게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매일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하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고, 잭디를 켰다. 기다리던 답장은 여전히 오지 않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동갑인데 말놓을게

답이 없네

어디 살아?

가까운거 보니까 시전? 무슨동?

너 왜 자꾸 읽씹해?

괜히 섭섭하다

근데 차단은 안하네?

-할게

안돼 하지마ㅠㅠ 안하는 것 같은데

뭐야? 안녕?

안녕?

살아있니?

아 학교 싫다..

양아치새끼들도 담임도 다 싫다..

너 금진농고 맞지?


노픽의 아무개와의 쪽지창 스크롤을 계속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짝사랑은 짝사랑이고, 하진은 자신과 같은 게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냥 아무나한테 일단 쪽지를 해봤었다. 답장을 잘 안해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연락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어제 상대의 위치가 0km로 변경이 됐을 때는 순간 오류인줄 알았다. 크게 놀랐지만 다시 확인할 틈 없이 점심시간이어서 진장과 아이들에게 급식실로 끌려가게 됐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틈틈히 확인 했는데, 새로고침도 해보았는데 계속 0km인 상태였다. 집을 가서도 내내 신경쓰여서 결국엔 금진농고 맞냐고 물었지만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그런데 위치오류가 아닌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제 쪽지를 확인을 했는지 거리가 2.1km로 업데이트 되었다. 학교에서는 5.8km로 변경 되었다. 그래서 상대가 같은 학교라는 확신이 생긴 하진은 다시 한번 더 쪽지를 보냈다.


나 학교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konan66" data-toggle="dropdown" title="GTman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GTman</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그렇게 잭디로 연결되면 대박이죠
알림 0